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 동연총서 208
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 동연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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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와 에로스의 신화는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신화는 집단적인 경험과 상상력의 산물로 현대인에게 인간에 대한 통찰을 선사하지만 상상력이나 상징에 대한 감이 없는 나에겐 항상 접근하기 어려운 텍스트였다. 몇 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의 저자 로버트 존슨이 쓰고 <나의 꿈 사용법>을 쓴 고혜경이 번역한 이 책은 불모지였던 나의 상상의 세계에 형태를 주고 색을 부여해 준다. 총 13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이야기와 해석이 명료하고 적절하게 연결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고 내 심리에 적용하기가 어렵지 않다. 표면적으로 전개되는 사랑의 이야기는 사실 한 여성이 진정한 자기가 되는 개성화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프시케와 에로스, 아프로디테가 등장인물이다.

 

아프로디테는 무의식에 거주하는 여신으로 해석된다. 여성의 본능적인 특질을 가진 아프로디테는 인간 프시케가 성장하기 위해 꼭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때로 둘 사이에 일어나는 충돌로 여성은 갈등을 겪는다.

프시케는 ‘왕의 딸’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수려하고 숭고하지만 외롭다. 에로스는 아프로디데의 명령으로 프시케에게 화살을 쏘려 하지만 실수로 자신의 화살에 손가락을 벤다. 에로스는 프시케와 사랑에 빠진다. 에로스와 낙원에 살게 된 프시케는 질투에 싸인 언니들의 사주를 받아 자고 있는 에로스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칼을 쥔 채.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은 아름다운 에로스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풀린다. 게다가 에로스의 화살을 건드려 그녀도 사랑에 빠진다. 언니들은 언니 내면에 있는 그림자이다. 그림자로 인해 깨어난 의식은 지옥 같은 외로움을 겪게 된다. 여성은 등불은 남자에게 유용하지만 자신의 내적 판단을 위해서만 사용해야지 남자나 타인을 향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랑에 빠진 프시케의 에로스를 만나기 위해 아프로디테가 내준 네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자의 내면에 있는 남성적 특질인 아니무스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이 취해야 할 행동반경이나 따라야 할 지침들이 있다. 과제의 단계들은 모든 에너지와 모든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이 과제를 마친 프시케는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여신이 되고 에로스와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나에게 적용해보았다. 프시케의 등불은 남자의 의식과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이나, 불평과 잔소리로 묘사되는 '칼'의 경우는 자기를 성찰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남편에게 하는 습관적인 잔소리에 ‘내가 왜 이러지?’하고 느껴왔었다. 또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많고 잡다한 관심과 활동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무의식의 힘에 압도당할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행동으로 에너지가 분산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지불식중에 인생에서 성공하고 만족감을 얻으려면 많은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하고 좋은 인간으로 비춰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일침을 놓는 대목이다. 단순하고 명료하며 집중적이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고 작은 일에 만족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가 풀어주는 신화 이야기일지라도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에 이야기가 품고 있는 넓고 깊은 의미에 감동을 느꼈다. 내가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면 되지, 하는 마음과 왜, 뭐가 문제 길래 삶이 이렇게 꼬일까, 했던 고민들이 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여성성이 내게도 엄연히 작동한다니 놀랍다. 한가지, 살다 보니 무시하고 잃어버린 여성성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보물은 자기 내면에 있다는 것, 캐내는 만큼 나는 가장 나다운 매력과 활기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아는 분이 말하길 프랑스 여자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페르조나(외적인격)가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가짜 가면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조형능력자로서의 아름다운 페르조나를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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