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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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심리학자인 칼 융의 책에 푹 빠져서 살다가 오스카 와일드가 쓴 소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생각났다. 심리학 관련 서적을 읽다보면 ‘페르조나’ 라는 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고대 희극에서 쓰던 ‘가면’이란 말로 현대에는 겉으로 보이는 한 사람의 인격(외적인격)을 의미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젊고 매혹적인 자신의 외모, 페르조나에 집착한 인생을 산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페르조나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는 그만큼 억압되어 있고 분출되려는 힘도 그만큼 세진다. 그래서 무의식은 가끔 신호를 보내는데 예를 들면 무심코 드는 생각이나 기분, 그냥 나오는 말, 술에 취해 하게 되는 실수, 매일 꾸는 꿈, 정신병 등이 그렇다. 그것을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가 소설 속에서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으니 놀랍다.

 

스무 살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선물로 받은 자신의 초상화에 반해 언제까지나 외모가 변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는 사랑했던 소녀가 자신의 비열한 행위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천박한 사람이나 감정에서 벗어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거예요.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은 즐거운 일을 만들 줄 아는 것만큼이나 슬픔도 쉽게 끝낼 줄 알아요. 난 감정에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아요. 감정을 이용하고, 즐기고, 지배하고 싶단 말이에요.” 초상화 앞에서 ‘아름다움과 젊음이 변치 않길’ 바라던 기도는 이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실에서 죄책감을 느낄 법한 일이 벌어져도 그의 외모는 그대로인데 초상화의 모습은 점점 추악하게 변해간다. 두려움을 느낀 그는 초상화를 은밀한 곳에 숨겨 두고 덮개를 씌워두며 생각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얼굴은 자줏빛 덮개 아래에서 차츰 짐승처럼 흉측하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더러워질 것이다. 그런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이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라고. 그는 때로 자신의 이중생활에 의아함을 느끼고 흉측하게 변해가는 초상화를 바라보며 괴로워하지만 점점 더 미칠 듯한 탐욕에 사로잡혀 쾌락적인 삶을 살아간다. 결국 그는 자기기만과 합리화로 타인을 짓밟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괴물이 된다. 파국 앞에 선 그는 여러 사람은 물론 자신을 파멸시킨 것은 간절히 기도했던 미모와 젊음이었다는 것 깨닫는다. 내면을 돌보지 않고 욕망에 따라 살아온 아름다운(선) 자의 최후는 파멸(악)이었다.

 

사람의 내면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탁월한 외모를 가진 자라도 내면을 돌보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나 외모가 추한 사람들의 경우,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열등감과 원망의 마음으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의기소침하고 뭐든 믿지 않는 냉소적인 태도가 외모에 덧칠해져서 말이다. 내면과 외모는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어떻게 융합되어 한 사람의 인격으로 완성되는지 미리 알 수는 없다. 노력하고 성찰하는 일, 그것도 운명일까? 내면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다만 그것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고 잘 돌보는 일이 삶의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좋은 소식은 그렇게 할 때, 개인의 의식이 확장되고 인격이 성장하며 행복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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