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늑대의 파수꾼 - 제9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2
김은진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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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짓밟힌 일본군 강제 위안부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 1945년에 막을 내린 일제 강점기를 2016년 현재에 돌아보면 먼 옛날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늑대 같은 존재들은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제국주의의 시간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이 소설을 쓰며 할머니들을 지옥으로 몰고 간 제국주의, 현재까지도 흐르고 있는 제국주의의 시간에 제동을 걸고 싶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과거 제국주의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고 파수꾼이 되어 그 모든 늑대들로부터 순수한 인간성을 지키자는 주제를 담고자 했다. 그 주제가 잘 담겼는지 판단하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리라."
고 밝히는 작가의 울림이, 읽은 후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책冊임이 분명하다.

한강 작가의 나즈막한 톤으로 모든 이의 청각을 집중시키고 그녀만의 창작세계로 우리를 이끌었다. 집필과정에서 자신이 글로 꼭 쓰고자했던 책임감과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녹아내려야했던 영靈들의 울부짖음이 한없이 끌려들어가는 깊은 심해의 답답함으로 힘들어했음을 토로했다.
《푸른 늑대의 파수꾼》도 한강 작가의 책 어느 부분과 맞닿아 결국에는 '힘의 권력'이라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햇귀의 시간', '수인의 시간'이 반복되며 1940년대와 2016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시대적 배경이 분명한 이야기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이게 무슨 내용이지?'싶었다. 주인공 16살의 이름 '햇귀(해돋이때 처음으로 비치는 해)'도 생소했고, 회중시계가 타임머신의 중요한 기점이 된다는 것도 그리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입에서 귀까지 찢어진, 보기에 흉한 할머니의 집에서 인터뷰(외고에 가기위한 담임 선생님의 배려-봉사점수를 채우기위한 사회복지)를 하는 과정에서 햇귀를 괴롭히는 반장 태후를 피하기 위해 도망간 할머니집 2층 다락방. 좁고 으스스한 그 곳에서 회중시계를 발견하고 우연히 시계태엽을 감는다. 그와 동시에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아버지를 돕기위해 일본 순사 보조 아저씨의 선심을 믿고 일본 총독부의 고위층집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견뎌내는 주인공 수인. 가수가 되고싶은 꿈을 혼자서 감내하며 잘 벼텨내고 있다. 우연하게 수인의 방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 햇귀와 마주하게 되고, 2016년 현재의 할머니와 1940년대의 수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아~수인이가 할머니구나...할머니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구나..."

위안부로 팔아넘기려 계획을 세우는 음모를 햇귀가 듣게 되고, 수인을 살리고자 시간과 운명을 뒤집는 2016년의 현재, 할머니가 된 수인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믿기지 않은 수인과 자신의 아버지(후지모토 상)가 그럴 일이 없다고 말하는 하루코.(후지모토상의 딸)
아버지 후지모토상의 결백을 밝히고자 수인을 대신해 배에 타게 되는 하루코. 하루코가 수인을 대신해 경성의 조선 소녀들과 기차를 타고 떠난다.
"못다 핀 청춘의 비극적 자살!
지난 8월 7일의 참사. 총독부 세무 감독국장의 딸 하루코 양이 버마행 군용선에서 바다로 떨어졌다. 버마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루코 양이 그 배에 탄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아버지인 후지모토 국장은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운 지 알주일이나 되었으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이 미세하게 식어가는 8월 하순 신문에 실린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후지모토 상의 딸 하나코. 아버지의 청렴함을 믿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수인을 대신해 위안부가 될 소녀들이 타는 기차에 오른다. "아버지의 결백을 증명하겠노라, 들키게되면 아버지의 이름을 대고 돌아오겠노라"했다.
하지만 버마행 군용선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음을 맞은 하나코.
하나코의 죽음으로 수인의 수레바퀴같은 삶이 멈추었을까?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이 평범한 16살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수인은 하루코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듯 망연자실하고 운명을 받아낸다.
나라를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힘없는 조선은 수인도 결국 위안부가 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리고 말이 언어가 되어 할머니의 삶이 되었을 때, 그 삶은 토해낼 수 없는 아픔이 된다. 수인의 삶은 하루코가 있는 버마 어디쯤 깊은 바닷속으로 쳐박혀 숨을 쉴 수 없는 하루, 그리고 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에게 말대꾸를 했다는 말같은 이유로 칼로 얼굴을 베인다. 해방 후 악착같이 살아남아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자신처럼 꿈을 꾸고 그 꿈이 새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소원했다. 어린 남자아이 하나를 입양해서 키웠다. 아들이 손가락질을 받지않고 키우려고 무단히도 애썼다. 그런 아들이 성인이 되어 장가를 갔다. 어미가 되어 자식의 앞길에 흉이 될까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가끔 요양보호사가 찾아와 청소며 음식이며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너무 그리워 아들집 앞에서 먼발치 숨어 얼굴을 보고 왔다. 그 날 넋을 놓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 후 할머니는 외롭고 고립된 채 죽음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

하나코에 대한 죄스런 마음, 자신의 어릴 적 삶에 대한 아쉬움과 일본군에게 짖밟힌 마음들이 악몽으로 힘든 삶에 마음의 병을 얻는다. 할머니에 대한 삶의 기억을 모두 외면하고, 역사의 어느 아픈 흔적으로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리려 한다.

시간여행이라는 주제가 '현실성에 맞나?' 끌림은 없었다. 반복되는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상황을 쫓아가며 정신차리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감정.
'그 흔한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 '시간여행의 멀미'라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읽을 때도 수인과 햇귀의 눈이 되었지만,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나서 한강 작가가 말했던 자신이 쓰고자했던, 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힘들어했던, 독자와 그 힘듬을 공감했다던 그 말이 떠올랐다. "이왕이면 시간여행하는데 햇귀가 1940년대로 갔으면 수인은 원하는 가수가 되도록 해주지. 꼭 결말을 그렇게 해야하나." 원망 섞인 푸념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발길이 희미해져가는 공간. 숨이 희미해져가는 시간. 역사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현재. 할머니와 수인은 기억해야 할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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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3
이희영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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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前作 <페인트>가 줬던 임팩트를 이어가는 느낌이다.
남의 얼굴을 포함해서 세상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오직 자신의 얼굴만 볼 수 없는 어린 주인공의 상태를 두고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문제로 결론을 낸다. 자신을 둘러싼 혼란을 잠재우려는 생각에 얼굴이 보이는 척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시작된 자발적인 은폐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6살의 성장이 덜 된 아이에게 자아의식이 흔들리는 상황에 놓이게 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적당한 타협을 깨닫게 되는 과정.
묵재라는 반 친구의 등장과 그 친구를 통해 생긴 에피소드로 이마에 큰 흉터가 생긴다. 비로소 거울 속 보이지 않았던 얼굴에 흉터만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상처 자국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주인공 시울이는 그 상처만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이라 여기며 흉터를 어루만진다.
"자아는 뾰족하게 경계면을 확정하고 구체적 실체를 확장하기 시작한다."는 작가의 문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글.
"나는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잊지 않으려 한다. 할머니를 보는 주인공 시울이의 아름다운 시선과 흉터를 당당히 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굳건함이 필요한 세상이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본다는 건, 마음을 연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런 시선은 스스로에게 향해야 하고, 그런 시선이 세상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내내 흉터가 생기면서 '어느 날 거울 속에 주인공 시울이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뻔한 스토리가 이어질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작가는 흉터를 자신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개방식으로 개념을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때론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면을 쓰고, 괴물이 되고, 자신을 괴롭히면서. 불확실한 생각을 지닌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내가 보는 시선에 따라 세상은 달라보인다. 주인공 시울이의 마음을 따라가다보면 끝까지 찾으려고 애쓰지않고, 그렇다고 현실을 비난하지도 않고, 평범한 10대의 마음으로, 시선으로 자신을 받아들인다.
어떻게 선택하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내가 바라보는 만큼, 내가 생각하는만큼 세상은 보는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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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김정일 지음 / 지식공작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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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사람관계, 일, 미디어, 마약, 성형, 스마트폰...
어느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인간내면에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잠재되어 있고, 조현병적인 소견도 잠재되어 있다고 한다.
가정내에서 이런저런 일들로 소리지르며 아우성칠때 내 속에도 그런 발악?이 있구나 새삼 느낀다.

어찌 강남이라는 특정지역에 한하겠나 싶다.
사건사고들을 접하다보면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무섭다.
최첨단 문명의 발달이 좋은건만은 아니다. 그 속도에 인간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뒤처질까 걱정하고, 내가 손가락질 받을까봐 걱정이 되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보게 된다.
아~심란하다...
책에서 나오는 글보다 더 심각함을 느낀다.
용감한 형사들이라는 방송을 보면서 나쁜놈보다 더 나쁘고 악랄한 놈들이 세상 천지에 있고, 그런 범죄자들을 잡기위해 더 악독해야하는 형사들을 보면서 인간을 포기한 짐슴만도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나면 세상살기 겁이난다.

강남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범죄가 움틀고 있고, 감정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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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의 인간학 - <세미나 7> 강해: 윤리 그 자체인 인간 존재에 관하여
백상현 지음 / 위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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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인간관계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진리처럼 박힌 내용들이 라깡이라는 정신분석학자에 의해 조금 틀어졌다.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을 한다.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생각은 존재로 부터 온다.
너무 허무맹랑하다 할수 있지만 라깡의 인간학이 왜 마음에 닿는걸까?
생각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유동적이다. 그런 생각들이 언어라는 실재계로 규칙과 정렬로 인간 존재의 조건이 된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생각을 한다. 생각은 살아있다는 증명이다.
라깡의 인간학에 접목시킨다면 존재하는 것들이 실체를 가진 실물로서 눈에 보이지만 그 실물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조건들이 언어와 표상들이 상상 그 이상으로 이미지화되어 드러난다.
인간=생각=존재=생각=인간
인간=생각=언어=물건=이미지화되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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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지음 / 위너스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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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이 단출해 좋다. 애써 멋 내지 않은 듯 보이지만 실은 그러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멋쟁이 단어들을 탈락시켰을지를 상상하면 웃길 것도 없는데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유병재(코미디언)의 추천글처럼 어려운 말들로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않고 단출하고 솔직해서 공감이 훅 간다.
좋은 것을 좋다고 표현하면 너무 솔직하다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면 너무 직설적이다 하고,
여름보다 겨울이 좋아고하면 너무 감정이 메마르고 차다한다.
이쁘다고 입모아 이야기하는 유행템들이 내 눈에는 그리 이뻐보이지 않고 관심이 없는데 그들 속에서 내가 그들의 생각을 쫓아갈 이유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이쁜 것을 이쁘다 말하는 것도, 이쁜 것이 이쁜지 잘 모르겠는 나도 표현방법인데 그냥 서로 다른거 아닌가?
그런 나를 이해하라는 말도, 납득시키고픈 마음도 크게 없다. 나는 네가 아니고 나니까.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책을 알라딘에서 보고 북밴드에 킵했었다.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 전에 나 스스로가 내가 뱉은 말에 뜨끔해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저렇게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한 말들이 오히려 잔상이 많이 남는다. 내 경우엔 그렇다.
문상훈 작가의 글은 내 마음같다. 내가 하고픈 말들을 적어놓은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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