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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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서연 아빠랑 도장 찍고 오는 거야?"
"......"
"에미가 묻잖아, 이년아!"
"이러다 서연이 깨겠다. 승애도 속 시끄럽겠지만 네 에미 생각해서 얘기 좀 하자꾸나."
"네, 할머니."
엄마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안주도 없이 한 잔을 따라 마신다.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가 말 없이 밑반찬 몇 가지를 차려 놓으신 후 서연이 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도 대충 옷을 갈아 입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하루 종일 어찌나 후덥지근하던지, 이제야 가슴 속으로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불어온다.
"그러게 엄마가 말릴 때, 내 말 들었으면 됐잖아. 꽃 같은 네가 풀 같이 살까 봐, 나처럼은 안 살았으면 했는데..."
엄마의 소주 잔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열아홉 살짜리 애가 애를 낳았으니, 남들 다 가는 대학도 못 가고 고등학교 중퇴하고 십 년을 건용이만 바라보며 서연이 낳아 여태 키웠는데..."
엄마가 소주 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건용이 그 놈이 서울에서 대학 다니면서 여자 문제로 너 속 썩일 때, 그 때, 알아봤어야 해. 군대 갔다 와서 취업 준비한다고 요 몇 년 속 안 썩이나 했더니, 이제 취업해서 자리 잡고 너랑 서연이 데리고 잘 살 줄 알았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꽃 같은 내 딸 데려다 잡초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딴살림을 차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승애 너 낳고 열심히 키운 죄 밖에 없는데,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아이고."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격해져 흐느끼기 시작한다.
"엄마 나 아직 꽃이야. 나 이제 겨우 스물 여덟이라고. 서연이도 이제 열 살이면 세상 물정 다 알 나이고. 우리 모녀 이제부터 시작하면 돼. 그 동안 엄마가 할머니 모시고 우리까지 건사하느라 고생한 거 다 알아. 이제 내가 할게. 나 할 수 있어.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그러려고 이혼한 거야. 엄마는 평생 돌아오지 않을 아빠 바라보며 살았지만 난 아냐. 맘 떠난 서연 아빠 붙잡고 평생 못 살아. 누가 알아? 살다 보면 나 좋다는 사람 만날 지..."
"퍽이나! 혹 딸린 네 년 누가 좋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내 말에 적이 안심이 되나 보다. 눈물을 훔치며 엄마가 소주 한 잔을 비우고 김치 한 쪽을 먹는다.
"검정 고시 끝나고 공무원 시험 본다고 엄마가 서연이에 내 뒷바라지까지 해 준 거 이제 다 갚을게. 이제 혼자 깡 소주도 그만 마시고, 술 마시고 싶으면 나랑 좋은 데 가서 같이 마셔요. 내가 돈 벌면 제일 먼저 우리 엄마 시집부터 보내 줄게."
"미친 년."
엄마는 눈을 흘기면서도 입꼬리에 미소가 번진다.
이제 더는 외롭지 않을 거다. 이제 더는 외로움에 치를 떨며 텅 빈 가슴 부여 잡고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지도,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술잔을 비우지도 않을 거다. 한창 활짝 펴야 할 꽃 송이를 박제 삼아 벽에 걸어 두고 먼지만 쌓인 채 놓아 두는 짓은 이제 더는 하지 않겠다. 시들어도 꽃은 꽃이다. 시들 때 시들더라도 가시 바짝 세우고 향기 잃지 않으며 살리라.
어느 새 엄마가 할미꽃 마냥 내 어깨에 기댄 채 고개 숙여 졸고 있다. 어디서 습한 바람에 꽃냄새가 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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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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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즘(상상과 소설 속으로 도피하는 경향)을 누릴 권리

7. 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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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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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풍요로웠던 자연이 어떻게 황폐한 사막이 되어 갔는지를 보여 주는 환경 그림책 『대머리 사막』(박경진 글 · 그림, 도깨비)인데요, 중국을 여행하고 온 작가가 사막화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하고 아이들에게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었다는군요.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전에는 푸른 들판과 울창한 나무숲과 맑은 시냇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말과 들소들을 잡아들여 닥치는 대로 사냥도 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땅이 점점 메말라 가자 사람들은 메마른 땅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메마른 땅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모래사막으로 변했습니다. 낮이면 따가운 땡볕이 이글거리고, 밤이면 차가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대머리사막으로.

먼 훗날 푸른 들판과 울창한 나무숲과 맑은 시냇물이 되살아나는 날, 그날이 오면 모두들 다시 돌아와 줄까요?


이 책을 읽고 아이에게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김화영 옮김, 민음사)을 소개해 줬습니다.

대머리사막처럼 폐허가 되어 버려진 마을에 한 양치기 노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그곳에서 나무를 심습니다.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파괴된 자연이 한 인간의 집념 어린 노력에 의해 울창한 숲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인간의 어두운 측면보다는 꿈을 가진 인간의 위대함을 보기를 바랐습니다.


장 지오노가 탄생시킨 가공의 인물,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현실 속의 엘제아르 부피에 같은 우체부 슈발이 생각나서 『꿈의 궁전을 만든 우체부 슈발』(글 오카야 코지, 그림 야마네 히데노부, 진선출판사)을 빌려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쯤 전에 프랑스의 오트리브라는 작은 마을에 페르디낭 슈발이라는 우체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었던 시대에 혼자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던 슈발은 매일 같은 경치만 보며 걷는 것이 지루해서 공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공상’이냐구요?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이상한 궁전이나 성채, 탑, 동굴, 정원 등을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 배달을 하던 슈발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돌의 모양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그는 돌을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돌이 마침내 마당을 꽉 채웠습니다.

돌멩이를 모아 궁전을 짓겠다는 슈발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슈발은 개의치 않고 궁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33년이 지난 1912년, 슈발이 76세가 되는 해에 궁전은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 슈발은 8년에 걸쳐 자신의 무덤을 짓기 시작합니다. 1922년, 86세의 나이에 완성이 된 이 무덤에 슈발은 2년 뒤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 후 아내와 딸도 이 무덤에 함께 묻혔습니다.

1969년, 당시의 문화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는 슈발이 지은 꿈의 궁전을 높이 평가해서 그것을 문화재로 지정했고,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슈발의 궁전을 찾고 있답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매일 아침 이메일을 통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받아 본 아침편지에는 “당신이 ‘예술작품’이다”라는 제목의 글귀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신이 '예술작품'이다

예술 작품이
시나 그림, 책이나 건축물처럼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신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자.
우선 당신에겐 자기 자신이 있고, 자신을 가꾸어갈
얼마나 될지 모를 시간이 있다. 미래 당신의
모습을 우선 능력껏 이루고, 그다음
솔직한 자기평가를 거친 뒤
진정한 자부심을 느껴라.

- 홍선영의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중에서 -

엘제아르 부피에와 페르디낭 슈발을 보며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인간의 삶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나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살다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또 하나의 꿈을 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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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 주자
김은하 지음 / 살림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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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 좋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서면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학창 시절 막연히 도서관 사서나 서점 주인을 꿈꿨을 만큼…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마치 내가 책벌레여서 책을 많이 읽은 것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학창 시절엔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이란 이름으로 꼬박 3년을 학교에 붙잡혀 있느라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땡땡이 한 번 안 치고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걸 보면 책을 읽고 나서도 큰 변화가 없는 나 자신이 수긍이 간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수능 시험을 막 치르고 난 다음 날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일찍 책의 세계에 눈 떠 보고 싶다. 억압(?) 당한 학창 시절 덕에 대학 4년을 놀아도 너무 놀았기에…


올해로 내 나이 마흔, 많은 이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나이에 나는 무엇 하나 딱히 잘하는 게 없다. 나름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늘 제자리 걸음만 한 것 같다. 좀 더 일찍 꿈을 꾸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 매진했어야 하는데 미치도록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는 것이 나를 늘 제자리 걸음만 시킨 것 같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닥치는 대로 이것 저것 읽어 나가다가 독서법 관련 책들을 접하면서 책 읽기에 대한 절실함마저 느껴갔다. 그리고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성공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조급증마저 생겨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꾸준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책을 읽은 것도, 한 권을 깊이 있게 여러 번 정독을 한 것도 아니지만, 책을 통해 나는 시야를 넓혀가고 있고, 깨달음도 얻기 시작했으며,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나의 생각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꼭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통해 배움을 얻고 꿈을 꾸는 아이로 키워야겠다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과 목차만 언뜻 보니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히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듬뿍 담긴 것 같아 선뜻 빌려 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책에 대해 품었던 나의 저급한 욕심만이 떠올라 내내 부끄러웠다.


나는 그 동안 책을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읽었던 많은 독서법 관련 책들에서, 우리 사회 성공한 많은 저명 인사들의 책 속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수 십 번도 더 들은 것 같다. 게다가 수 많은 육아서에도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것의 중요성과 그 효과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되풀이 해 듣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책만 읽히면 공부도 잘하고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욕망을 품기 시작했다. 어린이 도서관을 열심히 드나들었고 책도 열심히 빌려왔다. 매일 아이에게 많은 책들을 목이 아프도록 읽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나의 이런 열의가 오히려 아이를 지치게 하는 건지, 아이는 그럴수록 엄마에게 책을 읽어 달라 하지 않는다. 엄마가 빌려 온 다양한 주제와 훌륭한 작가의 그림책 보다는 집에 있는 지식 관련 그림책들만 되풀이 해 읽곤 한다.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저자는 사회학을 공부했고 여전히 공부중인 엄마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한번쯤 공감하듯, 저자 역시 ‘어린이의 눈’ 이라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사회학도답게 어린이와 책,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장인 사회를 연결시켜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책보다는 책을 읽는 어린이의 삶의 질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 시절 빈곤층에 대한 책을 읽고 관련 공부를 한 덕에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꽤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저자가 막상 도시 빈민층 연구 관련 사회 조사를 나갔다가 실제 빈민층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세상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다며 들려 준 이야기에서 책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임을, 책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사회 조사를 통해 배운 것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것이다. 책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나를 성숙시켰더라도 그 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빈 껍데기 지식을 부여잡고 있을 것이다.(중략)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한 동네에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섞여 살았다. 아니 몇 집을 빼고는 고만고만하게 다 같이 못 살았다. 지금은 우리 자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달동네와 고급 주택가는 멀리 떨어져 있고 거기서 자라는 아이들은 서로 만날 기회도 없다.(중략)


TV를 보고 전화를 걸어 천 원어치 적선을 하고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흡족해 하면 어쩌나? 지금처럼 끼리끼리 모여 자라다가 정치인이 된 상류층 자녀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울 수 있을지. 아이들이 자라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반목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 갈등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까?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해도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는 현실이 오늘의 난국을 초래하는 데 한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면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수학, 영어로 인생 공부가 될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 과정에 봉사 활동을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꽃동네 이야기』와 『골목길의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만나고 비비며 살아 봐야 한다. 서로에 대한 염려와 이해로 가슴 한 구석이 저려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독후감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본문 발췌)


지금까지 읽었던 수 많은 책에서, 저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책을 읽는 것의 중요함과 그 필요성에 대해 단순히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아니,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분명히 말했지만, 그 성공의 의미를 내가 물질적인 것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만 국한시켜 생각했을 뿐이다. 육아서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의 효용성에 대해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열 권이 넘는 책을 빌려와서 읽기도 전에 질리도록 쌓아 놓고, 아이도 다 아는 글자 읽어 주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이에게 적절한 반응도 못해 주고, 미술관 나들이 한 번 안 하면서 예술가의 멋진 작품이 매 페이지마다 펼쳐져 있는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은 눈여겨 보지도 않고, 나는 이렇게 목이 터져라 책을 읽어 주는데 너는 왜 엄마 마음도 몰라 주냐는 야속한 마음에 아이와의 교감은 뒷전인 엄마와의 책 읽기가 점점 재미없어지는데는 나의 저급한 욕심 탓이다.


입으로는 돈이 다가 아니라고,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어 대지만, 깊은 성찰을 통한 확고한 철학도 신념도 없다 보니 결국엔 눈에 보이는 것만 좇게 되나 보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저자가 그저 학문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책 읽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책 읽기에 대해 고민해 보는 좋은 계기였다.


인쇄된 활자만 읽어 대는 책 읽기는 이제 그만 해야겠다. 읽고 나서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잊어버리는 책 읽기도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 읽고 생각하고 느꼈다면 행동하는 책 읽기, 책을 통한 간접 경험도 좋지만, 몸으로 부딪혀 깨닫는 ‘삶’이라는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내 인생의 책 읽기만 잘해도 우리 아이 책 날개는 저절로 달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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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크는 아이들 - 백화현의 가정독서모임 이야기
백화현 지음 / 우리교육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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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학교 국어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하면서 아이들에게 책의 힘을 얻게 하고자 자녀들과 그 친구들 서너명이 모여 가정독서모임을 꾸리고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큰 아들의 학업 성적이 부모 욕심에 차지 않자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시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지지해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자 만화에 빠져 편독을 일삼자 위기 의식을 느끼고 큰 아들의 친구들과 매주 일요일 저녁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한다.


2003년 아이들이 중2때 시작한 1기 가정독서모임은 2006년 아이들이 고2때까지 지속된다. 처음 1년은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독서모임을 위해 책과 친해지기부터 시작하여 2년차엔 주제별 독서 및 탐구 활동을 통한 글쓰기로까지 발전하지만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학업과 병행하는 것의 어려움으로 인해 책을 읽고 현장 답사를 하는 독서 기행 중심으로 꾸려나간다.


4년 간의 가정독서모임을 통해 대학에 뜻이 없었던 아들은 스스로 공부를 시작하고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중이다. 다른 아이들 역시 책과 여행을 통해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통해 성장의 기쁨을 나누고 이를 밑거름 삼아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났다.


2기 가정독서모임은 2007년 중학교 2학년이 된 작은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여 2009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하고 탐구하는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돈을 받고 하는 일도 7년간 지속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교사로 재직 중인 저자는 과연 천직을 타고 났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게도 학창 시절 저자와 같은 부모가 또는 멘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부러웠다. 아니, 청소년 시절까지는 갈 것도 없이 대학 시절 학과 공부는 등한시하고 친구들과 놀기만 했던 나의 20대가 부끄러웠다. 그 때 책을 가까이 했더라면 내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고 후회스러웠다.


나는 비록 이제서야 책이 주는 위안과 기쁨, 꿈과 희망,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깨닫지만 내 아이는 좀 더 일찍 책 속의 세상에 눈 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도서관에 간다.


저자처럼 가정독서모임을 꾸려 나갈 능력도 끈기도 부족한 탓에 독서모임은 엄두도 못 내지만 매일 밤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목이 쉬도록 열심히 책이라도 읽어 주련다.


"아이는 모순의 존재입니다. 그는 엄마 아빠에게 기쁨을 주면서 동시에 고통을 안기고, 희망을 갖게 하면서 동시에 좌절을 맛보게 합니다. 반짝이면서 어둡고, 단맛과 쓴맛을 번갈아 안기는 모순적 존재, 꽃인가 하면 동시에 가시이기도 한 복잡성의 한 모델이 아이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모두 그렇습니다. 부모들은 그들 자신이 한때는 모두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고나서는 그들도 그런 모순과 복잡성을 지닌 존재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이가 태어나 한 인간으로 자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크나큰 배움과 깨침을 얻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니, 배워야 할 것은 아이들이 늘 한 가지 모습으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여러 다른 가능성을 암시하는 존재로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내 아이가 왜 이렇지?”라며 안달하기 전에 먼저 이 사실부터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자라는 모습이니까요."

- 도정일님의 추천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는가’에서 발췌


이제 갓 여덟 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엄마로서, ‘모순과 복잡성을 지닌 한 존재’가 또 다른 ‘모순과 복잡성을 지닌 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순탄하기만 할 수는 없겠지만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배우고 또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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