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 주자
김은하 지음 / 살림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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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 좋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서면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학창 시절 막연히 도서관 사서나 서점 주인을 꿈꿨을 만큼…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마치 내가 책벌레여서 책을 많이 읽은 것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학창 시절엔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이란 이름으로 꼬박 3년을 학교에 붙잡혀 있느라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땡땡이 한 번 안 치고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걸 보면 책을 읽고 나서도 큰 변화가 없는 나 자신이 수긍이 간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수능 시험을 막 치르고 난 다음 날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일찍 책의 세계에 눈 떠 보고 싶다. 억압(?) 당한 학창 시절 덕에 대학 4년을 놀아도 너무 놀았기에…


올해로 내 나이 마흔, 많은 이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나이에 나는 무엇 하나 딱히 잘하는 게 없다. 나름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늘 제자리 걸음만 한 것 같다. 좀 더 일찍 꿈을 꾸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 매진했어야 하는데 미치도록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는 것이 나를 늘 제자리 걸음만 시킨 것 같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닥치는 대로 이것 저것 읽어 나가다가 독서법 관련 책들을 접하면서 책 읽기에 대한 절실함마저 느껴갔다. 그리고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성공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조급증마저 생겨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꾸준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책을 읽은 것도, 한 권을 깊이 있게 여러 번 정독을 한 것도 아니지만, 책을 통해 나는 시야를 넓혀가고 있고, 깨달음도 얻기 시작했으며,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나의 생각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꼭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통해 배움을 얻고 꿈을 꾸는 아이로 키워야겠다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과 목차만 언뜻 보니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히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듬뿍 담긴 것 같아 선뜻 빌려 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책에 대해 품었던 나의 저급한 욕심만이 떠올라 내내 부끄러웠다.


나는 그 동안 책을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읽었던 많은 독서법 관련 책들에서, 우리 사회 성공한 많은 저명 인사들의 책 속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수 십 번도 더 들은 것 같다. 게다가 수 많은 육아서에도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것의 중요성과 그 효과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되풀이 해 듣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책만 읽히면 공부도 잘하고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욕망을 품기 시작했다. 어린이 도서관을 열심히 드나들었고 책도 열심히 빌려왔다. 매일 아이에게 많은 책들을 목이 아프도록 읽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나의 이런 열의가 오히려 아이를 지치게 하는 건지, 아이는 그럴수록 엄마에게 책을 읽어 달라 하지 않는다. 엄마가 빌려 온 다양한 주제와 훌륭한 작가의 그림책 보다는 집에 있는 지식 관련 그림책들만 되풀이 해 읽곤 한다.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저자는 사회학을 공부했고 여전히 공부중인 엄마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한번쯤 공감하듯, 저자 역시 ‘어린이의 눈’ 이라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사회학도답게 어린이와 책,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장인 사회를 연결시켜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책보다는 책을 읽는 어린이의 삶의 질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 시절 빈곤층에 대한 책을 읽고 관련 공부를 한 덕에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꽤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저자가 막상 도시 빈민층 연구 관련 사회 조사를 나갔다가 실제 빈민층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세상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다며 들려 준 이야기에서 책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임을, 책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사회 조사를 통해 배운 것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것이다. 책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나를 성숙시켰더라도 그 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빈 껍데기 지식을 부여잡고 있을 것이다.(중략)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한 동네에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섞여 살았다. 아니 몇 집을 빼고는 고만고만하게 다 같이 못 살았다. 지금은 우리 자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달동네와 고급 주택가는 멀리 떨어져 있고 거기서 자라는 아이들은 서로 만날 기회도 없다.(중략)


TV를 보고 전화를 걸어 천 원어치 적선을 하고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흡족해 하면 어쩌나? 지금처럼 끼리끼리 모여 자라다가 정치인이 된 상류층 자녀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울 수 있을지. 아이들이 자라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반목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 갈등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까?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해도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는 현실이 오늘의 난국을 초래하는 데 한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면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수학, 영어로 인생 공부가 될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 과정에 봉사 활동을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꽃동네 이야기』와 『골목길의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만나고 비비며 살아 봐야 한다. 서로에 대한 염려와 이해로 가슴 한 구석이 저려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독후감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본문 발췌)


지금까지 읽었던 수 많은 책에서, 저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책을 읽는 것의 중요함과 그 필요성에 대해 단순히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아니,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분명히 말했지만, 그 성공의 의미를 내가 물질적인 것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만 국한시켜 생각했을 뿐이다. 육아서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의 효용성에 대해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열 권이 넘는 책을 빌려와서 읽기도 전에 질리도록 쌓아 놓고, 아이도 다 아는 글자 읽어 주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이에게 적절한 반응도 못해 주고, 미술관 나들이 한 번 안 하면서 예술가의 멋진 작품이 매 페이지마다 펼쳐져 있는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은 눈여겨 보지도 않고, 나는 이렇게 목이 터져라 책을 읽어 주는데 너는 왜 엄마 마음도 몰라 주냐는 야속한 마음에 아이와의 교감은 뒷전인 엄마와의 책 읽기가 점점 재미없어지는데는 나의 저급한 욕심 탓이다.


입으로는 돈이 다가 아니라고,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어 대지만, 깊은 성찰을 통한 확고한 철학도 신념도 없다 보니 결국엔 눈에 보이는 것만 좇게 되나 보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저자가 그저 학문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책 읽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책 읽기에 대해 고민해 보는 좋은 계기였다.


인쇄된 활자만 읽어 대는 책 읽기는 이제 그만 해야겠다. 읽고 나서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잊어버리는 책 읽기도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 읽고 생각하고 느꼈다면 행동하는 책 읽기, 책을 통한 간접 경험도 좋지만, 몸으로 부딪혀 깨닫는 ‘삶’이라는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내 인생의 책 읽기만 잘해도 우리 아이 책 날개는 저절로 달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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