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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풍요로웠던 자연이 어떻게 황폐한 사막이 되어 갔는지를 보여 주는 환경 그림책 『대머리 사막』(박경진 글 · 그림, 도깨비)인데요, 중국을 여행하고 온 작가가 사막화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하고 아이들에게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었다는군요.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전에는 푸른 들판과 울창한 나무숲과 맑은 시냇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말과 들소들을 잡아들여 닥치는 대로 사냥도 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땅이 점점 메말라 가자 사람들은 메마른 땅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메마른 땅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모래사막으로 변했습니다. 낮이면 따가운 땡볕이 이글거리고, 밤이면 차가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대머리사막으로.
먼 훗날 푸른 들판과 울창한 나무숲과 맑은 시냇물이 되살아나는 날, 그날이 오면 모두들 다시 돌아와 줄까요?
이 책을 읽고 아이에게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김화영 옮김, 민음사)을 소개해 줬습니다.
대머리사막처럼 폐허가 되어 버려진 마을에 한 양치기 노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그곳에서 나무를 심습니다.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파괴된 자연이 한 인간의 집념 어린 노력에 의해 울창한 숲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인간의 어두운 측면보다는 꿈을 가진 인간의 위대함을 보기를 바랐습니다.
장 지오노가 탄생시킨 가공의 인물,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현실 속의 엘제아르 부피에 같은 우체부 슈발이 생각나서 『꿈의 궁전을 만든 우체부 슈발』(글 오카야 코지, 그림 야마네 히데노부, 진선출판사)을 빌려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쯤 전에 프랑스의 오트리브라는 작은 마을에 페르디낭 슈발이라는 우체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었던 시대에 혼자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던 슈발은 매일 같은 경치만 보며 걷는 것이 지루해서 공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공상’이냐구요?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이상한 궁전이나 성채, 탑, 동굴, 정원 등을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 배달을 하던 슈발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돌의 모양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그는 돌을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돌이 마침내 마당을 꽉 채웠습니다.
돌멩이를 모아 궁전을 짓겠다는 슈발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슈발은 개의치 않고 궁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33년이 지난 1912년, 슈발이 76세가 되는 해에 궁전은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 슈발은 8년에 걸쳐 자신의 무덤을 짓기 시작합니다. 1922년, 86세의 나이에 완성이 된 이 무덤에 슈발은 2년 뒤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 후 아내와 딸도 이 무덤에 함께 묻혔습니다.
1969년, 당시의 문화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는 슈발이 지은 꿈의 궁전을 높이 평가해서 그것을 문화재로 지정했고,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슈발의 궁전을 찾고 있답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매일 아침 이메일을 통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받아 본 아침편지에는 “당신이 ‘예술작품’이다”라는 제목의 글귀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신이 '예술작품'이다
예술 작품이
시나 그림, 책이나 건축물처럼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신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자.
우선 당신에겐 자기 자신이 있고, 자신을 가꾸어갈
얼마나 될지 모를 시간이 있다. 미래 당신의
모습을 우선 능력껏 이루고, 그다음
솔직한 자기평가를 거친 뒤
진정한 자부심을 느껴라.
- 홍선영의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중에서 -
엘제아르 부피에와 페르디낭 슈발을 보며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인간의 삶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나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살다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또 하나의 꿈을 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