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독서 - 김형석 교수를 만든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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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

- "지금도 독서는 내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열정과 꿈을 준다" -

사실 말이 쉽지 사람이 백 년을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산다는 건 의식 없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나의 정신을 지니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냥, 백년의 삶을 지낸 사람의 생각이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시간들을 거쳤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막연히 궁금했다. 주변에 이만큼 연세 있으신 분 찾기도 어렵고, 간단한 검색으로 자료와 영상을 손쉽게 얻으므로써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고립의 시대에 나는 인생의 선배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더욱이 책을 사랑하는 인생의 선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독서하기 참으로 힘든 세상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우리 세대에 이렇게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컴퓨터, TV 등 영상만 주구장창 보거나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거나. 그러나 그 비교조차도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저자의 독서환경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20년생인 저자 김형석 교수의 삶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굵직굵직한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전쟁을 거쳐 여러 번의 정부가 바뀐 오늘날까지 그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가난한 시골에서 무슨 책이었겠는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38년생이셨던 우리 외할머니의 얘기를 떠올려보자면 학교는 고사하고 굶지 않고, 어딘가 끌려가지만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인생이라고 하셨었다. 그 시대 인생은 곧 굶주림, 숨기, 도망, 피난 등의 단어로 점철된 긴박한 시대 안에서의 살아냄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저자가 처음 마주한 책 다운 책이라 한다면 그것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거쳐 만주와 중국 북동부를 침략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의 문제의식으로 [전쟁과 평화]를 선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한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와 시인을 회상하는 부분이었다. 교과서에서나 작품을 읽어보고 그 이름만 들었던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소나기]의 황순원, [별 헤는 밤]의 윤동주 모두 저자의 기억 속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저자는 같은 반이었던 윤동주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와 친하게 친했더라면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관심과 문학적 소양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나는 저자가 홀로 독서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계기를 첫째, 중2라는 이른 나이에 다소 어려웠던 [전쟁과 평화]를 접했던 것. 둘째, 중학교 3학년 시절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학교를 떠나 1년간 도서관에서 홀로 독서한 시간으로 본다. 저자는 학교를 다니는 대신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 독서로 공부를 대신했다. 이때 철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철학에 관련된 서적을 많이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철학 입문, 철학개론, 철학사, 철학 사상사, 논리학, 윤리학, 윤리학사, 형이상학, 인식론 등을 이 시기에 탐독했다고 한다.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에서부터 시작해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여러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의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은 그 많은 사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현시대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었다.

탈 이데올로기 시대, 남은 것은 휴머니즘뿐

(...)

최근에는 탈 이데올로기 시대라는 말이 어디에서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당위성을 갖고 인정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만일 이데올로기가 아닌 어떤 사상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이 가능할 뿐이다. 휴머니즘은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으로 용납되며 인류가 추구할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마르크스 사상이나 공산주의도 그 자체는 목적이 못되고 휴머니즘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태어났다가 사라질 운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

p.153

철학은 사실 어렵다.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뭔가 우리의 현재 삶과는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학문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철학적 용어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학적 개념에 대한 각자의 이해는 어느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지적 사고의 과정이다. 저자도 철학적 개념 이해의 어려움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계속 전진하라고 조언한다. 철학 읽기를 우직하게 이어 나가다 보면 처음에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두 번째 볼 때 다르고, 다른 관련 책을 찾아 읽었을 때 그 축적된 이해도가 계속해서 현재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글에서도 쓴 바 있지만, 사람도 첫눈에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 않은가.

학문적 성장에 필요한 체계적인 독서 필요

(...)

세계 역사도 그렇다. 선진사회에서는 인간개발이 앞서고 그 뒤에 사회개발, 그리고 경제발전과 경제개발이 뒤따른다. 그것이 역사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신사적 절차를 밟지 못했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을 먼저 겪은 후 인간과 사상과 인문학이 발전했고, 그 뒤에 사회과학이 발전했다. 그리고 정치의 변화와 사회문제의 해결이 모색되었다. 그 후에 자연과학과 기계 과학이 발달하면서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 과정을 밟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개발을 먼저 추구하다 보니까 사회개발이 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사회개발을 계획하는 동안에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탐구되지 못했다는 현실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p.230

나는 요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매일같이 뉴스에서 들려오는 사건, 사고 관련 슬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삶에 대한 사유를 심화시키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인문학 독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쉽게 편하게 공부하고, 가상현실 등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대적 변화를 역행하여 과거 고된 근현대사 속에서 힘들게 독서할 수밖에 없던 그 시대를 예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실시간 넘쳐나는 단편적 정보들의 수용과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무심한 행동들, 자기반성이 결여된 일상, 인간과 인간 존엄에 대한 물음과 이야기가 없는 세상에 대한 공포심이 인문학의 부재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그래도 그 옛날 '인문학'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신념과 가치를 굳건히 지탱해 주던 때가 있었다. '인간'에 대한 진지하고도 오랜 시간 진통 끝에 얻어낸 사유의 결과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이미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저 평소와 같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을 뿐인 귀갓길이 가족들과의 헤어지는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우리 이웃이었다.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는 건전한 독서에 있다.

(...)

문제는 이렇게 소중한 정신적 과업을 소홀히 여기고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만족을 위해 달리는 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건전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그 차원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의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언제나 독서하는 국민, 책을 가까이하는 민족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문제는 물론이고 도덕적 기강을 바로잡는 길도 건전한 독서와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p.264

이 책은 '독서'라는 주제 아래 3가지 층위를 이루고 있다. 첫째, 백 년에 걸친 한 개인의 독서의 기록. 둘째, 그 독서의 기록이 비추는 우리 한국의 근현대사. 셋째, 철학도로서의 전공 독서에 대한 기록과 방법이 그것이다. 이 책은 좁게는 철학을 전공하는 혹은 전공에 뜻이 있는 자가 읽기에 손색이 없다. 철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전공의 선배로서 저자가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그 기록을 통해 나름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넓게는 백년의 시간을 거친 자가 어떤 책들을 어떻게 읽었으며 각각의 순간들마다 독서를 통해 어떤 생각을 했고, 그런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어떤 사람을 만들어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뿌리가 깊고 튼튼한 밑동과 줄기가 있는 나무가 크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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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 인생 중반,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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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 백지 위에 점하나 떼기 힘든 당신에게 -

책이라는 대상을 놓고 글 작업을 하는 서평과는 별개로 오로지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만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이걸 '근원적인 글쓰기'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글쓰기를 언제부터 어떠한 연유로 시작했을까.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는 서평과 같은 한 꺼풀 겹쳐진 글쓰기가 아닌 순수하게 '글을 쓰는 행위'와 '나'를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서평은 대상이 의뢰받은 특정한 책이지만, 순수한 글쓰기의 대상은 곧 '나'다. 나를 글감으로 해서 글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다. 이런 사유, 이런 글쓰기, 이런 시간에 대해서 익숙하다면 이 책을 권하기에 조금 부족하다. 이 책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적어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글쓰기든 그 첫 번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대상으로 해서 쓰는 글은 당연한 것이고, 서평 글쓰기를 할 때에도 책을 마주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 문자와 문맥에서 전해지는 메시지에 대한 느낌과 그 울림이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에 잘 귀 기울여야 나만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마음에 일어나는 어떤 변화되는 상태에 대해서 귀를 잘 기울인다는 것은 글과 나만 존재하는 순수한 시간이자, 내가 정직해야 하는 시간이다.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는 글쓰기 '시작'을 연습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를 대상으로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저자는 '나'에 대한 글감을 크게 5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1. 내 일상을 보살피다

2. 내 마음을 이해하다

3. 내 실패를 위로하다

4. 내 과거를 발견하다

5. 내 내일을 기획하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고 쓸 필요는 없고, 목차를 펼쳐보고 마음이 동하는 대로 그 페이지를 펴고 글을 쓰면 된다. 나는 페이지를 휘리릭 넘겨보다 저자가 제시해 준 다음의 글감이 마음에 들어서 조용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의 테스터로서 떠오르는 문장을 적어본 것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날것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면 좋겠다.




글쓰기의 전제조건은 자유라 생각한다. 물론 형식을 요구하는 글쓰기도 있지만, 내가 펜을 들고, 타자를 치는 순간에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우선 '글'이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저자가 일러주는 글쓰기 팁으로 책의 글감을 하나하나 천천히 채워가다 보면 이 한 권을 끝냈을 때 어느덧 글쓰기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 말문이 트이는 것처럼, 글쓰기에서 글문이 트이고 싶다면 나른한 일요일 오후쯤 휴대폰을 잠시 꺼두고,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이 책과 함께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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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 인생 중반,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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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 위에 점하나 떼기 힘든 당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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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탈무드 - 한국인의 성장과 성공을 위한 20가지 방법
홍익희.김정완.이민영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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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탈무드]

- 상대로부터 좋은 것을 취해 내 것으로 만든다 -

구약성경의 출애굽기 16장 29절에는 이런내용이 나온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틀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장 10절에는 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니 너나 네 아들딸이나 제 남녀 종들이나 네 가축들이나 네 문안에 있는 나그네나 할것 없이 아무일도 하지 마라."

예수는 유대인들이 철썩같이 지키는 이러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었다.

예수는 그 병자를 고친다음 '그자리에서 일어나 가라'고 명령했다.

그들 눈엔 안식일도 지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말라'는 율법을 어긴 이런 예수를 유대인은 싫어한다.

"양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그 양을 꺼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안식일에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인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예수는 말하였다.

예수 스스로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깼다고 보는 가톨릭교와 기독교는 그래서 유대교만큼이나 인식일을 강하게 지키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은 선교나 전도를 하지 않는다. '선택받았다'고 하는 이 사건은 이미 끝난것이다. 유대교를 다른 인종에게 전파한다고한들 그들은 자신들처럼 선택받은 백성이 될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대교를 버리고 떠나면 배신자라는 딱지를 받게 된다.

유대인이 유대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것이 밝혀졌을땐 벌금형에 처해진다.

유대인,

이런 사람들이 중시하는 경전이 바로 탈무드이다.

탈무드는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 구전, 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으로서 여기에는 유대교의 율법, 전통적 습관, 축제, 민간전승, 해설등이 총망라 되어 있다.

탈무드하면 중학교때 학교도서관에서 잠깐 봤고,우화 모음집처럼 되어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이 탈무드에 대한 기억과 추억과 경험 전부다. 나는 무교이지만 나와 종교적 가치관부터 다른 유대교인, 그들이 중시하는 탈무드라 사실, 탈무드에 관심이 안갔다. 솔직히 그들도 별로고 책에도 관심없었다.

2010년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하나 드리고 싶군요. 정말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해주셨으니까요"

이 말이 끝나고 회견장에는 4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오바마대통령이 다시 한마디를 꺼낸다.

"누구없나요?"

30초간의 정적이 또다시 흘렀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일어나서 말했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하지만 저는 중국기자입니다.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해도 될까요?"

끝까지 질문권을 한국기자들에게 주고 싶었던 오바마대통령에게 이 중국기자는 한국기자들이 앉아있는 곳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한국기자들에게 제가 대신 질문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어떨까요?"

결국 질문권이 중국기자에게 넘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고싶다는 말을 하고나서 중국기자가 질문권을 얻기까지 대략 1분 30초에서 2분가량되는 이 순간의 영상을 보면서 난감, 난처하다, 부끄럽다는 감정은 물론이고, 어딘가 모르게 씁씁하기까지했다.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해도 되냐는 중국기자의 말에 순간 '속국'이라는 이미지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경전을 파는 등 그리 깊은 관심은 아니겠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코리안 탈무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다.

[코리안탈무드]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유대인들이 어디서 그 힘을 얻는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우리자신을 위하여 그들로부터 취할것은 없는지, 그들로부터 우리의 성장을 위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실천을 독려하고자 기획된 책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것은 종교로서의 유대교가 아니라 유대문화이다. 이 책에 나오는 유대인이 모두 유대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무신론자도 있고, 유대문화를 존중하되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 세속 유대인, 율법을 믿고 실천하는 정통파 유대인, 유대교 교리를 현실에 맞게 고쳐 믿는 개혁파 유대인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유대인이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종교에 관계없이 유대문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부모에게 어릴때부터 질문과 토론을 중시하는 유대식 교육을 받았다면 유대인으로 본다.

p. 9

이 말이 나의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었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를 한국식에 맞게 재해석한 [코리안탈무드] 좀더 열린마음으로 읽어나갈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2010년 G20 폐막기자회견 영상을 계기로 내가 이책에서 눈여겨 본 것은 유대인의 성공, 비전, 열정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그들의 '학습'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독서, 질문, 토론'이다.

핍박받는 민족으로도 상징되는 유대인은 그들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이동하고, 흩어지고, 도망다니는 시간이 많았기에 어디 한 곳에 정착해 뿌리를 내리고 사는게 힘들었다. 그런 환경 때문이었는지 유대인은 '배움'을 중시한다고 한다. 가령, 도망갈때 금은보화, 부동산은 들고 갈 수 없지만, 내 머리에 든 지식과 그것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지혜는 누가 훔쳐갈수도 없고, 도망갈 때도 용이한 자산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배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가 책의 178페이지부터 등장한다. 책의 민족이라 불리는 유대인은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토라'(율법서로서 유대인의 구약성경은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구성되어 있다)뿐만아니라 고전을 읽고 토론을 즐겨한다.

[코리안 탈무드]를 통해 소개된, 새로이 알게된 사실은 바로 '탈무드 원전이 지닌 형식'이었다.

[랍비가 직접 말하는 탈무드 하브루타]에 의하면, 탈무드는 각 페이지의 한가운데에 핵심 내용이 있고, 그것에 대한 랍비들의 토론이 좌우로 나열되어 있으며, 가장자리에 주석이 달린 입체적인 구조다. 어떤 탈무드 페이지든 다른 페이지에 기록된 주석을 참고하는 상호 참조, 이전에 있었던 토론의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정보, 기존 의미와 다른 해석에 대한 탐구, 언뜻 보기에는 주제에서 갈라진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는 결론에 핵심이 되는 것, 본문과 연결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p.185

나는 이 구절을 읽고, 그 모습이 궁금하여 한번 찾아보았다.


책에서 오늘날의 논문과 그 형식이 유사하다고 하는데 깊은 공감을 했다. 이 한 페이지에 핵심 내용, 토론 내용, 주석, 상호 참조, 정보, 탐구 내용, 핵심, 또 다른 질문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한 페이지에서 많은 것을 확장시키고, 또 그 확장된 부분들을 다른 이에게 전해 확장을 거듭하는 배움의 형식을 보고 감탄을 했다.

헤츠키 아리엘리는 저서 [유대인의 성공코드 Excellence]에 이렇게 썼다.

"유대인에게 탈무드는 생각 프로세스, 사고 프로세스를 개발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을 적어놓은 책이다"

"유대인에게 기록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창조다. 과거를 존중하고 선조들의 지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재해석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것, 이것이 유대인을 창조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창조경제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p.186

탈무드 원전이 지닌 형식으로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고전읽기에도 적용되고, 이 과정에서 '읽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습관'이 중요해진다.

어디선가 우스갯소리로 들은적이 있다.

한국의 부모는 자녀에게 "너는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니?"라고 말하고

유대인 부모는 자녀에게 "너는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말한다고.

질문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할까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바로 질문하는 자로 하여금 문제나 대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할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질문이 없으면 토론도 할 수 없다. 토론은 서로의 다른 생각을 확인하고 상대에 대한 질문을 통해 더 나은 관점을 찾아가며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과정인데 상대에 대한 열린마음, 질문하는 자세가 없다면 토론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질문 없는 사회에는 토론하는 문화가 없다.

토론을 해보지 않았기에 질문을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댄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억압받아 질문을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마음 속에 품은 질문이 틀린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질문을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폐막기자회견에서 오바마의 '질문권' 선물에 아무런 답을 못한 그곳에 앉아있던 기자들은

다음 중 어느 경우에 속할까. 이것은 비단 그 개인들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다.

우리사회가 질문이 적은 것은 애초에 정답을 정해놓고 가르치는 입시위주의 교육, 질문하는 자를 째려보거나 노려보거나 비웃는 것과 같은 질문하는 자에 대한 알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사회구조도 한몫한다고 책은 지적한다.

질문에는 많은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겸손, 인정과 존중, 의사소통, 진실과 정의 등 수많은 가치를 질문을 통해 누릴수 있다. 그래서 토라를 공부할때 '질문하라'의 원칙은 유대인이 항상 견지해왔던 배움의 대원칙이 되었다.

p.190

이러한 질문과 토론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유대인의 '하브루타' 공부법이다. 토라의 깊은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어 혼자보다 여럿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유대인들은 믿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혼자 몰두함'은 편견과 아집을 생산해낼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의 질문과 반박은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편견과 그릇된 아집을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친구와 함께 말로 하는 학습법인 하브루타는 텍스트를 사이에 두고 내용을 주고 받는 것이 핵심이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텍스트를 철저히 연구하고 그 텍스트를 자기 언어로 바꿔

주제를 깊이 이해하고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한다.

한명이 텍스트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밝히면,

나머지 한명이 그 의견에 대해 질문한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과 비교하여 의문점을 묻는 것이다.

상대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같더라도 질문은 필수다.

이럴때는 상대의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이해한다.

대답을 하는 쪽은 질문에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기생각을 점검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그 후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반박, 증거 제시 등으로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갈등 상황에 대한 해결책과 방향을 모색하며 마무리된다.

스타벅스, 하겐다즈, 폴로셔츠, 캐빈클라인, 샘소나이트,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구글, 코스트코 등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의 창업자 내지 오너여서 유대인이 부러운가? 나는 아니다. 나는 흔히 성공의 척도로 일컬어지는 그들의 부와 명예가 부럽지는 않다. 그러한 삶도 그 무게만큼이나 삶의 고충이라는 것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전 세계 인구 중 0.2%밖에 되지 않는 그들인데,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하는 그들, 유대인이 부럽다.

질문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과 끊임없이 질문하는 그들의 모습만으로 나에게는 탈무드, 특히 그들의 배움과 학습에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코리아 탈무드]는 나에게 딱딱하고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탈무드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줌으로써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동시에 그들의 '배움에 대한 철학'을 좀더 면밀히 살펴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돈이 많아서, 명예가 출중해서가 아닌

그들이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한

나는 여전히 그들이 부러울 것이고,

그것이 그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크나큰 요인이라 믿는 한

나는 그들의 배움에 대한 방법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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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0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코리안 탈무드 - 한국인의 성장과 성공을 위한 20가지 방법
홍익희.김정완.이민영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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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로부터 좋은 것을 취해 내 것으로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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