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독서 - 김형석 교수를 만든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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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

- "지금도 독서는 내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열정과 꿈을 준다" -

사실 말이 쉽지 사람이 백 년을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산다는 건 의식 없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나의 정신을 지니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냥, 백년의 삶을 지낸 사람의 생각이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시간들을 거쳤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막연히 궁금했다. 주변에 이만큼 연세 있으신 분 찾기도 어렵고, 간단한 검색으로 자료와 영상을 손쉽게 얻으므로써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고립의 시대에 나는 인생의 선배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더욱이 책을 사랑하는 인생의 선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독서하기 참으로 힘든 세상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우리 세대에 이렇게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컴퓨터, TV 등 영상만 주구장창 보거나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거나. 그러나 그 비교조차도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저자의 독서환경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20년생인 저자 김형석 교수의 삶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굵직굵직한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전쟁을 거쳐 여러 번의 정부가 바뀐 오늘날까지 그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가난한 시골에서 무슨 책이었겠는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38년생이셨던 우리 외할머니의 얘기를 떠올려보자면 학교는 고사하고 굶지 않고, 어딘가 끌려가지만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인생이라고 하셨었다. 그 시대 인생은 곧 굶주림, 숨기, 도망, 피난 등의 단어로 점철된 긴박한 시대 안에서의 살아냄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저자가 처음 마주한 책 다운 책이라 한다면 그것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거쳐 만주와 중국 북동부를 침략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의 문제의식으로 [전쟁과 평화]를 선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한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와 시인을 회상하는 부분이었다. 교과서에서나 작품을 읽어보고 그 이름만 들었던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소나기]의 황순원, [별 헤는 밤]의 윤동주 모두 저자의 기억 속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저자는 같은 반이었던 윤동주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와 친하게 친했더라면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관심과 문학적 소양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나는 저자가 홀로 독서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계기를 첫째, 중2라는 이른 나이에 다소 어려웠던 [전쟁과 평화]를 접했던 것. 둘째, 중학교 3학년 시절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학교를 떠나 1년간 도서관에서 홀로 독서한 시간으로 본다. 저자는 학교를 다니는 대신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 독서로 공부를 대신했다. 이때 철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철학에 관련된 서적을 많이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철학 입문, 철학개론, 철학사, 철학 사상사, 논리학, 윤리학, 윤리학사, 형이상학, 인식론 등을 이 시기에 탐독했다고 한다.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에서부터 시작해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여러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의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은 그 많은 사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현시대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었다.

탈 이데올로기 시대, 남은 것은 휴머니즘뿐

(...)

최근에는 탈 이데올로기 시대라는 말이 어디에서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당위성을 갖고 인정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만일 이데올로기가 아닌 어떤 사상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이 가능할 뿐이다. 휴머니즘은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으로 용납되며 인류가 추구할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마르크스 사상이나 공산주의도 그 자체는 목적이 못되고 휴머니즘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태어났다가 사라질 운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

p.153

철학은 사실 어렵다.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뭔가 우리의 현재 삶과는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학문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철학적 용어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학적 개념에 대한 각자의 이해는 어느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지적 사고의 과정이다. 저자도 철학적 개념 이해의 어려움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계속 전진하라고 조언한다. 철학 읽기를 우직하게 이어 나가다 보면 처음에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두 번째 볼 때 다르고, 다른 관련 책을 찾아 읽었을 때 그 축적된 이해도가 계속해서 현재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글에서도 쓴 바 있지만, 사람도 첫눈에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 않은가.

학문적 성장에 필요한 체계적인 독서 필요

(...)

세계 역사도 그렇다. 선진사회에서는 인간개발이 앞서고 그 뒤에 사회개발, 그리고 경제발전과 경제개발이 뒤따른다. 그것이 역사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신사적 절차를 밟지 못했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을 먼저 겪은 후 인간과 사상과 인문학이 발전했고, 그 뒤에 사회과학이 발전했다. 그리고 정치의 변화와 사회문제의 해결이 모색되었다. 그 후에 자연과학과 기계 과학이 발달하면서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 과정을 밟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개발을 먼저 추구하다 보니까 사회개발이 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사회개발을 계획하는 동안에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탐구되지 못했다는 현실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p.230

나는 요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매일같이 뉴스에서 들려오는 사건, 사고 관련 슬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삶에 대한 사유를 심화시키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인문학 독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쉽게 편하게 공부하고, 가상현실 등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대적 변화를 역행하여 과거 고된 근현대사 속에서 힘들게 독서할 수밖에 없던 그 시대를 예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실시간 넘쳐나는 단편적 정보들의 수용과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무심한 행동들, 자기반성이 결여된 일상, 인간과 인간 존엄에 대한 물음과 이야기가 없는 세상에 대한 공포심이 인문학의 부재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그래도 그 옛날 '인문학'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신념과 가치를 굳건히 지탱해 주던 때가 있었다. '인간'에 대한 진지하고도 오랜 시간 진통 끝에 얻어낸 사유의 결과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이미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저 평소와 같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을 뿐인 귀갓길이 가족들과의 헤어지는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우리 이웃이었다.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는 건전한 독서에 있다.

(...)

문제는 이렇게 소중한 정신적 과업을 소홀히 여기고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만족을 위해 달리는 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건전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그 차원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의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언제나 독서하는 국민, 책을 가까이하는 민족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문제는 물론이고 도덕적 기강을 바로잡는 길도 건전한 독서와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p.264

이 책은 '독서'라는 주제 아래 3가지 층위를 이루고 있다. 첫째, 백 년에 걸친 한 개인의 독서의 기록. 둘째, 그 독서의 기록이 비추는 우리 한국의 근현대사. 셋째, 철학도로서의 전공 독서에 대한 기록과 방법이 그것이다. 이 책은 좁게는 철학을 전공하는 혹은 전공에 뜻이 있는 자가 읽기에 손색이 없다. 철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전공의 선배로서 저자가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그 기록을 통해 나름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넓게는 백년의 시간을 거친 자가 어떤 책들을 어떻게 읽었으며 각각의 순간들마다 독서를 통해 어떤 생각을 했고, 그런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어떤 사람을 만들어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뿌리가 깊고 튼튼한 밑동과 줄기가 있는 나무가 크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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