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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 니체 아카이브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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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를 보는 또 하나의 방법, 살로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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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나침반 역사 속의 위인들 - 외교관의 눈으로 보고 역사학도의 발로 쓴 역사, 리더십 지침서
이강국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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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역사 속의 위인들]

-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며 -

[대한민국 나침반 역사 속의 위인들]이라는 책은 총 8명의 위인을 다루고 있다. 최치원, 서희, 김윤후, 세종대왕, 이순신, 정약용, 백범 김구, 이승만. 다들 위대하신 분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세종대왕'에 대한 감상을 남겨볼까 한다.

1990년대 그러니까 옛날에는 무엇을 가지고 초중고 교과서를 제작했는지 모르겠다. 정확히 언제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배운 기억은 또렷하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에 지시를 내려 집현전의 학자들로 하여금 한글을 만들게 했다", 뭐 이런 식의 내용으로 한글 창제의 기원을 배웠었다. 이 책 [역사 속의 위인들]이란 책을 읽기까지만 해도 나는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용을 읽으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한글은 협업이 아닌, 바로 세종대왕 혼자서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혼자' 만들었다는 부분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을 연발했다. 이 책의 내용을 근거로 한다면 내가 학교 다닐 때 배운 한글에 대한 내용은 잘못된 것인 셈이다. 오늘의 독서를 통해 이를 바로잡게 되었다.

이 글에서 '훈민정음'과 '한글'의 차이를 잠깐 바로잡고 가려고 한다. 세종대왕이 오늘날의 한글을 처음 반포한 것은 그 이름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한다. 그것을 가리키기도 하는, 오늘날 이름 '한글'은 조선시대를 지나 1914년,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 선생이 한문 이름인 훈민정음을 '하나이자 크고 바른 글'이라는 뜻으로, 우리글로 된 이름 '한글'이라 지은 것이다.

'훈민정음'이 협업의 결과물이냐 아니냐에 대한,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저자는 훈민정음이 협업 일수 없는 이유를 4가지를 들어 밝히고 있는데 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1443년 12월 30일 <세종실록>에 "이달에 상감마마께서 친히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

둘째, 집현전을 약 20년 동안 지키고 있었던, 세종 집권 당시에는 집현전의 수장이었던 최만리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에 대한 '반대 상소'를 올린 것.

셋째, 세종대왕이 쓴 <훈민정음해례본>의 서문에 해당하는 '예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는 사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p.167 (재인용)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컥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세종은 지배계층의 최고봉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올라 있으면 대개 권력을 쥐고 있어도 더한 권력을 탐내거나 사리에 어두워지거나 자신의 안위만 힘쓰거나 여색에 빠지는 등 안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대부분인데, 역대 왕들 가운데 특히나 세종대왕이 나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그의 '끊임없는 탐구정신'때문이다.

한글 창제자 세종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최고의 학자였다. 학문 차원에서 보더라도 언어학뿐만 아니라 음악학, 천문학 등 새로운 문자 설계에 필요한 학문분야에 정통한 인문학자이자 과학자였고, 디자인과 음악에 정통한 예술가였다.

p.168

한글 창제가 협업일 수 없는 그 마지막 이유는 신숙주의 문집인 <보한재집> 기록에 있다. 거기에는 "상감마마께서 (...) 오직 우리나라만이 제 글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여 언문 자모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셨다"라고 되어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나서 모든 백성이 한글을 자유로이 사용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권계층으로서 한자를 고집하던 사대부들의 저항도 있었고, 명나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 당시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저마다 글자를 알게 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제 언어로서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내려 했던 '세종의 오랜 꿈'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에서 시작된 이 '비밀 프로젝트'는 다시 말해 세종의 애민정신이 없었다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것이다.

그 유산을 지금도 실감한다. 빠른 검색과 빠른 타이핑(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워보고 이를 타이핑해 본 사람이라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이미 실감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자의 자유, 이쁜 글과 말소리... 세종대왕의 크나큰 사랑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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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음악가들
장옥님 지음 / 형설미래교육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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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위기의 음악가들]

- 유서를 쓰는 사람의 심정이란... -

지금은 코로나 시대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편이지만, 작년 3~4월만 하더라도 비교적 긍정적인 나에게도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반 픽션, 반 현실이긴 하지만 전염병에 관한 영화들이 말해주는 여러 가지 상황들, 뉴스를 틀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입원실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는 사람들... 지난 영상이긴 하지만 전국의 구급차와 구급 대원분들이 대구를 찾은 모습은 그 당시 우리가 지내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 것이었는지 말해준다. 아무리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시국에 의연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코로나 이전 미세먼지가 극악이었던 날조차 마스크 한 번 안사고 안 쓰던 나였는데, 그 이후 마스크가 없어서는 안 될 세상 안의 나...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게 꿈인지 생시인지 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작년 봄쯤이었을까. 집에서 평소 즐겨듣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안토니오파파노 지휘, 조성진 연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듣고 있었다. 2악장이 시작되고 나오는 피아노의 첫마디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베토벤이라는 사람과 베토벤이 만들었던 곡에 더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코로나 전에 그저 위대한 작곡가의 위대한 곡이라는 피상적인 수식어 아래 음악을 듣고 즐겼다면, 코로나 이후 내가 이렇게 힘들어보니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베토벤의 삶을 더욱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년은 마침 베토벤 탄생 250주년 되는 해라고 했다.

나는 클래식 음악만 들어서 모든 음악가를 각각의 손가락만큼이나 똑같이 사랑하지만, 한 줌의 마음을 더해 조금 더 아끼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가 바로 베토벤이다. 솔직히 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가장 사랑한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서 귀로 듣는 예술을 문장으로 술술 풀어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저 아래까지 떨어지는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그 정신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인간에서부터 인간 이상에 이르는 거대한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베토벤의 음악은 뭔가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특정하기에는 한없이 크게 느껴질 뿐이다.

베토벤이 이 전 시대의 음악가, 이를테면 바흐나 하이든, 모차르트와 구별되는 점은 베토벤 그 자신이 당시 자유계약자, 즉 프리랜서의 신분으로서 예술가의 지위를 한층 더 드높였다는 데에 있다. 이 전 시대 음악가들은 그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교회나 궁정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 있어 안정적이었다 할 수 있지만, 각자가 지닌 음악에 대한 철학은 교회나 궁정의 의뢰와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단될 뿐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이렇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음악도 있지 않을까 한다.

베토벤은 이전의 선배들과 달리 독립적인 음악가로서 자신이 만든 음악(악보)을 출판사와 네고?, 협의를 통해 팔았다. 아마도 자신이 만든 음악의 가치를 스스로 저울질하며 출판사에 금액을 불렀을 것이다. 예술가라는 신분이 더 이상 종속적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베토벤과 그의 음악은 인기가 많았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하이든, 모차르트까지의 음악이 약간 관공서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정형화된 즐거움, 쾌활함, 똑똑 떨어지는 터치(스타카토)가 주를 이루는 음악이었다면 여기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적 스타일에 신선한 충격을 받으면서 신기해했던 것 같다. 이쁠 리 없는 굉음, 많이 보이는 단조 선율, 쫀득하게 이어 치는 레가토 주법 등이 베토벤의 음악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요인들이지 않나 싶다. 그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자유계약자 신분으로서 베토벤은 성공적인 삶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잘 나갔다. 그러던 그가 청력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796년부터로 추정된다. 1796년부터라고 하면 그의 나이 26세. 청력 이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어떤 자료에서는 연주여행을 갔던 베를린에서 발진티푸스에 걸려 심하게 앓고 난 뒤 청각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청력은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청력 이상으로 인해 베토벤은 작곡과 연주활동에 의기소침해지고 점차 사람들을 기피하며, 예민하며 더럽고 고약한 성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감기로 며칠 아파봤을 때를 떠올려본다면 충분히 이해 가는 상황이다. 그 가벼운 감기로도 아플 땐 짜증이 나던데 당시 의료기술로는 고칠 수 없었던 청력 이상, 그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정하기 싫은 미래, 그 두려움 앞에선 베토벤을 생각하면...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라는 도시로 요양을 하러 갔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자,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 동생 카를과 OOO 베토벤에게.

"아, 너희는 내가 심술궂고, 고집불통이며, 인색하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겠지. 너희는 나를 정말로 오해하고 있다. 너희는 내가 왜 그런 존재로 보이게 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은 이유를 몰라. 어렸을 때부터, 아아, 나의 가슴과 영혼은 부드럽고 선량한 감정으로 가득했고, 위대한 일을 해내려는 결심을 항상 품고 있었지..."

p.114 (재인용)

이것이 그 유명한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다. 베토벤은 그의 나이 32세가 되던 1802년 10월 6일에 이 편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 편지는 동생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그가 죽고 나서 20년 후에야 발견되었다. (베토벤 사망일 1827년 3월 26일)

베토벤은 1796년부터 청각에 이상을 느끼면서 1802년 10월 6일에 이 유서 성격의 편지를 남겼다. 내가 즐겨듣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1796년부터 1803년에 걸쳐 작곡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떤 자료에서는 작곡 시작 시기를 1799년부터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 범위를 어디서부터 잡더라도 작곡 기간이 청력 이상을 겪은 시기와 겹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남기고 죽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 이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2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2020년에 어떤 한 사람이 이걸 듣고 눈물을 흘렸으니... 시간을 뛰어넘는 이 감동을 어떻게 몇 개의 글자로 말할 수 있으랴.

서평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며 독서와 서평을 향유하는 삶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서서히 보이지 않으면 어떨까?'하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상상을 해본다. 작곡이 업이었던 베토벤에게 듣는 것이란 분명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을 테다. 더 이상 들을 수도, 청중 앞에서 연주할 수도 없었을 때의 심정이란...

그러나 베토벤은 현실적 제약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 끝내 저 스스로 무너지지도 않았다. 내가 그의 삶을 들여다본 이상 음악은 이제 나에게 단순히 즐기는 것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음악에 녹아든 삶에 대한 그의 자세를 반추하고 그의 정신을 내 삶에 심어내는 것 또한 베토벤 음악을 진정으로 느끼는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음악을 들으면 즐겁다. 그러나 그의 삶을 알고 들으면 위대하다는 것을 이 책 [위기의 음악가들]이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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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음악가들
장옥님 지음 / 형설미래교육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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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를 쓰는 사람의 심정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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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페이지 세계사 365 - 세상의 모든 지식이 내 것이 되는 세상의 모든 지식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심용환 지음 / 빅피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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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1페이지 세계사 365]

- 1페이지 세계사 365 사용설명서 -

철학사, 음악사, 미술사에 관한 책이나 혹은 어떤 특정 인물에 관한 책을 보다 보면은 나의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아쉬울 때가 있다. 세계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좀 풍부했더라면 어떤 특정한 책을 좀 더 재미있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다. 서양의 중세를 들여다보는데 이 시기에 중국은 또 어떤 왕조체제였는지가 궁금할 때가 있다. 단일한 세계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방대해진 이것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망(Web)을 보는 것 같다.

이렇게 거대한 세계사를 정복한다는 말은 조금 허황 대고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라는 물음을 생각하면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개 세계사에 관한 책은 두꺼운 사이즈를 자랑하지 않던가. 세계사만 쳐다보고 있을 시간도 없거니와 내 인내심이 그 두께를 이겨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1페이지 세계사 365]와 같이 기획된 책이 궁금했다. 이런 책 한 권 정도는 소지하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사'는 역사에 있어서 가장 상위개념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는 '동양사', '서양사'는 물론이고, '예술사'도 포함될 수 있다. 주제를 세분화해 보면 인물도 세계사에 포함될 것이고, 문명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의 하위 부류들이 세계사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동양사나 서양사 등 어떤 한쪽 史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가지 하위 역사들을 고루 안배해 그에 해당하는 유용한 지식을 실어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1페이지씩, 365개의 교양 지식을 읽으며 인문학의 세계를 확장해보세요.

MON 동양사 동양의 기원부터 현대까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

TUE 인물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인상적 삶을 산 인물

WED 서양사 서양의 기원부터 현대까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

THU 예술사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남긴 예술적 성취

FRI 문명사 인류가 꽃피운 문명의 눈부신 서사

SAT 빅 히스토리 빅뱅부터 미래까지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

SUN 도시사, 기술사 인류 발전에 혁신적 영향을 준 도시, 기술 변화

p.4

목차를 보면 DAY1부터 DAY365까지 그 양이 정말 방대하다. 목차가 총 3페이지에 이른다. 평소에 궁금해했던 키워드가 보이는 것이 마치 읽기도 전에 지식을 소유?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철학사에서 보았던 철학자의 이름들도 보이고, 나라나 이데올로기, 고대인의 화장술, 피아노, 신사복과 같은 기술이나 물건에 대한 깨알 역사도 접할 수 있다. 목차의 사진은 맨 앞부분만 실었다.

책을 넘겨보면서 이 책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이 책은 그 제목이 [1페이지 세계사 365]인 만큼 출퇴근길에 혹은 짬이 날 때 5분 정도 할애해 가볍게 읽으면서 세계사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해놓았다. 세계사를 따로 깊게 공부할 시간이 없는 사람은 이 구성대로 깔끔하게 가볍게 하루 한 장씩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1년의 독서가 쌓이면 세계사 어느 부분에 대해 어디서 무슨 말을 보거나 들었을 때 지식과 지식이 서로 연결되어 통하는 '이해'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하루 한 장 읽으면 그 무엇보다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혹은 깊게 공부해 보고자 하는 사람은 관심 있는 영역의 입문서로 특정 페이지를 발췌식으로 찾아가며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내가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본사에 관한 책을 바로 읽기보다는 이 책에 실려있는 'DAY134'를 비롯해 일본의 역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먼저 찾아보면 대략적인 뼈대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책의 맨 뒤에 실린,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참고한 <참고 자료>목록은 관심 있는 분야를 좀 더 심화시키기에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세계사를 각 잡고 공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당장 너튜브만 틀어도 세계사에 대한 내용은 즐비하고, 인터넷 검색만 해도 그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대에 중요한 건 '우리의 관심과 의지'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그 무엇이든 손쉽게 얻을 순 있어도 '어떤 식으로' 관심을 지속시켜 나갈 것인지, 계속 들여다봐야겠다는 결심을 세울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고, 그 비결을 찾는 것 또한 본인의 노력에서 비롯될 것이다. 뭐든 쉽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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