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이제 내 이해가 책과 점점 불리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싫든 좋든 하이데거에 관심이 있다면 이 부분마저도 성실하게 보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려는 논리학의 정초가 결국 '민족'과 같은 개념을 관통하기 위해서였다면....ㅠㅠ, '민족'이라... 하... 14절, "우리의 자기 존재는 민족'이다'"라는 말은 결단 속에 있다. - 이 부분은 그냥 하이데거가 살았던 시대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말아도 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민족'이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나에게 묻는다. 아주 예전만 하더라도 피부색, 생김새만으로 국적과 민족을 알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다르고, 동남아시아인, 아프리카인 구분되고, 더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북유럽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인까지 서로 구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령 미국, 캐나다만 해도 중국계 미국인이 어마어마한 숫자로 살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피부색, 생김새만으로 국적과 민족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이번에 18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bruce liu만 해도 나는 처음에 타이완이나 홍콩 정도의 사람인 줄 알았지만, 그는 캐나다 국적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민족'을 논한다.... 물론 국적과 민족의 범위가 완전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국적과 민족이 대개는 일치하던 예전에 비해 오늘날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국적을 버리거나 선택할 수 있고, '개인'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그것이 강제적으로 '민족'에 묶이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민족'개념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민족'개념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나는 그것이 각 개별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작업에 논리학이란 이름이 붙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이러한 작업은 '민족'과 '역사'를 위한 교두보였나?
여담이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으면서 어딘가 모르게 공허함을 느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거대한 성채와도 같다고 키에르케고르가 그랬나? 개별자로서의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민족'과 연관시킨 하이데거의 말도 공허하게 들리는 차였다. 아무튼, 나는 책의 어느 부분을 두고 하이데거와 싸우고 있다.
한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서 한편으로는 책을 손에 쥔 이 순간이 행복하다. 역설적이게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일부의 그의 말이 있지만, 이것은 다시 말해 내가 뭔가를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지, 혹은 더 비판할 여지가 있는지 등, 하이데거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철학과 철학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에 있는 것 같다. "철학의 진리는 관점의 자유다."(p.135)라고 하이데거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읽는 사람에게 비판도 허용된 곳이 바로 이 쓴 자와 읽는 자의 만남의 장인 읽어냄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강의에서 민족은 인종, 혈통과 연관된 신체적 의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육 사건에 참여해야 하는 노동, 임무, 사명을 결단하는 역사적 현존재로서 규명된다"라고 하는 옮긴이의 단 한 줄의 해명만으로 '민족'이란 개념을 그저 쉽게 달리 이해하긴 어렵다. 옮긴이가 하이데거의 전공자인 만큼 친절한 해제가 책 속에 함께 있었으면 더 좋았지 않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관심 있다고 그냥 덤벼들기에는 꽤나 쉽지 않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