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 엄마가 딸에게 남기는 삶의 처방전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수지 홉킨스 지음, 할리 베이트먼 그림,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꽤 오랫동안 살았던, 무수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도착할 수 있었던 우리집에선 카톨릭재단의 병원 장례식장이 보였더랬다. 여름밤에 문을 다 열고 자면 장례식장 불빛이 엄마의 화장대에 반사됐는데 어린 눈과 마음에도 괜히 무섭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대학 시절엔 같이 조를 이뤘던 타과생 오빠가 발표하는 날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찌어찌 순서를 기다리는데 문자가 왔든가, 전화가 왔든가... 수술하다 죽었다 했다. 그 오빠의 장례식도 집 앞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또 돌아가신 분이... 위암으로 돌아가셨던 큰아버지, 죄송스럽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동생과 나는 초등학생으로 너무 어렸다. 비교적 최근이라면 친할머니 장례식인데 아이가 어려 신랑이 대신 아버지를 따라 장지에 다녀왔었고 역시나 죄송스럽지만 호상이었던 터라 크게 슬프지 않았다. 새파랗게 어릴 때나 지금이나 죽음이란 내게서 이렇게도 먼 느낌인데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이란 책을 어째서 기필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딸에게 남기는 삶의 처방전... 이란 문구 때문이었을까. 내가 딸이고, 내게 딸이 생겨서인지도... 또 세상이 너무 위험천만한 곳이라 누구나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한 몫 했는지도...

책 속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남겨진 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극히 친밀하고 일상적인 어투로 죽음을, 자신의 부재를 유쾌하고도 당연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읽는 내내 현재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칭얼거릴 때 안아줄 수 있고 토닥일 수 있는 손이, 따뜻한 너와 나의 온기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이 싸늘하게 식고 사라짐도 당연한 순간이 올테니 지금을, 힘들어도 만끽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웃으며 울었다. 이미 소중한 여인을 잃어 마음이 시린 이들에게도 조용히 건네면 좋을 것 같다. 세상에 나와주어 고마운 책이다.

+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주신 레시피들이 너무 외국 요리들이니 나만의 한국 요리들을 좀 더 발전시켜 적은 뒤 이 책에 끼워 책장에 무심하게 올려둬야겠다. 내가 아끼는 책들이 아이들에겐 유산이 되리니 부디 책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라 어미가 남긴 책들을 한 번은 읽고 정리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