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크 에프 그래픽 컬렉션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에밀리 캐럴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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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많은 여름밤 파티에 초대된 중학생 소녀가 하나 있었습니다. 감기약 시럽보다 역겹게 느껴졌던 맥주를 세 잔 비우고나니 토할 것 같아진 소녀는 산책을 나섰다가 고등학생 오빠를 한 명 만나게 되고 둘은 키스를 하게 되지요. 그저 설레는 맘으로 응했던 입맞춤은 강간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자신이 당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만신창이가 된 소녀는 본능적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파티를 망쳤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왕따가 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입술을 물어뜯는다. 마치 이 입술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의 입인 것처럼(26쪽).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소녀는 혼자입니다. 사건이 있었던 날도 그녀 곁에 없었던 부모님은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피곤합니다. 선생님들이라고 다를까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상대가 없고 방법도 알 수 없었던 소녀는 입술을 저주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얼굴을 닦았다.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어질 때까지. 그저 매끈하게 아 무 것 도 없 게(69-71쪽).

하나 남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헤더마저 자신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던 날, 소녀는 사라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 속에서 땡그랑 소리가 난다. 목도리가 내 목을 빙빙 둘러 꽉 조여 온다(119쪽).

소녀의 성적과 수업 태도가 점점 봐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학교와 가정에서 책임 떠넘기기가 시작됩니다. 어른들이 소녀에게 이유를 묻지만 들을 귀 없이 던져진 질문은 소녀의 우울로 이어지고 소녀는 정학 처분을 받게 됩니다.

내 피부가 온통 화상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220쪽).

많이 아프고 괴롭지만 소녀는 잊어보려고, 극복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 쓰레기 같은 놈이 한때는 소녀의 친구였던 레이첼과 ... (이하 중략)

소녀는 과연 입을 열어(speak) 자신에게 닥쳤던 일과 다른 결말을 친구에게 허락할 수 있을까요? ...

 

+ 까만 나무에 새겨진 소녀의 얼굴 표지와 흑백으로 가득한 페이지들만 보고도 여섯 살 아들녀석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던 책입니다. 읽는 내내 제 마음도 몹시 무거웠습니다. 다행히 아줌마가 되도록 무서운 일을 당한 적은 없지만 세상은 여전히 제게도 무섭고 딸 뿐 아니라 아들도 안전할 수 없는 시대니까요.

미친 사람들이 넘쳐나는 나날 상처받은 아이들, 사람들마저 아픔을 이야기하지 못해 미쳐버리지 않게 잘 다독이고 싶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잘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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