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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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성숙함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얼어붙은 호수가 따스한 봄날에 시나브로 녹은 줄도 모르고 무지에 사로잡혀 위험한 발걸음을 내딛고 말았다.

또한 주변에서 악으로만 여겨 원색적인 비판마저 서슴지 않고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없었던 이유 역시 그들 조차도 과도기였고 성장하고 있었다는 이유였으리라.

그것이 표리부동한 것임을 인지하지 못함 역시.

그들은 시쳇말로 어려서라는 흔하디흔한 말로 포장을 하고 망각하며 또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수도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과오를 받아들이지 못해 본인을 조금씩 갉아먹던 은기와 호정에게는 그 과오조차 용납할 수없이 너무나 큰 상처로 변모해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무뎌짐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지만 은기의 표리부동했던 진실과도 같이 호정이 겪고 표현해 내는 방식 역시 그와 같아 스스로를 좀먹고 있었다.

이는 동생인 진주, 친구인 나래, 성미 등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무릇 해맑고, 무탈하며, 그늘 없이 다시금 밝아 올 내일을 받아들일 수조차 없게끔 길들여진 것이다.

저자는 미묘한 호정의 심경을 아주 조금씩, 그러나 유려한 문체로 자연스럽게 드러내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했고 종국에는 가슴 저릿한 탄식으로 마무리하게끔 세밀하게 그려냈다.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고 모나지 않은 일상을 보내던 호정의 속내는 일상의 중압감을 겪어내고 있던 것임을, 은기에게 사소한 질문 하나하나 던지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던 이유를 아주 조금씩 은밀하게, 그러나 파괴력 있게 수면 위로 노출시킨다.

이 설득력 있고 몰입도 강한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비단 미성숙한 사춘기 아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닌 어른인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과오마저 자연스레 드러내, 그들을 책임지기는커녕 상처로 잠식되어 도태시켜버린 오류 또한 자각하는 장치로 드러냈다.

섬세하고 예리함으로 손끝 감각 한 부분들 마저 자극을 느끼게 되어 진정으로 첫사랑을 마주하던 애틋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고, 일상마저 버거워져버린 고통의 이면을 마주하기도 하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그야말로 과도기의 벅찬, 날것의 낯섦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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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완성 수프 도시락 - 쉽고 간편한 수프 레시피 60가지
아리가 카오루 지음, 이은정 옮김 / 푸른향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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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요리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프 요리는 전혀 접하거나 도전해 본 적이 없었고 특히나 도시락으로 수프는 전혀 생각해 본 바가 없어서 도서를 처음 접한 후 조금은 의아한 기분마저 들었다.
평소 알던 수프는 옥수수나 감자, 크림수프였으니.😅

그러나 저자를 수프 작가라 소개하며 포문을 여는 10분 완성 수프 도시락은 무려 10년간 매일 아침 수프를 만들었다는 저자의 경력으로 따라만 한다면 맛이 보장되어 있을 것만 같은 신뢰를 주었다.

10분 만에 만들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에 경제적이기까지 하다는 매력은 덤.
여기에 채소를 듬뿍 넣어 활용해 건강까지 챙겨준다.

아침에 만들어 도시락으로 먹는다는 컨셉이기 때문에 육수를 내거나 동시에 조리하지 않고 모두 한 번에 끓이기만 하면 된다는 장점에 요린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특히 본문의 레시피에서도 양파를 써는 방법이나 도구를 이용하기, 있으면 편리한 우수 식재료와 같은 소소한 팁들을 전해주어 누구나 바쁜 아침 시간에도 10분 만에 도시락을 완성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친절한 도서는 목차를 재료별, 계절별로 구분해 수프를 나열해 두었고 적은 재료를 사용해 낭비하거나 처치할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염려도 덜어준다.

도시락 통에 미리 따뜻한 물을 넣어두는 노하우까지 전해주는 배려는 독자로 하여금 도전의식을 불타게 한다.

독자가 점심시간을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따스한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
이러한 뭉클한 멘트와 감동이 전해져 힘든 하루를 따뜻한 수프와 함께 힐링하며 견딜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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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 코로나19로 남극해 고립된 알바트로스 호 탈출기
김태훈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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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기이한 경험을 했던 이가 얼마나 될까.

코로나19라는 가장 큰 위기를 맞은 오늘날, 우리의 모든 삶이 변하고 있지만 이렇게 피부로 느낄 만큼 놀라운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본문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있다.
남극 여행을 다룬 첫 번째 이야기와 고립과 위기의 절박함을 그린 두 번째 이야기.

먼저 소개되는 첫 번째 이야기는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등 각국에서 모인 292명의 인원으로 대자연 남극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이다.

악명의 드레이크 해협을 지나 도착한 남극에서 대자연에 오염원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하고 호기심 많은 펭귄과 바다사자를 만나며 바다에 뛰어든 후 보드카를 마시는 특별한 경험들을 하고, 남극의 사막과 사진 콘테스트, 강연까지 즐기며 경이로움을 느끼던 저자.

특히 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는 역사나 자연에 관한 부연 설명이 깃들여져 배경지식을 더욱 충족시켜주는 황홀한 경험에 읽는 동안 나 또한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고 남극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동경도 느꼈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절박함을 겪게 된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입항 거절이었다.

인터넷과 단절된 상황에서 생존이 걸린 절박함에 입항거절, 항공권 취소가 일상이 되고 30분 동안 20달러로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은 이메일 한두 통을 읽는 게 다였다는 망연자실한 배 안에서의 격리 속 수하물도 포기할 생각과 50시간이 넘는 코스, 700만원 이상의 티켓마저도 구하지 못하는 절박함에 경제적 부담을 안고, 주위 크루즈들의 심각한 소식마저 전해와 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며 시시각각 변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떠나지 못할 경우 아프리카 대륙에 이동할 수도 있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나였다면 어땠을까.
저자가 느꼈을 심적 고통과 고민은 직접 겪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으리라 사료되었다.
만약 나였다면 트라우마로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못할 것만 같다.

이런 혼돈속에서도 유일하게 배에 찾아오는 대한민국 영사와 믿음직한 일 처리 능력들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뿌듯함을 느끼게 했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 직원들을 챙기던 세심한 배려에 가슴 한편에서 저릿함도 느껴졌다.

전 세계적으로 벗어나지 못했고 지금도 진행형인 이 위기.
그 속에서 우리는 익숙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성장하며 배우는 것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다.

언제쯤 하늘 길이 열리고 이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며 막막한 현실 앞 호주 전세기 허락이라는 한 줄기 빛처럼 우리의 삶도 변화가 찾아왔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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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 SF 미스터리 나비클럽 소설선
천선란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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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년의 미래를 미스터리와 접목하여 그려낸 2035 SF 미스터리는 미스터리 전문 출판사 나비클럽의 작품답게 흥미로운 소재와 거물급 작가들의 필력으로 책을 열자마자 독자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어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각 작품들이 가진 색깔이 워낙 다양하며 매력적이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페이지터너적 요소들을 체감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첫 작품인 천선란 작가의 옥수수 밭과 형에서부터 독자를 SF의 세계로 집중시켰는데, 서번트증후군을 가진 동생으로 하여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욱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해 놀라움을 주었고 소재와 인물의 대화를 통해 이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어지는 에덴의 아이들 역시 발전한 2035년의 과학을 기반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고양이와 주인공 본인을 동일시하며 시니컬하게 비판해, 몰입도 높은 유려한 필력과 뛰어난 완성도에 읽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혼돈 속 변화하는 장사장의 모습과 혼란의 상황을 흡인력 있게 그린 고양이의 마음, 메타 버스 세계관과 미스터리를 자연스럽게 엮어 그려낸 고난도 살인, 뻔한 클리셰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함 그 자체의 서사인 컨트롤 엑스, 코피노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비정한 세태를 비판하며 어머니와 규빈의 태도를 아연실색하게끔 하며 제목에서 가져오는 모순을 속시원히 해결해 주는 억울할 게 없는 죽음, 선택이 빚을 양날의 검을 예리하게 그린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 저열한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추함을 2035년이라는 미래라는 소재를 가장 잘 활용한 위협으로부터 보호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제목에서부터 눈길을 끈 며칠 늦게 죽을 수도 있지까지.

작품 하나하나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함과 매력이 가득했고 특히 옥수수 밭과 형, 고난도 살인은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당연할 정도로 소재에서 부터 흥미로웠다.

여러 번 등장한 난민이라는 소재와 자율주행 자동차라는 소재도 작가마다 다양하게 활용해 감탄과 짜릿한 쾌감을 느끼다가 순식간에 완독하게 만들어, 읽는 동안 미스터리의 정점에 흠뻑 취하게 만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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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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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하고 가벼워 익숙한 느낌에 쉬이 다가갈만한 작품으로 접근했더니 실은 그 정체는 열어보면 놀랄 만큼 다채롭고 독특한 매력이 가득한 예리한 칼날을 지닌 비장의 무기였다.

유쾌함이 감춘 비밀을 마주할 때 독자는 참맛을 느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거나, 가시가 숨어 함부로 접근했다가 뼈를 맞아 새로운 묘미를 느끼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

어디로 튈지, 작중인물들이 어떤 생각과 그 사고의 결과가 어떤 선택을 낳을 것인지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신박하고 경이로웠으며 흔한 플롯과 뻔한 클리셰를 모두 부순 작품이라 독자로 하여금 크나큰 충격과 깨달음을 경험했다.

공통적으로 욕망을 위해 누군가는 저항으로, 누군가는 시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감을 그리며 자유와 사랑, 권리 등 각기 다른 욕망들을 향하고 있는 작품들은 진지함으로 채워진 작품도, 코믹적 요소를 포함한 작품도 모두 내면에서 노동자의 권리, 젠더나 종교적 이슈까지 다루고 있어 현실 비판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작가의 뚜렷한 세계관도 느낄 수 있었다.

감정 절제 스위치나 바벨탑의 바벨 등을 차용한 독특하고 위트 있는 아이템들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더욱 빛을 발했고 문과생은 이해하기 힘든 우주의 이야기조차 몰입도가 상상초월이라 이 흡인력 있는 작품은 순식간에 독파할 수 있다.

SF를 틀에 박힌 장르로 치부했거나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독자들이라면 꼭 읽어 보아야 한다.
저자가 그린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작품 속에는 당신 곁에서 방금 전까지 일어난 모든 현실이 담겨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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