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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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2011년 작 영화 앨버트 놉스의 주인공 앨버트 놉스(글렌 클로즈 분)는 모리슨 호텔의 웨이터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년 남성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비밀은 그가 그가 아닌 그녀라는 것.

그녀가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기에 여성이라는 성별은 앞길을 저해하는 요소에 불과했기에 그녀는 여성이라는 성별을 포기하고 살게 된다.

과거 이처럼 여성이라는 성별은 생계유지나 직업을 갖기에 부적절한 성별이었으며 직업을 갖는다 해도 한정적인 직업만이 존재하는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었다.

이와 같은 부조리에서 출발한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는 사실 제목에 대한 질문의 답은 서문을 조금만 읽어도 즉각 파악이 가능한 명제였다.

여성 미술가의 부재는 재능이나 천성이 아닌 단지 제도화된 교육으로 만들어진 개념들에 여성들이, 그리고 여성 미술가들이 능력을 폄하당하며 직업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해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왜 이 당연하고 부당한 처우들이 출판된 지 50년이 지난 이 글로 하여금 수많은 작가나 예술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글임에도 남아있는 것일까.

교육이나 제도적 차별이 사라져가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은연중 깃들어 있는 남성 중심의 세계관은 소멸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도 개선되지 않은 다양한 이슈들은 홍수처럼 밀려온다.

현재도 차별과 부당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자연스레 여기게 되는 이데올로기적 견해들이 잠식하고 있는 우리의 사고방식에는 나조차도 미술 애호가라 자부하면서도 턱없이 부족한 여성 미술가의 부재와 끊임없이 이어지던 남성 미술가의 릴레이와 같은 전시에도 아이러니함과 의문점을 갖지 않았다는 과거의 기억들마저 포함되어 있다.

또한 과거 충분히 독단적으로도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 여성 미술가들이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여성의 자세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것에 통탄스럽고 통감스러운 마음마저 느껴졌다.

2017년 디올 패션쇼에서 티셔츠에 새겨질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그녀의 글이 여성의 날을 포함한 앞으로도 다시금 지속적으로 주목받아,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사상에서 탈피해 젠더 문제만이 아닌 다각도에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길 바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기에 과거에 비한다면 멀고 먼 길을 걸어온 오늘날이지만 아직도 정의와 현실의 괴리로 인하여 진흙 속에 숨어있는 진주를 위하여 부단한 노력으로 사회적 인식과 통념들이 개선되고 변화하여 내가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다양하고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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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일가 - 교토 로쿠요샤, 3대를 이어 사랑받는 카페
가바야마 사토루 지음, 임윤정 옮김 / 앨리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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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 당시 방문했던 카페 플로리안.

그곳에서 음미한 핫초코에 대한 향수는 수 년이 지났음에도 매일 커피를 마시는 오늘날까지 회자되며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300년이 넘는 가게의 유구한 세월 덕분이었다.

그리고 여기, 이번 도서인 카페 일가에서 만나 볼 추억이 깃든 카페 역시 길고 긴 세월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킨 교토의 명물 카페 로쿠요샤였다.

기실 100년이 넘는 세월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가게의 이미지는 일본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

여러 다큐멘터리나 다양한 매체에서 고도의 기술을 가진 장인의 이야기를 워낙 자주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의 생산지도 아닌 동양의 카페가 무려 70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는 사례는 너무나도 생경했기에 커피 일가의 이야기를 더욱 감탄하며 읽었던 것 같다.

패전의 전란 이후 만주에서 청산가리가 든 봉투를 품고, 살기보다 버틸 수밖에 없었던 지리멸렬한 삶을 뒤로한 채 일본으로 넘어온 1대 미노루가 현재 지하 점포를 맡고 있는 2대 오사무, 일층의 3대 군페이로 이어져 운영하기까지.

로쿠요샤는 정도를 따르면서도 부지런히 각고의 노력을 담은 고유의 비법과 철학이 함께 해 가족경영이라는 장단점과 점주의 고령화, 프랜차이즈 커피의 홍수에서도 존립위기를 겪어내며 가게를 지켜낸 것으로 보인다.

하나둘 사라지는 주위의 가게들, 특히 140여 년의 역사를 끝으로 막을 내린 점포들을 바라보면서도 카페 일가는 1대 사장이 남겨준 재산마저 적자를 메우는 최후의 수단으로 감내한다.

생계 수단이 되는 재산마저 투자로 강행한 에피소드는 이들이 얼마나 깊은 고심을 했을지를 바로미터로 보여주는 지표였고, 여기에 가족의 애환과 우여곡절이 짙게 녹아있어 카페에 대한 긍지나 직업적 진솔함 마저 느껴졌다.

물론 과거보다는 나아진 가게 사정이겠지만 현재의 코로나 상황에서도 어쩌면 또 다른 위기를 겪을지도 모를 이 시기에, 찻집 영업시간이 끝나면 지하점의 바 영업이 시작되는 무궁무진한 매력의 로쿠요샤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의 소망을 담아 번영하길 기원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언젠가는 웃을 수 있게 되는 단어인 희망이 함께하길 바라며 패션은 돌고 돌아 다시 돌아 오는 것처럼, 레트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오늘날 이 전통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언젠간 나에게도 섬세한 서비스를 갖춘 커피 일가의 커피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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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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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멸망하기 전날,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그러나 그가 멸망이 아닌 난치병이나 불치병, 희귀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앞둔 삶을 산다면 그는 여생 동안 어떤 삶을 살겠다고 언급했을까?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기 전 날 할 일에 대해서는 잠깐의 고민 이후 일말의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을 가십거리일 수 있을 테지만, 시한부 인생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나날들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불운하고 금기시된다는 인식들로 인하여 쉬이 생각하거나 대화하지 않는다.

하여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납득키 어려운 이 시기를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하게 된다.

이에 본문에서는 꼭 논의되고 준비되어야 하지만 이를 꺼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죽음을 마주할 마지막 시기에 대하여 다룬다.

발전된 의학 지식과 매섭게 증가하는 고령인구의 상승세, 피할 수 없는 노화 등을 나열하여 독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관심을 환기 시킨 뒤, 여기에 다양한 마지막 순간들을 제시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태도, 방향, 그리고 의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나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첨언한다.

다만 죽음과 죽음을 앞에 둔 기간에 대하여 우리가 단순히 무섭거나 두려운 개념으로 치부할 것이 아닌 용기를 갖고 현실에 순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수많은 사례들과 저자의 조언이 함께 했고, 이로 하여금 나 또한 기존 갖고 있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생명 연장에 대한 생각보다는 매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감사한 기회가 되었다.

고양이들과 함께 원하는 삶을 살다 떠난 해리트루먼으로 마무리 할 것인가, 마지막까지 삶을 위해 발버둥 치며 신체 내 모든 구멍에 호스를 연결한 뒤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가.

본문에서 다룬 여러 사례들은 독자를 웃고, 울고, 희로애락을 느끼며 읽게 하였고, 여기에는 저자가 갖고 있는 의사로서의 책임의식 또한 짙게 느낄 수 있었다.

노인 인구 관리의 미흡한 현실 지적이나 지금까지도 환자들을 위해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는 부분 등에서는 저자가 환자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위하는 헌신과 노고가 느껴져 세심하고 따스한 마음이 진심으로 와닿았다.

죽음이라는 생경한 단어.
우리의 유한하고 한정적인 짧은 삶 속 죽음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꼭 필요한 부분임에도 부족하기만 한 이 주제들에 대하여 저자는 지속적으로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어 이에 대해 논의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느낄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죽음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도처에 짙게 깔린 자연의 순리이기에 이번 도서는 비단 의료진 뿐만 아닌 우리 모두에게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 줄 꼭 필요한 도서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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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 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
김지수 지음 / 싱긋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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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가운데 열에 아홉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출근 후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

외출하는 순간 그리움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우리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있어 필수 조건인 의식주에 포함되며, 특히 부동산 대란의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사태로 인하여 인생의 대부분을 대출 갚기, 내 집 마련에 몸 바쳐 헌신하고 있다.

이처럼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이면서도 평생을 두고 노력을 쏟아야 하는 집은 팬데믹이라는 상황에 맞물려 기거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인테리어, 반려 동식물, OTT 등의 취미생활들로 집안에서의 생활에 더욱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이번 도서는 집, 그중에서도 가구에 주목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며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본문은 가구를 매개로 세계사,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다양한 지식들을 전하는데 워낙 신박하고 흥미로워 마치 TV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떠오르게 했다.

또한 비전문가로 가구에는 문외한이었던 나에게도 수많은 낯선 개념들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져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 순식간에 완독을 하게 되었다.

항상 곁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가구들의 역사나 관련된 수많은 지식들의 향연이었고, 방대한 분량에서 저자의 노력이 느껴지는 정성 가득한 도서였다.

특히 음악이나 책에 관해 다양한 추천과 정보를 제공함에 있어서는 마치 하루키를 만난듯한 기분이었고 직접 그려 삽입한 그림까지 저자의 열정과 애정이 짙게 느껴져 더욱 매력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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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의 섬
마노엘 지음 / 달꽃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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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몽환적이며 고요한 바다.
이 잔잔한 바다에서 만난 해인.

심해에서 관조하는 하늘을 찬미하며 섬을 기다린다.

소수의 인물과 짧은 분량은 마치 소설임에도 시와 같이 느껴졌고 전개 방식 역시 함축적 은유가 가득해 독자는 무한한 상상의 기회를 통해 자기만의 해인의 섬을 만들게 된다.

그림처럼 그려진 바다와 벼랑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치명적인 유혹의 세이렌과 같은 존재를 맞닥뜨린다.

작품에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난 인물인 해인 이외의 인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허나 이 명명되지 않은 소녀와 노인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독자를 시나브로 해인의 섬으로 이끌어 서서히 잠식되게 한다.
침잠한 나는 수분기 없던 하이얀 티슈가 젖어가는 모습처럼 조금씩 희미하지만 확실하고 빠르게 푹 젖어 부드럽고 수분기 없던 가벼운 종전의 모습을 감추고 만다.

감상으로 스며든 나는 먹먹함에 취해있다 큰 울림으로, 뭉클함으로 깨어났고 희망과 한 줄기 빛을,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삶과 죽음, 기억과 고독의 딜레마에서 그 경계들의 의미를 정의하며 여느 타성에 젖어 감상으로 비극을 풀어내는 타 소설과 판이한 전개로 어쩌면 소리 없는 절절함의 호소를 듣기라도 한 듯,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찬찬히 읽게 되었다.

이번 해인의 섬의 마노엘 작가는 내가 처음 만난 작가였지만 미온의 온기로 독자를 아주 서서히 은근히 그렇지만 꾸준히 감싸주는 기분이 들었기에, 오랜만에 호기롭게 작가가 그동안 남겨온 발자취를 따라 다른 작품들을 섭렵하고 의욕적으로 탐구하며 작품에 흠뻑 취하고 싶어지는 호기심을 전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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