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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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 다섯 번째 권 <사라진 소방차>. 시리즈 중반에 다다른 만큼 마르틴 베크를 비롯한 스웨덴 형사들의 수색, 심문, 수사 능력은 원숙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말단 경찰들은 실수 연발이고, 베테랑 형사들마저 사건의 핵심을 짚지 못해 겉돌 때도 있지만,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려는 근성과 끈기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성 오틸리아 영명 축일, 어느 사내가 침대에 누워 권총 자살을 한다. 메모장에 익숙한 이름, '마르틴 베크'를 적은 채로.. 마르틴 베크는 목숨을 끊은 그와 일면식이 없다.


초반 서사는 발 빠르게 진행된다. 터프한 형사 '군발드 라르손'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느 공동 주택이 폭발한다. 라르손은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다가가 여러 생존자들을 구해내 일약 영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발생 초기, 단순 화재 사고라 여겼던 건은 과학 수사를 통해 전문가의 폭발 방화 사건으로 파악되면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원점으로 돌아가 수사를 진행한다.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시간은 기약 없이 흐른다.

하지만 기나긴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세부를 놓치지 않는 정황 묘사와 인물들 간의 대화는 독자가 실제 현장에 투입된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공동 저자들 또한 시리즈와 함께 성장을 하고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면서,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서사의 완급을 조절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조성한다. 파열하는 불길과 잔해를 뒤집어쓰며 피해자를 구조하는 형사의 몸부림,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차량을 발견하고 견인하는 과정의 세부 묘사 등 굵직한 줄거리는 흡인력이 상당하고 리얼하게 진행된다.


중간중간 투척된 세부 떡밥을 잊지 않고 회수하는 능수능란한 서사 작법, 인터폴과 협조하여 국제적인 프로 킬러를 일망타진하는 시원한 사이다 엔딩까지.. 시작만 거창하고 끝은 흐지부지한 용두사미 스타일의 여타 범죄 스릴러물에 지쳤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자신 있게 마이 셰발 & 페르 발뢰가 창조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다섯 번째, <사라진 소방차>를 읽어 보라 추천하고 싶다. 재미와 함께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 문제까지 숙고하는,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서평단 #사라진소방차 #엘릭시르 #마이셰발 #페르발뢰 #마르틴베크시리즈 #경찰형사느와르 #김명남번역

#스웨덴범죄소설 #마르틴베크시리즈정주행멤버 #문학동네 #책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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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렇게 왔다 - 나는 중증장애아의 엄마입니다
고경애 지음, 박소영 그림 / 다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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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했습니다.

우리 준영이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고,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13년간 있었다 갔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_작가의 말



생후 6개월에 폐렴으로 시작된 원인 불명의 병이 악화되어 중증 장애아가 된 준영이.

아이가 사춘기 나이가 될 때까지 13년간 이어진 엄마의 간병 기록.

고경애 작가. 그녀는 준영이 엄마다. 중증 장애아 준영이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일부를

잃어가고 있다. 그녀는 몸을 가누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난한 시간과의 투쟁인지를 고백한다.


아이를 껴안은 채, 한 점 빛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쏟았을는지.. 두 아이의 아빠로서 속이 끊어지고 문드러졌을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만, 섣부른 공감의 말을 건네기는 어렵다. 한없는 고통의 시간을 몸소 겪어보지 않고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나날이 무언가를 상실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처절함, 안타까움, 비애, 집착, 미련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페이지 곳곳에 넘친다. 책은 조심스럽게 더디게 읽힌다. 서서히 끝을 향하는 준영이와 하루라도 생을 늘리려는 엄마의 고투가 이어지면서, 차오르는 눈물을 거두기 어렵다. 애써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 끝내 삶의 끈을 놓아버린 아이의 휘어진 뼈를 맞추고, 수의를 입히자 그녀는 탄식을 지른다.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편한 자세로 훌쩍 자라버린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무너져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터널 밖으로 나왔지만, 그녀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외부와 단절된, 어둡고 괴로웠던 터널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허나 엄마는 먼저 떠난 준영이를 가슴에 묻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망각의 바다 어딘가에 준영이를 가라앉게 둘 수는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의 기쁨, 비극이 덮친 이후의 슬픔, 괴로움, 분노, 회한.. 곳곳에 보석처럼 숨겨진 웃음과 행복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문장으로 층층 쌓아 올린 '애도의 탑'을 완성했다. 그토록 아끼고 보듬던 준영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네 삶은 예측불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인간의 운명은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거대한 손바닥에서 질주하는 한낱 개미들처럼 언제든 짓눌리고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곁의 지인들을 지켜볼수록 신은 무심한데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언제든 비극의 주역이 되어,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처지가 뒤바뀔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분명 장애 아동을 비롯한 장애인이 존재함에도 그들이 좀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건 바로 장애인의 이동권마저 보장하지 않는 낙후된 사회 정책과 차별적인 시선이 존재하기에 그들이 좁은 골방으로, 어둑한 그늘로 숨어들고 유폐당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증 장애아의 엄마로서 일상을 이어갔던 기억을 되살려, 장애인 이동권과 복지 시설 확충을 위한 국가/민간 지원과 연대/협력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그녀의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비장애인은 장애인에 비해 너무나 많은 권리를 보장받고 있고, 과다한 편의를 누리고 있다. 사회가 힘들고 고난에 처할수록, 사각지대로 밀려난 장애인의 처지를 돌아보고, 그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보다 앞서 국가/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직 <그날은 그렇게 왔다>를 접하지 못한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저자에게 조심스러운 말을 건네고 싶다.

저세상에서 준영이는 엄마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추억할 거라고..

인간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좌지우지하는, 저 냉혹한 신마저도 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과 정성, 인내에 감복하여

준영이의 안식을 약속할 거라고.. 당신은 포기를 모르는, 강인하고 자애로운 모성애의 대표이자 모범임을 잊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책 표지를 덮으며 난 저자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고경애 작가 <그날은 그렇게 왔다>는 품을 떠난 아이를 애도하고 기리는 마음으로 쌓은,

그녀만의 탑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서평단 #고경애작가 #그날은그렇게왔다 #중증장애아엄마 #다반 #박소영그림 #애도의탑

#삼가준영이의명복을빕니다 #신간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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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리듬 (알라딘 한정판 표지)
엘라 윌러 윌콕스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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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 소개되는 <고독의 리듬>. 미국 여성 시인 엘라 윌러 윌콕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시 50여 편을 담은 책이다. 영화 <올드보이> 주인공 오대수의 방에 걸린 제임스 앙소르의 괴이한 작품 아래 적힌 문구로 알려진 <고독>이 실려 있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는다.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 울게 된다.

이 후줄근한 세상은 근심거리가 차고 넘치지

그래서 어디선가 즐거움을 빌려야 한다.

_<고독> 24p



그녀의 사랑 시들을 읽으며 나이 들었음을 새삼 실감한다. 어느새 결혼 15년 차, 사춘기에 접어드는 두 아이의 보호자로서 사랑은 더 이상 예전의 사랑이 아니다. 젊었을 적,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는 사랑에 빠져 꿈같은 시간을 즐기다, 선로 끝이 끊어진 줄도 모르고 파국을 맞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 만큼, 아끼고 사랑하는 이가 평생의 원수이자 숙적으로 돌변하여 악다구니를 내뱉고 돌아설 때의 참혹함과 아이러니라니.. 나 또한 증오와 미련에 사로잡혀, 마지막 정염의 불에 휩싸여 온갖 모진 말을 쏟아냈다. 끝없이 달릴 것만 같았던, 미친 사랑의 폭주는 화마에 삼켜져 활활 타올라 재가 된 이후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사랑을 바라는 기도를 했더니 그 염원이 이루어졌다

전율하는 몸과 마음과 생각을

정염의 불길이 휩쓸었고

그 자리에 상처만이 남았다_<기도의 응답> 74~75p



이후의 일은 떠올리기가 힘들 정도로 괴로운 나날이었다.

사랑과 이별로 인해 가슴에 대못이 박힌다는 의미를 체감적 증상으로 깨달았다. 심장이 꿰뚫리는 것 같은, 숨쉬기 힘든 고통이 이어졌다. 지난날의 눈부시고 화사하고, 영광스러운 나날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심장을 겨냥했다.


진정한 사랑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좌절과 실망감. 그보다 앞서 연이 아니었음에도, 비극을 예감했음에도 끝까지 밀어붙인 어리석음과 집착에 대한 후회와 자책. 다시는 불같은 사랑에 빠지지 못하리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후회라는 이름의 유령이 있다.

비애와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얼굴은 더 아름답고 희미하다_<후회> 122p



무력하고 공허한 나날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의 조심스러운 만남이 이어졌지만, 흐지부지 끝을 맺거나 실연의 아픔이 이어졌다. 이전 격정적인 사랑의 결말을 겪어봤기에 후유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마음을 비운 채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짐한 2009년 가을 어느 만남에서 평생의 인연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간의 엇갈린 만남과 무수한 사랑의 시행착오, 실수가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행복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일상으로 굴러가는 결혼 생활이 겹겹 쌓이면서 우리는 사랑의 일부가 우정으로 치환되어 관계를 돈독히 유지함을 깨닫는다. 몇 번의 격랑이 우리를 덮쳤지만, 우리는 그 위기를 어떻게든 넘겼고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는 지난날의 상처가 아물어 희미해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오늘처럼 날씨가 우중충하고 흐릿할 때, 인생과 사랑의 희로애락에 통달한 시인의 작품을 홀로 읽을 때면.. 가슴 한 켠이 시려오곤 한다.


아릿한 통증에 가슴 언저리를 둥그스레 쓰다듬는다. 가끔 만져질 때가 있다. 거듭 덧나고 아물어서 볼록 도드라진 흉터 자욱. 사라진 줄 알았던 유령이 다시 출몰하려 한다. 망각의 무덤 아래 묻힌 그녀가 다시 몸을 일으켜서는.. 뾰족한 손톱으로 내 심장의 가장 연약한 부위를 긁어대고 꼬집는다.



이번엔 꽤 아프다. 엘라 윌러 윌콕스의 <고독의 리듬>은 숨기고픈, 은밀한 내 통점을 제대로 자극했다.

지하에서 깨어난 유령은 음산하고 불규칙한 리듬에 맞추어 탭 댄스를 추었다. 머리를 산발한 채, 내 온몸을 더듬어 스텝을 밟는 그녀가 어서 잠들기를 고대했다. 반가운 마음이 살짝 감도는 건.. 실로 오랜만의 조우이기 때문일까.

난 결코 가볍지 않은 시집을 덮고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어느새 눈이 감겼다. 꿈결에 들리는 아득한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것만 같다.






#서평단 #시감상단 #고독의리듬 #엘라윌러윌콕스 #이루카옮김 #에로티시즘 #아티초크출판 #고독 #올드보이명대사 #시집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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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백화점 - 세상에 없는 것만 팝니다 동시만세
권영상 지음, 효뚠(이효경) 그림 / 국민서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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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사랑하고 동글 말랑한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 어서 오세요!

권영상 시인과 효뚠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나 <동시 백화점>을 오픈했답니다.


권영상 시인은 초등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동시 <바람은 착하지>로 잘 알려져 있어요.

효뚠 그림작가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동물, 풍경 일러스트로 유명하지요.


동시 백화점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백화점과는 많이 달라요.

세상에 있을 법도 한데, 없는 것들만 고르고 골라서 판다고 해요.

1층부터 5층까지.. 마음관, 계절관, 곤충관, 잡화관 그리고 하늘공원까지.

그동안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고 흘려보낸, 사소하고 미미하지만 놀라운 것들을

고르고 모아서 정성스레 진열했답니다.

작가님들은 동시와 그림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진심을 다해 공들여

쓰고 그리고 다듬었다고 해요.



자, 이제 백화점 문을 열고 쇼핑을 해볼까요?

각양각색 웃음을 파는 가게가 눈에 띄어요. 사계절관에는 지하를 탐험하는 두더지 여행사와

아담한 두꺼비 집이 어서 오라 손짓하네요.

곤충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3층에 들러보세요. 시골 개미와 매미, 거미 등 온갖 생물들이 가득하답니다.

없는 것 빼고 다 준비한 4층 잡화관에는 무지개 의상실과 수선 가게, 그림자를 바꿀 수 있는 특별관이 눈길을 끌어요. 마지막 5층 하늘공원은 달빛, 별빛 수놓은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요.

이곳저곳 구경하느라 힘이 빠졌다면.. 우리 모두 달콤한 별별 색색 별사탕을 맛보며

잔디밭에 편히 누워 하늘을 올려봐요.


"동시 백화점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백화점이야."

"최고의 쇼핑 경험을 선사하는 동시 백화점, 모두들 놀러 오세요!"

"동시 백화점 2호점 오픈은 언제 하나요? 너무너무 기대돼요."


탁 트인 하늘 공원 여기저기서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요.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없는 게 없는 핫플레이스, <동시 백화점>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엄마, 아빠도 함께 머무르면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될 겁니다.




#서평단 #동시백화점 #권영상시인 #효뚠 #국민서관 #동시만세 #바람은착하지 #세상에없는것만팝니다 #1층부터5층까지 #동시그림가득 #동시집추천 #그림책추천리뷰 #핫플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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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삶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3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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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이 옳을 것이다. 어멈은 항상 옳았다. 이제 어멈은 아이들이 커서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소몰이꾼이 되겠지." 파비아누가 말했다.

비토리아 어멈은 질색하며 고개를 부정적으로 흔들었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양철 트렁크를 떨어뜨릴 뻔했다._155p



20세기 브라질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는 '그라실리아누 하무스'의 대표작이자 윌리엄 포크너 상 수상작인 <메마른 삶>이 국내 초역, 출간되었다.


표지는 황량하고 건조하다. 어디에도 발길이 머무르고 희망이 자리할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유랑자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불투명하고 명확지 않음이 가득하다. 사체가 썩는 내음이 진동하는 불모지, 카칭가를 헤매는 이들. 소몰이꾼 파비아누, 비토리아 어멈, 부모를 따르는 두 아이들과 충견 발레이아 그리고 곧 죽음을 맞이할 대형 앵무새. 그들은 뚜렷한 목적지가 없고, 누구도 그들을 반기지 않는다. 공중을 선회하는 독수리들만이 그들이 탈진하여 쓰러지기를 바랄 뿐.. 앵무새가 유명을 달리하지만, 지하에 묻히기는커녕 곧바로 남은 이들의 끼니가 되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헤매다가 당도한 곳은 '세르탕', 사막 혹은 황야라 불리는 곳.



파비아누와 그의 가족들은 새로운 거주지에서 어떻게든 정착하려 하지만 현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탐욕스러운 지주들은 소작인들의 뼛속까지 털어먹으려 하고, 정부/군인들 역시 빈자들을 폭압하고 영역 밖으로 내쫓으려 한다. 거장 그라실리아누 하무스는 철창에 갇히고, 진창에 빠져 뒹구는.. 황무지를 떠도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담담히 그려낸다. 13개 장에서 다양한 이들이 거친 땅에서 쓰러지고 숨을 헐떡이다 끝내 다시 일어서려는 분투기가 애달프고 쓸쓸하다. 가족과 다름없는 개 '발레이아'가 주인의 총에 맞은 채, 자신이 묻힐 곳을 찾아 힘겹게 기어가는 장면은 서서히 진행되고 세밀히 클로즈업된다. 주인이 나타나면 힘껏 물어버리겠다, 복수를 다짐하지만 눈앞에 어른대는 환영과 멀리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만이 그의 최후를 기릴 뿐이다. 발레이아의 비참한 죽음은 함께 한 가족들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흐리고, 끝없는 떠남을 예고한다.



그들의 꿈은 소박하다. 등이 배기지 않는 안락한 침대를 원하고, 일용할 양식과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만한 터전을 바랄 뿐이다. 허나 거대 자본과 공권력은 그들의 찢긴 주머니를 뒤지고, 정착하게 놔두지를 않는다. 도주하다시피 짐을 꾸려 어딘가로 길을 떠나는 파비아누와 가족들. '덜 메마른 삶'을 찾아 떠도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저 지평선 너머 어딘가, 자신들을 반기는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만한 낙원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실낱같은 그 희망마저 놓아 버린다면, 현재의 고통은 배가 될 것이고 죽음이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기에..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낙관적인 미래에 대해 의논한다. 도시에 정착하면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학교에 보내 소몰이꾼이 아닌 다른 업을 찾게 도와야지.. 하는 이런저런 장밋빛 계획들과 청사진들. 그들이 밟는 땅은 여전히 메마르고, 허공에는 독수리들이 맴돌고 있다. 서로에게 기대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오래도록 지켜보고, 무사함과 안녕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메마른 삶>은 조지 스타인벡의 역작 <분노의 포도>를 떠오르게 합니다. 자본의 횡포를 피해 어딘가로 떠나는 가족들의 행렬은 장례 의식처럼 비장하고 처절해요. 하지만 그들은 희망을 놓지 않고 걸음을 멈추지 않아요. 과연 그들이 당도할 곳은 젖과 꿀이 넘치는 낙원일까요? 아니면 메마르고 황량한 지옥일까요?

길지 않은 분량에 생경하고 낯선 브라질 향토를 배경으로 한 <메마른 삶>.

휴머니스트의 흄세 시즌 7 <날씨와 생활> 시리즈 중,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어요!




#서평단 #도서협찬 #흄세 #휴머니스트 #메마른삶 #그라실리아누하무스 #임소라번역 #브라질작가 #윌리엄포크너상 #국내초역 #신간추천리뷰 #흄세시즌7 #날씨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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