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향해 달리다 - 기억과 대면한 기록들
세라 폴리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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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이츠의 시 <도둑맞은 아이, The Stolen Child>에 곡을 붙인 로리나 매케닛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이리로 오렴, 인간의 아이야. 이 물가로, 이 벌판으로, 요정과 함께 손잡고 오렴.

세상은 네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눈물로 가득하단다."_290p




<우리도 사랑일까>,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위민 토킹> 등으로 이름을 알린 세라 폴리 감독이 첫 에세이집 <위험을 향해 달리다>를 출간했다. 그녀는 네 살부터 캐나다를 대표하는 아역 배우로 스크린과 무대를 누볐다. 책의 시작은 어린 시절 <거울 나라의 앨리스> 공연에서 주연 앨리스를 연기했을 때를 떠올린다. 당시 그녀의 엄마는 고통스러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실의에 빠져 집안 일과 양육을 게을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자는 척추 측만으로 호흡 곤란에 체형을 교정해야 하는 겹겹의 고통을 겪었다.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예술혼과 열정으로 50회가 넘는 무대 공연을 소화했지만, 그녀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동료 배우들과 이모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시시각각 덮치는 무대 공포증은 그녀의 발목을 타고 올라 온몸을 장악했다. 극에 달한 공포를 면하기 위해, 유일한 탈출구 삼아 수술대에 자진하여 오르는 그녀. 그녀의 척추는 해체되어 올바르게 정렬 후 조립되었다.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아빠 그리고 자신을 루이스 캐럴과 앨리스에 비유하며 엉망진창에 최악의 나날이었던 당시를 회상한다.



이후 저자는 미치광이 천재 '테리 길리엄' 감독의 <바론 대모험>에 아역 출연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작품 완성을 위해 어린 연기자에게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를 강요하고, 스태프의 절대적인 희생을 강요하던.. 독재자에 가까운 명감독의 기행을 고발한다. 또한 자신의 고위험 임신과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을 겪으면서 대량 출혈, 유산의 공포와 맞닥뜨린 기억을 소환한다. 이 과정에서 열 살 무렵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마지막을 추억한다.

어머니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고 영아 중환자실에 도사린 비극을 마주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과중한 모성애의 압박에서 풀려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과거 성폭력을 고발했던 미투의 기억과 불의의 사고로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린, 이런저런 시행착오로 얼룩진 시간을 마주한다. 그녀는 자신의 괴로운 기억들이 현재의 맥락과 맞물리며 상처가 점차 아물고 흉터가 최소화되는 과정을 세심히 기록한다. 질기게 달라붙는 트라우마와 대면하고,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위험을 향해 달리는 것'이 때로는 만성적인 고통을 어루만지는 특효약임을 몸소 증명한다.



세라 폴리는 성인이 되어 세 아이를 거느린 채, 프린스에드워드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역 배우 시절, 빨강 머리 앤을 연기했다는 원죄로.. 섬을 찾은 인파가 어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스토킹을 일삼은 기억이 남은 곳. 허나 과거는 망각에 빠졌고 현재는 무해하다. 부모의 죽음과 고통스러운 시절을 통과한, 나이 든 그녀의 모습을 보고 화려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 꺾이지 않는 삶과 예술을 향한 의지와 주변의 도움 덕분에 그녀는 살아남았다.

온몸을 뒤덮었던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는 점차 소멸로 향하고, 그녀는 다시금 위험을 향한 본능이 꿈틀대는 것을 자각한다. 세인이 자신을 알아보고 접근하기를 원하는 연예인의 끼가 마음 한편에 치솟고, 큰 아이가 연기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하자 솔깃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어찌했든 그녀의 삶은 지속될 것이고, 고난은 언제든 불시에 고개를 내밀어 발목을 붙잡으리라.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위험으로 가득한 불씨를 어루만지고 함께 달리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으로 삼는 법을 익힌 듯하다.

<위험을 향해 달리다>를 읽는 여러분들 또한 그 지혜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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