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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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 클럽의 도서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이 책만 읽으면 전혀 관계도 없고 내용도 다른 "조지오웰의 1984"가 생각이 난다.

잔잔한 일상의 평범한 사람이 겪은 사적인 이야기와 세상이 무너진 디스토피아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 이상하게 분위기도 느낌도 이어진 현실의 감각이 있다.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읽고 나면 남는 감정의 결이 비슷하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불편한 인식 같은 것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느낌이다.


대부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봤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예전부터 출간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많이들 시작 하지 않았을까한다. 나 역시도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책만 3권이 있을정도 이다. 이번에 리프레시에서 새롭게 출간을 하였다. 전문번역그룹인 랭브릿지에서 정말 원문에 충실하면서 읽기 편하게 옮겨줘서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고 역시나 신상이 좋기는 좋았다. 글도 너무 매끄럽고 한번에 쭉쭉 읽어졌다.



이방인은 시작부터 굉장히 건조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라는 문장은 워낙 유명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생각보다 더 무심하게 느껴진다. 보통이라면 슬픔이나 혼란이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주인공 뫼르소는 장례식에서도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다. 햇빛이 덥다거나, 피곤하다거나,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식의 감각적인 부분만 강조된다. 이 지점에서부터 이미 독자는 이 인물과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는 특별히 복잡하지 않다. 거창한 심리묘사라던지 시대가 변한다던가 하는 그런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던 뫼르소가 우연과 상황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이후 재판을 받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뫼르소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일반적인 의미의 후회나 죄책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감정, 예를 들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살인에 대한 반성 같은 것들이 없다는 이유로 더 강하게 비난받는다. (_정말 읽다보면 뫼르소가 어머니를 죽인건 아니지만 재판에서 몰고 가는걸 보면 마녀사냥인가 정말로 죽인건가? 대중과 선동의 힘이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느낀다.)



결국 재판은 살인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이 사람이 정상적인 인간인가"를 판단하는 자리처럼 흘러간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같은 것들이 증거처럼 제시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법정이라는 공간이 정의를 가리는 곳이라기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강요하는 시스템처럼 느껴진다. (_개인적으로는 정신이 있던 없든 술을 마셨던 마약을 했던 의도를 하지 않았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져야하는건 분명하지만 상대방의 위협에 방어목적이었다 해도 4발이나 쏜것과 죽었는데도 쏜것은 과한게 아닌가 싶기도하고 사건만 놓고 재판을 한것이 아닌 개인의 사생활과 연견한것도 그렇고 어렵다.. 어려워.. 나라마다 시대마다 정치마다 다르겠지만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이 부분에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드러난다. 인간의 행동보다 그 행동에 맞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과 대비하여 주변인들의 감정을 묘사하고 설명하는걸 보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개인은 쉽게 비난 받고 배제된다고 말해주는거 같다.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슬프지 않은데 슬픈 척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태도 때문에 그는 "이방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처음에는 타향살이로 힘든 작가가 쓴 고향을 그리는 소설인가 했는데 세상이 정해둔 감정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이방인으로 여겨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창작물이긴 하지만, 작가인 알베르 카뮈가 태어나고 자란 알제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크게 느껴진다. 강렬한 햇빛, 건조한 공기, 반복되는 일상 같은 요소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무의미함, 세상의 부조리함이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이 소설은 어떤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읽다 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감정을 강요받는 사회 속에서, 오히려 솔직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더 비정상으로 취급되는 상황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오래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오히려 지금의 현실과 더 가까워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뫼르소가 보여주는 태도는 처음부터 이어져 온 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세상의 부조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삶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이 오히려 더 강하게 남는다.

읽고 나면 크게 감동적이라거나 극적인 여운이 남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좀.. 많이 불편하고,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이 지금까지도 계속 읽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전은 역시 고전이다.





#카뮈 #알베르카뮈 #소설 #고전소설 #이방인 #리프레시 #랭브릿지 #적당함이최고 #영화를보러간다고? #리뷰어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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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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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헤르만헤세와 빈센트반고흐가 친구였나??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그런가보다 했더니 이런 내가 정말 무식했구나 둘이 시대도 달랐고 살아온 장소도 달랐는데 서문만 대충 읽고 혼자서 오해를 했었다.

책의 표지만큼이나 감상적으로 써내려간 책인데 구성이 참 신기했다. 이건 두권이 아닌가 할정도로 앞쪽은 "헤르만헤세"를 뒤쪽은 "빈센트 반고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쪽의 헤르만헤세가 "헤르만 라우셔"라는 이름으로 활동할때의 이야기와 삽화가 들어있는데 삽화는 고흐의 그림이 아니고 저자의 단짝이었단 "군터뵈머"의 그림이었다.

표지의 아몬드나무를 보고 모든 삽화가 고흐것인줄 알았는데 고희의 그림중에 이런식의 작품도 있구나 했더니 역시나 무지함과 급한성격에 또 한번 오해를 하였다.


읽는 내내 헤세의 헤르만 라우셔일때의 그리움과 그시절의 책을 엄청난 애착하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모든 내용이 닮겨있지 않고 소개를 하는 정도의 여러편이 담겨있어 이후가 너무 궁금해지는 이야기 였다. 뒷편의 반고흐의 이야기도 아직도 사실확인에 열을 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귀를 스스로 잘랐는지 고갱이 자른건지 그냥 구멍만 난건지 귓불만 조금 짤린건지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이야기로 가득하다 해바라기를 비롯해 아몬드나무까지 볼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다.



단순히 두 거장을 한 권에 담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겨낸?? 버텨낸?? 두 사람의 기록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게 만든다. 앞부분의 헤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완성된 작가의 모습이 아니라, 아직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던 시기의 불안정하고도 예민한 감정들을 보여준다. "헤르만 라우셔"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글들은 어딘가 미완성처럼 느껴지면서도, 그 안에 이후 작품들로 이어질 씨앗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짧은 글과 단편적인 기록들이 이어지는 방식이라 더더욱 상상할 여지를 남기고,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오래 머물게 된다. (_그래도 유복하고 독실한 기독교집안의 헤르만헤세와 아버지가 목사였고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활동을 한 빈센트반고흐는 둘다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작품이 살아있을때 인정을 받았는냐 못받았느냐의 차이는 큰 것같다.)


반면 뒤쪽에 담긴 반 고흐의 편지들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림으로만 접했던 그의 삶이 글을 통해 드러날 때 그 개성있고 강렬한 색채 뒤에 있던 현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새삼 느껴진다. 물감 값 하나를 걱정해야 했던 현실과, 그럼에도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았던 집요함이 편지 곳곳에 묻어나온다. 특히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불안과 의지가 동시에 느껴져 묘하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_나는 길거리에서 사는 노숙인이나 거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래도 중산층에 동생한테 지원도 받는 예술가였다.)



책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그림들은 단순한 삽화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해바라기나 아몬드 나무처럼 익숙한 작품들도 편지를 읽다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냥 유명한 그림이 아니라, 그 시기의 감정과 상황이 함께 겹쳐지면서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글과 그림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가 이렇게 큰 의미가 있었는지 꽃잎이 처진걸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는지 상상도 못했었다.


또 하나 두 사람의 삶이 묘하게 닮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이 놀라웠다. 헤르만 헤세는 끝내 자신의 작품으로 자신을 정리해 나갔다면 고흐는 끝까지 그림으로 자신을 심하게 밀어붙였다. 한 사람은 살아남아 자신의 세계를 완성해 모든이에게 인정을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끝내 버티지 못했지만 그 흔적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남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처럼 "안부"라는 단어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안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들에게 우리가 안부를 전하는 것인가? (_앞쪽 시작전에 "서명의 가치"라는 부분을 보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읽고 나면 특별히 뚜렷한 교훈이 남는다기보다는, 감정이 착~가라앉는다. 특히 "헤르만헤세를 살린 안부"와 "반고흐를 죽인 안부"는 참 인상 깊었다. 누군가의 삶을 깊게 들여다봤다는 느낌과 그 안에서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 있다. 화려한 설명이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이어지는 구성 덕분에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뒷부분에 나오는 이책을 읽을때 곁들이면 좋은 클래식이 있다. 함께 들으니 정말 몰입도 되고 공감도 되며 이시대를 살았던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것일까? 괴테처럼 자신을 밀어붙여 고흐의 이름을 남길것인가...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나의 안부를 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는가? 머리속에 무수한 질문과 궁금증이 맴돌게 만드는 책이었다.





#안부를전하며 #모티브 #헤르만헤세 #빈센트반고흐 #군터뵈머 #홍선기 #해바라기 #150주년 #북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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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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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바보가 되라, 그러면 잘 살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중에 가장 유명한 인용구라고 한다. 자신의 직관을 믿고 바보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의미인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 인류의 지나온 행적을 돌이켜 보면 이거 너무 과한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만 보면 그냥 자극적인 인류학적 오류나 심리, 치명적인 알고리즘의 오해가 예상되었지만 읽다보면 "사람이 이러면 안될꺼 같은데"라는 마음이 들정도의 무법시대의 삶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90년대의 급격한 민주화 속에 야만과 낭만이 공존했던 그런 시기를 겪어오면서 불합리한 규율과 거친 통제가 있어서 청춘, 개인의 개성이 폭발했기에 요즘 쇼츠나 유튜브에 나오는것 처럼 말도 안되는 위험을 당연히 행동했다고 하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던 역사와 인간의 선택을 그냥 뒤집어 놓는다. (_제목이 좀 과장된 느낌이라 자극적인 책인가 했는데 밝혀지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출처와 실제 일어났던 기록은 없다고 명시되어 있어 믿음이 더가는 책이었다.)



책은 형벌, 감옥, 완전범죄, 전쟁 무기라는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 이렇게 까지 하는건데... 이게 정말 최선이라고 생각한거야?"라는 의구심이다. 특히 형벌 파트에서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잔혹한 방식들이 정당화되었는지가 드러난다. 놋쇠 황소나 코끼리 형벌 같은 사례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공포를 설계한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길들이는 구조에 더 가까웠다.


감옥 이야기는 더 불편했다. ADX 플로렌스 같은 시설은 폭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신, 인간을 완전히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과연 안전과 통제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완전범죄 파트에서는 인간의 확신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가 드러난다.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 오히려 균열이 시작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보다는, 그 불완전함 자체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불편하면서도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너무 감사하다는 위안을 받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인지, 지금의 나 역시 그렇게 틀리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장한장 빠르게 읽히지만 결코 내용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쉽게 넘길수 없는 책이었다. 어디가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단순한 지식을 자랑하는 인문학이 아닌 생각하는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에서, 제목처럼 "잠 못 드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알면잠못드는위험한인문학 #모티브출판사 # #장편소설 #문화충전 #서평이벤트 #자루형벌 #바비조롱 #마지노선 #풍선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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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종 실패기 - 죽을 운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지독한 인간들의 생존 세계사
유진 지음 / 빅피시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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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 스스로가 종말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는 경고는 누구나 한 번쯤은 유튜브나 TV에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현대 과학과 인류학에서 늘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고, 지구 환경 파괴나 기술 발전의 부작용 같은 이야기들은 이젠 익숙할 정도이다. 특히 환경 파괴와 제6차 대멸종, 인공지능, 핵전쟁 등이 인류 멸종을 앞당긴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무뎌질 정도다. (_해외에서 남북한이 대치상황을 심각하게 보지만 당사자인 우리는 그냥 일상인것 처럼 무뎌지는건 좋지 않을것 같기는한데.. 사는게 빡빡하구나..)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이 원인이라는 점은 같지만, 거창한 종말이 아니라 "이걸로도 안 망했다고?" 싶은 사소하면서도 황당한 사건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잘하면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싶다가도 계속 사고가 터지고, 그게 쌓이고 쌓여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야기들이다. 이게 적응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건지 헷갈릴 정도다.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미생물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세균과 함께 살아온 인류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책의 구성도 짧은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방식이라 마치 쇼츠를 연달아 보는 느낌이다.



책은 크게 네개 파트로 나눠져있는데, 평범한 일상부터 도시, 질병, 그리고 개발 현장까지 점점 범위가 넓어진다. 읽다보면 갑자기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조차 과거에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지금도 우리가 평범하게 행동하는 예를 들면 우유를 당연히 먹고 있지만 몇백년뒤에는 우유는 독약이었다. 뭐 이런말이 나올까 무섭다.

책에서 처럼 옛날에는 목욕 한 번 잘못하면 병에 걸리고, 빵과 고기는 상해 있는 게 기본이며, 화장품은 미용이 아니라 독에 가까웠다. 납과 수은으로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시대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자해에 가까운 행동인데 그게 당연한 문화였다. 심지어 빅토리아 시대에는 빵조차 안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보면 먹는 것 하나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도시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위험했고, 사기와 범죄는 일상처럼 존재했다. 아직도 사기사건이 문제지만, 그때는 법이나 제도 자체가 허술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단순히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대를 이어 같은 직업을 반복하며 트라우마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답답하지만, 그 시대에는 선택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더 무섭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역시나 가장 황당한 부분은 의료와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지금은 병원에 가면 치료를 받는다는 믿음이 있지만, 과거에는 병원 자체가 위험한 장소였다. 마취도 없이 수술을 하고, 소독 개념도 부족했던 시절에 수술대에 오른다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그냥 도박에 가까웠다. 약이라고 먹는 것들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았고,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황당한 처방들이 진지하게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기 위해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소개되는 개발과 노동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더더 씁쓸하다. 문명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어린아이들이 광산에서 일하고, 안전장치도 없이 하루 10시간 넘게 노동을 하던 시대였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 뒤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와 "야~ 근데 어떻게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멸종이 안되었냐”는 점이 상반되게 떠올랐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위생, 의료, 안전 같은 것들이 사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거창한 역사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간이 얼마나 끈질기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사고를 낭만적이지 않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서 과거를 미화하는 시선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얼마나 많은 것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볍게 한두시간만에 다 읽히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표지의 말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하루도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길어봤자 일주일이 한계 아닐까 싶다.





#빅피시 #인류멸종실패기 #유진 #인간생존세계사 #마취없이수술 #세균 #추위와죽음 #처방전이독약 #광부는너무힘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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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문법 - 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리고 언어의 숭고한 힘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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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도전! 르네상스의 유명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를 재치고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피코!! 언어로 모든걸 이룰수 있다고 생각한 사상과 신념, 31살에 비소중독으로 암살당한 미스테리한 인물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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