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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종 실패기 - 죽을 운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지독한 인간들의 생존 세계사
유진 지음 / 빅피시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 스스로가 종말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는 경고는 누구나 한 번쯤은 유튜브나 TV에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현대 과학과 인류학에서 늘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고, 지구 환경 파괴나 기술 발전의 부작용 같은 이야기들은 이젠 익숙할 정도이다. 특히 환경 파괴와 제6차 대멸종, 인공지능, 핵전쟁 등이 인류 멸종을 앞당긴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무뎌질 정도다. (_해외에서 남북한이 대치상황을 심각하게 보지만 당사자인 우리는 그냥 일상인것 처럼 무뎌지는건 좋지 않을것 같기는한데.. 사는게 빡빡하구나..)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이 원인이라는 점은 같지만, 거창한 종말이 아니라 "이걸로도 안 망했다고?" 싶은 사소하면서도 황당한 사건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잘하면 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싶다가도 계속 사고가 터지고, 그게 쌓이고 쌓여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야기들이다. 이게 적응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건지 헷갈릴 정도다.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미생물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세균과 함께 살아온 인류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책의 구성도 짧은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방식이라 마치 쇼츠를 연달아 보는 느낌이다.


책은 크게 네개 파트로 나눠져있는데, 평범한 일상부터 도시, 질병, 그리고 개발 현장까지 점점 범위가 넓어진다. 읽다보면 갑자기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조차 과거에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지금도 우리가 평범하게 행동하는 예를 들면 우유를 당연히 먹고 있지만 몇백년뒤에는 우유는 독약이었다. 뭐 이런말이 나올까 무섭다.
책에서 처럼 옛날에는 목욕 한 번 잘못하면 병에 걸리고, 빵과 고기는 상해 있는 게 기본이며, 화장품은 미용이 아니라 독에 가까웠다. 납과 수은으로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시대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자해에 가까운 행동인데 그게 당연한 문화였다. 심지어 빅토리아 시대에는 빵조차 안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보면 먹는 것 하나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도시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위험했고, 사기와 범죄는 일상처럼 존재했다. 아직도 사기사건이 문제지만, 그때는 법이나 제도 자체가 허술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단순히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대를 이어 같은 직업을 반복하며 트라우마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답답하지만, 그 시대에는 선택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더 무섭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역시나 가장 황당한 부분은 의료와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지금은 병원에 가면 치료를 받는다는 믿음이 있지만, 과거에는 병원 자체가 위험한 장소였다. 마취도 없이 수술을 하고, 소독 개념도 부족했던 시절에 수술대에 오른다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그냥 도박에 가까웠다. 약이라고 먹는 것들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았고,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황당한 처방들이 진지하게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기 위해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소개되는 개발과 노동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더더 씁쓸하다. 문명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어린아이들이 광산에서 일하고, 안전장치도 없이 하루 10시간 넘게 노동을 하던 시대였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 뒤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와 "야~ 근데 어떻게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멸종이 안되었냐”는 점이 상반되게 떠올랐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위생, 의료, 안전 같은 것들이 사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거창한 역사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간이 얼마나 끈질기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사고를 낭만적이지 않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서 과거를 미화하는 시선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얼마나 많은 것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볍게 한두시간만에 다 읽히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표지의 말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하루도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길어봤자 일주일이 한계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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