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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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조르주 페렉 작가의 데뷔작이다.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제롬’과 ‘실비’ 젊은 커플이 등장한다. 작품은 큰 사건 같은건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1960년대는 프랑스가 식민 지내를 하던 알제리에서 국민해방전선이라는 단체가 벌은 독립전쟁인 알제리 전쟁이 끝나가던 때이다. 이런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또 급박하게 개발과 발전이 이뤄지던 시국이었다. 이런 시대에 제롬과 실비는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허상에 빠져 끝없는 사물에 대한 소유욕과 욕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그런 화려하고도 쓸모없는 것들의 사물을 나열함으로서 그 속에서 텅 빈 현실을 보여주면서 외적으로는 화려해 가지만 역설적으로 불행해져 가는 현대인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좀 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일을 해야하고 그들의 형편상 새것을 사지 못하고 중고품들을 구하려 발품을 파는 그들의 모습에서 현실의 결핍을 사물로 채우려 하지만 결국 그 소유와 욕망은 만족감이란 없이 점점 더 그들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게 된다.


이건 마치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의 반대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있겠다. 제롬과 실비는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라고 믿지만, 그 사물들을 소유 할 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결핍감만이 더 증가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 사물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하고 돈에 얽매이는 아리러니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비교적 짧다. 근데 쉽게 후루룩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작품의 초반부터 넘쳐나는 사물들의 표현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런 작가의 사물들의 나열은 정말 처음보는 작법이다. 전에 플로베르나 발자크 같은 작가들의 엄청난 분량의 묘사를 보았지만, 조르주페렉의 이 사물들에대한 묘사는 정말 신기하면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말 질리도록 사물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문제가 그리 유연한 문체가 아니다. ~일 것이다. ~일 것이다.의 몇페이지에 걸친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어질어질 할 정도이다. 근데 읽다가 보면 또 묘하게 끌리는 것은 왜였을까?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들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랑스와즈 사강, 아니레르노, 보부아르,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등등등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는 맛이 있었는데, 페렉의 문장들은 건조하고, 일상과 사물을 집요하게 관찰하면서 나열하는 직설적이면서도 반어적,비유적인 표현들이 특징인 것 같다. 어떠한 장르를 파괴하는 듯한 프랑스 문학의 누보로망을 추구하는 실험적 작품을 쓴 것 같다. 

아무튼 이 작품은 젊은 남녀가 함께 도심에서 화려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끝없는 공허함만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안정된 삶을 찾아서 튀니지 라는 곳으로 가지만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아랍의 척박한 땅에서도 그들은 동화되지 못한채 이방인으로 떠돌게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에게서 느끼는 무력함은 1960년대의 모습이 아닌 지금 2025년의 우리시대의 모습과도 별다르지 않았다. 과연 제롬과 실비는 그들이 꿈꾸는 행복을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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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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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독서모임 #단파만파 #단편소설독서모임 #프랑스문학 #프랑스소설 #노보로망 #문학동네 #해문 #해외문학 #북스타그램


마르그리트뒤라스는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일 것이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작품이 올해 4월 문학동네에서 이번에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나오게 됬다. 그때 구매해놓고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실제로는 1955년도에 나온 작품이다. 뒤라스가 1943년부터 작품을 썼기 때문에 비교적 뒤라스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뒤라스의 작품은 초기, 중기, 후기 로 나뉜다. 그 만큼 시기마다 뒤라스의 글쓰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버찌가 나오기 두달 전 봄날이라는 설정으로 시작이 된다. 동네 공원 벤치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와 20대 초반의 여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이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대화로 이뤄져 있다보니 마치 희곡으로 느껴진다. 희곡과 소설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장르라고 하겠다. 실제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어느날 라디오에서 <동네공원> 방송극을 듣고 뒤라스에게 메모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구성을 3장을 나눈 것이 여자가 아이의 보모였는데, 그 아이가 각장의 시작부분에서 - 1장에는 '배고파' ,2장에서는 '목말라', 3장에서는 '피곤해'라는 말을 할 뿐, 왜 이렇게 3장을 구분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속 중년의 남자는 집도 없이 홀로 판매하는 상품이 들어있는 가방 하나 딸랑들로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며 잡동산이를 판매하며 살고 있다. 수많은 불행을 겪은 경험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사람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날 그날 일상의 소확행을 느끼며 사는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작품속 젊은 여성은 어느 집의 하녀? 같은 일을 하는 듯하다. 그 집의 어린 아이를 돌봐야하고, 90키로가 넘는 치메 노인까지 돌보며 하루하루를 고된 노동으로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가난한 삶에 벗어 나기 위해서는 결혼할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댄스 클럽에 나가는 것이 유일한 고난의 탈출구라고 생각한다.

이런 둘의 부조화 적인 만남이 어느 동네의 공원 한 벤치에 함께 앉게 되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 속에는 이들의 고된 삶, 욕망, 희망, 불행, 공허함과 삶에 권태 같은 것들이 건조하지만 흡입력 있게 표현 되고 있다.


아까 이 작품이 1955년에 나왔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89년에 뒤라스는 '1989년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소설의 맨앞에 추가 한다.


" 그들은 가종부들, 파리 역들에 하차한 수천 명의 브리타뉴 여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시골의 작은 장터를 도는 행상들, 실과 바늘 같은 것을 파는 세일즈맨들이기도 했다. 사망 증명서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보지 못한 - 수백만 명에 이르는 - 사람들. 그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살아남는 것. 곧 굶어 죽지 않는 것과 매일 저녁 지붕있는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글을 참고 해보면 당시에 하루하루 벌어먹던 남자는 세일즈맨, 여자는 프랑스의 북서부 지방에 있던 가난한 브리타뉴 여성들중 한 명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영어보모를 목적으로 필리핀 여성들을 입국시켰는데, 아마 이렇게 값싼 비용으로 집안의 모든일을 맡길 하녀일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작품은 두 사람의 오고가는 삶에 대한 대화 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이 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마치 세계 전쟁이 끝난 후 수많은 실업자들과 청년들의 공허한 외침으로 느껴진다. 남자가 여자에게 해주는 뭔가 삶에 대한 해탈을 느낄 수 있는 조언들과 아직은 어린 나이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오로지 결혼이라는 것으로 결부짓는 여자의 이야기가 봄날의 쌀쌀함이 느껴지는 동네 공원의 한 귀퉁이 벤치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소설적이면서도 소설적이지 않고,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짧은 작품이었지만 묵직한 질문을 받았던 소설이었다. 역시 뒤라스는 최고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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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에세이
발터 벤야민 지음, 새뮤얼 타이탄 엮음, 김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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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벤야민 #이야기꾼에세이 #현대문학 #신간도서 #세뮤얼타이탄


<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제공 받아서 쓴 서평입니다 >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 이름 발터 벤야민, 그의 1926년부터 1936년까지 발표한 에세이,기사,서평,단편 들과 1936년에 발표한 에세이 <이야기꾼>과 함께 새뮤얼타이탄이라는 편집자이자 문학번역가인 사람이 엮어 놓은 책이다. 엮은이는 20세기의 문학 에세이 중에서 <이야기꾼>을 가장 유명한 작품중에 하나로 꼽으면서, "벤야민의 비평가적 역량이 지진계처럼 예민하게 드러난 글이다." 라고 소개했다.


책을 읽어보면 정말 다양한 방면의 주제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게 당췌 무슨 말인가 하고 들여다 보게 되었다.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책 속에서 이 두 부분을 구분하고 있다. 이야기는 파편화되거나 독립적인 사건에 주목하는 것에 반하여 소설은 고독에 기반하여 혼자 읽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소설은 작품속의 주인공을 통해 인경을 형성하지만 이야기는 피실험자가 경험을 얻게 되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은 자아의 구축이라면 이야기는 자아가 개별적인 경험으로 인해 해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읽다보면 공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모호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 유물론과 유대교 신비주의를 결합한 독창적인 사유를 하면서 현대 문화 비평의 초석을 놓았다고 한다. 40살이 안되는 젊은 나이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대인으로 독일에서 살기 힘들었던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려다가 실패하여 비극적인 선택을 하였던 그의 글들이 지금 시대에 영향을 주고 있을까?

어찌 되었든 전후시대에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서 전통적인 이야기의 전달 방식과 공동체적인 경험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순수한 경험이 아닌 매체에 의한 간접 경험 '정보'만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것도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한 정보가 난무하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런 현대에 구전을 통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소설이 넘쳐 남으로써 개인의 고독감을 더 증폭시킨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자리에 '정보'만이 채워지고 경험이 단절되어가는 자리에 개인의 '고립'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다소 어려웠던 에세이였는데, 최근에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같다. 페렉의 작품도 전후 젊은 세대들의 사물에 대한 소유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여준 것이었는데, 이와 비슷한 결이 아닐런지. 나의 개인적인 느낌은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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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잔해를 줍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6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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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2기 #은행잎서재 #은행나무출판사 #바람의잔해를줍다 #제스민워드


< 해당 도서는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하는 은행잎2기북클럽 자격으로 지원받았습니다 >


제스민워드는 2011년, 2017년 전미도서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작가이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그런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기전에 정보는 흑인차별과 재난이라는 키워드라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읽게 되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배경으로 하는 소외된 흑인 가족의 생존과 사랑을 그려낸 12일간의 기록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15살의 소녀 '에쉬' 이다. 그리고 에시 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개 '차이나'이다. 읽기전에는 인종차별과 재난을 주로 다룰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제 막 성에 눈뜬 사춘기 소녀의 시선과 사냥개 '차이나'에게 집착적인 오빠들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뉴올리언스는 해마다 수많은 태풍이 지나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몇년에 한번씩 지나가는 초대형 허리케인은 지역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는 공포의 재난이다. 그런 곳을 떠날 수 없는 가난한 흑인가정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이야기는 12일 동안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 12일간의 이야기속에 모든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애쉬는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고 주변의 남자들의 접근에 거절의 귀찮음보다는 허락의 편안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던중 얘기치 못한 임신을 하게 되었고, 키우던 캐 '차이나'도 출산을 하게 된다. 그렇게 소설은 애쉬의 임신과 차이나의 출산을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미국소설에서는 항상 이런 어린 여성의 임신,출산을 키워드로 한 작품이 많이 보인다. <흐르는 강물처럼>,<가재가 노래하는 곳> 같은 작품들도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생각보다는 흑인이라는 인종차별의 이야기는 많지 않았고, 가난하게 성장하는 흑인가정의 아이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이 된 그들의 사회적 구조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에쉬는 그리스신화에 빚대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신화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라면 에쉬의 시선이 더욱 공감이 갈 것이라고 본다.


흑인,가족,성,자연과 인간,인간과 동물의 메세지가 복합적으로 한 이야기속에서 어우러지며 태풍이라는 인간으로서 그냥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마치 에쉬의 처지와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극한의 상확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생존하려는 가족의 이야기에선 따듯함을 느낄 것이고, 어린 여성의 성을 짓밟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분노할 것이고, 거대한 재난앞에 놓은 하찮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허탈함을 느낄 것이다. 전에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 이라는 작품에서도 전 네 자매의 이야기와 더불어서 칸토 대지진의 장면이 정말 생생하게 잘 표현했었는데 그 작품과도 비교해서 읽어본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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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도 배웅도 없이 창비시선 516
박준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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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독서모임 #시파만파 #박준 #마중도배웅도없이 #창비


박준 시인이 7년 만에 낸 시집이라고 한다. 난 시에 관심이 없었지만 박준 시인이란 이름은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다.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내게는 시가 어렵게 느껴진다. 박준 시인의 시집은 굉장히 쉬워서 입문하기에 좋아고 한다. 난 그래도 어렵고 난해했다. 내게 감정이 부족해서 일까? 시 한편,한편 마다의 감정을 잡기가 어렵다. 소설 같으면 그 한 작품에만 집중하면 소설의 내용과 감정을 함께 할 수 있는데, 시는 한편 한편이 짧을 뿐더러 시마다의 감정의 기복이 천차만별이다. 시간날때마다 한편씩 읽다보니 감정선을 잡을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한번에 몰아서 보았다. 근데 그 방법도 아닌것 같다.


이 시집의 표제작은 시의 제목이 아니었다. 보통은 제목같은 경우 그 작품집에서 한 꼭지에 해당하는 제목을 붙이기 마련인데, 이 시집의 <마중도 배웅도 없이> 는 시의 제목이 아니라 내용에 등장하게 된다. 한번은 <손금>이라는 시에서 "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들 앞에서는 그냥 양손을 펴 보일거야." 라는 문장속에 있었고, 또 한번은 시집의 마지막에 있던 산문에서 "김해, 마중은 기다림을 먼저 끝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배웅은 기다림을 이르게 시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라는 문장속에 있었다. 왜 이 시집의 제목을 이렇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것을 유추할 나의 지식은 없다. 다만 박준 시인의 시들은 가볍지 않고 뭔가 모를 슬픔을 담은 문장들, 조용하고 숙연해지는 그러한 문장들이 느껴진다.


앞으로도 꾸준히 시를 읽다보면 언젠가는 뭔가 탁! 하고 깨달음이 올 그날이 있을까? 시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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