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특별판)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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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핫하고, 시끄럽고, 소문만 자자하던 <급류>를 읽게 되었다. 알고보니 작가의 전작이었던 <GV 빌런 고태경 > 을 읽었더라, 그때 별로 각인이 안되었던터라 처음 본 작가인줄 알았다. 암튼 엠지픽 소설이라는 이 작품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 하니 고민이 많이 된다. 워낙에 소문에도 호불호가 강한 작품이라서 그럴것 같다. 일단 나의 소감은 호와 불호의 그 중간 어디쯤 인데... 암튼 리뷰를 쓰다보면 정해지려나?


작품의 배경은 가상의 도시 '진평'을 배경으로 한다. 진평댐 주변에 있는 진평에서 구조대로 일하는 창석과 딸 도담, 도시에서 진평으로 새로 이사온 미영과 아들 해솔이 등장 인물이다.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창석과 미영이 진평댐에서 함께 알몸으로 부둥켜 안은 채 발견되게 된다. 둘의 불륜적 관계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설은 그들의 일년전 처음 만남부터 시작이 된다. 학교에서 만난 도담과 해솔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지만, 마을에서 이들의 아빠와 엄마는 부적절한 사이라는 소문이 돌게 되면서 도담과 해솔은 이들을 미행하게 된다. 미행의 끝에 진평댐 상류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창석과 미영이 죽게되면서 도담과 해솔의 삶은 송두리채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소설은 시간을 몇년씩 뛰어 넘으면서 이 둘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서 서로의 사랑을 그린다. 소설의 제목 <급류> 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과 그로 인한 등장 인물들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그 혼란을 딪고 성장하는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2022년에 나온 이 소설은 아직도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모순, 홍학의 자리, 혼모노 와 함께 엠지들의 소설로 계속 역주행 하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초반에 주인공들의 부모가 죽는 장면과 그로부터 일년전의 만남부터 비극의 순간까지는 너무 쇼킹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도담과 해솔이 서로 헤어져 대학에 입학하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우연히 만나 다시 불같은 사랑을 하고, 서로 건드릴 수 없는 과거때문에 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진행되는 뒷부분은 솔직히 너무 진부하고 루즈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어떤 사건으로 다시 이들이 비극으로 빠져버릴 것같은 생각에 다시 손에 땀을 쥐었는데….. 여기까지… 더이상은 노코멘트이다.


소설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가독성있게 보았다. 하지만 소설 초반부에서의 속도감을 중후반부에서 너무 받쳐주지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이정도라도 꽤나 높은 점수를 줘야할 것 같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이지만 꽤나 그래도 완성도가 있던 소설이었다.

작가의 소설들이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같아서 앞으로도 작가의 작품들을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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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장강명 외 지음 / 북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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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다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 받아서 쓴 서평 입니다 >


엔솔러지란, 원래는 합본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출판계에서는 하나의 주제 아래 다수의 작가들이 써낸 소설집을 말한다.

이번에 이 책의 주제는 한강이다. 책의 제목에 엔솔러지가 적혀있지 않았다면 한강작가의 책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다. 한강을 주제로 한 7명의 각기 다른 스타일의 작가님들의 작품의 향연이다.


첫 작품을 여는 작가는 장강명 작가의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이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작품속에 담아내는 기자 출신의 작가이다. 여기에서는 인어를 등장을 시켰는데 살짝 난해한 감이 있었다. 근데 인어는 이제 좀 식상한 레파토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번째 작품은 <홍학의 자리>로 유명한 정해연 작가의 <한강이 보이는 집>이다. 이 작품도 역시 아내를 살해한 누명을 쓴 주인공의 치정살인 추리극이다. 정해연 작가의 작품들은 항상 느끼는 건데 초반의 힘이 끝까지 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냥 가볍게 읽기는 괜찮을 듯 싶다.


세번째 작품은 임지형 작가의 <한강을 달리는 여자>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한강 하면 떠올리는 그런 풍경을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불륜에 처한 가정사를 잊기 위해 한강을 달리던 주인공에게 어떤 만남으로 인한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흐르게 된다. 하지만 뭔가 이야기가 시작하다가 뚝 끊기는 느낌이라 아쉬운 작품이었다.


네번째 작품은 차무진 작가의 <귀신은 사람들을 카페로 보낸다> 이다.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다. 조금도 소설적인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요즘 오컬트작품들이 많이 눈에 띠는데 이 소설도 오컬트 적인 소설이다. 무당,귀신,인면어 같은 것들이 나와서 조금은 무섭기도 하지만 마지막부분으로 가면 조금은 가족애가 뿜뿜하는 맘으로 마무리되어서 따뜻하게 마무리 되는 작품이었다.


다섯번째 작품은 박산호 작가의 < 달려라, 강태풍> 이다. 최근에 태풍상사를 봐서 그런지 이름이 친근하다. 근데 이 태풍이는 강아지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강아지의 시점으로 몇일째 집에 오지 않는 주인을 찾아나선 강아지의 구분분투를 그린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롭게 봤다.


여섯번째 작품은 조영주 작가의 <폭염> 이다. 한국추리작가 협회의 황금펜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영화 시나리오인지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마지막 일곱번째 작품은 정명섭 작가의 <해모수의 의뢰>이다. 짧은 작품이었지만 임팩트 있었던 작품이었다.


엔솔러지 작품을 읽을 때마다 커다란 만족감을 얻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던 작가를 짧은 작품을 통해서 알게되는 기쁨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치 양푼비빔밥을 먹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다양하 작가를 찍먹하다보면 관심이 가는 작가를 보게 되고 그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는 재미 또한 주는 것이 엔솔러지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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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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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독서모임 #정규모임 #사물들 #조르주페렉 #프랑스소설 #프랑스문학 #장편소설 #데뷔작 #해외문학 #해문 #북스타그램


<사물들> 조르주 페렉 작가의 데뷔작이다.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제롬’과 ‘실비’ 젊은 커플이 등장한다. 작품은 큰 사건 같은건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1960년대는 프랑스가 식민 지내를 하던 알제리에서 국민해방전선이라는 단체가 벌은 독립전쟁인 알제리 전쟁이 끝나가던 때이다. 이런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또 급박하게 개발과 발전이 이뤄지던 시국이었다. 이런 시대에 제롬과 실비는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허상에 빠져 끝없는 사물에 대한 소유욕과 욕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그런 화려하고도 쓸모없는 것들의 사물을 나열함으로서 그 속에서 텅 빈 현실을 보여주면서 외적으로는 화려해 가지만 역설적으로 불행해져 가는 현대인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좀 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일을 해야하고 그들의 형편상 새것을 사지 못하고 중고품들을 구하려 발품을 파는 그들의 모습에서 현실의 결핍을 사물로 채우려 하지만 결국 그 소유와 욕망은 만족감이란 없이 점점 더 그들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게 된다.


이건 마치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의 반대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있겠다. 제롬과 실비는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라고 믿지만, 그 사물들을 소유 할 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결핍감만이 더 증가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 사물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하고 돈에 얽매이는 아리러니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비교적 짧다. 근데 쉽게 후루룩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작품의 초반부터 넘쳐나는 사물들의 표현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런 작가의 사물들의 나열은 정말 처음보는 작법이다. 전에 플로베르나 발자크 같은 작가들의 엄청난 분량의 묘사를 보았지만, 조르주페렉의 이 사물들에대한 묘사는 정말 신기하면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말 질리도록 사물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문제가 그리 유연한 문체가 아니다. ~일 것이다. ~일 것이다.의 몇페이지에 걸친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어질어질 할 정도이다. 근데 읽다가 보면 또 묘하게 끌리는 것은 왜였을까?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들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랑스와즈 사강, 아니레르노, 보부아르,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등등등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는 맛이 있었는데, 페렉의 문장들은 건조하고, 일상과 사물을 집요하게 관찰하면서 나열하는 직설적이면서도 반어적,비유적인 표현들이 특징인 것 같다. 어떠한 장르를 파괴하는 듯한 프랑스 문학의 누보로망을 추구하는 실험적 작품을 쓴 것 같다. 

아무튼 이 작품은 젊은 남녀가 함께 도심에서 화려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끝없는 공허함만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안정된 삶을 찾아서 튀니지 라는 곳으로 가지만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아랍의 척박한 땅에서도 그들은 동화되지 못한채 이방인으로 떠돌게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에게서 느끼는 무력함은 1960년대의 모습이 아닌 지금 2025년의 우리시대의 모습과도 별다르지 않았다. 과연 제롬과 실비는 그들이 꿈꾸는 행복을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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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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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뒤라스는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일 것이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작품이 올해 4월 문학동네에서 이번에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나오게 됬다. 그때 구매해놓고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실제로는 1955년도에 나온 작품이다. 뒤라스가 1943년부터 작품을 썼기 때문에 비교적 뒤라스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뒤라스의 작품은 초기, 중기, 후기 로 나뉜다. 그 만큼 시기마다 뒤라스의 글쓰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버찌가 나오기 두달 전 봄날이라는 설정으로 시작이 된다. 동네 공원 벤치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와 20대 초반의 여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이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대화로 이뤄져 있다보니 마치 희곡으로 느껴진다. 희곡과 소설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장르라고 하겠다. 실제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어느날 라디오에서 <동네공원> 방송극을 듣고 뒤라스에게 메모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구성을 3장을 나눈 것이 여자가 아이의 보모였는데, 그 아이가 각장의 시작부분에서 - 1장에는 '배고파' ,2장에서는 '목말라', 3장에서는 '피곤해'라는 말을 할 뿐, 왜 이렇게 3장을 구분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속 중년의 남자는 집도 없이 홀로 판매하는 상품이 들어있는 가방 하나 딸랑들로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며 잡동산이를 판매하며 살고 있다. 수많은 불행을 겪은 경험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사람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날 그날 일상의 소확행을 느끼며 사는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작품속 젊은 여성은 어느 집의 하녀? 같은 일을 하는 듯하다. 그 집의 어린 아이를 돌봐야하고, 90키로가 넘는 치메 노인까지 돌보며 하루하루를 고된 노동으로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가난한 삶에 벗어 나기 위해서는 결혼할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댄스 클럽에 나가는 것이 유일한 고난의 탈출구라고 생각한다.

이런 둘의 부조화 적인 만남이 어느 동네의 공원 한 벤치에 함께 앉게 되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 속에는 이들의 고된 삶, 욕망, 희망, 불행, 공허함과 삶에 권태 같은 것들이 건조하지만 흡입력 있게 표현 되고 있다.


아까 이 작품이 1955년에 나왔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89년에 뒤라스는 '1989년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소설의 맨앞에 추가 한다.


" 그들은 가종부들, 파리 역들에 하차한 수천 명의 브리타뉴 여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시골의 작은 장터를 도는 행상들, 실과 바늘 같은 것을 파는 세일즈맨들이기도 했다. 사망 증명서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보지 못한 - 수백만 명에 이르는 - 사람들. 그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살아남는 것. 곧 굶어 죽지 않는 것과 매일 저녁 지붕있는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글을 참고 해보면 당시에 하루하루 벌어먹던 남자는 세일즈맨, 여자는 프랑스의 북서부 지방에 있던 가난한 브리타뉴 여성들중 한 명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영어보모를 목적으로 필리핀 여성들을 입국시켰는데, 아마 이렇게 값싼 비용으로 집안의 모든일을 맡길 하녀일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작품은 두 사람의 오고가는 삶에 대한 대화 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이 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마치 세계 전쟁이 끝난 후 수많은 실업자들과 청년들의 공허한 외침으로 느껴진다. 남자가 여자에게 해주는 뭔가 삶에 대한 해탈을 느낄 수 있는 조언들과 아직은 어린 나이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오로지 결혼이라는 것으로 결부짓는 여자의 이야기가 봄날의 쌀쌀함이 느껴지는 동네 공원의 한 귀퉁이 벤치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소설적이면서도 소설적이지 않고,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짧은 작품이었지만 묵직한 질문을 받았던 소설이었다. 역시 뒤라스는 최고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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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에세이
발터 벤야민 지음, 새뮤얼 타이탄 엮음, 김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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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벤야민 #이야기꾼에세이 #현대문학 #신간도서 #세뮤얼타이탄


< 현대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제공 받아서 쓴 서평입니다 >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 이름 발터 벤야민, 그의 1926년부터 1936년까지 발표한 에세이,기사,서평,단편 들과 1936년에 발표한 에세이 <이야기꾼>과 함께 새뮤얼타이탄이라는 편집자이자 문학번역가인 사람이 엮어 놓은 책이다. 엮은이는 20세기의 문학 에세이 중에서 <이야기꾼>을 가장 유명한 작품중에 하나로 꼽으면서, "벤야민의 비평가적 역량이 지진계처럼 예민하게 드러난 글이다." 라고 소개했다.


책을 읽어보면 정말 다양한 방면의 주제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게 당췌 무슨 말인가 하고 들여다 보게 되었다.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책 속에서 이 두 부분을 구분하고 있다. 이야기는 파편화되거나 독립적인 사건에 주목하는 것에 반하여 소설은 고독에 기반하여 혼자 읽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소설은 작품속의 주인공을 통해 인경을 형성하지만 이야기는 피실험자가 경험을 얻게 되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은 자아의 구축이라면 이야기는 자아가 개별적인 경험으로 인해 해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읽다보면 공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모호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 유물론과 유대교 신비주의를 결합한 독창적인 사유를 하면서 현대 문화 비평의 초석을 놓았다고 한다. 40살이 안되는 젊은 나이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대인으로 독일에서 살기 힘들었던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려다가 실패하여 비극적인 선택을 하였던 그의 글들이 지금 시대에 영향을 주고 있을까?

어찌 되었든 전후시대에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서 전통적인 이야기의 전달 방식과 공동체적인 경험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순수한 경험이 아닌 매체에 의한 간접 경험 '정보'만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것도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한 정보가 난무하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런 현대에 구전을 통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소설이 넘쳐 남으로써 개인의 고독감을 더 증폭시킨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자리에 '정보'만이 채워지고 경험이 단절되어가는 자리에 개인의 '고립'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다소 어려웠던 에세이였는데, 최근에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같다. 페렉의 작품도 전후 젊은 세대들의 사물에 대한 소유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여준 것이었는데, 이와 비슷한 결이 아닐런지. 나의 개인적인 느낌은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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