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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나의 얼굴을 - 제2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임수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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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출판사로 부터 도서지원 받아서 쓴 서평 입니다 >
이 소설은 할머니를 부탁하며 훌쩍 여행을 떠나버린 고모를 대신해 광주로 내려 온 주인공 김나진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할머니와 함께 자라왔던 집에 돌아가 그 기억을 더듬어가며 소박한 할머니의 삶에 스며든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무던히 자라온 자신과, 그렇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옆에 있었던 가족과 친구를 생각하며 위로 받게 된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나와 직장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하고, 칼국수집에서 일한지 2년 차가 된 나진은 남들이 보기에는 실패한 삶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나진은 덤덤히, 하지만 단호하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한다. (p.244)"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부모님. 할머니 손에 맡겨져 빨래를 부탁하는 법을 몰라 일주일 내내 신었던 자줏빛 양말. 함께 사는 고모가 모로 누워 티비 앞에서 잠들어있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어른의 무게. 이 모든 것들이 불쌍하고 괴로울 수 있지만 나진은 특유의 덤덤한 어투로 이 카오스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할머니 냄새, 할머니의 보드라운 피부 결, 집에서 만들어 먹는 수제비, 추운 겨울의 순대국, 그 수제비와 순대국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친구...
나진이 무던하고 덤덤히 해주는 말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가 된다. 이 소설은 할머니, 고모, 엄마, 아빠, 친구에 대한 이야기들. 나진 자신의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주인공의 성장소설이다. 문장이 꽤나 간결하고 깔끔한데, 거창하고 멋을 잔뜩 부리진 않았지만, 오히려 이런 덤덤하 듯 흘러가는 문장들이 가슴을 울려준다.
나진의 이야기는 읽는 독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빠르게 변하고 성공과 풍요를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 잠시 숨 돌릴 틈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내는 진짜 행복, 진짜 풍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반려동물의 털에서 나는 먼지 냄새, 보드라운 이불의 감촉, 지하철에서 보는 1분의 파노라마 한강뷰까지. 우리 삶은 충분히 따뜻한 것들로 가득 차 이미 풍요롭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오래전 유행했던 소확행이라는 것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물론 주인공의 삶이 버거울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욕심 때문이라며 '나는 너무 나였다'라고 표현한다. 나진은 자책하기 보다는, 있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다.
"오른쪽 어깨엔 장바구니, 왼손에는 사과 한 봉지가 있으면서도 욕심을 부리듯 문구점에 들어가 얇은 노트 한 권과 펜 한 자루를 사는 나. 나는 너무 나였다. 그게 자꾸만 나를 힘들게 했다. (p.180)"
책의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건 할머니 집의 방 구조라든지, 나중에는 세 개나 되어버리는 나진의 방이라든지 하는, 이렇게 방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쉽게 읽혔지만, 복잡 미묘한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시간은 너무 빠르게 가거나 느리게 갔다. 한 번도내가 원하는 속도로 간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 시간이 빨리 가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시간은 나의 소망을 비웃으며 아주 느리게 갈 것이다. (p.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