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 읽었던 책들을 머리 속에서 정리하기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지...
예전에는 방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읽은 책들을 금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방안 벽을 채우고 있는 책장 어딘가에 반드시 꽂혀 있어서 언제라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고 그것들을 쓱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어디까지 읽었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대부분을 되새김질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이제 일년에 한두 번 한국집에 돌아갔을 때나 돌아볼 수 있게 됐고 대개의 책들은 전자책으로 읽게 됐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전자책 리더기나 어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켜서 굳이 읽어봤던 책들을 찾아보지 않는 이상 되새김질을 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예전에는 잠자리에 들무렵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되새기고 정리가 돼서 몇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던 것이 이제는 채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일주일만 지나도 뭘 읽었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전자책 덕분에 이제는 좁은 방구석에 궁리를 해가며 책 둘곳을 마련하지 않아도 마음껏 책을 사고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됐건만 그만큼 휘발성도 강해져서 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기껏 읽고 머릿 속에 정리한 것들이 기화 되듯 사라져버린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몸으로 깨닿게 된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모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감상을 적고 있다. 인공적인 되새김질의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충격 고백!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읽어온 녀석들을 얼추 정리해보니 겨우 백여 권 남짓이다.
잘 기억나지 않는 녀석이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니 그녀석들 빼고, 만화책들을 세는 건 사실 반칙이니 그것도 빼고 나면 정말 백 권을 간신히 넘는다.
무려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읽어낸 책이라는 게 고작 이것 뿐이라니... 심지어 태반은 최근 2~3년간 읽어낸 것들이라는 걸 알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ㅡㅡ;)
나 여지껏 뭐하고 산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