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전염병 - 왕실의 운명과 백성의 인생을 뒤흔든 치명적인 흔적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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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역사 속 전염병 (신병주 著, 매일경제신문사)”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 시대에 벌어진 전염병 창궐에 대한 교양 역사서입니다. 





저자인 신병주 교수는 현재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분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책들, “왕비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왕으로 산다는 것”을 집필하기도 하는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염병은 근대 이전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방은 커녕 치료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에 전염병은 말 그대로 역신(疫神)이 강림한 재앙이었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만 무려 2천여건 이상의 전염병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어쩌면 당시 조선인들은 전염병과 함께 한 삶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조선 건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위화도 회군 (1388)인데 이때 등장하는 것도 바로 전염병입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요동 정벌 4불가론을 이야기하는데 그 중 마지막이 바로 전염병의 유행이거든요. 

또한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양주 회암사에 역병이 크게 유행합니다. 그리고 그 역병은 수개월 간 지속되지요. 

항상 역병은 기근과 함께 찾아옵니다. 심지어 현종 대에 임진왜란보다 역병이 더 무섭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을 정도였으니 전염병이 조선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큰 피해를 본 백성에 대한 대책은 그다지 흡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실록에 기록된 사망자는 고을 수령이 확인한 것일 뿐 부락이나 도로에서 죽은 자 들은 기록되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더구나 각 고을 수령들은 중앙 정부에 보고하는 문서에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공로를 부풀려 보고하는 바람에 피해가 축소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산에 여제단을 설치하여 일년에 두 번 제사를 치룸으로써 역병을 예방하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민간 뿐 아니라 조정에서도 무속에 의존하는 경향성도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당시 의학 지식으로는 역병의 유행을 신적 존재의 개입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던 탓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적 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격리가 시행되었으며 활인서 등을 활용하여 환자들을 보살핀 기록 역시 있습니다. 물론 의학적 지식이나 병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근본적인 치유를 하는 것은 아니었고 증상이 악화되지 않고 체력을 온존하는 대증 요법 위주의 치료만 시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길고 길었던 팬데믹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팬데믹 이후에도 팬데믹이 남긴 상흔은 굉장히 깊을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문명으로도 완전히 틀어막지 못하는 전염병의 무서움을 우리 인류는 이제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에도 이럴진데 위생 관념이 투철하지 못했고, 의학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근대 이전에 맞이한 전염병은 인류에게 어떤 상처와 흔적을 남겼을지 궁금하였는데 이 책을 통해 조선 시대에 벌어진 전염병에 대한 내용과 제한된 지식과 자원을 가지고 그 전염병과 싸워온 조선인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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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주관하는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필자의 주관으로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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