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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2
R. F. 쿠앙 지음, 이재경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8월
평점 :
바벨 2 (R. F. 쿠앙 作, 이재경
譯, 문학사상, 원제 : Babel,
or The Necessity of Violence: An Arcane History of the Oxford Translators'
Revolution)을 읽었습니다.

앞서 1권 서평에서 작가인 R.
F. 쿠앙에 대한 소개를 드렸고, 이 작품으로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을 석권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휴고상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2023년 휴고상 시상에
있어 논란이 있었는데 바로 이 작품이 그 중심에 있었거든요. 당시 휴고상은 중국에서 개최가 되었는데, 이 작품이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이유로 후보 명단에서 삭제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벨』은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검열을 받았습니다.

바벨 2권은 로빈과 친구들이 본격적인 저항에 나서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광둥으로의 실습 파견을 통해 아편전쟁의 실상을 목도한 로빈은 바벨이 영국의 식민지 침탈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영국 정부가 중국의 은을 독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빈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헤르메스 협회라는 비밀 저항 조직과의 접촉을 통해 로빈과 친구들은 제국에 맞선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폭력의 정당성과 혁명의 대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번역 마법을 이용해 바벨 자체를 파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비극적 절정에 도달합니다.
원제에도 드러나듯이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폭력적 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고찰입니다. 구조적 폭력 앞에서 평화적 저항의 한계를 인정하고, 때로는 폭력적
수단도 불가피할 수 있음을 탐구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고, 그 무거운 대가와 도덕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제국주의를 거대한 거미줄에 비유한 장면입니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가는 목화,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아편, 중국에서
차와 도자기로 바뀌는 은,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흘러 들어가는 영국"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 지구적 착취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번역과 언어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2권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번역은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원문을 다시 쓰는 일"이라는
플레이페어 교수의 말처럼, 번역 행위 자체가 가진 창조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속성을 탐구합니다.

이 작품은 같은 옥스퍼드를 연상시키는 영국의 명문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해리포터’와 유사점을 보입니다. 네
명의 친구가 중심이 되는 구조, 마법을 배우는 학원 설정,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도 공통점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들이 존재합니다. ‘해리포터’가 선악이 비교적 명확한 모험 판타지라면, 이 작품은 도덕적 회색
지대를 탐구하는 정치적 우화입니다. 해리가 마법 세계에 속해 있다면,
로빈은 두 세계 사이에서 영원히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해리포터’의 마법이 개인적 능력이라면, ‘바벨’의 실버워크는 집단적 지식과 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합니다.
무엇보다 ‘바벨’은 학문
기관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지식이 권력과 어떻게 결탁하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합니다. 이는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사회비평으로 기능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언어학적 판타지라는 독창적 장르를 개척하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하는 수작입니다. 다크 아카데미아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며, 현대 독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윤리적 질문들을 던지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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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