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비 이블,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 - 거대 플랫폼은 어떻게 국가를 넘어섰는가
라나 포루하 지음, 김현정 옮김 / 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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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맞붙은 대선을 치뤘습니다. 오바마가 SNS를 적극 활용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SNS는 선거 전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가짜 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페이스북을 활용하여 이러한 가짜 뉴스를 확산시켰습니다. 페이스북이라는 단일 플랫폼에서 공유된 가짜뉴스에 대한 반응 (좋아요, 공유 등)은 800만 건이 넘었는데 이 수치는 기존 매체에서 가장 인기있던 기사에 대한 반응의 합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2016년 미국 대선은 가짜 뉴스의 승리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유투브,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에서 일어나는 가짜 뉴스의 확산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남의 일이 더 이상 아닌 듯 합니다.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거대 플랫폼은 이런 가짜 뉴스를 막을 생각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일까요? 또한 거대 플랫폼의 문제는 이 것 뿐일까요?  “돈 비 이블 (라나 포루하 著, 김현정 譯, 세종서적, 원제 : Don't Be Evil)”은 공고해진 탐욕의 신디케이트, 모든 이들에 대한 감시, 플랫폼 노동에 내몰린 긱 노동자, 로비의 큰 손이 되었으며 이제는 정치 권력을 앞서기 시작한 빅 테크 기업, 점차 취약해지는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 등에 대한 거대 플랫폼의 ‘사악함’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한 때 구글의 행동강령으로 알려졌던 문장입니다. 실제로 구글은 이 문장을 그들의 행동강령의 서문에 담아 가치를 지켜나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행동강령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책에서는 거대 플랫폼이 국가를 넘어섰고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의 행동 강령의 변경은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실제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 자본을 가진 집단은 언제나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당위처럼 보입니다. 이런 거대 자본은 민주주의가 가진 이념과 실체를 어그러뜨리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미국은 반독점에 대한 그토록 가혹한 법을 가지고 있으며 행사해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FAANG이라 부르는 기술 기업들은 더 이상 기술 기업의 범주에 포함할 수 없습니다. 이들 기업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자본은 왠만한 국가의 부를 넘어서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거대 자본 세력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저자는 몇가지 해법 혹은 힌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본주의에서 통용되는 규칙은 절대가치가 아니며 우리가 만들고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업계의 자율 규제는 말이 좋아 자율규제이지 실제로 작동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먼저 그들 플랫폼에서 일어난 불법적인 일에 대한 면책권을 재고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익을 차지하려면 그 이익에 대한 책임 역시 가져야한다는 매우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저자는 플랫폼 자체는 자연 독점과 같은 상태이므로 플랫폼과 상거래를 분리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구글의 앱 통행세나 네이버 쇼핑 독점  같은 이슈가 있었듯이 유념해서 받아 들여야 할 주장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막대한 이윤은 개인의 데이터를 거의 공짜에 가깝게 활용하면서 창출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들은 이러한 원료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공정하게 파이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플랫폼 기업들은 조세 피난지로 자산을 옮겨 막대한 탈세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조세 제도의 개선과 함께 고민할 경우 이익의 재분배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긱 근로자로 포장된 플랫폼 노동이라던가 플랫폼에 의해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플랫폼 기업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네이버나 카카오 역시 하나의 기업으로서 가지는 영향력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에 준하는 혹은 국가를 넘어서는 힘을 갖게 된 거대 자본 기업들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해야만 할까요? 이 책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 마땅히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돈비이블, #라나포루하, #김현정, #세종서적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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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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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著, 이은선 譯, 은행나무, 원제 : The edible woman)”를 읽었습니다.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 1939~)는 “시녀 이야기 (김선형 譯, 황금가지)”, ‘미친 아담 3부작’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소설가이자 시인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문학적 성과도 엄청나지만 그에 걸맞게 캐나다 총독상, 맨부커상, 아서 C. 클라크상 등 수상 경력도 엄청나게 화려합니다. 


참고 : https://micca.tistory.com/entry/%EC%9E%91%EA%B0%80-%EB%A7%88%EA%B1%B0%EB%A6%BF-%EC%95%A0%ED%8A%B8%EC%9A%B0%EB%93%9C-Margaret-Eleanor-Atwood


최근에는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인 “증언들 (김선형 譯, 황금가지, 원제 : The Testaments)”로 2019년 부커상(공동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제 남은 상은 노벨 문학상 정도이며 그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비평가도 있을 정도입니다. 아니 마거릿 애트우드의 문학적 성과와 업적을 고려할 때 노벨 문학상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문학 세계가 못한 것이 아니라 노벨 문학상조차도 그녀의 작품 세계에 비해 비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르 소설가라는 호칭이 편견으로 여겨질 때에도 이미 거장이었던 위대한 작가이지만 그는 애초에 소설을 쓰던 소설가가 아니라 1964년 “ The Circle Game”이라는 시집으로 이미 캐나다 총독상을 수상했던 시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여자”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993년 “케익을 굽는 여자 (정은선 譯, 새와물고기)”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은행나무에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스포일러일 수 있으므로 유의바랍니다.)


‘이제 백지처럼 하얀 몸이 만들어졌다. (중략) 이제 평범한 원피스 수영복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중략) 같은 색으로 미소를 머금은 분홍색의 도톰한 입술과 분홍색 신발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뭉툭한 두 손에 분홍색 손톱을 다섯 개씩 그렸다.’


메리언 매캘핀은 소설 후반부에 케이크를 여성의 몸을 본 딴 케이크를 만듭니다. 


‘ “너 맛있어 보인다. (중략) 너는 결국 먹히게 될거야. 음식의 운명이 그렇거든’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케이크. 하지만 케이크는 결국 음식일 뿐. 먹히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대역을 만들었어. 당신이 훨씬 좋아할 만한 걸로. 당신이 처음부터 진심으로 원하던 건 이거 아니야?” (중략) 피터는 그것을 먹어치우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허기가 졌다. 미치도록 배가 고파졌다. “발부터 먹어주겠어” 그녀는 결정했다.’


피터는 여체의 형태를 한 케이크를 보고 놀라서 자리를 떠나고 자신의 대체물을 스스로 먹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정상인 메리언 매캘핀이 소설 최후반부에 벌이는 일은 언뜻 섬뜩하면서도 그 상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많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이미 밝혔듯이 본격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출간된 책으로 페미니즘의 주요 사상이 반영되었다기 보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선구자적 자리를 매김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소설 속 메리언의 행동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먹을수있는여자, #마거릿애트우드, #이은선, #은행나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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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
박인조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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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 (박인조 著, 지식의숲)”를 읽었습니다.


최근 명화를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종류의 교양서입니다. 다른 책과 달리 독특한 점은 이 책에서는 명화 속에 드러난 인간의 마지막 순간, 즉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삶은 먼저 삶을 산 사람들의 조언이나 가르침이 있을 수 있지만 죽음은 그 자체로 마지막이며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사람은 없기에 누구도 조언이나 가르침을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죽음은 (아직까지는) 빈부나 신분의 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종교인, 철학자, 과학자들은 죽음에 천착하였으며 죽음에 대해 알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화가를 비롯한 많은 에술가들 역시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24점의 명화와 이를 그린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1825).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에 걸맞게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갔던 예술가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고안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루이 16세에 의해 중용되어 궁정화가로 활동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자코뱅파에 가담하여 루이 16세의 단두대형에 찬성합니다. 또한 나폴레옹 집권 후에는 나폴레옹 전속 화가로도 활동합니다.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았던 그의 그림 중 죽음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마라의 죽음 (1793)’ 등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그림의 소재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테네의 정치인들에 의해 사회악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게 된 소크라테스. 하지만 그는 그림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슬픔과 절망에 잠긴 표정이지만 그는 불안,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가 죽음에 대해 당당한 것은 그에게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크 루이 다비드는 그러한 소크라테스의 당당함을 화폭으로 남겨냈습니다.


화가는 죽음이라는 그 자체로 마지막인 순간을 그려내지만 그 순간에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담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는 명화 속의 죽음과 그 죽음에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죽음을그린화가들순간속영원을담다, #박인조, #지식의숲,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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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처럼 쓴다 - SF·판타지·공포·서스펜스
낸시 크레스 지음, 로리 램슨 엮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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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서를 자주 읽습니다. 제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이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책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사실 작법서 자체도 재미있습니다. 처음 읽었던 작법서가 “글쓰기의 항해술 (어귤러 K. 르 귄 著, 김지현, 원제 : Steering The Craft)와 (작법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著, 김진준 譯, 김영사, 원제 : On Writing)”였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그 뒤로 종종 작법서를 읽고 했지요.


이번에 읽은 “넷플릭스처럼 쓴다 (로리 램슨 篇, 지여울 譯, 다른, 원제 : Now Write! Science Fiction, Fantasy and Horror: Speculative Genre Exercises from Today's Best Writers and Teachers)”는 장르소설 작법서인 “Now Write”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Now Write 장르 글쓰기 1 : SF 판타지 공포 (다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이번에 제목을 바꾸어 재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은 네뷸러상, 휴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허공에서 춤추다 (낸시 크레스 著, 정소연 譯, 폴라북스, 원제 : Beaker's Dozen)”로 잘 알려진 낸시 크레스(Nancy Kress, 1948~)를 비롯한 유명한 소설가들이 SF, 판타지 등 장르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66가지의 기법을 공개한 책입니다.



이 책은 ‘세계관’, ‘착상’, ‘인물’, ‘이야기’ 등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소설가들의 조언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장들의 제목은 목차에 전부 소개되어 있으니 낸시 크레스가 쓴 파트인 ‘경제 체제가 치밀할수록 세계관이 강렬해진다’를 소개할까 합니다.


현실에 없는 세계를 다룬 장르소설을 읽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중 하나가 세계관 속 경제 체제입니다. 낸시 크레스는 자신의 경험을 첫머리에 풀어놓습니다. SF 작가 워크숍에 참석하 그녀는 그 워크숍에서 꽤나 괜찮다고 생각한 SF 중편을 들고 참석했다 브루스 스털링(Michael Bruce Sterling, 1954~)에게 혹독한 비평을 듣습니다. 

‘이 세계는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아요. 이치에 맞지 않는 세계를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야기 전체가 허물어져 버렸어요.’

왜 이런 비평을 했을까요? 바로 경제 체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식민지 사회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 겁니까? 누가 규칙을 만듭니까? 누가 권력을 쥐고 있습니까?’


심지어 ‘동굴인류의 원시 사회라 할지라도’ 자원을 모으고 배분하는 구조는 있을 것입니다. 오로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세계에서만이 경제 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 낸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낸시는 브루스 스털링이 ‘돈의 뒤를 캐라.’고 조언한 바에 따라 배경 사회를 이루는 경제 체제의 구성에 더욱 힘을 썼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쓴 다음 작품으로 그녀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자는 현실로부터 거리가 있는 세계관일수록 경제체제에 대한 고민을 더욱 많이 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소설의 설득력은 더욱 강해지고 그 세계의 구조는 더욱 치밀해진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런 고민을 통해 이야기가 더욱 확장될 수 있다고도 조언합니다. 


낸시 크레스의 조언 이외에도 다른 작가들의 훌륭한 조언들이 이 책에는 많이 있습니다. 굳이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독서를 위해서 이 책을 한번 읽는 것도 훌륭한 경험일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넷플릭스처럼쓴다, #낸시크래시, #로리램슨, #지여울,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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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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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著, 서혜영 譯, 흐름출판, 원제 : 百の夜は跳ねて )”를 읽었습니다.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 (古市 憲寿, 1985~)는 일본의 사회학자이며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는 그의 두번째 소설인데 첫 작품 “굿바이, 헤이세이(원제 : 平成くん、さようなら)”와 이번 작품 모두 일본 문예춘추 주관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이 높이에 완전히 익숙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55층짜리 타워멘션을 위에서 5분의 1만큼 내려온 곳이니까 지상으로부터의 높이는 아직 200미터 가까이 될 것이다.'


쇼타. 그는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고 충동적으로 선택한 직업. 간단한 연수를 마치고 고층 빌딩 유리창 청소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는 낯선 그 직업에 빠르게 익숙해집니다. 


‘오피스 빌딩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타워맨션의 주민들은 우리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는 것을 그때 느낀다. (중략) 책상이 창을 향해 놓여 있고 남자로부터 곤돌라까지의 거리는 1미터도 안될 것 같은데도 그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챈 기미는 전혀 없었다. ‘


우리가 흔히 그렇듯 유리창 안에서 밖을 바라볼 때 그것은 배경이고, 풍경일 뿐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어쩌면 유리창 밖에 보이는 존재들은 삶의 밖에 존재하는 유령들일지도 모릅니다. 현대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삶들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이상한 의뢰였다. 노부인은 내가 청소하는 곳의 사진을 찍어와 달라고 했다’


밖은 얼마든지 보이지만 안은 전혀 보이지 않는 곳. 바로 현대를 상징하는 고층빌딩의 속성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그 밖에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느끼지 못하지만요. 노부인은 아마도 그 안에도 사람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방법은 좀 이상하지만요. 그렇게 노부인과 소타는 유리 창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세상을 서로 바라보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여 인지하고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거나 정책의 대상이 될 때는 집단이라는 덩어리로서 인식됩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우리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옮긴이도 이야기했듯이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수히많은밤이뛰어올라, #후루이치노리토시, #서혜영, #흐름출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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