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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평점 :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著, 엄지영 譯, 오렌지디, 원제 : Los peligros de fumar en la cama)”를 읽었습니다.

독특한 제목의 이 소설은 마리아나 엔리케스 (Mariana Enriquez, 1973~)의 소설집입니다. 저자인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라고 합니다. 가정 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등 사회 현실을 고딕풍의 은유에 녹여내는 독특한 작풍으로 알려진 저자는 첫 소설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우리가 불 속에서 읽어버린 것들 (엄지영 譯, 현대문학, 원제 : Las cosas que perdimos en el fuego)를 통해 소개되기도 한 작가입니다.
특히 이번에 읽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은 2021년 부커 국제상 숏리스트 (최종후보)에 선정되기도 한 작품입니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으로 2016년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 (창비)”로 수상한 바 있습니다.
(스포일러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유의바랍니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호러적이면서도 보르헤스(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1899~1986)를 연상하게 하는 마술적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첫 수록작인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 (El Desentierro de la Angelita)’부터 칵테일처럼 뒤섞여 있는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썩어 문드러지고 축축하면서 끈적거리는 살점을 그대로 묘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하거나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땅 속에서 오랜 시간 보낸 아기 천사의 세월이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이 묻힌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현실을 묘사하듯이 건조한 어투로 적, 환상적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특유의 문체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비록 비현실적 상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관찰력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표제작인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8페이지 남짓한 짧은 이 작품은 해봤을 사소한 사실을 통해 노인 문제, 도시 속의 고독, 불안감 등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현대인의 불안, 고독, 우울 등을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현실과 밀접하게 그리고 언제나 맞닿아 있지만 내가 미처 깨닫지 않으면 곁에 있음에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감정들이 스쳐지나는 순간 같다고나 할까요. 보편적인 감정과 현상을 독특한 작품 세계에 녹여낸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다른 작품도 번역되기를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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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