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말이 사라진 날 -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
정재환 지음 / 생각정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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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인간의 본능인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에 의하면 언어는 ‘문화적 인공물이 아니라 인간 뇌의 생물학적 구조의 일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언어를 본능이라고 주장합니다. 거미줄이 ‘천재 거미의 발명품’이 아니듯 언어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발명품이 아니고 본능이라는 이야기인 것이죠. (스티븐 핑커 著, ‘언어본능’, 김한영, 문미선, 신효식 共譯, 동녘사이언스)


사람들은 머리 속에 구체화되지 못한 생각들을 소리 내어 이야기하거나 종이 위에 글로 썼을 때 그 생각이 보다 구체화되거나 정리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렇듯 언어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거나 생각을 보다 구체화하는 역할을 해주는 사고 체계의 주형틀이자 인식 체계의 설계도로 볼 수 있습니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 (정재환 著, 생각정원)”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 일제강점기 기간의 조선어학회의 투쟁과 해방 후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정재환 박사인데 이름이 낯익습니다. 네, 바로 코미디언 출신의 MC였던 그 분이 맞습니다. 몇 년 전 조선어학회의 활동과 관련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들었는데 그 연구와 관련하여 이번에 대중 역사서를 집필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찾아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정재환 박사의 석사 학위 취득 당시 지도교사가 서중석 교수더군요.) 


일본이 식민지 조선 땅에서 조선의 말과 글을 금지시킨 것은 바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황국신민으로 동화시켜 영원히 이등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제에게는 조선인의 황국신민으로의 동화를 막는 조선의 말과 글은 그들이 소멸시켜야할 ‘악’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어학회’는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조선어사전을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권력에 대항하여 그들이 금지하는 것, 말살하려는 것을 연구하고 되살리고, 이어나가려는 노력 자체가 바로 저항이자 투쟁이고 싸움이었습니다. 더구나 일제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군국주의 파시스트 정부였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은 그러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여러 활동을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시간순으로 쭈욱 따라갑니다. 특히 교육칙어에 기초하여 ‘충량한 국민을 양성하기 위해’ 일본어를 보급하고 조선어를 말살하려는 일제에 대항하여 지속적으로 말모이 작업, ‘조선어사전’ 편찬은 당시 조선어학회의 숙명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시경 선생의 사망으로 말모이 작업은 중단되고 여러 사람들이 조선어사전 편찬을 재개하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러한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바친 사람도 있었고 전국 팔도의 방언(方言)을 모으기 위해 수집 활동을 하던 사람도 있었고 ‘조선어학회’ 사건을 통해 구속되어 고문당하고 투옥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해방 이후 ‘큰사전’이 편찬된 것은 일제 치하에서도 말모이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큰사전 편찬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원고를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2년 만에 원고를 찾아내어 완성한 ‘큰사전’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요?



앞에서 이야기했듯 언어는 사고 체계를 확장하기도 제한하기도 합니다. 우리말로 생각하고 표현할 때 더욱 아름다운 말이 있고, 영어로 표현할 때 더욱 좋은 표현도 있는 법이지요. 그렇기에 한국인으로서 문화나 정체성은 바로 우리말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우리나라가 독립하였다 하더라도 우리말을 잃어 버렸다면 우리의 사고 체계는 온전히 ‘한국인’의 것이라 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많은 노력이 없었다면 말이지요.  굳이 한글날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노력에 대해 알기 위해 한번쯤 “나라말이 사라진 날”을 통해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독서일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말 : 비장하고, 무거운 역사책으로 느껴지지만 정재환 박사는 탁월한 이야기 솜씨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읽다가 웃음이 터진 한 부분을 소개드릴게요.


“여러분, 먼저 강아지부터 손드시오”

장시간의 토론을 마치고 표결이 시작된 것이다. 낱말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이 왔다. “강아지”를 적극 주장하는 위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번에는 개새끼 손드시오.”

강아지보다는 개새끼에 애착이 큰 위원들이 손을 들었다. 강아지와 개새끼! 어느 쪽이 더 많은 표를 얻었을까? 그런데 이 아무개 위원이 어느 편에 손을 들었는지 분명치 않자 사회자가 다시 물었다.

“이 선생은 강아지지요?”

“아니오, 나는 개새끼요.” (pp.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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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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