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로부터의 생존자들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6
이시형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사람들을 가르는 무엇인가가 나타납니다. 


아마도 그것은 장벽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남과 북으로 가르기도 하고 특정 영역을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지구상 전 대륙에 걸쳐 나타난 그것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며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끈한 직사각형의 블록이 뭉쳐져 있는 듯한 그것의 모습, 질감, 그리고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색감에 매혹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무지개벽이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것처럼 보이는 질감과는 다르게 그것을 만지려는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손이 절단되고, 눈이 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분명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그것은 구조조차 규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입니다. 누군가는 암흑물질이 뭉친 것이라고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고차원의 물체가 3차원 공간에 나타난 것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이것으로 인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운 이동은 어렵습니다. 어느 순간 그것이 더욱 부풀어 올라버렸거든요. 벽이 생겨버린 후 사람들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글로벌 공급 체계가 무너지면서 제조업은 점차 몰락하고 절대빈곤층이 늘어납니다. 사회 혼란은 가속화되고 매점매석이 성행합니다. 그리고 거대해진 탐욕은 협력과 연대보다는 분열과 배척을 불러옵니다. 한반도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전라 경상권과 경기 충청권을 갈라놓은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은 또다시 분열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내전 뿐입니다. 

사람들은 지쳐갑니다. 그리고 피폐해집니다. 경제는 붕괴되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사라져가고, 힘만이 진리이자 정의가 되는 세상. 게다가 격화되는 내전으로 서로 증오만이 남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영혼 뿐인데 그러한 영혼을 착취하는 종교가 등장합니다. 


어느날, 그것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흉측한 몰골로 말이지요. 마치 암처럼 전 세계에 퍼지다 그것의 높이는 갑자기 낮아지다 괴생명체를 토해냅니다. 거대한 파충류들을요.

이제 인류는 괴생명체들과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포일러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 바랍니다.)




최근에 읽은 “파멸로부터의 생존자들 (이시형 著, 그래비티북스)”의 인트로입니다.


설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체, 처음에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결국 인간과 사회를 구성하는 연대 네트워크를 부숴버리는 치명적인 물체로 작용합니다. 그로인한 인간의 갈등과 내전. 


그러나 딱 여기까지입니다.

너무 성급하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단 등장인물들의 말이 너무 많습니다. 한 사람이 한번 이야기하는데 1-2페이지 되는 대사도 자주 나옵니다. 그리고 대화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정도 되면 독자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그냥 작가라고 생각해버립니다. 몰입감이 떨어져요. 

핍진성(逼眞性, verisimilitude)이라고 하죠.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을 독자가 납득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장치들이 너무 부실합니다. 국가 단위의 전쟁을 하는데 군의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군 직책이나 계급체계가 이상한 것은 일단 넘어가더라도) 

그리고 고작 파충류 (중형 공룡 수준)에 불과한 적과의 전투를 너무 어렵게 풀어냅니다.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몰려오는 적들이라면 화력전으로도 쉽지 않겠지만 작중 묘사되는 파충류들은 그렇게까지 대규모는 아니잖아요.  아무리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라도 그 수가 한정적인 이상 자동화기로 무장한 분대 이상의 정식 제대와 맞붙으면 몰살될 거에요.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악당이 있었다라는 도식적인 결말까지… 


차라리 장벽 이후의 전쟁물보다는 장벽이 있는 상황에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묘사하는 짧은 중편으로 구성했으면 훨씬 읽기 편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설정과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너무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파멸로부터의생존자들, #이시형, #그래비티북스, #장르소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