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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 여인의 초상화 속 숨겨진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9월
평점 :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종종 ‘선(善)’과 등가의 가치를 지니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은 사실 상관 관계가 없지만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선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죠.
또한 사람들은 본인이 ‘아름답다’라고 느낀 대상을 가지거나 즐기고 싶어합니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1932~2016)는 ‘아름다움(美)’에 대한 소유와 향유를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설사 그것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일지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 (움베르토 에코 著, ‘미의 역사’, 이현경 譯, 열린책들, p10, 원제 : Storia della bellezza)’ 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4-5만 년 전 라스코 동굴과 같은 곳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 역시 같은 이유였을까요? 수렵과 채집을 통해 먹고 살던 구석기인들에게 들판을 뛰어 다니는 거대한 들소와 말들의 아름다움은 대단했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당시 구석기인들에게 그 동물들은 언젠가 한번쯤은 반드시 사냥하고 싶은 존재이지만 쉽게 잡히지 않고 어쩌다 운좋게 사냥할 수 있는 존재,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림으로라도 남겨 소유하거나 즐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이정아 著, 영진닷컴)”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매체에 미술 관련 칼럼을 기고하는 미술 칼럼니스트인 이정아 작가가 예술작품에 그려진 여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보여주고 들려주는 대중 미술 서적입니다.

옛 사람들은 여성들에 대해서 불완전하다고 생각했지만 반면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로서,혹은 아름다운 피사체로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La dama con l'ermellino, 1488)’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2)는 교황청에 파견하는 화가를 선발하면서 한 화가를 제외합니다. 그 처사에 화난 화가는 메디치가 다스리는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향합니다. 밀라노에 도착한 그에게 루도비코 스포르차 (Ludovico Maria Sforza, 1452~1508) 공작은 자신의 정부 중 한 명인 체칠리아 갈레라니 (Cecilia Gallerani, 1473~1536)의 초상화를 맡깁니다.
그 화가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이고 그가 그린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화는 바로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그림은 ‘체칠리아가 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는데 이 자세는 ‘몸과 시선이 서로 반대 방향을 이루는 독특한 자세’라고 합니다. 또한 담비는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에 힘을’ 주고 있어 긴장되어 보이고 체칠리아의 볼에 떠오르는 홍조와 ‘희미하게 번지는 미소’ 등 이 미묘한 변화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포착해냈고 길이 남는 명화로 남겨 냈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저자는 소녀가 안고 있는 담비의 의미와 이에 얽힌 뒷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네요.
‘옷을 입은 마하 (La maja vestida, 1800~1807)’

프란시스코 데 고야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은 그가 그린 한 점의 그림 때문에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종교재판소에 끌려 갑니다. 바로 ‘옷을 벗은 마하 (La maja desnuda, 1800) 때문입니다. 그는 이단죄와 음란죄로 심문을 받았지만 그 여인이 누구인지, 왜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 여인은 고야가 한때 사랑했던 여인을 그렸을 뿐이라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당시 스페인에서의 여성은 ‘지성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아내와 어머니’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거부하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거나 마녀로 몰리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림 속의 마하는 ‘욕망의 주체’로서 그래도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데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는 이를 ‘악마’ 혹은 ‘마녀’의 꾀임으로 봤던 것이지요. 교회의 재판과 협박때문에 고야는 똑 같은 여인으로 똑 같은 구도로 그림을 다시 그렸는데 그 그림이 바로 ‘옷을 입은 마하’입니다.
이후 ‘마하’의 모델이 누구냐는 문제는 20세기까지 줄곧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고 하는데 저자는 책에서 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이전까지 왕실 화가로서 당대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던 고야는 이후 왕실 화가의 지위를 빼앗기고 신랄한 사회 풍자와 참사에 대한 증인으로 꿋꿋하게 살아갔다는 뒷이야기도 저자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을 보고 즐기는 방법에 한계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워 그림 속에 녹여낸 예술가의 감정을 모두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이 책을 통해 예술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기본적인 공부를 하고 그림을 본다면 아름다움을 좀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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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