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랜드 - 사악한 돈, 야비한 돈, 은밀한 돈이 모이는 곳
올리버 벌로 지음, 박중서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ICIJ)라는 NGO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탐사보도 관련 민간 단체인 공공청렴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 CPI)의 산하 조직으로 전 세계 60여개국의 탐사 보도 관련 언론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기관입니다. 


이 단체가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바로 파나마 최대의 로펌인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 & Co.)가 보유한 1,150만 건의 비밀문서인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를 2016년에 폭로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폭로한 문건에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아이슬란드 총리,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중국 국가 주석의 친척, 한국 전 대통령의 자녀 등 전 세계의 부유층과 권력자들이 어떻게 돈을 빼돌려 재산을 은닉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에서 모색 폰세카라는 회사가 재산을 빼돌려 은닉하고 싶어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바로 역외회사(域外會社, Offshore company) 설립 등의 역외 금융 서비스입니다. 

(이 문건에 이름이 오른 몇 명이 물러나는 것에 그치고 폭로의 파괴력에 비해 의외로 조용하게 잊혀졌으며 오히려 이 폭로를 주도했던 기자는 차량 폭파 테러로 사망하였습니다.)


그 1년 뒤 ICIJ는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Appleby)가 보유한 1,340만 건의 비밀 문건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폭로합니다. 이 문건에는 영국 여왕, 미 대통령의 측근, 일본 전 총리, 한국 대기업 총수를 비롯해 나이키, 애플 등의 역외 투자 및 탈세 정황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 사건들을 보면서 부자와 권력자들이 돈을 해외로 빼돌렸구나 하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역외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기사들을 따라 가다 보면 대충 감은 잡히지만 명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번에 출간된 “머니랜드 (올리버 벌로 著, 박중서 譯, 북트리거, 원제 : Moneyland: Why Thieves and Crooks Now Rule the World and How To Take It Back)”를 통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올리버 벌로 (Oliver Bullough, 1977~)은 영국 웨일즈 태생의 탐사 전문 기자입니다. 그는 신흥 부유층인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 러시아 등 구 소련 국가들의 경제 특권층)가 흘린 돈의 흔적을 따라 추적하면서 유령 회사, 신탁 등 역외 금융 서비스 혹은 국제 자산 보호 산업이라 명명된 조세 회피 사업을 파헤쳐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타임즈’, ‘이코노미스트’, ‘선데이타임스’ 등 유력 매체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고 스파이 소설의 대가인 존 르 카레 (John le Carré, 1931~)의 추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 (Віктор Фе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1950~)는 단 4년 간 우크라이나를 통치하면서 수억 달러를 훔쳐 그 자신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우크라이나는 파산하고 맙니다. 그는 자연보호구역을 자신의 별장으로 만들었는데 그 면적은 무려 3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서울의 면적이 605제곱킬로미터이니 서울의 절반 정도가 그의 별장이라 생각하면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산을 파헤쳐 보니 온갖 익명의 소유주들이 튀어 나오고 법적으로는 손을 댈 수 없었으며 자산은 비록 우크라이나에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따라갈 수 조차 없는 어딘가에 있는 셈이었습니다. 


저자는 돈은 국적 없이 자유롭게 국가를 넘나들며 빠르게 흐르는 반면 이를 규제해야 하는 법은 따라 움직일 수 없어 법규를 적용할 수 없는 역외 구조의 세계를 야비하고 사악한 돈이 은밀하게 모이는 나라, ‘머니 랜드’라 명명하고 이를 감시하고 무너뜨려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약탈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데 반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이야기를 보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환상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기초 위에 있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머니랜드, #올리버벌로, #북트리거, #박중서, #역외, #조세회피, #21세기해적질, #돈이모이는곳, #약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