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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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Hugo Award)이라는 문학상이 있습니다. 장르 문학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처음 들어본 상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미국 로컬 문학상이지만 상의 이름을 미국 SF 개척자라 불리우는 ‘휴고 건즈백 (Hugo Gernsbacher,  1884 ~1967)’의 이름에서 따 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 출판된 SF나 판타지 작품에 대해 수상하는 문학상으로 굉장한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입니다. 이 상은 많은 분야에 걸쳐 수상을 하고 있는데, 특히 관심을 많이 받는 분야는 최우수 장편, 최우수 중편, 최우수 단편 등 문학 분야입니다.

이러한 권위 있는 문학상에 아시아계 작가들이 꽤나 수상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그 문명(文名)이 높은 ‘테드 창’ 강봉남 선생(Ted Chiang, 1967~)이나 “종이동물원(켄 리우 著, 장성주 譯, 황금가지)”으로 유명한 켄 류 (Ken Liu,  1976~) 등이 대표적이죠. 또 한국계 작가로는 이윤하 작가가 데뷔작인 “나인폭스 갬빗 (이윤하 著, 조호근 譯, 허블)” 등 기계 제국 시리즈로 3연속 최우수 장편 부문에 후보로 오른 바 있습니다. (시리즈 작품 모두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N.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시리즈가 경쟁작으로 맞붙어 아쉽게 수상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아시아계이긴 하여도 국적이 미국 국적이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 류츠신 (刘慈欣, 1963~)이 “삼체(류츠신 著, 이현아 譯, 고호관 監, 단숨)”를 통해 아시아 국적으로서는 최초로 휴고상(최우수 장편부문)을 수상하게 됩니다. 류츠신에 이어 바로 다음 해 하오징팡(郝景芳, 1984~)이 ‘접는 도시(北京折叠, Folding Beijing)’로 휴고상 (최우수 중단편부문)을 또다시 수상하면서 중국 SF 문학의 잠재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오징팡은 중국인으로 두 번째 휴고상을 수상한 작가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하오징팡의 소설이 소개된 것은 “고독 깊은 곳(하오징팡 著, 강초아 譯, 글항아리)”을 통해서였는데 현실의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주제의식을 서사에 녹여 내는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특히 ‘접는 도시’에서는 ‘탕탕’의 유아원 입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라오다오’의 서사에 AI로 인해 촉발된 잉여 노동력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정치(正置)하고 잘 ‘접어’ 넣어 우리에게 들려주는 작가만의 탁월한 스토리 텔링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그렇기에 아시아 작가의 번역 작품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휴고상을 수상할 수 있었겠지요. 이러한 작가의 첫 작품집인 ‘고독 깊은 곳’을 읽고 난 이후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소설집, “인간의 피안(하오징팡 著, 강영희 譯, 은행나무)”이 출간되었습니다.


“인간의 피안”은 ‘인간이 차안(此岸)이고 AI를 피안(彼岸)’이라고 한다면 ‘저 멀리 피안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차안을 비춰 보기 위함’이라는 주제의식을 통해 AI가 발전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우리의 본질에 대해 사유의 산물로, 앞서 언급한 “접는 도시”에서 보여준 AI와 AI가 불러올 미래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본격적으로 다룬 6개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 놓은 작품집입니다. 


사실 많은 과학적 탐구의 주제는 첨단 과학에는 쓰일지 언정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굳이 알아야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은 대부분의 전자 기기에 활용되지만 지적 호기심의 대상일 뿐 양자의 움직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삶에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미시 세계죠.) 


하지만 AI는 다른 첨단 과학과는 궤를 좀 달리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AI가 과연 우리의 직업을 빼앗아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 AI의 판단에 윤리적 측면을 어느 수준까지 반영하고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사결정 등이 있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강인공지능에 의한 특이점이 오게 되면 그들을 비인간 지성체로 혹은 최소한 법인격으로 대우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이나 의사결정, 사회적 합의는 단시일 내에 과학자나 정치가가 담당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어쩌면 일반 시민들도 지금부터 충분한 고민과 숙의를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숙고에 필요한 열쇠를 일반인들에게 건네 주는데 가장 유용한 것은 SF라는 장르가 최선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오징팡의 고민과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직조'한 “인간의 피안”은 그러한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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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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