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출연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김영하 작가는 굵직한 국내 문학상을 휩쓸다시피하기도 했고 해외에서도 수상 경력이 있을 만큼 문명(文名)을 가지고 있는 중견 작가입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대표작을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으로 기억할 만큼 트렌디하고 장르적 장치를 활용한 글쓰기에도 익숙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김영하 작가가 7년만에 새로운 소설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바로 “작별 인사(김영하 著, 밀리의서재, 2020)”입니다. 하지만 전자책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에서 밀리 오리지널이라는 시리즈로 단독 공개한 책이다 보니 때문에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등 시중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디지털 원주민 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들을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며, ‘플레이어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이번 신작을 서점에서 판매하는 종이책이 아닌 플랫폼 중심의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이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에 대한 설명이긴 하지만 지속적 독점 판매는 해당 플랫폼에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을 배제할 수 있으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중 서점에서도 판매하는 형태의 제한적 독점 형태로 운영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밀리 오리지널로 출간된 “시티 픽션”, “내일은 초인간”, “작별 인사” 등은 전국 도서관 장서 검색에서 검색되지 않더군요. 공적 영역에서조차 접근이 제한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으므로 향후 개선되리라 믿습니다.


(이하 스포일러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와 함께 안락하게 살고 있던 17세 소년 “철”은 산책 도중 강제로 납치되어 휴머노이드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익숙했던 공간과 상황에서 멀어지게 된 “철”은 수용소에 함께 수감된 여러 휴머노이드로부터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받게 되고, 스스로도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반군이 수용소를 공격하는 와중에 그곳에서 만난 “선”, “민”과 함께 탈출하게 되고… 결국 “철”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데..


 


그렇습니다. 김영하의 신작 “작별 인사”는 인간과 비인간 지성체의 존재와 대결을 다룬 SF 소설입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문명(文名)이 높은 작가의 첫 SF 소설을 읽는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수령한 당일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분명 작품 자체는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읽힘에도 불구하고 이 당혹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익숙한, 혹은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나 소재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철’은 스스로를 인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남성 과학자에 의해 창조된 비인간 지성체였다라는 설정은 “우주소년 아톰”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또한 주인공이 광대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초지성체로 변해간다는 설정은 “뉴로멘서(윌리엄 깁슨 著, 김창규 譯, 황금가지)”라던가,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덴마”의 닥터 고드, “루시”의 루시 (스칼렛 요한슨 役)등의 설정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장기 이식용 클론으로 만들어진 ‘선’에 대한 설정은 “아일랜드”, “나를 보내지마(가즈오 이시구로 著, 김남주 譯, 민음사)”, “마이 시스터즈 키퍼(조디 피코 著, 이지민 譯, SISO)” 등의 설정과 같습니다. 덧붙여 ’선’의 아버지는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나오는 크레스터와 설정이 겹칩니다. 마지막으로 작중에서 인류가 소멸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디지털 마약 역시 “카프리카”, “스노크래시 (닐 스티븐슨 著, 남명성 譯, 북스캔) 등 SF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입니다.


이러한 설정이나 소재들을 전형적인 SF 장르적인 장치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정의 과잉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설정이나 소재들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지 못하고 오히려 이야기 위에 붕 떠버린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직접적인 설명이 과도하게 많아지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훌륭한 문체, 좋은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SF라는 장르를 처음 다루다 보니 장르적 장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SF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식상함 혹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오겠지만 SF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친절함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SF의 저변이 보다 넓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독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SF가 입문이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보니 이런 입문을 위한 작품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Ps.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작별 인사”일까 생각해봤는데 “철”이 자신을 돌봐 주던 부성(父性)에 대한 작별, “철”의 오래전 동료였던 “선”에 대한 작별, 네트워크 상에서의 약속 받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작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작별 등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Ps. 작중 주인공의 이름이 “철”인데 영원한 기계 생명을 찾아가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에 대한 오마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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