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 인간의 본능을 사로잡는 세계관―캐릭터―플롯의 원칙
전혜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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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서평_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_전혜정_웅진 지식하우스


또렷하다. 합평을 했을 때의 기억.

유명 방송국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가님의 대본을 본 작가들은 합장하듯 칭찬했다. 감탄에 감탄의 감탄으로 끝. 그에 비해 나는 최악이었다. 한없이 구겨졌다. 마치 살점이 깎여나가는 느낌이랄까. 마지못해 칭찬하는 어느 감독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창피함이 커져 수치심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좋아졌다. 좋게 말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일 뿐.

합평을 하면 늘 그런 식이었다. 문제점에 대해 시원하게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수정은 나의 몫일 뿐. 아무튼 인내와 고통의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나는 작법 책을 달고 살진 않지만 지금도 창고라고 부르는 내 방엔 책이 꽤 많다. 그렇다고 연구하는 것처럼 열심히 보는 것도 아니지만 대본을 쓰다가 막힐 땐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찾아보는 정도였다. 그렇게 작법 책이 많은데도 실력이 제자리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결국 내가 쓴 대본은 지금도 최악인 상태다. 박제되어버렸다.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며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다. 사실 어떤 작법 책이건 기대 반, 실망 반으로 바라본다. 소위 누구나 알법한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던가, 핵심 진액은 최소한으로 하고 설명 위주의 딱딱한 내용뿐이라던가. 실질적인 방법이 없는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저자 전혜정은 스토리 작가이자 연구자, 그리고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 소설 창작전공 교수. 그렇지만 록 음악과 장르물,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라고 한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에 들어가 시각디자인 및 영상 디자인을 전공했다.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개인 사업자를 내고 스토리 창작을 시작했으며 단편 소설로 데뷔했다. 콘텐츠 기획 PD를 거쳐 스토리텔링 회사를 설립했고 SF 단편 영화 제작 및 시나리오에 참여했으며 다수의 웹툰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현재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혜정 교수의 강의는 스토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강의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특히 이 책의 장점은 내 스토리의 문제점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물, 배경, 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캐릭터, 플롯, 세계관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에서부터 시작해서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적 특징을 분석하며 이해를 돕는다. 사실 스포일러가 있어서 모르는 작품은 건너 뛰었다. 이 부분은 독자의 선택적인 부분이기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하지만 아는 작품이 나왔을 땐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주인공의 결핍을 정의할 수 있는 임상심리학자 제프리 E. 영의 스키마 치료 이론에 관한 것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일단 완독을 했지만 내가 쓰려는 스토리와 비교해 보며 이 책이 제시한 방법들을 적용해 볼 생각이다. 정말 작가 지망생부터 콘텐츠 창작자까지 두루 도움이 될 책이기에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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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새의 일일 - 이 망할 게으름이 나를 구원할 거야
큐새 지음 / 비에이블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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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서평_큐새의 일일_큐새_비에이블

나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 만사가 귀찮아진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면 유튜브 쇼츠 영상에 익숙해진 악영향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조금만 길어도 지루해 하고 포기하게 돼버리는 그런 심리 말이다. 근본적으론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현실에서 해결책을 딱히 못 찾고 있는 현실이다. 이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큐새 작가가 그린 큐새의 일일이 마치 유튜브 쇼츠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 같았다. 물론 물리적인 책이라는 존재는 어쨌든 내가 읽고 상상해야 하지만 길지 않아서 좋았다.

큐새 작가는 선천적 회피형 인간에서 만성적 회피형 인간이 되어버린 인간이라고 한다. 게으름을 원동력 삼아 얼렁뚱땅 어떻게든 나아간다. 오늘도 성실함조차 노력 없이 얻고 싶은 느긋한 메일을 꿈꾼다.

아담한 크기의 책에 작가만의 개성이 가득한 그림이 괜스레 웃음 짓게 만든다. 큐새 작가는 딸아이가 있는 아이 엄마였으며 그녀의 개인 SNS에 들어가 보면 전시회도 한 적이 있으며 짧은 만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만화 자체는 뭔가 심플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깊으면서도 웃음 짓게 만들고 때로는 시원하게 슬프게도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내용 또한 길지 않기에 굳이 처음부터 볼 필요 없이 목차를 보고 끌리는 제목을 찾아보기만 하면 된다. 거기엔 작가가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만화에 녹아 있어서 공감도 된다.

적어도 요즘 만화는 이런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난해하지도,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으며 길지 않은 이런 만화가 좋다. 뭔가 따분하고 심심할 때 딱 펼쳐보면 웃을 수 있는 그런.

그래서 더 추천하고 싶은 만화다. 사실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서 전시회를 가지 못했는데 나중에 또 열게 되면 한 번 가볼 생각이다. 작가는 삶의 경험을 통해서도 이 만화를 그렸겠지만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지 하는 생각이 또 든다. 세상을 너무 복잡하게만 사는 것도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때로는 가가 얘기하는 ‘이 망할 게으름이 나를 구원할 거야’라는 것처럼 혹은 ‘미루는 인생이 선사하는 느긋한 기쁨에 관하여’처럼 단순하고 천천히 갈 필요도 있다. 이 책을 통해 크게 웃으며 스트레스도 풀고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줄 참이다. 그래서 더 추천하고 싶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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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서울역입니다
근하 지음 / 여섯번째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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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이번 역은서울역입니다._근하_여섯번째 봄

정치적인 얘기를 하자면 진보당은 행정 수도를 세종시로 완전히 옮길 계획을 추진한다고 한다. 다만 여전히 보수당은 수도 이전은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는 진작에 옮겼어야 하는 게 도시 발전의 불균형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물론 지극히 내 생각일 뿐이다. 정치적인 얘기는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지만 근하 작가가 쓰고, 그린 ‘이번 역은 서울역입니다’를 보며 아직도 ‘인 서울’하며 지방에서 자란 젊은 청년들은 서울에서 살 길 희망한다. 문화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모든 면에서 지방보다는 서울이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솔직히 현실적인 문제다. 작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지방에 사는 고등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면서 상경하는 모습을 그렸다.

근하 작가는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서양화를 공부했다. 현재 대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사랑하는 이모들>, <지역의 사생활 99:달구벌 방랑> 등이 있으며 그린 책으로 <원통 안의 소녀>, <내 기분은 여름이야>, <꿈에서 만나> 등이 있다.

내가 이 만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학생이었던 때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경화 여자 고등학생 박시영처럼 서울을 참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래서 전공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앞두고 서울에서 지방을 오가며 레슨도 받은 기억이 있다. 대학에 가고 나서도 좋아하는 일 때문에 주말만 되면 서울을 갔으며 대학 시절에도 수업은 몰아서 하고 목요일 오후부터 금, 토, 일요일은 서울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위험천만하게도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말이다. 그만큼 서울은 내게 특별했다. 하지만 시경은 나처럼 처음부터 서울을 꿈꾸진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오빠에 비해 부모는 경제적으로 금전적으로 밀어주지 못했으며 최소한의 용돈을 받았다. 그마저도 장학금을 받거나 부족한 부분은 알바를 하며 버텨야 했지만 한계였다. 어쩌면 시경이 서울로 가게 된 건 하나의 탈출이었지 않았을까? 그녀는 좋은 성적으로 서울에 갔지만 행복하기보다는 현실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학교에 가서도 취업을 위해 공부해야 했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몇 명 있었지만 그마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스스로 버텼다. 그래서 그런지 웃는 얼굴이 아니다. 그렇다고 활짝 웃는 것도 아니고 사는 대로 사는 모습이다. 시경이의 모습은 마치 현시대를 살아가는, 아주 처절하게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이 책임 오롯이 사회라고만 생각하기도 그렇고 결국은 자신이 헤쳐나가야만 하는 거 같다.

이 만화의 표지 그림에서부터 빛나는 푸른 색깔이 밝기보다는 외롭고 쓸쓸하며 우울함이 느껴졌다.

만화책을 다 읽고 나니 그냥 생각이 없었다. 무언가 완전하게 해결이 된 것 같진 않지만 그대로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 끝나지 않은 현실을 또 이어가는 청년 박시경의 모습에 동정하게 되었다. 서울이라고 해서, 서울에 산다고 해서 행복 그 자체가 아닌 더 큰 세상과 마주하며 이겨내야 하는 어떤 큰 책임감이 또 느껴진다. 물론 이런 세세한 면까지 작가가 생각하며 만든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모든 건 독자의 판단과 평가이기에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의 도움도 받았다고 했으며 옛 시골집에 살던 추억 또한 이 책을 만들며 떠올렸다고 하는데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는 가족인 것 같다. 그것이 어떤 감정이 되든 세상에 내가 태어난 이상 가족은 혈육으로 둘러져 있기 때문이다. 싫어도 가족이고, 좋아도 가족이란 말도 맞는 것 같다.

이 만화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으며 아울러 어린이부터 다 큰 어른들까지 두루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왠지 다음엔 주제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바뀌지 않을까? 변함없이 대한민국 청년의 현실을 반영하며 동시에 응원해 주고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근하 작가를 응원한다. 작가의 꿈과 독자의 꿈 또한 하나가 되어 이 각박한 세상에서 희망으로 빛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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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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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포기할 자유_이재구_아마존 북스

오랜만에 사나이 울리는 진한 감성의 소설을 읽었다. 웹 소설이 너무나 인기가 있는 세상에서 이 소설은 마치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같은 옛감성 그대로의 멋진 작품이었다. 물론 이런 류의 시대적 특성을 지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정말 많지만 특히나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쓴 느낌이 들었고 머릿속에 영상화가 잘 되어서 몰입감도 있었다. 아마도 시대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가 맞는 듯했다. 요즘 학생들은 그저 신기한 마음으로 읽겠지만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부모 또는 조부모 세대들은 눈물 어린 마음으로 감동받을 소설이다.

이재구 작가는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작가를 꿈꿨다. 동시에 축구 선수가 되고자 했다는데 마치 문무를 겸비한 선비 같은 느낌이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수천권 읽었으며 피보다 이념, 이념보다 돈을 좇는 현대인들의 속성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사단법인 「국경없는 학교짓기」 단체를 설립하고 아시아 국가에 어린이를 위한 작은 학교를 설립했다. 쓰는 행위를 통해서 치유와 평화를 얻기 위해 늦은 나이에 시와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단순히 옛날 소설이라고만 생각하기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복합적 내용을 전달하는 소설로 보였다. 시대적 특성을 모른다면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당시 사건이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며 읽는 게 도움이 된다. 그 시절엔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이 살기가 참 빠듯했을 것 같다. 학업의 꿈을 가지고 있다 해도 형편이 좋지 못하여 학업을 더 하지 못하고 농사일을 돕는다거나 혹은 공장을 나가서 노동 일을 하여 집안에 도움을 주는 그런 안타까운 인생이었을 듯하다. 이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꿈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에게 선택도 할 수 없이 가난한 현실을 따라야만 하는 사회적 압박은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았다. 하지만 현실과는 다르게 꿈을 위해서 과감히 새로운 지역으로 떠났다. 그 당시는 부모의 말이라면 감히 거역할 수 없던 시대였겠지만 이런 도전적인 행동을 통해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에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고 나아간다는 점이 멋졌다. 그래서 인생도 이렇게 실천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걸 느꼈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을 보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물흐르듯 이어지는 문장이 압권이다. 시대를 아우르는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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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외 그림, 황보석 외 옮김,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 미메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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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뉴욕 3부작_폴 오스터_미메시스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과연 이 천재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과연 나라는 인간은 무엇을 느낀 것일까? 재미와 감동은 있었나? 아,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었나? 모르겠다. 어렵다. 그렇지만 끝까지, 기어코 읽어내고야 말았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던 이끌림과 매력이 있었기에.

폴 오스터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시인,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다. 1947년 2월 3일 미국 뉴저지 주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도회적 감성성이 풍부한 언어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우연의 미학>을 담은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해 널리 사랑받아왔다.

작가의 외모를 얘기하는 것이 실례인 건 알겠지만 폴 오스터는 진짜 잘 생겼다. 특히 젊은 시절 그의 흑백 사진을 봤는데 큰 눈에 오뚝한 코와 살짝 웃음기가 느껴지는 계란형 얼굴은 미남 그 자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뉴욕 3부작’이 드디어 만화로 국내에 나왔다. 사실 폴 오스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의 소개 글을 읽었을 땐 뭔가 대작가 ‘프란츠 카프카’스러운 느낌이 왔다. 이 소설은 409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분량에 무려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제작되었다. 블랙 앤 화이트 컬러의 조화로 그려진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그의 작품은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있는 방 이렇게 세 편의 중편 만화로 나누어져 있다. 만화를 볼수록 내용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다. 다 보고도 무엇을 본 건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물론 대략적인 건 안다. 첫 번째 소설인 ‘유리의 도시’ 같은 경우 한 남자가 어느 날 폴 오스터라고 묻는 전화를 받게 되고, 처음엔 아니라고 했다가 결국 사칭하며 탐정이 된다. 이후 한 여자가 남편의 아버지를 몰래 염탐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그에게 남편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사실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알 수가 없었다. 혹은 사실인데 읽고 있는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주인공은 의뢰인이 부탁한 대로 미행도 하고 여러모로 알아보며 그와 만나서 철학적인 얘기도 나눈다. 그러고는 사건의 진실로 점점 다가서게 되는데. 과연 이것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도 끝까지 봐야 알 수 있다.

2번째 작품인 ‘잠겨 있는 방’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뉴욕 3부작’은 세 가지 이야기지만 첫 번째 소설에선 작가 자신의 이름이 나오기도 하고 가끔 앞전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이 다시 등장해서 만나기도 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심각하게 섞이는 건 아니지만 작가 특유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인간 실존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도 괜찮았고 어느 부분에선 필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인 걸요.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키지요. 어떻게 보면 작가는 자기만의 삶이 없다고 할 수도 있어요. 어딘가에 존재할 때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유령이 또 있군요.

바로 그겁니다.

왠지 묘한 이야기군요.

묘하지요. p195

결국 인생이란 우연한 사건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사건들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p280

이야기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생겨난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한 말이다. 어쩌면 경험도 마찬가지라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p284

만약 내가 작가라면 폴 오스터처럼 쓰고 싶어도 감히 함부로 흉내 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그의 엄청난 정보 지식의 양도 대단했지만 천재적인 감각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막연히 ‘뉴욕 3부작’에 대해 분석하려 덤벼들면 곤란할 듯하다. 그저 세계적인 고전 문학 작품을 읽어본다는 생각으로 재미를 찾는 게 맞지 않을까?

이 만화에선 특유의 그림체로 작가의 소설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3번째 작품인 ‘잠겨진 방’의 끝부분은 그림이 위, 아래로 뒤바뀌기도 하며 글자를 그림처럼 만들더니 읽기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역시 어디까지나 작가의 의도적이며 예술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뉴욕 3부작’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독하다. 외로운 삶 속에서 자기 존재를 찾는 과정을 그린 소설 같다. 폴 오스터는 글을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는 순간 그건 내 것이 아니라 독자의 판단과 선택이라는 뜻으로 얘기했다. 그의 소설은 마치 잘 만든 와인처럼 다양한 맛을 내며 다시 읽어도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는 명작이었다. 물론 상업적인 웹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겐 다소 난해하고 어려울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보다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소설의 예술적 매력을 찾는 독자에겐 폴 오스터의 소설이 딱일 것이다. 그래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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