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뇌 - 일상에서 발견하는 좌우 편향의 뇌과학
로린 J. 엘리아스 지음, 제효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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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기울어진 뇌>를 처음 접했을 때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된 책이다. 특히 띠지 속 "우리 뇌는 왜 중간을 모를까?"의 질문을 보니 일상 속에서 무심코 반복하는 행동들이 떠올랐다. 왜 항상 같은 손으로 글씨를 쓰고, 같은 발로 공을 찰까? 물건을 잡을 때조차 같은 손으로 잡곤 했던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이런 궁금증들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으며 책을 읽자마자 흥미롭게 펼쳐지는 좌우편향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를 완전히 이 책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행동 신경과학계의 권위자인 로린 J. 엘리아스 교수는 인간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좌뇌와 우뇌의 기능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설명한다. 뇌의 편향성은 일상 속 행동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시선, 운동 경기에서의 반응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익숙한 일상을 뇌과학이란느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우리의 선택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단순하고 반복되었던 행동 하나에도 인간 뇌의 복잡하고 정교한 매커니즘이 숨어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인간의 행동은 겉보기엔 대칭적이지만 실제로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우리는 주로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아기를 안을 때는 왼팔을 사용하며, 셀카를 찍을 때는 왼쪽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인과 키스할 때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다니. 도대체 왜 이러한 행동의 편향성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현상을 좌뇌와 우뇌의 기능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좌뇌는 언어와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며, 우뇌는 감정과 직관을 처리한다. 이로 인해 우리의 행동은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말할 때는 좌뇌가 활성화되어 오른손을 더 많이 사용하고, 감정을 표현할 때는 우뇌가 작용하여 왼쪽 얼굴을 자주 내민다. 이러한 뇌의 편향성을 이해하면 예술, 광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의 동선을 설계할 때 사람들이 주로 오른쪽으로 회전하려는 경향을 고려하거나, 광고에서 출연자의 얼굴 방향을 신경 써서 호감도를 높이게 하는 게 이러한 예에 속한다. 책은 이러한 좌우 편향의 원인과 사례를 뇌과학적 연구를 통해 아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특히 몸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뚜렷한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연인과의 키스에서도 이러한 우측 편향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 3분의 2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편향성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저자는 이러한 우측 편향이 단순한 문화적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태아 시기부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연인과의 키스와 부모와 자식간의 입맞춤은 다른 방향성을 보인다. 연구진이 인스타그램, 구글 이미지, 핀터레스트에 게시된 부모와 아이의 입맞춤 사진을 분석한 결과, 부모와 자식이 입맞춤을 할 때는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반면, 같은 방식으로 수집한 연인의 키스 사진에는 여전히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입맞춤의 방향이 단순히 인간의 몸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편향성 때문이 아니라, 입맞춤의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인과의 키스는 친밀한 애정 표현으로, 시상하부와 해마 같은 감정 관련 뇌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기울인다. 반면 , 부모와 자식간의 입맞춤은 애정 표현이긴 하나, 행동 조절과 움직임과 관련된 뇌 부위가 더 많이 관여하여 왼쪽으로 기울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아기를 안을 때 대부분 왼쪽으로 안는 현상 역시 너무 흥미롭다. 놀라운 건 이 편향성이 인간 뿐만 아니라 원숭이와 침팬지와 같은 동물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나 문화적 영향이 아니라, 진화적 관점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적응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아기를 왼쪽으로 안는 경향성은 부모와 아기 사이의 애착과 긍정적 관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기를 왼쪽에 두면 우반구의 감정 처리 기능이 활성화되어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우울증이 있는 엄마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부모를 아기를 왼쪽으로 안을 확률이 낮다는 점도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한다. 흥미롭게도 이 경향성은 인종적 편견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탈리아 연구에서는 흑인에 대핸 편견이 강한 백인 여성들은 흑인 인형을 안을 때 왼쪽으로 안는 비율이 낮게 나왔다고 한다. 이는 아기를 왼쪽으로 안는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애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기를 왼쪽으로 안는 편향성은 진화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 유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일상적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뇌의 매커니즘을 탐구하며 단순해 보이는 행동 하나에도 뇌과학적인 이유가 있음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 행동 속 편향성을 뇌과학적으로 풀어내며, 이러한 편향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진화적, 신경과헉적인 이유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25년간의 연구를 통해 다양한 사례와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의 행동이 왜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지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책은 일상에서 무심코 반복하는 행동 속에도 뇌의 편향성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연인과의 키스, 아기를 안는 방향 등 일상 속 우리의 움직임들이 모두 좌뇌와 우뇌의 특성에서 기인하여 편향성을 띄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뇌과학적 통찰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도 활용가능할 것이다. 이 책으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뇌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일상 속 행동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뇌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이 책은 뇌과학적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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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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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속 인물들의 서사가 호기심을 자극하여 읽게 된 책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각각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그리고 제목이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인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 책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려는 인물들이 미스테리와 어우러져 흡인력 있는 서사를 펼치고 잇다. 특히 19세기, 계급과 성별이 족쇄와 낙인으로 작용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열여섯의 다모 설은 인천 흑산도 출신의 노비로, 한성부 포도청으로 팔려와 수사관 한도현을 모시며 살인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정조 승하 이후 혼란스러운 조선,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천주교 탄압이라는 시대적 배경속에서 설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찾아나간다. 활을 제대로 다룰 줄 알며 똑똑하고 기개 넘치는 여성 수사관 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당대의 편견과 싸우는 용감하고도 가슴 뜨거운 역사를 담고 있어 이야기에 완전 몰입하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1800년 정조가 승하한 직후 혼란스러운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순왕후의 수렴 청정과 노론의 권력 장악, 남인 세력 숙청과 천주교 탄압이 뒤얽힌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조가 암살당하였다는 소문이 사실인지를 묻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한양 거리 한복판에 잔혹하게 살해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다모인 설은 남성 수사관을 대신해 그 여인의 시체와 마주하여 시체를 뒤집는다. 그렇게 범죄 현장 조사원으로 동원된 다모 설은 사건을 수사하는 한성부 포도청의 유능한 수사관 한도현과 함께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게 된다.


노비 신분으로 한양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 열여섯 살의 소녀 설은 넘치는 호기심과 잔꾀, 날카로운 추리력 덕분에 한도현의 수사에 없어서는 안될 조력자가 되어간다. 설과 한도현이 여인의 시체를 마주하고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당대의 복잡한 정치상황과 사회적 갈등을 배경으로 숨가쁘게 펼쳐지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설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수사관의 조력자가 아닌,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노비로 태어나 팔천에 속한 설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비참한 삶 속에서도 설은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 억압을 깨부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수사의 과정은 어린 여자 노비인 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얼굴 한 쪽에는 '계집종'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고, 찾상을 나르거나 마당을 쓰라는 무시와 면박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설은 또박또박 힘주어 말한다. "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요? 활을 제대로 들 줄 아는 여자요. 본인이 표적을 맞힐 능력이 없다고 나를 탓하지 마세요.(p119)"라는 이 당찬 말에서 설이라는 인물이 가진 용기와 당당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범인이 시체에 남긴 잔인한 표식에 분노하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설의 집념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다. 무장한 악인들에게 맞서 몸을 던지고, 심지어 호랑이와 맞닥뜨리는 위기의 순간에도 설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타인을 구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행동으로 신념을 증명하는 '행동파' 주인공의 면모를 보여주며,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러한 설의 독보적인 캐릭터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으로 작용한다. 단순한 살인 사건의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수사물이 주인공을 넘어, 그 시대의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설의 모습은 이 책 자체에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던 중 설은 위기의 순간에 한 종사관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 은혜를 잊지 않은 한 종사관은 사건이 해결되면 설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가는 사건의 실마리들은 설을 혼란에 빠뜨린다. 증거들이 가리키는 방향과 의심스러운 인물들 속에서 설은 한 종사관을 향한 중심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자신을 믿어주는 한 종사관에게 끝까지 충심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설은 눈 앞에 나타나는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한 종사관을 끝까지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단순한 미스테리 소설을 넘어 역사 속 억압과 차별을 딛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다모 설의 용기와 신념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연대와 공감은 시대와 계층을 넘어서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정순왕후와 강완숙, 주문모 신부 등의 등장 또한 작품에 현실감을 더하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혼란과 억압의 시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나아가야 할 용기와 연대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옳은 길을 걸으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 책은 오랫도록 기억 속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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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이 발견한 반 고흐의 시간 - 고흐의 별밤이 우리에게 닿기까지, 천문학자가 포착한 그림 속 빛의 순간들
김정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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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시선으로 반 고흐의 그림을 바라본다는 독특한 접근 방식이 너무 신선하게 다가와서 읽게 된 책이다. 그렇기에 제목과 소제목에서 느껴지는 신선함과 탐구 정신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역시나 반 고흐의 그림 속 밤하늘을 천문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해가는 내용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이 책은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그의 여러 작품 속 밤하늘을 분석하며, 그림이 그려진 시점과 당시 밤하늘의 모습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기존 연구를 뒤집는 새로운 시각과 천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불멸의 화가' 반 고흐를 한층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이 책은 반 고흐의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이 언제 그려졌고, 그림 속에 그려진 별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천문학적 시선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특히, 그림 속 밤하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동안 정설로 여겨졌던 사실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는 과정은 흥미를 자아낸다.


1984년 미술사학자 앨버트 보임이 <별이 빛나는 밤>의 작화 시점을 1889년 6월 18일에서 19일로 제안했고, 이후 연구자 얀 휠스케르에 의해 '6월 19일'로 확정되어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반 고흐 연구자들을 놀라게 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며,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작화 시기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천문학적 분석을 통해 저자는 그림 속 별자리가 기존 연구에서 주장된 '양자리'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고, 작화 시점 또한 6월 19일이 아닐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직접 답사를 통해 현지를 촬영하고, 그림 속별자리를 분석하기 위해 LMT 시건 변환과 1888년 9월 27일로 변환한 시간을 정리한 후, 이를 상세한 설명화 함께 비교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하나씩 밝혀나가는 과정이다. 그동안 학계의 정설로 굳어져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사실들이 하나둘 뒤집히는 과정은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이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며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천문학자의 시선이 이토록 세심하고 과학적이다는 점이 놀라웠다. 밤하늘과 별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현지의 실제 풍경과 대조하며 반고흐가 그린 별과 달의 위치를 하나씩 검증해 가는 과정은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듯한 쾌감까지 느끼게 하였다. 이러한 접근 덕분에 반 고흐의 작품들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고,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와 함께 하나씩 별과 밤하늘의 비밀을 밝혀가다 보니 <별이 빛나는 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감상적으로만 다가왔던 반 고흐의 별빛이 사실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고, 그 속에 담긴 천체의 배치와 시간의 비밀이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저자는 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무려 6년에 걸쳐 검증을 거듭한 끝에, 그림 속 별자리가 기존 정설처럼 '양자리'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에 따라 그림을 그린 날짜도 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였던 6월 19일 아닌, 7월 하순경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논증한다. 이러한 과정은 <별이 빛나는 밤> 뿐만 아니라 반 고흐의 다른 작품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며, 발상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책을 읽어가며 느낀 것은 반 고흐를 단순히 '광기의 천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했는가 하는 점이앋. 저자는 반고흐가 남긴 2000여 점의 그림과 903통의 편지를 비롯해, 전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며 천문학적 관점에서 그림을 해석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반 고흐는 그저 감상적 화가가 아니라, 별과 밤하늘을 집요하게 관찰하여 이를 화폭에 담으려 했던 탐구자로 다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반고흐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110여 점과 우주를 담은 천체사진, 다양한 그림 자료 60여 컷이 포함되어 있어 독자가 직접 밤하늘과 실제 하늘을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빈센트의 시야를 재현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진짜 밤하늘을 보여주는 부분은 단순한 미술 감상을 넘어 과학적 사실로 이어진다.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하여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천문학적 기본기를 쌓을 수 있도록 구성한 저자의 세심함은 이 책의 또하나의 매력이다.


이 채은 반 고흐의 그림을 천문학적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흥미로운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반 고흐 작품 속 태양과 달, 별과 행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일상 속 천문학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었다. <론강의 별밤>, <밤의 카페테라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계절별 별자리 찾기, 북극성의 위치, 달의 상식 등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며, 독자들이 직접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는 팁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한국 독자들을 위해 <별이 빛나는 밤> 속 하늘과 같은 풍경을 우리나라에서 언제 볼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과학적 탐구를 통해 반 고흐의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이 책은,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반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 그리고 하늘의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이 책을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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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짜리 숲 트리플 30
이소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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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부터 묘한 매력과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이소호 작가의 첫 연작소설로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서른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항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저자는 이번에는 블랙 코미디 SF 소설이라는 색다른 장르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저자는 자신의 시적 세계를 확장해온 과정 속에서 독특하고 대담한 목소리를 유지해왔다. <캣콜링>에서는 가장 내밀한 공간의 폭력을, <홈 스위트 홈>에서는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단단한 고난을 거침없이 폭로하며 독자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이 책에서도 그 특유의 감각은 여전하다. 멸망해가는 지구라는 배경 속에서 자유와 억압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정들을 블랙코미디적 시선으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그동안 단편집을 통칭하여 '소설'로 명명해왔지만, 이번 작품부터는 구성과 세계관의 유기성을 고려하여 '연작소설'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도입했다. 세 단편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긴 이야기를 읽는 듯한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멸망의 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유를 꿈꾸지만 그 자유마저 제한 되는 극한 상황속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감정들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섬세하게 다가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슬픔과 희망을 조명하고 있다.


먼저 이 책에 제일 처음 실린 <열두 개의 틈>은 이 작품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설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하늘에 두 번째 달이 뜨면서 세계는 점차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 변환느 거대한 물리의 법칙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 방식을 사소하지만 치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하루를 낮과 밤으로 나누지 않는다. 24시간의 하루와 4계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자전축이 무너진 지구의 하루는 무려 436시간이라는 긴 시간으로 변했다.


그 끝없는 태양빛 아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눈을 덮을 수 있는 모든 옷을 뒤집어쓰고 견뎌낸다. 하지만 지독한 광명과 더위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은 새로운 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 신은 다름 아닌 밤을 더 당겨온다는 '밤의 신' 이감마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감마가 사실은 세페우스자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천문학자라는 소문이 떠돌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절망 속에서 밤이라는 작은 희망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감마를 믿는 이들뿐 아니라, 인공위성의 말을 전하는 촉이 예리한 인플루언서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믿음을 지닌 채 열두 개의 정거장(에어포켓)에 흩어져 살아간다. 세상이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인간은 언제나 혼자가 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한다. 이처럼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믿음을 찾고, 무너진 세상 속에서도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플루언서들은 앞으로 에어포켓에서는 사람들이 살 수 없다며 48시간 이내로 필요한 짐을 꾸려 낮만 계속되는 '데저트랜드'와 밤만 존재하는 '아이스랜드' 중 한 곳으로 이동하라고 안내한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이자 소꿉친구인 이린과 아진은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한다. 이린은 아이스랜드로, 아진은 데저트랜드로 떠나며 두 친구의 삶은 이제 극명하게 갈라지게 된다. 인플루언서들의 말에 의해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판단이 소셜미디어와 여론에 의해 쉽게 휘둘리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 씁쓸함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선택지 자체도 너무 극단적이라 더 인상적이다. 낮만 계속되는 세상과 밤만 계속되는 세상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은 인간의 생존 조건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앞으로의 이야기에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백야와 극야라는 양극단의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설정 자체가 인류의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하며,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뒷부분에 이린이 '세상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는 장면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지구도 영원할 줄 알았지만 두 번째 달이 떠오르며 세상은 뒤바뀌었고, 예전부터 믿어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새로운 신을 믿게 된 상황은 낯설고도 두렵다. 그러나 이린은 몰랐다고 해서 모든 것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반만 틀린 것일지 모른다고. 마치 아진과 자신이 선택한 서로 다른 길처럼 말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절망과 희망의 경계 속에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선택의 무게를 탐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의 두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세 평짜리 숲>은 데저트렌드에 입상한 아진의 생존 투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데저트렌드는 낮만이 지속되는 극단의 공간이자, 동시에 황금만능주의와 자본의 논리가 극대화된 사회다. 그곳에서 돈이 곧 생존을 의미하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삶의 질이 극명하게 나뉜다.


인플루언서들은 데저트랜드로 떠날 사람들에게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챙기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그곳은 글로벌 기업 '데저트랜드'가 세운 자본주의의 결정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햇빛을 차단한 궁궐 같은 건물 '반타빌리지'에 거주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독성 콘크리트를 얼기설기 엮은 건물에 모여 살아야 한다. 특히, 높은 층일수록 가난의 정도가 더 깊은 역설적인 구조가 인상적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더 많은 시간을 걸어야 하기에 노동력이 고스란히 삶의 척도가 된다.


아진은 바닷속 광케이블을 훔쳐내는 '데드샌드' 조직에 가담하며 자신의 방 평수를 조금씩 늘려간다. 가족의 기대와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반타빌리지에 들어갈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막상 반타빌리지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현실에 부딪치자, 아진은 조직 보스의 방을 빼앗겠다는 극단적인 결심을 한다. 아진이 택한 이 방법은 잔인하고 파격적이지만, 동시에 블랙코미디 특유의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아마도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거 웃어도 되나?' 싶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창백한 푸른 점>은 극야의 대지 아이스랜드를 배경으로, 획일성과 통제 속에서 살아가는 이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이스랜드는 기업 'YK건기'가 세운 완전 공동체로, 모든 주민이 동일한 컨테이너에서 똑같이 일하고 생활해야 한다. 규칙을 어기면 얼어 죽는 형벌을 받기에 사람들은 자유롭게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린은 친구 케인과 함께하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한다.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이린은 이곳의 균열을 발견하며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특수복과 식량을 챙겨 떠나는 이린의 여정은 끝없이 회귀하는 과거와 미래 속에서 인간이 지키고자 하는 본질을 상징한다. 이 책의 제목이자 표제작인 <세 평짜리 숲>은 이린이 떠나기 전 챙긴 아진의 책이다. 이 제목이 함축하듯, 소설은 시작과 끝이 뒤얽혀 있는 회귀의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불확실성을 탐구한다. 세상의 끝에서 이린이 찾고자 한 '무엇'은 결국 인간이 가장 끝까지 붙잡고 싶은 희망과 삶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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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환상 여행 - 궁궐에 숨은 73가지 동물을 찾아서
유물시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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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처마 끝이나 다리 밑, 굴똑 옆에 있는 동물 조각상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 작은 조각상들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면 이 책은 더 없이 흥미로운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경복궁 곳곳에 숨어 있는 100여 마리의 동물들을 따라가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궁궐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각 동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불길한 기운을 막고 궁을 수호하는 '순라군'의 역할을 맡은 상징적 존재로, 그 자리에 놓인 이류를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여정은 경복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이 책은 '경복궁 동물 순례 지도'라는 이름으로 경복궁의 지도를 수록하여 궁궐의 수문장처럼 경복궁 입구를 지키는 해치부터, 북쪽 끝에 자리한 영추문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동물이 어디에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책의 시작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그 앞을 지키는 '해치'에 관한 이야기로 열리며, 그 자체만으로도 경복궁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네 차례나 다시 세워진 광화문은 조선의 건국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역사 속에서 수차례 사라지고 복원되기를 반복했다. 특히 2023년 10월, 고종 때의 모습을 바탕으로 복원된 월대와 함께 해치 석상의 본래 자리까지 되찾으며, 경복궁의 역사적 공간은 한층 더 풍성해졌다. 


광화문 앞에서 처음 만나는 해치는 위엄 있는 인상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면 익살맞고 친근한 표정을 발견하게 되는 존재다. 선악을 판별하는 상상 속의 동물로, 조선시대에 궁에 들어서는 이들이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다. 오늘날엔 많은 사람들이 해치 옆에서 사진을 남기며 그 곁을 지니지만, 해치가 지닌 싶은 상징성과 역사적 위치는 여전히 경복궁의 문기로서 굳건히 남아 있다.


그리고 해치 외에도 3문 천장에는 봉황, 용마, 거북 같은 동물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놀라울 따름이다. 경복궁을 몇 번이나 갔음에도 이태껏 이 책에 담긴 동물들을 다 보지 못했음이 안타깝게 다가올 정도로 신비로운 동물들이 참 많음이 놀라웠다. 그리고 고개들 들어 보면 보이는 지붕 끝을 장식하는 용의 형상과 '감괘' 문양에 담긴 깊은 의미와 왜 경복궁의 남문에는 물을 상징하는 장식이 필요했는지, 옛사람들이 불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어떤 상상력과 지혜를 발휘했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너무 쏠쏠하다.


책 속 동물들 가운데 특히 인상 깊은 존재는 광화문을 지나 금천 위 영제교를 지키는 수호동물, 바로 '천록'이다. 비늘로 덮인 몸, 이마에 난 뿔, 용의 머리와 말의 몸, 기린의 다리까지. 현실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이 상상 속 동물은 외부의 악운과 침입을 막는 변사의 상징으로, 예로부터 다리나 무덤, 궁궐 입구에 놓이던 존재다. 조선 후기 학자들의 기록을 통해 '천록'이라는 이름이 확인되었고, 그 의미는 '하늘이 내려준 복록'으로 왕의 자리, 곧 정통성과 번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제교에는 총 네 마리의 천록이 놓여 있는데, 그중 하나는 유독 혀를 날름 내밀고 있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오늘날에는 이 모습을 본떠 '메롱해치'라는 친근한 캐릭터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익살스러운 모습 뒤에는 아픈 역사도 숨어 있다. 일제강점기 경복궁이 훼손되던 시기에 입술이 파손되어 혀가 길게 드러나 보이게 된것이다. 본래는 살짝 혀를 내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천록은, 지금은 마치 메롱하듯 익살스럽지만, 오히려 그 천진한 표정 속에서 경복궁이 겪은 시련과 회복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듯하다.


천록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위엄보다는, 오히려 궁궐을 찾는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친근한 첫 인상으로 기억된다. 경복궁의 초입에서 방문객과 처음 마주치는 이 동물은, 궁궐의 문턱을 훌쩍 넘게 해주는 반가운 안내자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경복궁 속 동물들의 이야기들은 단지 과거의 유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의 궁궐을 넘어 조선의 시간과 상상력이 살아 숨쉬는 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유물시선'팀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혹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73마리의 동물들을 섬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생생하게 되살려 생동감까지 함께 전한다. 움직임과 표정을 제대로 포착해낸 그림들은 각 동물에 담긴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람들의 바람과 염원들이 어떻게 궁궐의 디테일에 녹아들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의 돌다리, 지붕, 천장 깊숙한 곳까지 이토록 다양한 동물들이 의미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몇 번이고 보았던 경복궁 자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이제 경복궁은 더이상 멀리서 바라보는 유적지가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과 그들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환상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조선의 이상세계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과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가면서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지켜온 시간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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