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 - 우리는 왜 강남에 주목하는가
김시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살핀 강남, 그 땅과 사람의 이야기'라는 띠지 속 문구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만큼 왜 이토록 많은 한국인들이 강남에 열망을 품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단지 집값과 학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책은 그런 질문에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다가가며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강남의 진짜 얼굴에 조명한다.


이 책은 인문학자의 발걸음을 따라 강남이라는 세계에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저자는 강남 3구 곳곳에서 살아본 경험은 물론, 두 발로 누빈 답사 현장과 새롭게 발굴한 문헌 자료들을 바탕으로, 강남이라는 공간의 실체를 치밀하게 복원해내었다. 철거민부터 수십억 원대 자산가에 이르기까지, 강남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아기를 통해 '강남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난개발의 흔적 속에서 어떻게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는지 강남적 삶의 양식이 현대 한국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살고 싶은 강남'과 '사고 싶은 강남' 사이의 간극을 짚고 앞으로 강남이 한국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를 예리하게 탐색하고 있다. 인문적, 경제적 관점을 넘나드는 다양한 접근을 통해 강남이라는 공간이 지닌 실체와 상징을 보다 깊숙이 이해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남은 굉장히 역동적인 공간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 역동성에 매료되었고, 또 그렇게 매료된 사람들이 지금의 강남을 만들어왔다. 정부와 서울시가 강남 개발의 신호탄을 쏘긴 했지만,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관심이 식은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틈에서 밀려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아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거대한 흐름을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추적하고 있다. 강남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욕망과 갈등, 기회와 불균형이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된 장소다. 인구는 150만 명 남짓으로 전체의 3%에 불과하지만, GRDP, 문화 자산, 교육 인프라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징적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강남의 현재를 ‘성공한 계획’이 아닌, ‘실패한 계획의 산물’로 본다. 대통령도, 서울시장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급 효과가 오늘날의 강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상징이 된 한강변 고급 아파트 단지들은 본래 안보 목적의 ‘방벽’으로 계획된 곳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시선이 남하한 순간, 민간의 열망이 그 자리를 파고들었고, 그 열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영향력이 약해질수록 민간의 열정은 강해졌다는 역설이 강남을 설명하는 핵심이다.


책은 강남 60년의 개발 연대기를 따라가며, 화려한 스카이라인 뒤에 숨은 수많은 맥락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철거민부터 자산가, 도시계획부터 문화 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를 아우르며, 강남이라는 공간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조망한다. 부동산, 교육, 삶의 질 등 어떤 이유로든 강남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해설을 넘어선 통찰의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부동산이나 투자, 교육이라는 일반적인 관심을 넘어서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 말죽거리 신화나 고급 아파트의 성공담 뒤에는 평생 가난하게 살다 한강 나룻배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복근 씨와 같은 이들의 삶이 있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들의 얼굴은 당시 신문에 실렸지만, 사회는 그 기록을 외면했고,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잊힌 삶들을 복원하기 위해 20년 넘게 20세기 중기의 신문을 뒤적이며, 벼락부자가 아닌 평범한 강남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왔고 그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았다. 그렇기에 저자는 그들의 삶은 ‘기록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인문학자로서 그 기록을 다시 꺼내어 강남의 진짜 역사를 되짚고 소개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선이 이 책이 가진 깊이이며, 강남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상징이 아닌 실체로 이해하게 만드는 핵심이라 하겠다.


책의 1부는 이 같은 시선을 바탕으로, ‘강남 이전의 강남’을 다룬다. 1963년, 서울로 편입되기 전의 강남은 수많은 농민들이 채소와 화훼를 가꾸고 돼지를 키우던 저습지였다. 그 땅은 지금과는 달리 물난리를 피하기 위해 언덕에 마을이 들어섰고, 초기 단독주택도 그러한 입지를 따랐다.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와 도로, 지하철이 평지에 들어서며 강남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도시로 바뀌었다. 실제로 2022년에는 강남구 일대가 침수되며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최근에는 강남 4구 지반 아래 빈 공간이 가장 많은 곳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농촌 강남의 과거를 흘러간 것으로만 여겨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그 시절의 흔적을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오늘날 강남에서의 삶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화려한 외양 뒤에 감춰진 도시의 층위를 발굴하고 해석하고 있다. 강남을 단지 ‘부동산 성공 신화’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잊힌 흔적이 중첩된 공간으로 그려내었기에 이 책이 말하는 강남의 의미는 더욱 깊이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책은 강남 개발의 기원을 단순한 도시 확장이나 부동산 정책이 아닌, 안보라는 근본적 요인에서 찾는다. 서울 시민들이 강북을 떠나 강남으로 이동한 배경에는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고자 했던 집단적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강남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를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2장 첫 삽을 뜨다〉에서는 1968년 시작된 영동지구(서초·강남) 개발을 조명한다. 이는 단순한 신도시 건설이 아니라, 6·25 전쟁 재발에 대비한 인구 분산과 군사적 대응 계획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당시 한강변 아파트 단지에는 벙커와 총안이 설치되었고, 그린벨트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도에 선을 그으며 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미국의 베트남전 철수와 함께 정부 계획은 흐지부지되었고, 그 틈을 민간이 메우며 재벌, 농민, 철거민 등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의 열망을 안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겼고, 이는 곧 강남 불패 신화의 시작이 되었다.


〈2부 강남의 탄생〉은 잠실지구(송파구) 개발을 통해 또 다른 강남의 얼굴을 보여준다. 원래 강북의 섬이었던 잠실도는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지리적 중심지로 재편되었고, 1980년대 올림픽·아시안게임 개최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며 국제적 도시로 탈바꿈했다. 오늘날 송파구가 수도권과 충청권을 연결하는 반도체·물류 벨트의 허브가 된 배경이다. 또한 최근에는 박원순 시장 시절 도입되었던 35층 층고 제한이 해제되며, 여의도·강남 일대의 재건축 아파트들이 고층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방부가 대공 진지 설치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는 여전히 강남이 군사 전략적 공간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통해 “말죽거리 신화 뒤에 안보 불안이 깔려 있었다”는 점을 재차 환기시키며, 강남의 본질을 오해할 경우 현재를 왜곡하고 미래도 그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강남의 과거는 현재와 단절된 기억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살아 있는 역사다. 이 책은 강남 곳곳에 남은 삶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책의 후반부인 3부와 4부에서는 ‘아파트’, ‘산업’, ‘교통’을 중심으로 현대 강남의 구조와 흐름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강남의 미래를 조망한다. 재건축에 대한 현실적 제약, 수해에 취약한 지형, 교통 중심의 도시 개발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되, 단순한 기술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강남이 보여주는 도시는 곧 한국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창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강남적 삶의 양식’과 ‘확장 강남’이라는 개념은, 강남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지리적 경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파트+쇼핑몰+수변 공간’으로 요약되는 삶의 양식은 이미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반도체 벨트를 따라 강남의 영향력은 수도권을 넘어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곧 ‘대서울권 시대’, 즉 강남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거대한 도시권이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우리는 ‘강남의 한국화, 한국의 강남화’ 속에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강남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강남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남을 이해하는 일은 단지 한 도시를 아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 책은 그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안내서라 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트 창비청소년문학 135
이라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손에 붕대를 감으며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표지 속 소녀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걸까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이 책은 표지 속 바로 그 소녀, 열일곱 살 하람이 격투기 선수라는 꿈을 찾아 낯선 한국 땅으로 건너와 벌이는 치열한 생존과 성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교사인 아버지와 모든 것에 무관심한 어머니 사이에서 외롭게 자란 하람은 외투 하나 없이 추운 겨울을 홀로 견디면서 스스로의 삶에 맞선다. 그런 하람에게 손을 내미는 이웃들과 친구들의 따스한 환대는 하람을 일으켜 세워줄 뿐만 아니라, 하람의 오랜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주며 따스한 감동을 전하며 하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만든다.


이 책은 시작부터 숨을 멎게 만든다. 한순간의 방심이 연속된 타격으로 이어지고, 링 위에서 쓰러진 채 겨우 숨을 몰아쉬는 격투기의 처절한 현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시작되는 첫 장면은 사실 현실이 아니라 하람의 꿈이다. 그렇게 호되게 쓰러지는 악몽으로 이 책은 시작을 한다. 이 장면은 하람의 격투기를 향한 열망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람이 외투 하나 없이 마주한 한국이 얼마나 낯설고 혹독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세 살때부터 캄보디아에서 자란 하람은 무심하고 매정한 엄마, 그리고 늘 타인을 우선시하는 선교사 아버지에게 벗어나기 위해 약 3,500킬로미터를 날아 낯선 고향 한국으로 향하였다. 스스로의 삶을 바꾸어 보겠다는 당찬 결심과는 달리 공항과 기차역은 머리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황량하고 춥디 추운 현실로 다가온다.


맨몸으로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열일곱 소녀 하람에게, 뜻밖의 손길들이 하나둘 다가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는 "얼어 죽기 싫으면 입어요"라는 말과 함께 노란색 패딩을 내민다. 체육관 관장은 등록비가 없다는 하람의 말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만 하면 된다”며 문을 열어준다. 격투기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무하와 원지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친구가 되어주고, 재수 없는 오지라퍼쯤으로 여겼던 동네 경찰 권 경위는 필요할 때마다 조용히 하람 곁을 지켜준다. 어쩌면 소설 속 장치쯤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하람을 향한 조건없는 온기들이 하람에게 힘을 주는 장면들은 누군가의 다정한 환대가 얼마나 큰 용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하람의 고군분투 속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그녀가 다시 스텝을 밟을 수 있는 힘이 된다. 외롭고 황량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작은 손길들이 모여 하나의 온기가 되며 그 온기는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온기 덕분에 하람은 혼자인 삶에 익숙해지려 애써왔지만, 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을 점점 받아들이게 된다. “씩씩한 사람도, 잘 웃는 사람도, 용감한 사람도 모두 한 점씩은 아픈 구석이 있다”는 말처럼, 하람은 자신뿐 아니라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이 하람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겉으로는 씩씩하고 밝은 친구 무하와 원지, 거칠지만 따뜻한 권 경위 역시 과거의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람은 위로란 결국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는 데서 비롯된다는 걸 배운다.


그러나 그 모든 만남과 경험의 끝에는 늘 '엄마'가 있다. 하람은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자신을 보려 하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엄마를 향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스스로를 체념하는 그 감정은, 자주 결심한 ‘이제는 그만두자’는 마음마저 매번 무너지게 만든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하람은 마침내 엄마가 자신을 외면했던 진짜 이유, 그리고 부모가 외면해온 가족의 오래된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그리고 상처를 마주하게 됨으로써 하람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너무나 아플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만은 담고 있지 않다. 상처를 애써 덮어두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한 소녀의 내밀한 성장 과정을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조건 없는 환대와 조용한 다정함이 자리한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온기를 건넨 노란색 패딩 한 벌, 등록비가 없어도 문을 열어준 체육관,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들이 바로 그 온기이다. 어쩌면 오지랖이라고 할 그 작은 시선과 손길은 누군가에게는 삶을 살아갈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람을 지탱해 준 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일상의 틈에서 묵묵히 건네진 진심이었다. 이 책은 너무 외롭고 혼자라고 느껴질 때에도, 누군가의 작은 다정함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전한다. 그 울림은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남아, 삶의 링 위에서 흔들리는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응원처럼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아하게 나이 들긴 틀렸다!”는 말처럼, 이 책은 웃음과 반란을 선택한 노인들의 유쾌한 연대를 그린다. 통쾌한 반전과 뭉클한 감동이 어우러져, 노년이 또 다른 시작임을 보여주는 힙한 인생 2막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제본 표지의 문구, '우아하게 나이 들면 무슨 재미? 품위 따윈 던져버린 진짜 실버 힙이 온다'라는 문구를 보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런 소개가 붙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마구 유발시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한 마을의 낡은 복지관을 지키기 위해 뭉친 좌충우돌 노인들이 벌이는 엉뚱하고도 기발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삶의 용기와 연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책장을 넘기자마자 만난 딜런 토머스의 "저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라. 날이 저물 무렵에 노년은 불타고 날뛰어야 한다."라는 시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조용하고 품위있게 늙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부수며, 이 책 속 인물들이 앞으로 펼칠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분노하라, 꺼져가는 불빛에 분노하라'라는 이 한 문장만으로도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설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불타오를지 기대하게 되었다.


책의 이야기는 한밤 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정체불명의 소형 버스와 이를 추격하는 경찰관 페니 노저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버스 안에는 70대대 노인부터 5세 유아까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뒤섞여 타고 있었고, 이들의 수상한 대화와 예측 불가한 행동은 도대체 왜 이들이 함께 버스를 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궁금하게 만들며 이 책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도입부터 긴장감과 유머가 절묘하게 뒤섞여 이들의 앞으로의 이야기엔 어떤 비밀과 사연이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프니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프니는 70번째 생일을 맞은 아침, 자신이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이웃과는 말 한마디 섞지 않으며 살아온 그녀는 정부 수집을 위한 웹사이트 순례와 화초와의 대화를 일상으로 삼는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아파트가 더 이상 안락처가 아닌 호화로운 교도소처럼 느끼게 되었고, 대프니는 마침내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을 결심을 하게 된다. 오랜 고립을 깨고 처음으로 '친구 사귀기'라는 작전을 세운 대프니 앞에 어떤 예측 불허의 사건들이 펼쳐지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은 이후 대프니 뿐만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채롭게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각기 다른 세대와 배경을 가진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더해지며 어느세 만델 복지관의 사람들이 복지관에 모이게 되듯이 그들의 이야기도 한 곳으로 모아지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과 생생한 이야기들은 이 책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런던 해머스미스의 낡은 주민센터, 그 안에 자리한 '만델 복지관'은 이름부터 남다른 곳이다. '만델라 복지관'에서 떨어져 나간 간판 글자 하나 조차 제대로 고치지 않아서 '만델 복지관' 이 되어버린 방치된 이 공간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무심하게 여겨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노인 사교클럽의 첫날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한 할머니가 심장마비로 숨지는 사건을 계기로 모든 것이 뒤바뀐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복지관은 물론 주민센터 자체를 철거하고 초호화 아파트를 세우려는 지역 의회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프니를 비롯한 노인들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기로 한다. 이제 이들은 수리비 10만 파운드라는 막막한 현실과 맞서야 하는데, 과연 대프니와 만델 복지관 사람들은 이 공간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한없이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너무 궁금하다.


이 책에서 대프니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이자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무시당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녀는 젊었을 때는 성별로 이제는 나이로 차별을 겪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필라테스와 요가로 단련된 탄탄한 체력, 그리고 지팡이 하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노련함은 그녀가 결코 보통의 할머니가 아님을 보여준다. 대프니는 연약한 노인의 이미지를 스스로 이용하고 전복시키며 독자에게 노년의 주체성과 유쾌한 저항을 보여주는 인물리다. 그녀의 존재 덕분에 이 책의 이야기는 복지관을 지키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책에 흠뻑 몰입하게 만든다.


가제본으로 읽어 이 책의 결말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하고 따뜻한 감동에 폭 빠져들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사연과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연대와 반란의 여정은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울컥하게 하는 울림을 주며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특히 중심 인물인 대프니는 노년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지혜와 유머, 단단한 자기 신념으로 이야기를 힘있게 이끌고 가는 인물로, 이 책의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는 존재다. 노년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이 책은 편견을 깨는 통쾌함과 더불어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전하며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더더욱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 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가제본된 책을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면 더 재밌는 암호의 세계 -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를 뒤흔든 암호의 모든 것 지식 벽돌
박영수 지음 / 초봄책방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암호에 대해 알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수많은 암호와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여는 비밀번호부터, 폰뱅킹, 컴퓨터 로그인, 심지어 현관문을 여는 도어락의 비밀번호까지.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암호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암호는 단지 현대 기술의 산물인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며, 암호의 기원과 역사 속에서 암호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담아내고 있따. 고대부터 현대까지, 암호가 단순한 언어유희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략적 도구로 변모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그렇게 이 책은 암호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을 다루며, 암호 해독의 기본 개념부터 현대의 첨단 암호 기술까지 폭넓게 탐구한다. 또한, 역사 속에서 암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담아내어 책 속에 폭 빠져들게 만든다.


암호의 역사는 이집트 나일강 변에 있는 미네 쿠프란 마을에서 시작된다. 약 4천여 년 전, 한 문필가가 통치자의 일생을 기록하기 위해 석판에 상형문자를 새겼는데, 문장의 위엄과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환자(은유적 단어 대치)를 사용하면서 암호의 시초가 되었다. 이처럼 암호는 고대부터 문서를 보호하고 의미를 은폐하기 위해 등장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암호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내었다.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암호 기술 중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파르타의 ‘스키테일 암호’를 들 수 있다. 기원전 400년경, 스파르타 군사 사령관들이 사용했던 이 암호는 일정 굵기의 원통(스키테일)에 양피지를 나선형으로 감고 그 위에 메시지를 적는 방식이었다. 양피지를 펼치면 글자가 뒤섞여 내용을 알 수 없지만, 같은 크기의 원통에 감으면 원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암호 기법이었다. 그리고 고대 암호는 단순히 문자를 치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를 숨기는 기술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스파르타의 데마라토스가 페르시아 침략 계획을 나무판에 새기고 밀랍으로 덮어 전달한 경우가 있다. 이는 현대 암호학에서 '스테가노그래피'로 불리는 개념으로, 정보 은닉의 초기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암호의 기원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암호의 변천사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초창기 암호는 문자의 위치를 바꾸거나 동일한 문자 집합을 유지하면서 배열을 달리하는 '전치 암호' 형태로 발전했고, 이후 전쟁과 권력 다툼 속에서 더 복잡하고 치밀한 암호 체계로 진화했다. 암호는 단순한 비밀 기록을 넘어서 인류 역사와 문명에 깊이 관여하며 시대와 함께 변화해 온 것이라니 너무나 흥미롭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2장에 실린 유명인과 암호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부분은 암호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5세의 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나이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갔다.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메리는 남편 프랑수아의 요절로 과부가 되었고, 이후 잉글랜드로 피신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견제로 18년간 감옥에 갇힌 채 세월을 보냈다.


감옥에서 탈출을 꿈꾸던 메리는 가톨릭 신자 배빙턴과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역모를 모의했다. 메리와 배빙턴이 사용한 암호는 알파벳 J, V, W 세 글자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 23자는 기호로 바꿔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메리의 조력자였던 길버트 기포드는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비서관 프란시스 월싱엄에게 충성을 바친 이중 첩자였다. 결정적으로, 메리가 배빙턴의 역모 계획에 동의하며 작성한 답장은 기포드의 손을 거쳐 월싱엄에게 전달되었고, 이를 통해 월싱엄은 유명한 암호 해독가 토마스 펠립스를 동원해 암호문을 해독했다. 펠립스는 빈도 분석 기법을 사용하여 암호를 손쉽게 풀어냈고, 이를 통해 메리가 역모에 가담했음을 명백히 밝혀냈다. 결국 메리의 편지는 함정이 되어 돌아왔고, 월싱엄은 펠립스에게 메리의 필체로 공모자 명단을 요구하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속은 배빙턴은 음모자들의 이름을 적어 다시 보냈고, 결국 역모 가담자 전원은 체포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메리 역시 국가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암호 사용의 실패를 넘어서, 암호의 신뢰성에 대한 교훈을 남긴다. 메리는 자신이 사용한 암호가 안전하다고 믿고 중요 사항을 적었으나, 암호 해독 전문가의 손에서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은 단일 알파벳 환자 암호 시대의 종말을 알리며, 암호의 보안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암호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때로는 전쟁의 승패를 가를 만큼 막대한 파급력을 지녔다. 암호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사용했던 암호 체계와 그로 인해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이 이야기 속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만든 암호의 난공불락을 확신하며 자만심에 빠졌다. 그 당시 일본 외무성은 '퍼플 머신'이라 불리는 암호기를 사용하여 외교 전문을 암호화했다. 퍼플 머신은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기를 개량한 형태로, 일본은 이를 통해 암호문의 보안성을 극대화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미국은 일본의 암호 체계 중 하나였던 'J 시리즈 암호'와 'PA-K2 암호'를 비교적 손쉽게 해독했고, 이로 인해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의 '퍼플 암호'마저도 미국의 암호 해독반에 의해 해독됨으로써 일본의 전략적 기밀이 노출되었다. 문제는 일본의 자만이었다. 독일이 미국이 일본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경고를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외무성은 이를 믿지 않고 암호 관리 체계의 일부만 수정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 같은 일본의 오판은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일본이 기존 암호를 고수하는 사이, 미국은 암호문을 통해 태평양 전쟁의 일본 군사 작전을 예측하며 대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미드웨이 해전 등 주요 전투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었고, 결국 전쟁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암호의 세계는 단순히 비밀을 숨기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암호의 해독 여부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군사적 우위를 결정짓는 상황에서 암호의 보안성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일본의 사례는 암호 체계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암호 해독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처럼 이 책은 암호가 인류 역사와 문명에 미친 영향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풀어낸다. 특히 전쟁과 외교의 주요 순간에서 암호의 역할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파헤치며, 암호를 둘러싼 인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암호를 단순한 퍼즐이나 난제 이상의 가치로 이해하게 만들어 주며, 역사 속 암호 해독의 비밀을 밝히는 탐구의 여정을 선사한다.


암호는 고대 문자 발명과 함께 시작되어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이 책은 암호의 기원부터 현대의 암호화 기술까지 폭넓게 다루며, 역사 속 유명 인물과 암호의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며, 디지털 시대의 보안을 책임지는 암호의 중요성은 오늘날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암호가 단순한 비밀 코드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온 중요한 기술임을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