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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평점 :

가제본 표지의 문구, '우아하게 나이 들면 무슨 재미? 품위 따윈 던져버린 진짜 실버 힙이 온다'라는 문구를 보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런 소개가 붙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마구 유발시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한 마을의 낡은 복지관을 지키기 위해 뭉친 좌충우돌 노인들이 벌이는 엉뚱하고도 기발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삶의 용기와 연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책장을 넘기자마자 만난 딜런 토머스의 "저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라. 날이 저물 무렵에 노년은 불타고 날뛰어야 한다."라는 시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조용하고 품위있게 늙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부수며, 이 책 속 인물들이 앞으로 펼칠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분노하라, 꺼져가는 불빛에 분노하라'라는 이 한 문장만으로도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설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불타오를지 기대하게 되었다.
책의 이야기는 한밤 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정체불명의 소형 버스와 이를 추격하는 경찰관 페니 노저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버스 안에는 70대대 노인부터 5세 유아까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뒤섞여 타고 있었고, 이들의 수상한 대화와 예측 불가한 행동은 도대체 왜 이들이 함께 버스를 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궁금하게 만들며 이 책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도입부터 긴장감과 유머가 절묘하게 뒤섞여 이들의 앞으로의 이야기엔 어떤 비밀과 사연이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프니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프니는 70번째 생일을 맞은 아침, 자신이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이웃과는 말 한마디 섞지 않으며 살아온 그녀는 정부 수집을 위한 웹사이트 순례와 화초와의 대화를 일상으로 삼는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아파트가 더 이상 안락처가 아닌 호화로운 교도소처럼 느끼게 되었고, 대프니는 마침내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을 결심을 하게 된다. 오랜 고립을 깨고 처음으로 '친구 사귀기'라는 작전을 세운 대프니 앞에 어떤 예측 불허의 사건들이 펼쳐지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은 이후 대프니 뿐만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채롭게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각기 다른 세대와 배경을 가진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더해지며 어느세 만델 복지관의 사람들이 복지관에 모이게 되듯이 그들의 이야기도 한 곳으로 모아지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과 생생한 이야기들은 이 책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런던 해머스미스의 낡은 주민센터, 그 안에 자리한 '만델 복지관'은 이름부터 남다른 곳이다. '만델라 복지관'에서 떨어져 나간 간판 글자 하나 조차 제대로 고치지 않아서 '만델 복지관' 이 되어버린 방치된 이 공간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무심하게 여겨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노인 사교클럽의 첫날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한 할머니가 심장마비로 숨지는 사건을 계기로 모든 것이 뒤바뀐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복지관은 물론 주민센터 자체를 철거하고 초호화 아파트를 세우려는 지역 의회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프니를 비롯한 노인들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기로 한다. 이제 이들은 수리비 10만 파운드라는 막막한 현실과 맞서야 하는데, 과연 대프니와 만델 복지관 사람들은 이 공간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한없이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너무 궁금하다.
이 책에서 대프니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이자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무시당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녀는 젊었을 때는 성별로 이제는 나이로 차별을 겪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필라테스와 요가로 단련된 탄탄한 체력, 그리고 지팡이 하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노련함은 그녀가 결코 보통의 할머니가 아님을 보여준다. 대프니는 연약한 노인의 이미지를 스스로 이용하고 전복시키며 독자에게 노년의 주체성과 유쾌한 저항을 보여주는 인물리다. 그녀의 존재 덕분에 이 책의 이야기는 복지관을 지키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책에 흠뻑 몰입하게 만든다.
가제본으로 읽어 이 책의 결말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하고 따뜻한 감동에 폭 빠져들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사연과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연대와 반란의 여정은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울컥하게 하는 울림을 주며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특히 중심 인물인 대프니는 노년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지혜와 유머, 단단한 자기 신념으로 이야기를 힘있게 이끌고 가는 인물로, 이 책의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는 존재다. 노년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이 책은 편견을 깨는 통쾌함과 더불어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전하며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더더욱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 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가제본된 책을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