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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더 재밌는 암호의 세계 -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를 뒤흔든 암호의 모든 것 ㅣ 지식 벽돌
박영수 지음 / 초봄책방 / 2025년 5월
평점 :
암호에 대해 알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수많은 암호와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여는 비밀번호부터, 폰뱅킹, 컴퓨터 로그인, 심지어 현관문을 여는 도어락의 비밀번호까지.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암호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암호는 단지 현대 기술의 산물인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며, 암호의 기원과 역사 속에서 암호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담아내고 있따. 고대부터 현대까지, 암호가 단순한 언어유희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략적 도구로 변모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그렇게 이 책은 암호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을 다루며, 암호 해독의 기본 개념부터 현대의 첨단 암호 기술까지 폭넓게 탐구한다. 또한, 역사 속에서 암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담아내어 책 속에 폭 빠져들게 만든다.
암호의 역사는 이집트 나일강 변에 있는 미네 쿠프란 마을에서 시작된다. 약 4천여 년 전, 한 문필가가 통치자의 일생을 기록하기 위해 석판에 상형문자를 새겼는데, 문장의 위엄과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환자(은유적 단어 대치)를 사용하면서 암호의 시초가 되었다. 이처럼 암호는 고대부터 문서를 보호하고 의미를 은폐하기 위해 등장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암호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내었다.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암호 기술 중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파르타의 ‘스키테일 암호’를 들 수 있다. 기원전 400년경, 스파르타 군사 사령관들이 사용했던 이 암호는 일정 굵기의 원통(스키테일)에 양피지를 나선형으로 감고 그 위에 메시지를 적는 방식이었다. 양피지를 펼치면 글자가 뒤섞여 내용을 알 수 없지만, 같은 크기의 원통에 감으면 원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암호 기법이었다. 그리고 고대 암호는 단순히 문자를 치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를 숨기는 기술도 포함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스파르타의 데마라토스가 페르시아 침략 계획을 나무판에 새기고 밀랍으로 덮어 전달한 경우가 있다. 이는 현대 암호학에서 '스테가노그래피'로 불리는 개념으로, 정보 은닉의 초기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암호의 기원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암호의 변천사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초창기 암호는 문자의 위치를 바꾸거나 동일한 문자 집합을 유지하면서 배열을 달리하는 '전치 암호' 형태로 발전했고, 이후 전쟁과 권력 다툼 속에서 더 복잡하고 치밀한 암호 체계로 진화했다. 암호는 단순한 비밀 기록을 넘어서 인류 역사와 문명에 깊이 관여하며 시대와 함께 변화해 온 것이라니 너무나 흥미롭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2장에 실린 유명인과 암호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부분은 암호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5세의 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나이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갔다.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메리는 남편 프랑수아의 요절로 과부가 되었고, 이후 잉글랜드로 피신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견제로 18년간 감옥에 갇힌 채 세월을 보냈다.
감옥에서 탈출을 꿈꾸던 메리는 가톨릭 신자 배빙턴과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역모를 모의했다. 메리와 배빙턴이 사용한 암호는 알파벳 J, V, W 세 글자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 23자는 기호로 바꿔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메리의 조력자였던 길버트 기포드는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비서관 프란시스 월싱엄에게 충성을 바친 이중 첩자였다. 결정적으로, 메리가 배빙턴의 역모 계획에 동의하며 작성한 답장은 기포드의 손을 거쳐 월싱엄에게 전달되었고, 이를 통해 월싱엄은 유명한 암호 해독가 토마스 펠립스를 동원해 암호문을 해독했다. 펠립스는 빈도 분석 기법을 사용하여 암호를 손쉽게 풀어냈고, 이를 통해 메리가 역모에 가담했음을 명백히 밝혀냈다. 결국 메리의 편지는 함정이 되어 돌아왔고, 월싱엄은 펠립스에게 메리의 필체로 공모자 명단을 요구하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속은 배빙턴은 음모자들의 이름을 적어 다시 보냈고, 결국 역모 가담자 전원은 체포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메리 역시 국가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암호 사용의 실패를 넘어서, 암호의 신뢰성에 대한 교훈을 남긴다. 메리는 자신이 사용한 암호가 안전하다고 믿고 중요 사항을 적었으나, 암호 해독 전문가의 손에서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은 단일 알파벳 환자 암호 시대의 종말을 알리며, 암호의 보안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암호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때로는 전쟁의 승패를 가를 만큼 막대한 파급력을 지녔다. 암호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사용했던 암호 체계와 그로 인해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이 이야기 속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만든 암호의 난공불락을 확신하며 자만심에 빠졌다. 그 당시 일본 외무성은 '퍼플 머신'이라 불리는 암호기를 사용하여 외교 전문을 암호화했다. 퍼플 머신은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기를 개량한 형태로, 일본은 이를 통해 암호문의 보안성을 극대화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미국은 일본의 암호 체계 중 하나였던 'J 시리즈 암호'와 'PA-K2 암호'를 비교적 손쉽게 해독했고, 이로 인해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의 '퍼플 암호'마저도 미국의 암호 해독반에 의해 해독됨으로써 일본의 전략적 기밀이 노출되었다. 문제는 일본의 자만이었다. 독일이 미국이 일본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경고를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외무성은 이를 믿지 않고 암호 관리 체계의 일부만 수정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 같은 일본의 오판은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일본이 기존 암호를 고수하는 사이, 미국은 암호문을 통해 태평양 전쟁의 일본 군사 작전을 예측하며 대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미드웨이 해전 등 주요 전투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었고, 결국 전쟁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암호의 세계는 단순히 비밀을 숨기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암호의 해독 여부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군사적 우위를 결정짓는 상황에서 암호의 보안성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일본의 사례는 암호 체계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암호 해독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처럼 이 책은 암호가 인류 역사와 문명에 미친 영향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풀어낸다. 특히 전쟁과 외교의 주요 순간에서 암호의 역할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파헤치며, 암호를 둘러싼 인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암호를 단순한 퍼즐이나 난제 이상의 가치로 이해하게 만들어 주며, 역사 속 암호 해독의 비밀을 밝히는 탐구의 여정을 선사한다.
암호는 고대 문자 발명과 함께 시작되어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이 책은 암호의 기원부터 현대의 암호화 기술까지 폭넓게 다루며, 역사 속 유명 인물과 암호의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며, 디지털 시대의 보안을 책임지는 암호의 중요성은 오늘날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암호가 단순한 비밀 코드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온 중요한 기술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