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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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작가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와 인간 내면의 경계를 깊이있게 다루었던 저자는 이번에는 노인의 나라라는 다소 파격적인 미래를 소재로 하였다. 고령화와 저출생, 이민자 문제와 고도의 과학 기술의 발달 등 지금 이 시대가 마주한 첨예한 이슈들을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미래에선 어떤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 디스토피아적 소설 그 이상을 이야기한다. 읽으면 읽을 수록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라기 보다 현실의 우리 모습들 중 일부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듯하여 더욱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책은 주인공 유나라가 기록하는 일기 형식을 통해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수도 있는 미래 사회의 풍경을 담고 있다. 먼저 시작은 1월 1일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을 품고 시작한 유나라는 현실의 무게에 눌려 기운 없이 하루를 보내고, 1월 2일에는 룸메이트 엘리야와의 불편한 동거를 담고 있다. 그리고 1월 3일, 그녀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어온 꿈, ‘시카모어 섬’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시카모어 섬은 실제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고급 실버 유토피아이자 동시에 고도로 발달한 메타버스 플랫폼 ‘시카모리아’로도 구현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 섬은 전 세계 슈퍼 리치 시니어들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35세 이하의 청년들이 함께 살아가는 특별 구역으로 단순한 요양시설이 아닌 생태적 복원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실험적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는 장소다. 유나라는 이 섬에 입도해 배우로 살아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VR 장비를 통해 가상 시카모리아에 잠시 접속하면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유토피아의 감각에 매혹되고, 그 안에서의 가능성을 상상하며 자신의 삶을 버티려 한다. 그러나 아직은 외부 방문자에 불과한 그녀에게 시카모어 섬은 선망과 좌절이 교차하는먼 낙원이다.


그리고 섬의 창립자 카밀리아 레드너는 한국계 여성으로, 과거 ‘쓰레기 섬’이라 불리던 오염된 무인도를 천문학적인 자산을 들여 재건하고, 친환경 기술과 자치 시스템으로 가짜 같지만 진짜 같은 사회를 만든 인물이다. 이 낙원은 엄격한 기준 속에 운영되며, 표면적으로는 노인과 청년의 공존을 내세우지만, 그 속에 숨겨진 10%의 정체와 카밀리아의 진짜 의도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기 어려운 유나라는 이 디지털 낙원을 통해 꿈을 붙잡으려 하지만 메타버스조차 완전하지 않은 감각과 기술적 한계로 인해 다시금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시카모리아 속 찰랑이는 바닷물이 발끝에 끈적하게 전해질 때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1월 4일, 유나라의 일기는 급격히 무너진 일상으로 시작된다. 휴가가 끝나고 평소처럼 호텔에 출근하여 청소를 하던 나라는 자신이 로봇에 대체되어 해고되었음을 통보된다. 그리고 그마저도 이미 처리된 사안이었다.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 누군가는 아직 젊다고 말하겠지만 나라는 더 어린 사람들과 기계 사이에서 자신이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 꿈조차 붙잡기 힘든 시대에 과연 젊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암울한 현실 속에 막막함만을 안고 있던 유나라에게, 뜻밖의 변화가 찾아온다. 실직의 충격도 가시기 전에, 그녀는 국내 최대의 노인 복지 기관 ‘유카시엘’의 채용 추첨에 당첨된다. 그것도 전산 무작위 방식으로 진행된 비정기 추첨의 결과였다. 말 그대로 ‘기회’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2030년대 후반의 한국. 저출생과 고령화가 극에 달해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노인이 된 이 세계에서 청년은 오히려 소수자이자 사회적 약자다. 노동 현장에서는 AI와 로봇, 이민자들이 청년의 역할을 대신하며그들은 일자리와 존엄을 동시에 위협받는 삶을 살아간다. 국가 복지 시스템의 중심은 노인을 향해 있고, 청년은 그 시스템을 떠받치는 책임자로 기능할 뿐이다. 그런 구조 속에서 유나라에게 주어진 ‘유카시엘 상담사’라는 직무는 단순한 일자리를 넘어 또 하나의 생존권이며 미래를 위한 유일한 디딤돌이다. 유카시엘은 시카모어 섬과 연계된 시설로 이곳에서 쌓은 경력은 그녀의 꿈인 시카모어 입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후 유나라는 유카시엘에서 노인들을 돌보고, 상담하며, 시스템과 사람 사이의 빈틈을 체감하게 되는데.. 과연 유카시엘에서 유나라의 삶은 어떠한 이야기로 채워질까? 나라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책은 저출생과 고령화, 기술 발전이 극단에 이른 근미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더 이상 다수도 주인공도 아닌 젊은이의 자리를 묻는다. 노인의 나라가 된 사회에서 청년은 소수자로 전락하고, AI와 이민자, 시스템의 논리 속에서 점차 존재의 의미를 잃어간다. 그 속에서 주인공 유나라가 기록하는 일기 형식의 서사는 사회 시스템이 말하지 않는 감정과 고통, 꿈과 저항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사회 구조를 낯설게 뒤집어 놓았다. 과거에는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였던 노인들이 이제는 사회의 중심 다수를 형성하며 역설적으로 소수자 위치에 놓인 청년들이 이들을 부양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복지 체계의 방향이 역전된 이 사회는 복지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 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 설정은 단순한 미래적 상상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는 구조적 불균형을 여가하여 보여주는 듯하여 더욱 눈길을 끌어당긴다.


동시에 이 소설은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일상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여전히 기계가 넘어서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감정과 돌봄의 자리는 어디에 존재하는 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유나라는 이러한 질문 속에서 점차, 기술적 효율성과 감정적 온기 사이의 간극을 절실히 체감해 나가고, 이는 곧 인간성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만든다.


더불어 이 책에서 젊음이란 생물학적 연령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젊음’은 가능성과 생명력,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의 문제로 확장된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 속에서 과연 젊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가치를 지니는 가라는 물음은 직접적으로 전해져 독자로 하여금 유나라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세대 간 갈등이나 차별을 넘어서,사회 구성원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나아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성찰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연장선 위에서 작동하는 구조와 감정, 권력과 소외의 문제를 정교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긴 여운과 울림은 한동안 마음 속에 소용돌이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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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
김민지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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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전 아나운서의 책이라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지만 제목을 그냥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 이 책은 김민지 전 아나운서가 처음으로 낸 에세이로 화려한 방송인의 삶을 내려놓고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담아내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라는 타이틀보다 먼저 한 사람의 삶으로서 집중하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많은 공감이 되었고 그런 모습들이 이 책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특히 화려하거나 극적인 문장 대신 꾸밈없이 쓰인 표현들이 오히려 진정성과 깊이를 더해 더욱 이 책과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특히 저자 소개 중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힘을 믿는 사람이며,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거두는 모습을 보면 별 수 없이 세상이 좋아하지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저자에 대한 호감이 막 솟아났다. 진심을 바탕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조듬 더 따뜻하게 믿는 시선이 이 책의 문장 곳곳에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집중해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지상파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3년간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언론인이 된다는 것은 말과 행동에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일이며, 반드시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부분이다. 말이 많고 수다를 좋아하던 소녀에서 수차례 탈락과 외면 속에서도 끈기 있게 방송 현장을 지켜내며 스스로의 무게를 알아간 저자의 성장 과정은 단순한 커리어 스토리가 아니라 깊은 성찰의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세상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겁이 났다는 고백과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사람으로서 먼저 단단해지려는 태도는 이 책의 진정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었고 생각보다 저자가 훨씬 더 괜찮은 사람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엄마가 된 이후에야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은 깊은 울림과 울컥한 감동을 가져다 준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는 운동회에도 못 오는 엄마가 야속했고 ‘꿈을 가지라’는 말이 엄마에게만 예외처럼 느껴졌고 고백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엄마는 매일을 트럭을 들어올리듯이 버텨냈고 허술해 보일 수 있는 그 하루하루가 결국은 온 힘을 다해 만든 사랑의 둥지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가 엄마의 고군분투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부분이라 나 또한 저자처럼 뒤늦게 엄마의 진심과 고군분투를 깨달은 어리석은 딸이라서 더욱 울컥해졌다.


그리고 저자가 결혼 후 처음으로 출연한 방송은 그를 친오빠처럼 아끼는 배성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몇 년 만의 방송 출연에 긴장한 상태였던 저자는 인터뷰 도중 “자신만의 ‘부심’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혔고,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교 1등을 했던 순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했던 일, 힘든 준비 끝에 방송사에 입사했던 성취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망설임 없이 입 밖에 나온 대답은 바로 “제가 엄마라는 거요.”였다. 그 고백은 단순한 직업이나 역할의 자부심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서로 얼굴을 부비며 바다가 된 듯한 감정을 느꼈던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엄마로서의 삶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도 따뜻한 자부심이라는 고백은 누구보다 깊이 울림을 주었다. 나 역시 태어나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일이라 생각하기에 이 장면은 더욱 깊이 공감되었다. 세상이 여전히 분발하라 말해도 내가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내는 하루하루는 결코 작거나 하찮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어 큰 위안이 되었다.


책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제목 그대로,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풀어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김민지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듯 싶다. 유명한 축구 선수의 아내, 방송인이었다는 외적인 타이틀보다 그 속에 있는 ‘사람 김민지’의 진심과 꾸밈없는 시선을 통해 우리는 그가 보여주고 싶은 삶의 방향을 느끼게 된다.


특히 남편 박지성 선수가 책의 소개 글에 남긴 “민지가 쓴 글은 내가 아는 모습에서 가장 가깝다. 따뜻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문장은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떠올릴 때 저자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빛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 더 깊은 울림을 남기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빛은 거창하거나 눈부신 게 아니라, 조용하고 따뜻하고 단단해서 더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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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들에게
한종윤 지음 / 다산글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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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들에게'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표지 그림을 보니 단순히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다쳐버린 아이들에게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저자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하나하나 담은 진솔한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나 역시 10대 청소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에 저자의 글이 주는 울림이 더 깊게 다가왔다. 이 책에는 무기력, ADHD, 우울감, 인간관계 등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었거나 곁에서 보았을 고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그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까웠고, 때로는 뭉클했다. 그리고 저자가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들을 나에게 해보며 읽다보니 다양한 아이들의 대답들에 더욱 이입하게 되었고 그 아이들게 전하는 저자의 따스한 진심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책은 상담 사례를 나열하는 대신 실제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딪히고 함께 걷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감정, 작은 변화의 흔적, 그리고 어른으로서 느끼는 무력함과 자책,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손을 내미는 용기까지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책은 총 7가지 주제를 통해 저자와 아이들이 함께 나눈 고민과 깨달음을 전한다. 첫 번째는 '신뢰와 관계의 시작'이다. 믿음은 가장 연약한 순간에 피어나는 감정이며, 진심 어린 소통만이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마음의 병, 이름 붙일 수 없는 고통들'이다. ADHD나 우울감처럼 이름 붙일 수 있는 증상뿐 아니라, 불안, 외로움, 소외감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도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다루며, ‘괜찮지 않은 나’를 이해하는 출발점을 제시한다.


세 번째 주제는 '삶의 경계에서 만난 아이들'이다. 도전과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네 번째 주제인 '나를 위한 선택은 무엇인가'에서는 인간관계와 책임, 신뢰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진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진정한 관계란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는 '함께 살아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아내는’ 동반자다. 그의 글은 지시가 아닌 고백이고, 교훈이 아니라 삶이다. 여섯 번째는 '어른의 무력감,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아이들의 아픔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그는 결코 등을 돌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는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변화는 거창하지 않게 찾아오며, 조용하지만 꾸준한 진심이 마음을 움직이는 첫걸음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로 들어가 이 책은 시작부터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지며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살인을 저지른 친구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당신은 문을 열고 도울 것인가, 아니면 신고할 것인가?'

저자는 이 질문을 실제 교실에서 학생들과 토론하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70~80%의 학생들이 친구들 돕기보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를 선택했던 것이다. 친구를 돕기보다는 책임을 우선시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질문의 주체가 부모로 상황이 바뀌자 상황은 달라졌다. 부모라면 돕겠다는 응답이 70%로 급증했고, 신고하겠다는 으답은 30%로 줄었다. 이 변화는 가족과 친구 간의 '신뢰'의 차이를 보여주는 결과였다. 특히 저자는 전체 학생 중에 80%가 친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애초에 도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며, 더 나아가 30%의 학생은 부모에 대한 신뢰조차 낮다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드러낸다.


이러한 질문과 상황을 통해 저자는 '믿을 수 잇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면 먼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메시지를 전한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을 원하지만 정작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람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좋은 사람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며 우리 아이들 역시 그런 관계의 중심에 서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때로는 관계가 멈춘 듯하고, 상처받는 일이 반복될 지라도 그것이 결국은 '진짜 내 사람'을 찾는 과정임을 믿고 굳건히 걸어가라는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먼저 배려하고 기대를 낮추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자세로 살아가길 바래본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쌓아가며 걸어가다보면 결국 나를 믿고 신뢰해주는, 좋은 사람이 선물처럼 찾아올테니까 말이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은 주제 중 하나는 ‘꿈’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흔히 “너의 꿈은 뭐니?”라고 묻지만, 정말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아직 꿈을 찾지 못했거나 꿈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저는 꿈이 없어요. 뭘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 자신 있는 것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자주 만나왔다고 고백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분명 진지하지만, 정작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꾸준히 해보는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먼저 "꿈은 없어도 괜찮다"는 조언에 동의한다.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꿈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꿈이 없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섰을 때, 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나 동기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꿈을 억지로 정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잘하는 것’을 만들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 관심과 몰입은 결국 성장으로 이어진다. 둘째, 하루 2시간씩 꾸준히 몰입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집중력과 꾸준함은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바꿔준다. 셋째, 일일·주간·월간의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성취감을 쌓는 것이다. 저자가 근무하는 세계여행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꿈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좋아하는 것을 찾고 꾸준히 해보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한 학생은 목공에 몰입해 결국 미술 전공으로 유학을 떠났다.


저자는 꿈은 거창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라는 거다. 이 담담한 말이 꿈 때문에 힘든 아이들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 본인 역시 이 책을 통해 쓴 글로 언젠가 ‘유 퀴즈’에 출연하는 꿈이라고 하는데 그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이 책은 청소년의 내면을 향한 깊은 이해와 진정성 있는 동행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한 교사가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하며 마주한 무기력, 우울감, 관계의 어려움 같은 마음의 상처들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고통을 가볍게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겨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관계’이며 ‘조언’보다 앞서는 것은 ‘공감’이라는 거다. 그러기에 아이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지지하는 어른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아이가 가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자세, 무엇보다 신뢰와 공감을 기반으로 한 관계 맺기가 회복의 첫걸음일 것이다. 우리 어른은 아이에게 ‘왜 그래?’라고 묻기 전에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하며 무언가를 극복하라 다그치기보다 그 곁을 지키며 묵묵히 손을 내미는 어른의 존재야말로 청소년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아이들의 삶을 지켜보는 모든 부모와 교사, 그리고 ‘어른’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정말 아이의 곁에 귀 기울이며 서 있는가?'를 묻는 것 같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다리는 자세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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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 for BEAUTY - 향기로운 오일이 된 식물들의 모든 것
심나래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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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에 관한 관심으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향긋한 식물에 대한 안내서라기 보다 허브의 생태, 역사, 문화와 과학적인 효능까지 폭넓게 다루며 허브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고대 문명에서의 신성한 식물로서의 역할부터 현대인의 건강과 미용에 이르기까지 허브가 어떻게 인류의 삶에 깊숙이 자리해 왔는지를 다양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또한 21세기 과학이 밝혀낸 허브와 에센셀 오일의 효능을 통해 향을 넘어선 실제 건강 효과와 그 활용 가능성까지 안내하고 있다.


특히 메디컬 아로마테라피 분야의 국제 전문가인 저자는 76가지 허브를 중심으로 각 식물의 생물학적 특성, 역사적 배경, 화학적 성분과 현대적인 활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허브에 대한 정말 다채롭고 유익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허브가 어떻게 오일로 추출되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쓰이는지, 또 음식, 술, 향료 등 다양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를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꽤 흥미롭다.

책은 허브가 단순한 향기의 원료가 아니라 인류와 함께해 온 치유의 동반자이자 생명력 있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저자는 오랜 세월 허브가 신과 인간을 잇고 마음과 몸을 돌보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강조하며 현대에 와서 감각적 소비 대상으로 축소된 허브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허브의 이름과 역사, 문화적 의미를 시작으로 오늘날 과학이 밝혀낸 효능과 오일 활용법까지 통합적으로 다룬다. 특히 아로마테라피에 입문하는 이들은 물론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독자 모두를 위한 실용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길잡이로 구성되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허브의 역사로 시작된다. 허브의 역사는 문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레가노, 캐러웨이 등의 씨앗과 꽃가루가 유럽의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되면서, 인류가 허브를 접한 시기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에는 허브가 의학과 종교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의 고대 의학 문서인 에버스 파피루스에는 다양한 허브의 사용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 또한 허브를 신성하고 치유적인 존재로 여겨 적극 활용했다. 중세에는 에센셜 오일 추출 기술이 본격화되었다. 중동의 의사 이븐 시나는 증류 기술을 개선하여 오일을 약과 향수로 활용했고, 유럽의 의학 교육기관과 약국에서도 허브를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허브의 효능은 과학적으로도 검토되기 시작했다. 근대~현대에는 허브 성분의 분자 단위 분석이 본격화되면서, 합성 의약품과 향료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에센셜 오일은 점차 부가적 용도로 축소되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 화학자 르네 모리스 가트포세가 라벤더 오일을 통해 화상을 치료한 경험을 계기로 ‘아로마테라피’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이후 여러 연구자들이 아로마테라피의 효과를 확산시키며, 이는 현대에 이르러 의료·웰빙·미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비록 현대 과학이 허브의 많은 효능을 밝혀냈지만 여전히 일부 치유 작용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는 허브가 단순한 식물이 아닌 여전히 탐구할 가치가 있는 ‘살아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의 향 구분법을 설명함으로써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어서 에센셀 오일과 캐리어 오일의 정이와 특징에 대한 설명과 주요 허브 원산지에 대한 정보 역시 너무나 유익하다.


특히 이 책은 에센셜 오일에 포함된 주요 화학 성분에 대한 설명을 통해 허브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에스테르, 알데하이드, 케톤, 페놀, 모노테르펜 등 다양한 성분들이 각각의 향과 작용 방식에 따라 신체에 다른 효과를 미치며, 진정, 소염, 항균, 순환 촉진 등 다양한 치유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리날룰은 자극이 적어 피부에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고, 시네올은 호흡기에 좋으며 페놀 계열은 강력한 항감염 작용을 한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한 오일 사용법을 넘어 성분별 특성과 효능까지 체계적으로 알려줌으로써 독자들이 에센셜 오일을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끈다.


책은 허브 하나하나의 식물적 특성과 효능을 고정된 틀로 설명하지 않고, 각 허브의 특성에 따라 유연하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허브는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중심으로, 또 어떤 허브는 주요 성분과 치료 효능, 또는 현대적 활용법에 중점을 두는 등 허브마다 다른 구성과 서술 방식으로 설명되어 독자에게 더 깊이 있고 생생한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라벤더 편은 식물로서의 생태와 원산지, 품종 분류부터 시작해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에서의 역사적 활용, 프랑스 화학자의 화상 치료 경험을 통해 탄생한 아로마테라피의 기원, 그리고 오늘날 임상적으로 입증된 정서 안정과 피부 진정 효능까지 전방위적인 서술이 돋보인다.


특히 라벤더는 그 자체로 아로마테라피의 출발점이라 할 만큼 중요한 허브로, 주성분인 리날릴 아세테이트는 불안감, 우울감, 수면장애 완화에 탁월한 효과를 지니며, 피부 진정과 염증 완화에도 유용하다.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신경계의 안정을 유도해 혈압, 심박수, 호흡수를 낮추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각 허브를 단순히 ‘오일의 원료’로 보지 않고, 식물, 문화, 과학, 치료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며 독자가 허브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이 책은 허브를 단순한 향기나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인류의 지혜가 만나는 입체적 존재로 재조명하는 책이라 하겠다. 식물의 생태부터 역사, 문화, 화학, 그리고 실생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써 허브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특히 이 책은 에센셜 오일에 담긴 성분의 구조와 효능까지 구체적으로 다루며 아로마테라피가 단순한 힐링 트렌드가 아니라 근거 기반의 자연 요법임을 명확히 한다. 저자가 정리한 국내 독자 친화적 ‘8가지 향 계열’ 분류는 향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며 향이라는 감각을 삶과 연결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허브가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화학적 전략이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은 식물과 인간의 오래된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생존의 흔적과 인간의 지혜를 한데 엮어, 우리가 허브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를 차분하고도 설득력 있게 안내한다. 따라서 이 책은 건강과 미용, 그리고 웰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단순한 정보서를 넘어선 과학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안내서라 하겠다.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체계적으로 풀어낸 이 책은 허브를 통해 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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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들 마티니클럽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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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폭 빠져 읽었던 <스파이 코스트>, 마티니 클럽의 두번째 이야기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시작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수면 아래 숨겨딘 섬뜩한 진실이 한 여름 해변 마을의 평온안 일상을 흔들고 십 대 소녀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통해 수십 년전의 어두운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은 숨막히게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은퇴한 CIA 요원들의 독서모임인 '마티니 클럽'이 다시 등장하고 유력한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에 뛰어들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스릴러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책의 시작은 1972년 메인주 퓨리티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되며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조용한 마을의 일상을 지키는 경찰관 랜디 펠레티에는 평소처럼 아침 근무를 마치고 메리골드 카페에서 커피와 머핀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는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와 함께 산산이 무너진다. 연이어 발생한 세 건의 사망 사고, 피범벅이 된 거리, 그리고 그 중심에 선 흰색 밴.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랜디는 운전자 샘 타킨을 구조하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더 이상 그가 알던 샘이 아니었다. 마치 이성을 잃은 듯한 그의 눈동자와 비인간적인 행동은 평범한 목수였던 샘에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음을 드러낸다. 두 사람 사이의 몸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랜디는 경찰관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애쓰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다. 샘은 결국 랜디의 권총을 빼앗아 들이대고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렇게 시작부터 이 책은 단순한 폭력의 충돌을 넘어 의문과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미스터리로 시작하며 이야기에 폭 빠지게 만든다. 평소 조용하고 성실했던 이웃 샘 타킨이 갑자기 이성을 잃은 듯한 행동을 보이며 랜디에게 폭력을 가하고 끝내 그의 권총을 빼앗아 방아쇠를 당기기까지의 급격한 변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온다. 특히 그의 눈동자에 비친 비인간적인 광기와 더 이상 샘이 아닌 무엇인가처럼 느껴지는 존재감은 이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강렬한 궁금증을 남긴다. 샘은 왜 갑자기 사고를 냈는가? 그는 무엇에 의해 변화된 것인가? 라는 질문을 안은 채 이야기의 다음 장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2장은 현재 시점으로 전환되며 반가운 얼굴인 마티니 클럽의 매기와 그녀의 동료들을 다시 소개한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 장면은 첫 장의 충격적인 과거 사건과는 대조적으로 완벽한 여름 저녁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시작된다. 매기와 친구들은 들판의 피크닉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티니를 나누고 쌍안경으로 제비를 관찰하며 독서 모임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한 은퇴자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점은 곧 드러난다. 바로 이들이 모두 전직 CIA 요원이며 수십 년 전 함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사총사라는 사실이다. ‘마티니 클럽’은 겉보기엔 여느 시골 마을의 소박한 독서 모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퇴한 요원들이 지적 도전과 유대감을 유지하며 비밀을 공유하는 특별한 모임이다. 매기, 벤, 잉그리드, 데클란은 각각 다른 전문성과 개성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날카로운 감각과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다시 수면 아래 감춰진 사건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암시가 분위기 곳곳에 흐른다. 이렇게 2장에서는 마티니 클럽의 일상 속 유쾌함과 과거의 흔적, 그리고 이들이 가진 잠재된 힘을 함께 보여주며 이 조용한 저녁이 곧 찾아올 사건의 서막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장의 이야기. 3장은 수잔과 가족이 시아버지 조지 코너버의 유골을 싣고 메인주 북쪽의 여름 별장으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다. 수잔은 유골함을 다른 짐과 함께 트렁크에 넣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끼지만 시어머니 엘리자베스는 담담하게 유골을 짐 사이에 넣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수잔은 시아버지를 잘 알지 못했고, 특별한 애착도 느끼지 않는다. 함께 차에 탄 수잔, 남편 에단, 딸 조이, 시어머니 엘리자베스는 메인주의 해안가 도로를 따라 여름 별장으로 이동하면서 조용한 대화를 나눈다. 조이는 휴대폰을 보며 ‘메이든 호수’의 유래에 대해 질문하고 가족들은 오래전 익사 사고와 관련된 전설을 이야기하며 가볍게 반응한다. 에단은 조이에게 메인주의 호수는 독사도 없고 안전하다고 설명하고 조이는 다이빙을 하고 싶다며 들뜬 모습을 보인다.

수잔은 여정을 통해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은 남편 에단의 모습을 지켜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는 첫 번째 책 출간 이후 글이 써지지 않아 고민해 왔지만, 이번 여행이 그에게는 한동안의 휴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수잔은 생각한다. 도착 후에는 조지의 추도식이 열릴 예정이며 별장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일 계획이다. 이렇듯 평온해 보이는 수잔에게 곧 큰 사건이 닥쳐온다. 바로 딸 조이의 실종이다. 여름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던 중, 조이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수잔의 일상은 한순간에 뒤흔들린다.


평화롭던 휴양지는 긴장감에 휩싸이고, 지역 경찰과 함께 전직 CIA 요원들로 구성된 마티니 클럽도 수사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매기의 오랜 이웃, 루터(1권에서도 나온 바로 그 루터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급기야 루터의 차에서 조이의 혈흔까지 발견되면서 루터는 구속되기까지 하는데.. 과연 루터가 진범인걸까? 친구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수사가 진행될수록 과거의 오래된 비밀과 이 사건 사이에 예상치 못한 연결 고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과연 수잔은 무사히 조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조이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수면 아래 감추어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이 맨 처음 샘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샘은 어떤 진실의 시작인 것일까? 뒷 이야기와 이 책이 가리키는 진실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평화롭던 여름 별장에서 벌어진 십 대 소녀의 실종을 중심으로 수십 년 전 과거의 비밀과 얽힌 현재의 사건을 정교하게 연결해낸 본격 미스터리 스릴러다. 무엇보다 전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마티니 클럽의 활약은 이번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전직 CIA 요원이라는 과거를 가진 이들은 단순한 은퇴자가 아니라 예리한 통찰과 팀워크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서는 핵심 인물들로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전작에서처럼 매기와 동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실종 사건을 추적하며 복잡하게 얽힌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간다. 이들의 노련함과 인간적인 매력은 단순한 추리 요소를 넘어 독자로 하여금 이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빠른 전개와 예상치 못한 반전, 그리고 다층적인 인물 서사는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며 동시에 마티니 클럽이라는 독특한 존재가 중심축으로 활약함으로써 여느 스릴러물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이 책은 미스터리의 쾌감은 물론 관계와 기억, 진실의 무게까지 함께 짚어내며 마지막까지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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