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수학 4컷 만화 - 수학사를 뒤흔든 결정적 한마디 자음과모음 청소년수학과학 6
이인진 지음, 주영휘 그림 / 자음과모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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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자체로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이 책의 단 한 줄로 수학을 설명하고 4컷 만화로 전달하는 구조는 복잡하고 어렵게만 여겨지던 수학을 쉽고 흥미롭게 접근하게끔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한 만화만 있는 게 아니라 수학 교육과 대중적인 흥미를 동시에 고려하여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수학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바꾸기 위한 한 수학 교사의 고민에서 시작되었고 그 결과 수학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역사 속 수학자 26명의 명언을 중심으로 수학 개념과 그 배경이 된 사건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그리고 단순한 수학에 대한 이론 설명을 넘어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학사의 결정적인 장면들만을 선별하여 4컷 만화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각 에피소드는 하나의 명언에서 출발하여 그 속에 숨겨진 수학적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피타고라스의 무리수 발견, 뉴턴의 만유 인력의 법칙,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수학이 단지 계산의 도구만은 아님을 깨닫게 만든다.


책의 첫 장은 뉴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염병으로 모두의 일상이 멈춘 혼란의 시대, 뉴턴은 고립 속에서도 사유와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인류 과학의 역사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뉴턴이 방 안에서 홀로 탐구하고 써내려간 수학과 물리학의 아이디어들은 훗날 만유인력의 법칙과 미적분학으로 완성되었고, 지금의 우리가 우주를 탐구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이 이야기를 토대로 단순히 수학 개념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뉴턴의 이야기처럼 위기의 순간에도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은 이들의 태도와 생각법을 통해 독자 스스로 ‘나는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우리가 느낀 단절과 혼란, 그리고 그 안에서도 발전해 나간 기술과 아이디어들처럼 어쩌면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시작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렇게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수학 개념에 대한 안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뉴턴처럼 외부 세계가 멈추었을 때 내면의 질문과 사유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그리고 이어지는 데카르트의 이야기도 꽤 인상적이다. 데카르트는 병약한 체질로 인해 종종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고 홀로 가진 그 사유의 공간에서 놀라운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어느 날, 무심코 쫓던 파리의 움직임을 통해 그는 ‘좌표 평면’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떠올린다. 이는 기하학과 대수학을 연결시키는 새로운 사고의 틀이 되었고 도형을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현대 수학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 책은 단지 수학 개념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수학으로 설명된다.” 데카르트가 남긴 이 문장은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세계를 수학이라는 구조로 해석하고자 했던 그는 파리의 움직임조차 수치로 환원하려 했고 이는 좌표 평면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되며 이후 수학과 과학, 기술의 구조적 토대를 형성했다.


이렇게 이 책은 이처럼 익숙한 일상에서 추상적 사고로 이행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데카르트가 보여준 사유의 방식은 관찰에서 출발해 개념으로 전환하고 그것을 수학이라는 언어로 정밀하게 표현하는 사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단순한 설명이 아닌 4컷 만화라는 구조를 통해 시각화하며 독자 스스로 사고의 경로를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자극 속에서 생각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데카르트의 일화는 자극이 제거된 고요한 시간 속에서 사고의 밀도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고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결핍 속에서 오히려 정제되고 구조화될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수학적 사고가 어떻게 형성되는 지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수학이 단순한 계산이 아닌 관점의 전환이며 숫자가 아닌 세계를 해석하는 틀을 다루는 작업임을 깨닫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단순히 수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학자들의 삶과 생각을 통해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위대한 수학적 발견은 기존과는 다른 질문, 익숙하지 않은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수학을 잘하거나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짧은 4컷 만화 속에 담긴 깊이 있는 개념과 유쾌한 스토리텔링은 독자들에게 수학은 암기할 공식이 아니라 사고의 도구이며, 세상을 해석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수학을 멀게만 느껴온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첫걸음이 될 것이고 이미 수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지적 즐거움을 더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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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팔을 잃은 비너스입니다
김나윤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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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상실이 아닌 성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띠지 속 문장과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상처를 딛고 일어선 회복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모든 것이 멈춰버린 순간, 삶의 방향을 완전히 잃은 듯 했던 그 자리에서 이전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나아간 한 사람의 진솔하고도 용기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물 일곱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오토바이 사고로 한 팔을 잃고 헤어디자이너라는 오랜 꿈마져 접어야만 했던 저자는 절망 속 병실에서 재활조차 거부했었다. 하지만 다른 환자들의 절실한 노력들을 보며 스스로의 나약함을 돌아보고 마침내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하였고, 스스로를 재구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재활의 고통, 몸의 변화에 대한 낯섦, 세상의 시선 속에서 다시 세워야 했던 자존감, 그리고 피트니스 챔피언이라는 상상조차 못했던 새로운 길까지. 이 책은 그 모든 여정의 이야기를 조급하지 않게,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프롤로그의 “믿을 것도, 돌아올 곳도 결국은 나밖에 없잖아요.” 라는 말이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저자가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원동력은 바로 자기 자신을 믿는 그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쪽 팔과 오랜 시간 이어온 직업을 잃었지만 저자는 멈추는 대신 자신을 다시 세우는 길을 택했다. '윤너스'라는 새로운 이름은 상실 속에서 발견한 저자의 또 다른 자아의 이름이다. 저자는 달라진 밀로의 비너스를 닮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피트니스 선수로 무대에 올랐고, 강연자와 크리에이터와 운동 트레이너로서 타인의 일상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전하고 있다. 시행착오와 두려움, 낯선 시선에 맞서며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그녀가 끝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자신을 믿는 마음 덕분인 듯 싶다. 그리고 이 책에는 유튜브를 통해 짧은 영상과 말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팔을 잃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상처를 껴안으며 더 단단해진 저자만의 자신과의 동행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사고 이후 병원 침대 위에서 보내던 한 달은 저자에게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정신적인 고통이 더 깊게 다가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단지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멈춘 것 같았고 멈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향한 질문이 솟아났다고 한다. 왜 하필 그날이었는지, 왜 오토바이를 탔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 모든 물음표는 결국 자신을 탓하기 위한 것이었고, 저자는 스스로를 '물음표 살인마'라 표현하며 그 시기를 담담히 회고한다. 이 대목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저자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 미용실 인턴 시절 끊임없이 질문하던 '배우는 사람'의 태도는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그 질문이 기술이 아닌 존재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병문안 온 지인의 “너의 사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라는 말은 그렇게 끝도 없이 반복되던 물음표의 고리를 끊어낸 전환점이 된다. 저자는 그 순간을 통해 답이 없는 과거 속에서 이유를 찾는 대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사고 이후의 삶에서 발견한 진짜 회복은 어쩌면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상실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깊은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저자가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의수를 착용하며 겪은 내면의 갈등이다. 실제 팔처럼 보이도록 메이크업을 시도하고, 네일팁을 붙이고, 케이프 코트를 고집하던 그 모든 노력은 결국 남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였다. 하지만 어느 날,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는 것 같다”는 외국인의 말이 전환점이 된다. 저자는 그 말이 자신처럼 의수로 장애를 숨기려는 사람들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 자신에게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감추려 했을까?”를 묻게 된다. 그 질문은 결국 진짜 중요한 건 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라는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의수 없이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던 순간 세상이 생각보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저자는 비로소 의수 대신 용기와 자기 수용을 장착하게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 역시 장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책은 상실을 단지 결핍이나 고통의 기억으로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전환점으로 삼아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저자는 사고 이후 자신의 몸과 마음, 일상의 속도까지 낯설게 느껴야 했지만 그 낯섦 속에서 천천히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 극복의 이야기를 외적으로 꾸미거나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의 순간마다 겪은 혼란과 무너짐을 감추지 않으며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시간과 감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낸다. 그렇기에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선 ‘성장’의 의미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삶의 방향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시선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다시 살아가는 첫걸음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짜 회복이고 변화라는 사실 역시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가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만 닿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팔 하나를 잃고서도 삶 전체의 균형을 다시 세운 그녀의 여정은 누군가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희망과 행복이 우리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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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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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 뒤에 숨은 진심과 갈등, 그리고 성장. ‘오늘의 의뢰’를 통해 청소년의 현실과 감정을 깊이 있게 조명한 인상적인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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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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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가제본 서평단에 당첨되어 조금 일찍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제4회 창비교육 성장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혼자 해결하기 어렵거나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의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주인공이 다양한 사건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 사회, 친구 관계 등 청소년이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을 생생하면서도 진지하게 담아내어 많은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자정이 되면 새로운 사건이 게시되는 비밀스러운 온라인 공간, ‘오늘의 의뢰’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곳에서는 ‘혼자 해결하기 어렵거나, 누구에겐 말할 수 없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대가로 기회를 준다. 바로 의뢰를 성실히 수행한 사람만이 다음 의뢰를 등록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반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 사람은 영원히 사이트 이용이 금지된다. 이 규칙은 마치 게임처럼 보이는 시스템에 현실성을 더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느 날 밤, 한 학생이 올린 충격적인 의뢰로 시작된다. 대상은 명문고 전교 1등 이진성이라는 아이다. 그 아이의 중간고사 시험을 망치게 해달라는 의뢰가 게시되자 익명의 이용자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치열한 논의를 펼친다. 결국 ‘LOVEX’라는 아이디의 누군가가 임무를 수락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렇게 제시되는 ‘오늘의 의뢰’는 단순한 문제나 어려움의 해결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마주한 경쟁, 질투, 외면당한 감정들이 교묘하게 얽혀 있어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특히 사이트의 규칙은 이용자들에게 일종의 도덕적 책임과 위험을 동시에 부여하며 독자에게도 ‘정의란 무엇인가’,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 해민 모녀가 사는 다세대 주택의 2층에 어느 날 새로운 가족이 이사 온다. 바로 같은 학교로 전학 올 예정이라는 중학생 ‘강도경’과 그의 어머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반찬을 들고 2층에 올라간 해민은 뜻밖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도경이의 고함과 어머니의 흐느낌, 그리고 처음 듣는 남자의 낮고 거친 목소리. 반찬을 전하러 갔다가 얼떨결에 도경과 마주친 해민은, 더욱 서먹한 관계가 되고 만다. 그날 이후 해민은 자꾸만 도경과의 어색했던 순간과 그날 들은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도경이 강제전학을 왔다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조용하고 모범적인 도경, 하지만 뭔가 감춰진 사연이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은 해민의 호기심과 걱정을 동시에 자극한다. 이처럼 이야기는 해민과 도경, 두 인물이 어색한 첫 만남과 함께 점차 서로의 삶에 엮이게 되며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처와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또래의 진심을 어떻게 마주하게 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해민과 도경의 서툴고 풋풋한 교감과 대비되며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바로 속 깊고 야심이 넘치는 아이, 소정이다. 단정한 옷차림과 차분한 태도, 매사에 신중한 판단력으로 또래들 사이에서도 모범적인 이미지가 강한 소정은 전학 온 도경을 처음 본 순간부터 괜찮은 아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도경이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줬을 때, 이 친구와 친해져도 괜찮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소정에게 ‘진짜 친구’란 아무하고나 쉽게 맺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정은 스스로를 완벽에 가깝게 관리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시험 성적, 동아리 활동, 인간관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선생님께는 모범적인 학생, 친구들에게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왔다. 어릴 때부터 ‘어른스럽고 영특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란 그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 속에서 인정받는 삶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중 입시 실패라는 아픈 기억이 있고, 그 이후로는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루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 소정에게 해민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태도도 없고, 적당히 맞춰가는 듯한 자세로도 칭찬을 받는 해민이에게 은근한 불편함과 경쟁심을 느낀다. 세상은 결코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언젠가는 큰 좌절을 겪을 것이라며 냉정하게 예견하기도 한다. 이런 소정의 모습은 실제 교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지극히 현실적인 또래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에 대한 깊은 몰입을 이끈다. 이처럼 소정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이야기의 긴장과 균형을 만들어 주는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중심 인물들과 대비되는 매력을 발산한다. 소정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또래의 시선과 감정에 공감하게 되며 이야기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 속 ‘오늘의 의뢰’는 단순한 익명 채팅방이 아니라 이곳에 올라오는 사연과 의뢰는 현실 속 억울함, 분노,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생생하게 담고 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문구점에서 도둑으로 오해 받은 일화를 올리며 분노를 토로한다. 자신을 무시한 점원과 사장을 응징해 달라며 누군가 문구점 유리창을 깨뜨려 달라는 의뢰를 남긴다. 곧 채팅방의 이용자들은 의뢰의 정당성을 논의하기보다는 유리창을 어떻게 깨뜨릴지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논의하며 사건은 점점 현실로 향한다. 이 장면은 독자들에게 학생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오해를 받았다는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분노가 불법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를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겠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는 ‘대리 복수’는 과연 정의일까, 또 다른 폭력일까? 이렇듯 ‘오늘의 의뢰’는 스릴감과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공감과 판단 사이의 경계를 성찰하게 만든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감정과 정의가 왜곡되는 과정을 통해 이 책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또래 간의 갈등이나 학교생활을 넘어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침묵의 폭력과 그 이면에 자리한 사회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평범한 청소년의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관계의 균열과 감정의 깊은 흐름, 그리고 익명성이 빚어낸 위험한 선택들이 촘촘히 얽혀 있다. 그리고 ‘해결’이라는 말이 본래 지닌 의미조차 의심하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해민과 도경은 각각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성장의 과정은 때로 느리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마주해야 하는 감정과 책임이 있다는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책은 빠르고 손쉬운 선택을 부추기는 오늘의 사회에서, 진짜 ‘해결’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 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단단하게 쌓아 올린 이야기 구조와 현실을 비추는 날카로운 시선은 이 책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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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
권기덕 지음, 도원 그림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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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이 책에 담긴 동시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동시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어떻게 현실과 결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권기덕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관찰과 발상을 바탕으로 하여 시 속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나아간다. 제목에서 보이듯 사과 속에 사각형이 산다는 말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을 출발점으로 삼아 익숙한 사물 속에 숨은 또 다른 형태와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이 책 속에 담긴 53편의 시 속에는 교실 풍경, 장난감, 이별, 멍하니 떠오른 생각, 상상의 친구 등 아이들의 하루가 유쾌하게 담겨져 있다. 논리와 규범의 경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발상은 똑같은 일상도 새롭게 보이게 하고 사물과 감정에 새로운 이름과 모양을 부여하며 동시의 세계에 폭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의 시 중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시는 <발가락 엄지척>이다. 이 시는 일상의 작은 해프닝 속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함께 길어 올리고 있다. 체육 시간의 유연성 측정 도중 양말을 뚫고 속 튀어나온 발가락을 시인은 '엄지 척!'이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구멍 난 양말이라는 결함을 지적하는 대신, 그것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바꾸어 부르는 발상은 아이들 특유의 자유로운 시선과 유머를 잘 보여준다. 발가락 하나에도 칭찬을 덧입히는 시인의 언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인정하고 따뜻한 시선을 전해주어 참 좋다.


이 책의 표제작인 <사과의 말>은 사과라는 단어가 가진 두가지 의미, 과일과 용서를 시적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시인은 사과 속에 '사각형'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통해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모서리와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서리들은 아픔에 머물지 않고 화자의 손끝에서 달콤한 행복으로 변해 친구들과 나누는 '사과의 말'이 된다. "모서리 때문에 아프지 않냐고요?, 각진 마음이 생기지 않았냐고요?"와 같은 물음은 결점이나 어색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아이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시 속에서 반복되는 '사각사각'이라는 소리는 사과를 베어무는 순간의 청각적 즐거움이자 모난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는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시는 평범한 사물과 익숙한 행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발상과 언어유희의 즐거움을 결합하여 감정의 깊이를 넓히고 있다. 그 속에어는 아이들 특유의 솔직함과 유연함이 담겨 있으며 어른에게도 마음의 모서리를 품는 법을 전하며 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콩의 비밀>은 작은 콩에 상상력을 불어 넣어 그 크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보인다. 시 속의 콩들은 '작다고 쉽게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외눈박이 괴물로 변하는 쥐눈이콩, 작두처럼 날카로운 작두콩, 비둘기 떼처럼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비둘기콩, 제비처럼 날쌘 제비콩, 호랑이 무늬의 호랑이콩, 그리고 해골섬 출신의 무시무시한 킹콩까지의 나열은 현실의 이름과 상상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결합하여 기발한 유머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에 이르러 '콩당콩닥/콩닥/콩!'이라는 리듬감 있는 의성어가 등장하여 단순한 콩의 나열이 하난의 이야기적 긴장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재미를 주는 의성어가 아니라 콩이 가진 낯선 가능성과 예측 불가의 가능성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이 시는 평범한 사물에 다양한 캐릭터와 서사를 입히는 언어놀이의 힘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그 속에는 어린이 특유의 발랄함과 호기심, 그리고 일상 속 사물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가 담겨져 있다. 읽다보면 작은 콩 하나에도 그 안에 어떤 비밀이 감추어져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얼마나 넓고 자유로운지를 깨닫게 한다.


결국 이 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상상력의 문을 열어준다. 시인은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각자의 마음 속 모서리와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는 언어를 건넨다. 그렇기에 이 책은 부족함과 어색함마저도 우리만의 빛나는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과 긍정의 말로 나누자고 따뜻하게 격려한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상상은 마음을 둥글게 만들고 그 둥근 마음은 누구에게나 달콤한 행복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 마음껏 상상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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