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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
권기덕 지음, 도원 그림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제목부터 이 책에 담긴 동시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동시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어떻게 현실과 결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권기덕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관찰과 발상을 바탕으로 하여 시 속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나아간다. 제목에서 보이듯 사과 속에 사각형이 산다는 말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을 출발점으로 삼아 익숙한 사물 속에 숨은 또 다른 형태와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이 책 속에 담긴 53편의 시 속에는 교실 풍경, 장난감, 이별, 멍하니 떠오른 생각, 상상의 친구 등 아이들의 하루가 유쾌하게 담겨져 있다. 논리와 규범의 경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발상은 똑같은 일상도 새롭게 보이게 하고 사물과 감정에 새로운 이름과 모양을 부여하며 동시의 세계에 폭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의 시 중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시는 <발가락 엄지척>이다. 이 시는 일상의 작은 해프닝 속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함께 길어 올리고 있다. 체육 시간의 유연성 측정 도중 양말을 뚫고 속 튀어나온 발가락을 시인은 '엄지 척!'이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구멍 난 양말이라는 결함을 지적하는 대신, 그것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바꾸어 부르는 발상은 아이들 특유의 자유로운 시선과 유머를 잘 보여준다. 발가락 하나에도 칭찬을 덧입히는 시인의 언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인정하고 따뜻한 시선을 전해주어 참 좋다.
이 책의 표제작인 <사과의 말>은 사과라는 단어가 가진 두가지 의미, 과일과 용서를 시적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시인은 사과 속에 '사각형'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통해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모서리와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서리들은 아픔에 머물지 않고 화자의 손끝에서 달콤한 행복으로 변해 친구들과 나누는 '사과의 말'이 된다. "모서리 때문에 아프지 않냐고요?, 각진 마음이 생기지 않았냐고요?"와 같은 물음은 결점이나 어색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아이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시 속에서 반복되는 '사각사각'이라는 소리는 사과를 베어무는 순간의 청각적 즐거움이자 모난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는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시는 평범한 사물과 익숙한 행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발상과 언어유희의 즐거움을 결합하여 감정의 깊이를 넓히고 있다. 그 속에어는 아이들 특유의 솔직함과 유연함이 담겨 있으며 어른에게도 마음의 모서리를 품는 법을 전하며 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콩의 비밀>은 작은 콩에 상상력을 불어 넣어 그 크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보인다. 시 속의 콩들은 '작다고 쉽게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외눈박이 괴물로 변하는 쥐눈이콩, 작두처럼 날카로운 작두콩, 비둘기 떼처럼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비둘기콩, 제비처럼 날쌘 제비콩, 호랑이 무늬의 호랑이콩, 그리고 해골섬 출신의 무시무시한 킹콩까지의 나열은 현실의 이름과 상상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결합하여 기발한 유머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에 이르러 '콩당콩닥/콩닥/콩!'이라는 리듬감 있는 의성어가 등장하여 단순한 콩의 나열이 하난의 이야기적 긴장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재미를 주는 의성어가 아니라 콩이 가진 낯선 가능성과 예측 불가의 가능성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이 시는 평범한 사물에 다양한 캐릭터와 서사를 입히는 언어놀이의 힘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그 속에는 어린이 특유의 발랄함과 호기심, 그리고 일상 속 사물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가 담겨져 있다. 읽다보면 작은 콩 하나에도 그 안에 어떤 비밀이 감추어져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얼마나 넓고 자유로운지를 깨닫게 한다.
결국 이 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상상력의 문을 열어준다. 시인은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각자의 마음 속 모서리와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는 언어를 건넨다. 그렇기에 이 책은 부족함과 어색함마저도 우리만의 빛나는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과 긍정의 말로 나누자고 따뜻하게 격려한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상상은 마음을 둥글게 만들고 그 둥근 마음은 누구에게나 달콤한 행복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 마음껏 상상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