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팔을 잃은 비너스입니다
김나윤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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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상실이 아닌 성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띠지 속 문장과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상처를 딛고 일어선 회복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모든 것이 멈춰버린 순간, 삶의 방향을 완전히 잃은 듯 했던 그 자리에서 이전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나아간 한 사람의 진솔하고도 용기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물 일곱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오토바이 사고로 한 팔을 잃고 헤어디자이너라는 오랜 꿈마져 접어야만 했던 저자는 절망 속 병실에서 재활조차 거부했었다. 하지만 다른 환자들의 절실한 노력들을 보며 스스로의 나약함을 돌아보고 마침내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하였고, 스스로를 재구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재활의 고통, 몸의 변화에 대한 낯섦, 세상의 시선 속에서 다시 세워야 했던 자존감, 그리고 피트니스 챔피언이라는 상상조차 못했던 새로운 길까지. 이 책은 그 모든 여정의 이야기를 조급하지 않게,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프롤로그의 “믿을 것도, 돌아올 곳도 결국은 나밖에 없잖아요.” 라는 말이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저자가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원동력은 바로 자기 자신을 믿는 그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쪽 팔과 오랜 시간 이어온 직업을 잃었지만 저자는 멈추는 대신 자신을 다시 세우는 길을 택했다. '윤너스'라는 새로운 이름은 상실 속에서 발견한 저자의 또 다른 자아의 이름이다. 저자는 달라진 밀로의 비너스를 닮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피트니스 선수로 무대에 올랐고, 강연자와 크리에이터와 운동 트레이너로서 타인의 일상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전하고 있다. 시행착오와 두려움, 낯선 시선에 맞서며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그녀가 끝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자신을 믿는 마음 덕분인 듯 싶다. 그리고 이 책에는 유튜브를 통해 짧은 영상과 말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팔을 잃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상처를 껴안으며 더 단단해진 저자만의 자신과의 동행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사고 이후 병원 침대 위에서 보내던 한 달은 저자에게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정신적인 고통이 더 깊게 다가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단지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멈춘 것 같았고 멈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향한 질문이 솟아났다고 한다. 왜 하필 그날이었는지, 왜 오토바이를 탔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 모든 물음표는 결국 자신을 탓하기 위한 것이었고, 저자는 스스로를 '물음표 살인마'라 표현하며 그 시기를 담담히 회고한다. 이 대목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저자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 미용실 인턴 시절 끊임없이 질문하던 '배우는 사람'의 태도는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그 질문이 기술이 아닌 존재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병문안 온 지인의 “너의 사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라는 말은 그렇게 끝도 없이 반복되던 물음표의 고리를 끊어낸 전환점이 된다. 저자는 그 순간을 통해 답이 없는 과거 속에서 이유를 찾는 대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사고 이후의 삶에서 발견한 진짜 회복은 어쩌면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상실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깊은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저자가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의수를 착용하며 겪은 내면의 갈등이다. 실제 팔처럼 보이도록 메이크업을 시도하고, 네일팁을 붙이고, 케이프 코트를 고집하던 그 모든 노력은 결국 남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였다. 하지만 어느 날,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는 것 같다”는 외국인의 말이 전환점이 된다. 저자는 그 말이 자신처럼 의수로 장애를 숨기려는 사람들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 자신에게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감추려 했을까?”를 묻게 된다. 그 질문은 결국 진짜 중요한 건 남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라는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의수 없이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던 순간 세상이 생각보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저자는 비로소 의수 대신 용기와 자기 수용을 장착하게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 역시 장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책은 상실을 단지 결핍이나 고통의 기억으로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전환점으로 삼아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저자는 사고 이후 자신의 몸과 마음, 일상의 속도까지 낯설게 느껴야 했지만 그 낯섦 속에서 천천히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 극복의 이야기를 외적으로 꾸미거나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의 순간마다 겪은 혼란과 무너짐을 감추지 않으며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시간과 감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낸다. 그렇기에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선 ‘성장’의 의미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삶의 방향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시선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다시 살아가는 첫걸음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짜 회복이고 변화라는 사실 역시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가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만 닿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팔 하나를 잃고서도 삶 전체의 균형을 다시 세운 그녀의 여정은 누군가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희망과 행복이 우리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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