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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리스타트 - 여성 호르몬이 바꾸는 뇌 건강의 비밀
리사 모스코니 지음, 김경철.김예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8월
평점 :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나 역시 갱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였기 이 책의 주제와 내용이 더욱 현실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책은 신경과학자 리사 모스코니가 쓴 책으로 갱년기를 단순한 생리적 변화가 아니라 뇌의 변화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점을 전환시켜준다. 저자는 갱년기를 '뇌가 주도하는 호르몬쇼'로 정의하며 뇌 과학적 관점에서 중년 이후 여성의 정서와 건강 변화를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감정과 신체 건강 모두를 리셋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한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제목인 '브레인 리스타트'라는 개념이다. 50세쯤부터 시작되는 뇌의 리모델링 과정을 혁신 프로젝트로 보며 이 시기를 인생 후반전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규정한다. 특히 편도체의 감정 조절 기능, 공감 능력, 정서적 안정성 등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변화는 갱년기를 보다 과학적이고 희망적인 시기로 바라보게 만든다. 또한 이 책은 식습관, 운동,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 등 뇌 건강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도 함께 담고 있어 갱년기를 앞두고 있거나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여성이라면 꼭 읽어 볼 만하다.
그동안 갱년기는 여성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보편적인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침묵되거나 축소된 주제로 다뤄져 왔다. 감정 기복,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불안감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많은 여성들은 이를 단순한 ‘기분 문제’로 오해하거나 병원에서는 심리적 불안으로 간주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료 체계 역시 갱년기를 생식기관의 변화에 국한해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 실제로 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를 놓치기 일쑤였다. 이러한 기존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 개념인 ‘브레인 리스타트(Brain Restart)’다. 신경과학자인 저자 리사 모스코니는 갱년기를 단순한 호르몬 감소가 아닌, 뇌가 주도하는 신경학적 재설계 과정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갱년기 동안 뇌의 에너지 대사, 구조, 연결성, 화학적 조성이 실제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뇌 스캔 데이터와 임상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하며, 갱년기를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는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작동 체계로 전환되며 적응해 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갱년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고, 2부에서는 사춘기–임신–갱년기로 이어지는 여성의 생애 주기 속에서 호르몬과 뇌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3부는 호르몬 대체 요법, 비호르몬 치료, 트랜스젠더를 위한 젠더 정체성 지지 요법 등 의료적 접근법을 폭넓게 다루고, 4부에서는 식이요법, 수면,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 비약물적 실천 전략을 통해 인지력과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갱년기를 단순히 병리적인 시기가 아닌, 여성 뇌가 변화와 적응을 통해 다시 설계되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책에서 설명하는 갱년기를 겪는 많은 여성이 경험하는 ‘브레인 포그(Brain Fog)’ 현상을 무척이나 인상 깊으면서 갱년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브레인 포그는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갱년기 중 겪는 인지 기능 저하를 매우 정확하게 묘사한 표현이다. 브레인 포그는 머릿속이 뿌옇고 멍한 느낌, 집중력 저하, 단기 기억력 감퇴, 즉, 말하려던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말 도중 흐름을 잃는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상적인 일도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지며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깊은 낯설음을 느낀다. 이러한 증상은 여성의 60% 이상이 폐경 전후 시기에 겪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내가 미쳐가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나아가 조기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브레인 포그가 치매의 전조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가역적인 뇌의 조정 과정임을 강조한다. 실제 뇌 영상 연구와 ‘SWAN(미국 전국 여성 건강 연구)’ 등 대규모 장기 연구에 따르면 인지 기능 저하는 폐경 전환기 동안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폐경 이후 수년 내에 회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의학적으로 브레인 포그는 ‘주관적 인지 저하’로 분류된다. 즉, 객관적인 인지 검사는 정상 범위지만 개인은 자신의 능력이 저하되었다고 느끼는 상태다. 이러한 변화는 뇌 에너지의 재조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갱년기라는 생물학적 전환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만 일부 여성은 평균 이상으로 뚜렷한 인지 저하를 경험할 수 있으며 알츠하이머병과의 구별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브레인 포그는 일상 기능을 유지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알츠하이머병은 점진적으로 악화되어 기억뿐 아니라 사물의 용도, 자기 관리 능력 자체가 사라진다. 저자는 브레인 포그가 지속되거나 악화될 경우, 신경과 전문의나 인지검사 등을 통한 조기 평가를 권장하며 뇌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브레인 포그는 갱년기 동안 뇌가 새로운 상태에 적응해 가는 일시적인 혼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갱년기를 질병이 아닌 변화와 전환의 시기로 인식하고, 생활습관 개선과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갱년기를 제대로 맞이하는 관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갱년기가 반드시 고통과 상실의 시기만은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이다. 저자는 다양한 국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많은 여성들이 폐경 이후 오히려 더 높은 삶의 만족도와 정서적 안정, 자신감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실제로 호주, 덴마크, 영국에서 진행된 장기 연구에 따르면 폐경을 겪은 여성들 다수가 더 독립적이고, 스트레스는 줄어들며, 인간관계의 질도 향상되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삶의 만족도가 시간에 따라 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폐경 전후 몇 년 동안은 감정적으로 침체를 경험하지만, 그 이후 점차 회복되어 60대에는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높은 행복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갱년기는 단기적으로는 정서적 도전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정서적 회복과 성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갱년기를 단순히 ‘무기력한 시기’로 인식해온 사회적 편견을 뒤흔들며, 인생의 후반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책은 갱년기를 지나며 겪는 감정의 변화와 인지 기능의 일시적 저하뿐 아니라, 그 이후의 회복과 확장된 삶의 만족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 전체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결국 이 책은 갱년기를 피해야 할 위기가 아니라, 인생의 다음 장을 여는 전환점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책은 신경과학적 근거를 통해 뇌의 변화가 단순히 쇠퇴가 아닌 재구성의 과정임을 보여주며, 변화 이후에 찾아오는 정서적 안정감, 공감 능력의 향상, 삶의 만족도 증대를 실질적 데이터로 입증한다. 특히 이 책이 강조하는 ‘페레니얼 세대’의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다. 갱년기를 단절의 시기가 아닌 지속적 성장과 자기 확장의 시기로 받아들이며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배우고, 변화하고, 피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제안한다. 저자는 갱년기를 지나 더 자유로워진 뇌의 리듬을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 삶의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이다. 그렇기에 갱년기 이후의 삶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출발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듯하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이 시기가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한 자신으로 거듭날 기회임을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