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쓴 가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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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반려견 가을이 잠시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특별한 하루를 통해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어찌보면 터무니 없는 설정일 수 있으나 강아지 가을이 주인인 형을 대신하여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가족과 이웃의 뒷모습,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따스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이 책은 섬세한 감정 묘사로 주목받아온 이윤희 작가님의 데뷔작으로 이번 개정판에서는 보다 정제된 그림과 이야기로 작가님의 매력을 더욱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가을이가 쇼파에 앉아 혼자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바쁜 아침, 누나는 양말을 신고 형은 식탁에서 우유를 마시고, 아빠는 옷을 갖춰입고 엄마는 누구보다 먼저 집을 나선다. 누나, 아빠, 차례대로 가족들이 하나둘 집을 떠나고 나면 비로소 텅빈 집안에서 가을이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모두 바빠서일까. 식구들은 오늘도 가을이의 밥을 잊어버렸다. 가을이는 배고픔을 참으며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형이 마시다 만 우유로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 혼자 형의 방으로 들어가 보드게임 루미큐브를 꺼내든다. 혼자서도 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게임 방법을 살펴보는 그 순간 모두 외출한 줄 알앗떤 형이 조용히 방에 들어온다. 형은 혼자서는 루미큐브를 할 수 없다며 가을이에게 게임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가을이가 말할 수 있는 거 다 알고 있고 비밀은 지키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가을이에게 잠시만 자신을 대신해 달라는 뜻밖의 부탁을 하고 조용히 집을 떠난다. 과연 형은 왜 집을 떠나는 걸까? 그리고 과연 어디로 향하는 걸까? 많은 게 궁금하지만 가을이는 묻지 않는다. 그리고 얼떨결에 형이 되어버린 가을은 이제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이 책은 반려견이 안경을 쓰자 사람이 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형의 안경을 쓴 강아지 가을이 형을 대신하여 집과 학교를 오가며 벌어지는 일을 통해 작가는 상상력을 더하고 그 속에 담긴 감정들을 아주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사람이 된 가을은 형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형의 외로움과 마음속 고민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들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 속에는 제빵과 수다를 좋아하는 강아지 비숑, 동네 어귀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고양이 겨울, 이상한 사람으로 소문난 할아버지와 그 곁의 유기견 등 다양한 인물과 동물들이 등장하며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제빵재료를 잔뜩 사두고 빵을 굽지 않은 반려인을 대신하여 열심히 빵을 굽는 비숑과 사람에게 버림받고도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마음을 여는 유기견의 이야기는 동물이 단순히 귀여운 존재를 넘어 인간과 진정한 유대감을 맺는 동반자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무책임한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는 동시에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위로와 변화를 담담하게 전한다. 실제로 저자는 12년간 함께한 반려견 가을이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한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가족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서로를 이어주는 존재였던 반려견, 그 기억은 가상의 인물 가을이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어 책을 읽는 모든 이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책은 상상력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진심 어린 관찰과 경험, 그리고 따뜻한 공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만들며, 우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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