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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지능 - 당신 안에 있는 위대한 지성을 깨워라
앵거스 플레처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0월
평점 :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는 너무나 방대한 정보와 정교한 분석 도구들이 넘친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원하는 자료를 즉시 찾아볼 수 있고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리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판단을 내릴수록 더 많은 혼란과 주저함을 경험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인지과학자 앵거스 플레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고유지능>을 집필했다. 이 책은 기존의 지능 개념이 논리와 분석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인간에게 고유한 사고 능력인 고유지능(Primal Intelligenc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이라는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인간 사고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특히, 미국 육군 특수부대와의 협업 사례를 통해 고유지능이 실제 혼란과 압박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판단력과 문제 해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꽤 흥미롭다. 이 책의 강점은 철학적 개념에 머물지 않고 신경과학 및 문학적 접근을 결합해 인간 사고의 작동 방식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책의 후반부에는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사고 능력을 점검하고 향상시킬 수 있도록 훈련법과 진단 도구를 수록하고 있어 더욱 유용하다.
책의 초반부는 다소 의외의 장소인 미국 미 육군 특수부대와의 협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논리 기반 교육은 한계를 드러냈다. 저자는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인간이 본래 지닌 비논리적, 그러나 목적 지향적인 사고 능력을 연구하고 이를 ‘고유지능(Primal Intelligence)’이라 명명했다. 이 능력은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며 오히려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특징이 있다.
책의 서문과 프롤로그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출발점과 실제 훈련 시스템이 만들어진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대 초, 미국 특수부대는 IQ는 높지만 위기 상황에서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신병들의 문제를 인식했고 이는 곧 현대 교육과 사고방식 전반의 구조적 결함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군 조직의 문제가 아닌 오늘날 대학생, 직장인, 청소년들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사회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군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연구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전에서 검증될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실험에 착수했고 그 실험은 성공했다. 고유지능을 기반으로 한 훈련은 특수부대 요원들의 판단력, 회복탄력성, 리더십 능력을 향상시켰고 이는 곧 군 교육기관과 민간 분야로 확산되었다. 의사, 우주비행사, 교사,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이 이 훈련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경험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지능’이라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논리적 분석, 데이터 기반 추론에 편중되어 있으며 이는 AI가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데이터가 없을 때에도 선택하고, 상상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본능이나 감정의 산물이 아닌 생물학적이고 훈련 가능한 지능으로 정의하고, 그 토대를 ‘서사 인지(narrative cognition)’ 즉,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한다는 사고 구조로 설명한다. 그렇기에 책은 기존의 교육과 지능 개념에 도전하며 AI 시대에도 인간 고유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결정적인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득해간다. 동시에 책은 이 이론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훈련법과 사례를 함께 제시하여 독자 스스로도 잃어버린 본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책이 가진 가장 큰 설득력은 바로 인간의 본능적인 사고 능력이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 지를 다양한 인물과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는 거다. 이 책은 이론을 넘어서 고유지능이 어떻게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네 가지 핵심 능력인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은 단지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위기 상황 속에서 실제로 사람을 구하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기술과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온 원천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전장 한복판에서 누구보다 먼저 위험을 감지하고, 상황을 반전시킨 특수부대 요원, 기존 과학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던 현상을 포착해 과학의 지평을 넓힌 마리 퀴리, 작은 회로 기판 안에서 미래의 생활 방식을 직감해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이들은 모두 고유지능이 현실을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인물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예외를 기회로 바꾸는 반 고흐와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다. 반 고흐는 당시 미술계의 색채 규칙을 따르지 않고, 파격적인 색 조합을 통해 불안정한 아름다움과 인간의 내면을 표현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담긴 감정의 진동은 논리나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 직관의 결과였다.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실패한 제품 로커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가능성을 포착했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규칙을 넘어 예외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는 혁신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인간이 가진 예외 감지 능력, 방향 감지 능력이 어떻게 위기에서 살아남는 힘이 되고 나아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되는 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능력은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지적 감각이며 우리가 다시 훈련하고 회복해야 할 핵심 역량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단지 새로운 사고 개념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인간만의 지능을 실제로 어떻게 점검하고 강화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는 자신의 고유지능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자가 진단 퀴즈와 함께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을 일상에서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는 짧고 실용적인 실행 가이드가 수록되어 있다. 복잡한 이론 없이도 누구나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질문과 연습을 통해 독자는 스스로 사고의 패턴을 점검하고, 잠들어 있던 인지 능력을 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철학과 과학, 실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책이라 하겠다. 기술과 데이터가 중심이 된 세상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자산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회복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를 독자 스스로 체험하게 한다. 복잡하고 불안정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스스로 방향을 감지하고 선택할 수 있는 내면의 나침반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나침반을 다시 작동시키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