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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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강한 끌림을 느꼈다.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이 처럼 간절하고 치열한 문장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궁금했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이야기'쯤으로 여겼지만 책을 읽다보니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왕이 던진 책문과 신하가 응답한 대책을 바탕으로, 위기 속 나라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사유와 실천적 지혜를 담고 있다.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 옳고 어떤 길이 바른지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몇백 년 전의 문답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분명하고 실제적인 해답을 제시해준다는 점이 놀라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이 과거 조선의 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답면이 마치 '기출문제집'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던져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인들의 지혜를 빌려 오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 500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왕과 신하 간의 치열한 문답을 다루고 있다. 태종과 변개량, 세종과 신숙주, 연산군과 이목, 중종과 궈별, 선조와 조희일, 정조와 정약용, 철용과 김윤식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리더와 참모들이 이 나라의 앞날을 고민하며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편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이 모든 문답을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바로 '수양'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기 위해, 그리고 군주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수양'이다. 학문에 힘쓰고 마음을 다스리며, 처음과 끝을 한결같게 하려면 수양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고 갈등을 조율하며,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옳은 충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수양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심지어 좋은 인재를 알아보는 일, 공정한 법 집행, 관계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판단하는 일까지도 모두 수양에서 비롯된다는 말에서 과연 그 시대를 움직였던 사상과 철학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변수가 많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중심을 잡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마음의 근력'이 더욱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수양의 본질과 호용을, 역사 속 실제 사례를 통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설득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내면의 힘'이르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은 태종과 그의 질문에 답한 변계량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태종은 가장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옛날 성군들은 어떻게 그처럼 어진 정치를 펼칠 수 있었는지, 지금 그러한 정치를 본받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고민이다. 이에 대해 변계량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때에 알맞아야 합니다."라며 '중도'와 '시의'를 강조하였다.


그가 말하는 '중도'는 단순한 중요이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는 것도 아니며, 무조건 고전의 원칙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그는 성현의 정신, 즉 이상과 원칙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이 현실 속에서 유연하게 구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철학 있는 실용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변계량은 "사의를 논하면서 세상해 아무해 중에 미치지 못하면 앝은 곳으로 흐를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이 원칙 없는 실용이 오히려 세상을 그르 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답은 단순히 조선 초기의 사상적 논의로 그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정치와 사회에도 유효한 질문과 답이다. 이상과 현실, 원칙과 실용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를 수 있는가? 변계량은 그 해답을 '근본을 잃지 않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서 찾았다. 이는 바로 우리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갖춰야 할 리더쉽의 덕목이자,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정조와 정약용의 문답은 실용성과 현실감이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정조는 당시 조선의 문제로, 신하들의 전문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어떻게 하면 인재를 효율적으로 등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탁월한 인사제도 개혁안을 제시한다. 하급 관리에게는 다양한 직무 경험을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상급 관리에게는 임기를 길게 부여해 행정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인사의 기술적 운영을 넘어, 소외되거나 사장되는 인재가 없도록 하자는 제도적 철학이 담긴 대책이다.


정약용의 제안은 오늘날의 인사 행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부처의 장관이 2년 이상 재임하는 일이 드물고, 공공 영역에서 순환보직으로 인해 전문성이 축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정책과 행정이 단절되고, 조직의 신뢰도마저 흔들릴 수 있다. 더불어 그는 관행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출신 성분, 지위, 지역을 기준 삼아 인재를 제한하는 태도야말로 진짜 ‘인재 부족’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조의 책문과 정약용의 대책은 단순히 당대의 행정 개혁안을 넘어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인재를 볼 줄 아는 눈'이며, 그 눈은 편견 없이, 차별 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바로 이 당연함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쓸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고전적 문답은 오히려 더 명료하게 현재를 비춘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만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담긴 문답은 왕도 신하도 모두 깊은 책임감과 신중함으로 고민한 끝에 던지고 응답한 질문과 답이다. 이들은 개인의 안위나 체면보다 나라의 앞날을 먼저 생각했고,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며 이상과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였다. 그 치열한 고민과 통찰은 몇백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유효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 책은 과거의 책문을 빌려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이 시대, 당신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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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정우열의 감정수업
정우열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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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 마음도 모르는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띠지 속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마치 내 이야기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분명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감정 앞에서는 미숙하고 흔들릴 때가 많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불안 같은 감정들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지만, 정작 그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은 얼마나 될까? 고백하자면 아직도 나는 나도 모르는 내 감정에 휩쓸려 힘들어하고, 때로는 그 감정에 휩싸여 그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미성숙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우리를 위한 책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단순히 없애려 하기보다는, 먼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겪는 다양한 감정의 본질을 짚어주고, 이를 건강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감정이 버거운 짐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은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감정 인식'이다. 감정을 인식한다는 것은 곧 바로 나와 마주하는 연습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더욱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하기도 전에 억누르거나 무작정 해결하려는 조급함에 빠지곤 한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감정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우리의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하다. 1장에서는 감정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흔히 감정은 이성보다 하위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저자는 '멘탈을 지키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말하며 감정과 생각을 구분하고 조화롭게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2장과 3장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마주하는 11가지 주요 감정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분노, 슬픔, 우울, 불안, 기쁨, 친밀, 연민 등 각각의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감정의 이면에는 어떤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질투와 시기가 어떻게 혐오로 변질될 수 있는지, 생각지도 못한 돌발행동을 유발하는 분노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탐구하며 감정이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복합적인 심리적 흐름임을 보여준다. 또한 도파민에 중독되지 않고 건강한 기쁨을 경험하는 방법 등 실질적인 감정 조절법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일상에서 감정을 더 잘 다루기 위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안내하며, 이를 통해 성숙한 감정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감정 인식'은 '자아감'과 연결된다. 자아감이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으로, 우리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진정한 자기계발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며 자아를 형성하는데,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자신의 내면을 잃어버린 채 타인의 기준을 맞춘 삶을 살게 된다. 특히, SNS와 인터넷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상적으로 여기고 그들이 정한 목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현대인에게 자아감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저자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인식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자아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불편한 감정과도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자아감이 형성되면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자아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받는 나'만을 인식하며, 점점 더 외부의 시선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자아감이 확립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과도한 자기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굳이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으며, 자기계빨 또는 결핍에서 비롯한 강박이 아닌, 자기의 내적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된다. 저자는 감정과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의 첫걸음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외로움'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다.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라 여기지만 저자는 외로움이 본질적으로 '나와의 관계'가 멀어졌을 때 찾아온다고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관심이 줄어들듯, 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지는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외로움을 많인 타는 사람은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내면과 소통하는 데 서툰 경우가 많다.


특히, 자기 안의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고, 익숙한 감정만 받아들이면서 가짜 소통 속에 살아가다 보면, 점점 더 공허함과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내면이 고립되면 결국 자신의 바람이 아닌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게 되고, 외로움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는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오히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아 한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기회로 삼으면, 외로움은 더 이상 두려운 감정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소중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결국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11가지 주요 감정의 작동원리와 속성을 제대로 깨우치면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감정들도 결국에는 내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4장에서 제시하는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강한 감정 수용법을 실용적인 솔루션으로 제공하고 있어 당장 실생활에 저자가 말하는 태도를 적용할 수 있어어 참 유용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성숙하고 현명하게 감정을 인지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며 더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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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사회 - 휴머니티는 커피로 흐른다
이명신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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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 <커피사회>에 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루를 커피로 시작하고 때로는 지친 일상 속에서 커피 한잔으로 위로를 받는 요즘의 우리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이 책은 커피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습관을 넘어, 우리 사회와 문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언어이자 관계의 매개체임을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매일의 삶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레 존재하는 커피를 통해 우리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나처럼 커피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읽는 다면 더 흥미롭고 더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커피 관련 서적이 다루는 역사, 원산지, 로스팅, 추출 기법 같은 기술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커피가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에 집중하는 책이다. 저자는 커피를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인간의 삶과 가치를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바라본다. 특히 '각성', '향유', '우애'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커피가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자유, 그리고 공동체 의식과 연결되는지를 탐구한다. '각성'은 졸음을 쫓고 일상을 버터내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인간의 본능과 의지를 나타낸다. '향유'는 취향을 통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커피를 즐기는 행위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우애'는 커피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소통과 공감을 촉진하는 공동체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커피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인간다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나아가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매개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커피 한잔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친구와의 대화, 직장 동료와의 휴식,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순간 속에서 커피는 관계를 깊게 만들고 공감과 연대를 형성한다. 계층, 세대, 국적을 초월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진 커피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이를 '호모 코베아 사피엔스(Homo Coffea Sapiens)', 즉 커피를 통해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류로 표현하며, 커피가 만들어가는 연결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총 18가지의 커피 음료를 중심으로 각각의 키워드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먼저 특정 커피 음료에 대한 소개와 레시가 등장하고, 이어서 그 커피에 담긴 의미와 사회문화적 맥락이 탐구된다. 그리 본 이야기 뒤에 이어 '데일리 커피 익스프레스'라는 부록을 통해 커피에 대한 상세한 개념 섦여과 그 음료와 어울리는 음악까지 추천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커피와 함께 하는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커피는 '각성'의 키워드에 연결된 에스프레소다. 저자는 자신의 첫 에스프레소 경험을 회상하며 강렬한 쓴맛이 밀려오던 순간을 묘사한다. 에스프레소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라 모든 커피 음료의 기반이 되는 '베이스'이며, 이를 통해 저자는 삶에서도 견고한 베이스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요리도 인생도 베이스가 탄탄하면 두려울 것이 없지만, 베이스가 약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쉽게 파고든다. 우리는 종종 SNS 속 멋진 모습과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만, 중요한 것은 겉모습을 꾸미기보다 내면의 단단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어떤 시럽과 크림을 더하기 전에, 기본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점에서 커피와 인생은 닮아 있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휴머니티도 '온잔한 나다움'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상일수록 우리는 더욱 자기 자신만의 베이스를 견고하게 다져야 한다. 시간을 들여 제대로 된 '자기다움'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커피 한 잔 속에서도 삶의 본질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커피를 넘어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카라멜 마키아토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마키아토를 단순히 달콤한 커피 음료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마키아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 거품만 얹은 기본 마키아토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벅스에서 처음 개발한 카라멜 마키아토다. 카라멜 마키아토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바닐라 시럽과 스팀 우유를 넣고, 그 위에 풍성한 우유 거품을 얹은 뒤 캐러멜 시럽을 드리즐해 완성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카라멜 마키아토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음료를 저어 마시지만, 사실 이 음료는 섞지 않고 그대로 한 모금씩 음미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캐러멜 향, 부드러운 우유 거품,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 그리고 바닥에 깔린 바닐라 시럽의 달콤함이 순차적으로 느껴지며, 각각의 재료가 따로 또 같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살면서 진정한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커피 한 잔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카라멜 마키아토는 그저 달달한 음료 정도로만 여겨왔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는 그동안 가졌던 오해를 풀고, 때때로 제대로 된 방식으로 카라멜 마키아토를 음미하며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여운을 남긴다.


아침이 되면 커피를 찾고, 하루 내내 커피를 곁에 두는 일상이 익숙해진 지금, 이 책은 커피를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분주한 하루를 정리하고 고단한 삶을 견인하는 의식이며, 우리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 책은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커피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며, 커피를 통해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선물한다.

결국, 휴머니티는 온전한 나다움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내리는 작은 선택과 습관들이 모여 우리를 만들어가듯, 매일의 좋은 커피 한 잔이 좋은 삶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이 책은 단순히 커피와 사회를 연결하는 인문학적 통찰을 넘어, 더 풍요로운 삶을 지속하고 싶은 ‘커피 인간’을 위한 가이드다. 이제 커피를 마실 때면,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삶의 연결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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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마! 왕재미 3 - 인공 지능과 지구 최후의 날 속지 마! 왕재미 3
다영 지음, 유영근 그림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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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AI)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 그 활용 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하는 지는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무분별한 신뢰는 위험할 수 있으며, 비판적 사고 없이 AI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한 주제를 아주 흥미롭게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속지 마! 왕재미 3 : 인공 지능과 지구 최후의 날>은 우주 경찰 와재미가 AI를 둘러싼 가짜 뉴스와 싸우며,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는 지구 동물을 돕는 과정을 담아낸 과학 동화다.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EBS 교재 집필진인 다영 작가는 다양한 사례와 자료를 활용하여 AI에 대한 맹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왕재미와 개구라 세력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게 바로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책을 읽다 보면 AI에 대한 핵심 개념을 익히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않는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과학적 탐구력과 올바른 판단력까지 길러주는 이 책은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라 하겠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책은 '우주일보'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사라진 왕재미 총장에 대한 뉴스와 교도소에 갇혀 있던 치타의 탈옥 소식은 아프로 펼쳐질 흥미로운 사건들을 암시하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한층 높이고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왕재미가 개구라가 세상을 지배할 '알고리즘 괴물'을 만든다는 악몽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꿈 속에서 본 끔찍한 광경이 잊히지 않아, 왕재미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과연 왕재미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든 알고리즘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개구라가 만들어 낸 이 괴물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AI 기술이 무분별하게 오용도리 경우 현실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본 이야기가 끝난 후 책 속 부록 '개구라의 사기 특강'에서는 인공 지능이 어떻게 학습하고 작동하는 지에 대한 상세할 설명을 담고 있다. 인공 지능은 인간의 뇌 속 신경세포처럼 작동하는 인공 신경망을 이용하여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인공 지능은 시간이 지나도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그대로 기억한다. 방대한 정보를 축적할 수 있어 마치 천재처럼 보이지만, 잘못된 정보를 학습할 경우 이를 그대로 전달하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사용할 때는 정보의 출처와 정확성을 꼼꼼히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AI가 학습한 데이터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구라는 이를 이용해 인공 지능을 교묘한 거짓말쟁이로 만들겠다는 계호기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AI의 한계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과연 개구라는 어떠한 음모를 드러낼까?


악당 개구라는 번번이 자신의 음모를 막아서는 왕재미를 따돌리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조작된 '알고리즘 괴물'을 만들어낸다. 한 번 배운 것은 좀처럼 잊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의 특성을 악용하여 동물들이 AI를 맹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개구라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복권 당첨을 예측할 수 있다거나, AI 점술가가 모든 운명을 알아맞힐 수 있다 등의 거짓 정보를 퍼뜨리며 사기를 벌인다. 하지만 AI가 모든 것을 알고 실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단순한 착각일 뿐이다. 책 속 다양한 이야기들은 인공지능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오늘날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저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등 인공지능을 다룰 때 빠지기 쉬운 논리적 오류들을 흥미로운 사례와 함께 정말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책 속 왕재미의 생생한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AI를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잇는 비판적 사고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사실 '속지마 ! 왕재미' 시리즈의 배경인 라이어 시티는 몸집이 큰 동물들이 우대받고, 조그마한 곤충들은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다. 하지만 왕재미, 예반디, 짱센 풍뎅이, 이 세 곤충은 크기로 평가받는 세상 속에서도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증명해 낸다. 힘이란 단순한 물리적인 강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며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 자신을 믿고 끝까지 나아가는 힘, 그리고 동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용기. 이들이 가진 힘은 그 어떤 것보다 강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왕재미와 이별 후 예반디와 짱센 풍뎅이는 라이어 시티 최초의 곤충 경찰이 되어 새로운 출발을 한다. 작은 곤충들이 편견을 뛰어넘고 연대하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작은 존재도 충분히 강하고 빛날 수 잇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 책은 크기나 힘으로 정의되는 세상에서 진정한 용기와 가치를 일깨우며,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작은 꿈을 더욱 단단하게 키워준다. 그렇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우리는 작고, 강하며, 빛나는 존재니까요."라는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기며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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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절 시집 에디션)
김소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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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문득 궁금해졌다. 시집의 제목에 왜 하필 '도넛'이 들어갔을까? 그리고 도넛을 나눈 다는 건 단순히 간식을 함께 먹는 일이 아니라, 서로 온기를 나누고,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시를 함께 나눌 때의 기분처럼 말이다.


이 시집은 시를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시의 문턱을 낮춘 따뜻한 초대장과 같은 책이다. 20명의 젊은 시인들이 저마다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60편의 창작 시는 우리를 처음 시에 설레였던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창비청소년시선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책은, 시와 그동안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에게 시심을 되살리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 해 줄 것만 같다.


도서부의 즐거움


말하지 않아도 돼

여기서는 누구도 너의 조용함이 지나치다고

나무라지 않을 거거든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가장 말이 없고

풍경이 되기보다 풍경을 지켜보길 좋아하는

도서관의 도서부원들


도서부의 즐거움이란

입을 다문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를 지나며

네게만 들려주는 비밀을 고를 수 있다는 것


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

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가장 말이 없지만

누구보다 빼곡한 문장이 머릿속에 출렁이고 있지

어디선든 생각에 잠겨 그 속을 유영할 수 있지


뒷자리의 누군가가 네 등을 두드리며

무슨 생각 해? 하고 물어 온다면


한 권의 근사한 책처럼

닫혀 있던 마음을 펼쳐

네가 가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


p42 ~ p43


 이 시집에 실린 수록된 시들 중 조온윤 시인의 <도서부의 즐거움>이란 시는 유독 마음에 남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도서관 한 편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순간들, 책 속 문장들이 속삭이듯 마음 속으로 스며 들던 기억들. 이 시는 마치 그 때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라는 첫 구절은 도서관이 품어주던 포근한 위로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도서부원들을 '풍경이 되기보다 풍경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책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 그런 경험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이 시를 읽으니 그 시간들이 다시 내게로 오는 듯 했다.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 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라는 구절은 책이 주는 기적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조용하지만 깊고, 보이지 않지만 풍성한 생각의 세계들. 그리고 마침내 뒷자리의 누군가가 '무슨 생각을 해?'라고 물어올 때, 책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는 마지막 장면은 문득 책을 대하며 설레이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어 더욱 좋았다.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마음이 간에 있다고 믿는대. 현지 가이드 아만다가 말해 줬는데 이유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 때 기념품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야자수 껍질로 만든 필통을 만지다 네 생각이 났는데 이런 게 정말 마음인 걸까?


집에 놀러 온 조카에게 물어본 적 있었다. 해수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망설이다 작은 두 손을 가슴에 얹으며 가리켰다. 심장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대문자 T라고 소문난 친구가 마음이란 뇌에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뇌 과학 연구가 어쩌고저쩌고 말할 때 알아, 하고 듣는 시늉을 하며 하품하는 순간 깨달았지. 마음은 몸 안에서 떠도는 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굣길 친구들 가방에 매달려 흔들리는 키링들

모두 눈 코 입을 찾은 마음

저마다 반짝이는 지비츠를 샌들에 달아 놓고 물웅덩이를 뛰어 들어가는 마음


비가 잔뜩 들어 있는 구름처럼 무거워지는 날엔 엎드려 잠만 자고 싶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면 높은 계단도 두 칸씩 뛰어 내려오는 일

그러나 마음이 있어서 정말 귀찮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은 온종일 내가 계속 술래였다.


p64 ~ p65


그리고 이 시집에서 또 한편, 깊은 인상을 남긴 시는 서윤후 시인의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였다. 마음에 대해 이토록 솔직하면서도 생생하게 적어 내려간 시를 읽으며, 문득 나 또한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되짚어 보게 되었다.


시의 첫 문장은 마치 어린 시절의 숙제처럼 시작된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이 질문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을 법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시인은 마음을 찾기 위해 여러 경험을 떠올린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마음에 간에 있다고 믿는다는 이야기, 조카가 가슴을 가리키며 마음의 위치를 짐작하는 장면,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가 뇌에 있다고 단언하는 순간. 하지만 그 모든 답을 지나쳐 결국 도달한 깨달음은 '마음은 몸 안에서 떠도는 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떠도는 마음의 형상을 섬세한 이미지로 포착한다. 하굣길 친구들의 가방에 매달린 키링, 저마다 반짝이는 지비츠를 달고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샌들, 비 오는 날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맑은 날엔 계단을 뛰어내리는 감정들. 마음은 그렇게 일정한 자리에 머무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쁘다가도 갑자기 무거워지고, 가벼워지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시인은 솔직한 탄식을 내뱉는다. '그러나 마음이 있어서 정말 귀찮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이 문장은 너무나도 솔직해서 오히려 위로가 된다. 마음은 우리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애가 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시는 그러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자체가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이 시집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시를 모아둔 시집이 아니라, 시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시인들이 이 시를 집필하며 어떤 기억과 경험을 소환했는지, 어떤 고민과 마음을 담아냈는지를 기록한 '시작 노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시를 통해 지난간 나와 대화를 나누고, 현재의 나를 위로하는 과정들이 이 시집의 시들에 담겨져 있다. 서윤후 시인은 시를 쓰면서 '여전의 나와 조금 친해진 기분'을 느꼈고, 양안다 시인은 '현재의 제가 위로 받았'다고 고백한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 때로는 낯설고 어색할지라도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이 시집은 조용히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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