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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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콜센터에 전화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콜센터에서의 일이 얼마나 고되고 감정 소모가 많은 지를 몇 건의 사건 이후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들의 감정 소모와 상처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은 '유감이지만', '오래 기다렸습니다', '폐를 끼쳤습니다' 등과 같은 매뉴얼화된 말들이 보듬고 찌르는 순간과 수화기 너머로 오가는 애환과 위로의 시간들을 담아 내고 있다. 이 책은 9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한 이예은 작가의 에세이로, [일본 콜센터에서 520일]라는 제목 으로 초보 상담원으로 겪은 고충과 콜센터를 덮친 코로나 19로 인한 혼란 뿐만 아니라 콜센터에서 사용하는 매뉴화된 말들에 대한 실망과 기대, 안도와 우울 같은 생생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냥 뱉은 말이지만 말 한 마디에 우리는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 특히나 수화기 너머로 오가는 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나 표정을 볼 수 없기에 오롯이 말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한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2015년 한국에서 호텔 홍보 일을 그만두고 일본에 살기 시작한 저자는 2020년 1월, 일본 여행사의 콜센터에 입사하게 된다. 한국어를 일본어로, 일본어를 영어와 한국어로 옮기던 이력을 바탕으로 상담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상담원과 고객 사이의 소통 도구는 오로지 전화기 너머로 주고 받는 말들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된 저자. 그런 저자를 꾸짖기보다 다독여준 매니저의 태도에서 저자는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가야 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이런 저자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는 초보의 시절과 실수, 그 앞에서 과연 우리는 매니저와 같이 너그러운 사람인지 질책과 책망의 시선으로 대하는 차가운 사람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콜센터로 전화한 고객은 친절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상담원의 말을 듣는다. 고객이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는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서비스에 불만이 있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콜센터에 전화한 대부분의 고객들은 화가 나있다. 이들을 상대하는 상담원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면 과잉되었다고 여길 만한 존경과 겸양의 말들로 고객을 응대한다. 자존심이 세서 사과에 서툴렀던 저자는 콜센터에서 일하며 숨 쉬듯 용서를 비는 인간이 되어간다. 얼떨결에 콜센터 상담원이 되어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진상 고객 앞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낀 낯섦과 혼란, 자신만의 수용과 깨달음의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반인의 세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콜센터의 말들을 들여다 본다. 그의 시선 아래 '유감이지만', '오래 기다렸습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말들은 일상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 사과의 말들을 내뱉어야 하는 현실에서 소모되는 그 수많은 상담원들의 감정들이 안타깝다.

익명의 고객이 수화기 너머에서 전하는 어떤 말들은 상담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담원을 낮춰 부르는 "야", "너" 같은 호칭도 그렇고, "정말 무책임하네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라며 상담원에게 책임을 지우는 말들도 그렇다. 저자가 외국인임을 알아채고 이유 없이 "일본인 바꿔 주세요."하는 차별의 말들 앞에서 저자와 다른 상담원들이 받았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통화라 할지라도 보듬고 북돋아 주는 말을 전하는 고객들도 있다. 진심을 듬뿍 담은 "고마워요"라는 말을 듣는 상담원은 하루를, 어쩌면 이랗는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이 책에 담긴 23편의 이야기를 관통하여 저자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에 누군가를 상처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주는 말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을 우리에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진심을 받아들임으로써 사소한 말이라 할지라도 한 번더 생각하고 말하기를 습관화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단 한번 스쳐 지나가는,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만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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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민음사 탐구 시리즈 4
임소연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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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남성만의 산유물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분야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와 언어는 21세기인 지금에도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대 과학의 표준을 벗어나는 여성의 몸은 오래도록 신비와 무지의 대상이었다. 아이를 품은 성스러운 어머니상을 걷어내고 나면 입덧, 섭식장애, 냉동 난자, 성형 수술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이 보인다. 이 책의 저자인 임소연님은 지금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과학학자로 이 책을 통해 난자 냉동 기술, 차별적 언어를 구사하는 인공지능 챗봇, 여성형 비서로봇들로 시끄러운 과학 기술의 현장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

난자와 정자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생물학은 생물과 인체에 대한 과학이기에 성차별적 인식을 크게 받으면서 성차별적 구조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 책에서는18세기 중반에 나온 골격학을 들고 있다. 영국 해부학자 존 바클리는 해부학 책에 여성과 타조의 골격, 남성과 말의 골격을 나란히 그려 넣었다. 타조와 나란히 비교된 여성의 골격은 작은 두개골과 넓은 골반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는데, 이는 낮은 지능과 출산 기능이 부과된 당대의 여성 이미지를 신체의 특징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19세기 다윈 진화론과 20세기 이후의 유전학, 신경 과학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밝히는 일에 골몰했다고 한다. 이렇게 과학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성차별과 편견을 드러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과학이 여성 과학자를 폄하한 역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과학계에서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벨물리상의 후보에서 제외될 뻔 했으며, 남성 동료와 등등한 공동 연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렇게 과학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과학자로도, 과학의 연구 대상으로도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은 영원히 과학을 적대시하며 살아야 할까?


비판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과학의 범위를 실험실 밖으로 넓히는 이 책은 최신 과학 기술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과학과 아직 어색하여 거리를 두는 독자들을 과학 안으로 초대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수학과 과학에 약하다는 편견으로 자신도 모르게 과학과의 거리를 두었던 여성, 과학에 특별히 관심도 없었거나, 혹은 과학 자체를 싫어하던 문과생들도, 우리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과학 기술에 대하여 궁금했던 이들도, 이 책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과학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우리 삶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한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콩팥이나 폐보다 뇌의 성차에 관심이 많았다. 뇌의 성차에 관한 과학지식은 곧잘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지식으로 간주되고, 사회적 성 역할과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왔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유럽과 북미, 호주의 여성 과학자와 페미니스트들이 결성한 뉴로젠더링 네트워크는 과학 연구가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게 수행될 수 없다는 문제 의식을 공유한다. 뉴로젠더링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페미니스트 신경 과학은 뇌의 차이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는다. 이분법적으로 단수노하된 성 인식에 부합하는 과학 지식의 재생산을 그만두고, 뇌의 성차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세밀한 서사를 만들고자 한다.


뉴로젠더링 네트워크의 일원이자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많은 남녀의 뇌를 가리켜 '모자이크 뇌'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모자이크는 흔히 여성과 남성의 특성으로 구분되는 여러 특징이 한데 뒤섞인 상태가 인간의 뇌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조엘의 연구팀은 성별로 나뉜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 기준을 두고 탐색하는 획기적인 연구 방법을 고한하여 성차 연구의 한계를 돌파했다. 조엘은 뇌를 정량적으로 측정해 개별 뇌의 차이를 규명하는 자신의 연구가 성별 집단의 차이만 드러내는 기존의 연구보다 더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조엘은 젠더라는 사회적 편견을 '신화'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젠더에서 좀 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신화의 영역에 있는 젠더가 보다 조엘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져만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과 과학을 함께 보는 종합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여성을 아기를 생산해내는 어머니의 몸이라는 관점에서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겨두어 임신에 따른 몸의 변화를 모성으로 감내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임신에 관한 많은 증상이 그렇듯이 입덧의 원인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 입덧이 유산과 조산, 저체중아 출산의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임신 결과에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전한다. 입덧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태아를 중심으로 임신을 이해하는 관점을 반영한다. 하지만 사실 입덧 현상은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의 몸에서 자라는 또 다른 존재인 태반과 더 긴밀하게 연결된다. 임신 과학의 중심은 바로 이 태반에 있지만 태반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사실 태반의 중요성은 과학계에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간의 태반 연구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수행되었을 뿐 태반 자체를 하나의 장기로 충분히 이론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임신 기간 동안 태반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동의와 협조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임신 중인 여성이 단순히 연구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연구의 참여자로서 과학자와 함께 태반 연구를 이끌어 갈 필요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더이상은 임신이 신비로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여성과 과학을 함께 보는 종합적인 시선을 제안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과학에 접근하거나 과학에서 여성 쪽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만나게 되는 논쟁점을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토대로 하나하나 집어 설명한다. 섹스와 젠더의 차이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성염색체와 뇌에서 시작해 태반, 장과 같은 여성 장기를 들여다 보고, 난자 냉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아버지의 정자도 면밀히 살핀다. 차별하는 인공지능과 여성을 모방한 비서 로봇의 문제를 아주 자세히 설명함으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진화론, 물리학과 페미니즘을 함게 연구하는 이점도 이야기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과학이 얼마나 성차별적이었는지를 하나하나 깨닫게 되며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에도 많은 부분에 차별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함께 느끼게 된다.

과학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흔히 과학자는 과학을 잘하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남성으로 가득한 물리학, 공학 분야의 성비 불균형은 '과학은 남자가 잘한다'라는 고정 관념이 마치 사실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이 현상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남학생들은 여학생에 비해 진입장벽없이 설사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무조건 과학계로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계의 능력주의 신화는 그렇기에 깨뜨려야 한다고 말이다. 과학이 진정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단 한명의 천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을 알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도 과학도 더이상 신비롭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태껏 과학계에 존재하 신화에서 벗어나 현실과 함께 과학을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제안하는 과학 탐구의 출발 시점은 기존의 '순진무구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는 난자 냉동에 관한 고민일 수도 있고, 쌍꺼풀 수술이 될 수도 있고, 화장품 광고만을 띄우는 SNS일수도 있다. 과학 지식은 지식을 만드는 사람과는 무관한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인 결과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연과 사물의 세계는 나의 몸, 나의 삶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저자의 말처럼 여성과 과학은 더이상 신비롭지 않기를 바래본다. 우리 아이들이 자란 세상에서는 신비롭지 않은 여성과 과학이 실상화 되어 더이상 성별로 고민하는 일은 없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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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 동시대 문화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2
윤아랑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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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문화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포함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는 삶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인종, 지식, 계급, 재산, 젠더 정체성, 정치적 지향, 성적 지향, 인정 욕구, 문화적 취향 등등과 같은 지지대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말로 순식간에 쏟아지는 콘텐츠들이 예술의 빈자리를 채워버린다. 특히 2020년 이후 한국문화예술계는 그야말로 흔들리는 지지대 아래, 제도 안과 밖에서 다양한 힘들이 경합하고 있다.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20대 비평가인 윤아랑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 문화의 시대의 정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거대한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와 작품이 놓여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하여 들여다 본다. '기성이냐 대안이냐' 하는 식으로 한 쪽 편을 들기 보다는 영화, 소설, 예능 프로그램, 웹툰, 만화를 넘나들며 매체의 형식을 끈질기게 파고 들고 있다. 영화플랫폼 왓차의 네임드 유저로, 트위드 인플루언서로, 등단한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윤아랑은 윗세대에게는 거침없는 비판으로, 또래 세대에게는 사려 깊은 관심으로 직시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동시대 문화에 관한 비평집인 동시에 문화의 동시대에 관한 비평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총 열 세편의 비평이 담겨 있다. 그 중 특히 눈에 뜨였던 것은 바로 영화에 대한 비평이다.


저자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지는 욕구를 '배 속에서 부글부글 끊는 기분을 언어로 해명하려는 욕구'라 표현 쓰고 있는데, 어쩜 이리도 찰떡 같이 표현했는 지하며 감탄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문화에 대한 비평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이라 칭하였기에 이 기분이 제목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요 제목이 재밌으면서도 웃겨 보였는지,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무슨 내용이냐며 계속적으로 물었다. ^^


여하튼 저자는 이 책의 실린 열 세편의 비평을 관통하는 일관된 태도로 글을 쓰고 있다. 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죄악이 되는 순진함'이고, 새로운 세대의 운동이란 실로 '반복의 반복'이며, 영화 감상과 글쓰기는 '천박하고 쓸모없다.' 그러니 뭔가가 우리에게 부글부글 끓는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 감흥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면 된다고 말이다. '자신이 발을 담그고 있는 똥통, 세상이라는 똥통을 직시하고 긍정해야 합니다.'라는 이 긍정의 태도는 왠지 너무나 급변하고 다양하게 쏟아지는 변화를 좀 더 쉽게 그리고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의 태도가 비평가인 저자의 고유한 힘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의 실린 여러 비평 중 나에게는 <모가디슈>에 대한 글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모가디슈> 영화 자체를 워낙에 인상 깊게 보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았기 때문이 큰데, <모가디슈>를 통해 남북 분단의 짐을 이야기하는 관점도 색달랐다. 그렇다. 우리 민족에게 지금의 분단의 상황은 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가디슈> 이후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분단 자체가 평화의 차원에서만 볼 문제가 아닌, 분단의 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의 짐이기도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가디슈>에서 보인 잠깐의 유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분단의 상황이 우리에게는 트라우마일까? 아님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책임일까?


이 책에 담긴 열 세편의 비평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그 열 세편의 글 속에 담긴 오늘날 우리의 문화를 좀 더 심도 있게 바라보게 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있는 세상이 비록 똥통처럼 보일지라도 이 책을 통해 직시하고 인정해본다. 그리고 함께 누렸던 그 문화에 대해 이 책을 매개로 좀 더 탐구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시간일 듯 싶다. 왜냐, 우리가 살아가며 향유하는 바로 그 문화이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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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독서 모임 - 오늘의 철학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1
박동수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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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의 표지 속 제목을 보면서 철학책을 난 언제 읽었지라는 생각부터 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즐겨 있는 나조차 철학책에게는 다른 책과 달리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런 철하책을 함께 읽는다면 과연 어떨까? 보통 철학이라고 하면 영원한 진리, 지혜, 위로의 기술, 까다로운 문장 등등 이런 편견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데, 이는 어제의 철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책 편집자인 저자는 출판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읽은 오늘의 철학책 열권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한다. 이 책에 담긴 오늘의 철학을 담은 열권의 책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철학책이란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사유를 담은 책을 말하고 있다. 좁은 범위의 철학에서 나아가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생태학 등을 넘나들면서 바로 오늘의 다양한 이슈에 근본적으로 개입하고 도전하는 책을 의미한다. <나와 타자들>, <관광객의 철학>에서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까치 꼭 한번은 읽어 볼 만한 열 권의 철학책에는 동시대적인 감각을 공유하면서 현재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보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젠더를 둘러싼 갈등, 문화충돌, 세대와 경제 격차와 같은 오래된 사회문제에서 극히 최근에 인식되기 시작한 기후 위기까지 다양한 오늘의 문제를 겪고 있따. 이 책의 담긴 열 권의 책에는 인간 내면의 위기를 들여다 보는 존재론적 탐구에서 시작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탐구하는 사회 철학, 인간과 물질을 얽힘을 탐구하는 신유물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접근까지 오늘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기에 참 좋은 책들이다. 안타깝고 부끄럽게도 이 책에 담긴 열 권의 책 중 단 한권도 나는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앞으로 꼭 읽어야 할 열 권의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이 책에 제일 먼저 실린 <나와 타자들>을 통해 먼저 우리에게 '타자'는 과연 누구인지부터 말한다. 그들은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타자들, 이미 우리 옆에 있는 평범한 타자들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아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 쿼어문화축제에서 만날 수 있는 성소수자들처럼 우리 곁에서 일하고 먹고 노는, 어느새 우리의 이웃이 되어버린 타자들이다. 나와 타자들이 알게 모르게 공존하고 있는 이 사회를 <나와 타자들>의 저자 카림은 '다원화 사회'라고 부른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동시대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누구도 이 엄연한 사실 자체를 아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다원화된 사회를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다원화 사회는 우리 각자의 정체성에 어던 영향을 미치는 지를 묻고 있다. 1990년대 였다면 그런 탐구 대신 환대, 관용, 타자에 관한 인정, 차이의 윤리와 같은 좋은 말을 늘여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문화 배경을 가진 소수자 학생을 '다문화'라고 부르면서 차별하는 사례가 보여 주듯, 성찰없이 사용되는 양식 있는 언어는 힘도 진리도 지니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와 타자들>은 타자들을 무조건 환대하거나 타자들과의 영원한 평화를 지향하자는 식의 도덕적 담론을 일방적으로 설파하는 윤리적 지침서는 아니다. 타자들과의 불가피한 공존 속에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불안정성과 그 정치적 귀결들을 분석하며 우리 모두의 공통적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시사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오늘의 철학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타자들>은 이 책에서 제일 처음 다룬 책이 되었고, 철학책이 우리 시대를 포착하고 그에 대한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대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대에 요구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때에 맞지 않는 성찰을 통해 동시대와 대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와 타자들>은 오늘의 철학책으로써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오늘의 철학책이 제공하는 중요한 시점은 세대, 젠더, 계급, 인종, 민족이 너무나 다른 타자들 사이에서 우리가 모두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너무도 많은 불안에서 비롯된 혐오가 현실 정치와 인터넷 세상, SNS 세상을 뒤덮고 있으며 소통의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철학책 독서 모임'은 '우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을 던지고 있다. 그렇기에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라는 식의 현대 철학에서 벗어나 다원화된 사회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나와 타자들>에서는 함께 고민하고 찾고 있는 것이며 이는 모든 논의가 시작되는 출발점으로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타자들>이외의 9권을 책은 각각 다른 주제로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며 성찰하여야만 주제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각각의 책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성찰해 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민음사의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을 담고, 공부와 삶을 잇는 인문 시리즈 '탐구'의 첫번째 책이다. 민음사는 탐구 시리즈를 통해 오늘날 한국 인만사회과학의 성과를 한눈에 보고자 기획하였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젊은 저자들이 자기 삶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제안을 독자에게 던진다. 낯선 학문이 이 책들을 통해 다시 해석되고, 각자의 현실은 새로운 길로 연결되게 된다. 기존의 인문학의 한꼐로 지적되었던 서양 학문의 의존에서 벗어나 동료 학자와 또래 저자를 참조하고, 어려운 이론을 가까운 사례를 통해 풀어서 설명하고 있따. 이는 학술서와 대중서로 양분된 독서 시장에 징검다리를 놓는 시도라 하겠다. 내가 <철학책 독서 모임>을 통해 철학책들에 좀 더 가까워진 것처럼 민음사의 탐구 시리즈를 통해 인문학의 여러 책들에 가까워 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 흥분이 되고 다음 책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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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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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즈 블루'라는 제목과 표지 속 불꽃과 색감이 너무 잘 어울려서 왠지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은 <페인트>, <나나>의 저자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학업과 꿈, 미래에 대한 압박으로 상처받고 힘겨운 아이들에게 갈등하고 고민하고 선택하고 후회하는 것, 모두 대단한 도전이라는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이제 곧 고3으로 올라가는 주인공 바람의 꿈 이야기로 시작된다. 늘 꿈 속에서 만나곤 했던 아이와의 이야기에서 바림이 앞으로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번 겨울 방학만 지나면 고3이 되는 바림은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다 쉬는 시간에 단짝 친구 해미와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 갔다가 눈길에서 넘어져 오른쪽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 2주간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바림에게 2주간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치명적인 일일 듯 싶다. 그래서 바림의 엄마도, 해미도 걱정이 깊어져 가지만 어쩐지 바림은 그렇지 않은 듯 싶다.


주인공 바림은 그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싫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를 목표로 하여 그리는 것이 바림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을까. 그 중압감을 견디다 견디다 손을 다치기 2주 전쯤 학원 선생님께 바림은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 했지만,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바림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손 다친 김에 잠시 쉬어가자는 엄마의 말에 갑자기 이모가 있는 경진으로 가기로 한 바림. 그렇게 바림은 몇 년만에 경진에 가게 된다.


이 책은 특징은 제목부터 특정 색을 나타나는 말로 시작해 모든 목차가 색을 나타내는 단어로 이루어졌다는 거다. 그 색이 가지는 느낌을 토대로 바림과 등장인물의 마음과 생각을 유추하여 생각하다보면 어느 새 등장인물들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를 공감하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경진으로 온 바림은 홀로 백오산에 갔다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는 바림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과연 이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뒷 부분에 가서 밝혀지는 아이의 정체는 완전 반전의 반전을 이룬다.


산에서 만난 아이, 수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 책의 제목인 '챌린지 블루'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바림이 수가 밤에서 새벽으로 가는 하늘 빛의 새로운 이름으로 챌린지 블루를 이야기 했을 때 바림의 미간은 찌푸린다. 이제 곧 고3이 되는 바림에게 도전과 성취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의 챌린지 블루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메세지처럼 느껴질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바림처럼 도전과 성취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함으로써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공감하게 되고 알아가게 된다.


사실 바림은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닥이 미끄러운 슬리퍼를 신고 나갔고, 넘어질 때 일부러 오른손으로 땅을 짚었다. 심리적 부담감으로 인한 월요병이나 새학기 증후군이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바림이 한 행동을 과연 자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바림의 행동이 무모하다고, 혹은 잘못이라고 나무랄 수 있을까. 이러한 마음은 비단 청소년만이 겪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청춘들은 '오늘의 행복'보다는 '행복할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러한 우리가 미래에 도달했을 때 과연 정말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리고 주인공 바림의 이름인 바림의 사전적 의미는 색깔을 칠할 때 한쪽은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로 비슷한 말은 그라데이션이 있다. 그리고 엄마 너울, 이모 여울, 절친 해미, 이모의 전 남친 우금, 그리고 수까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모두 물과 관련된 단어로 지어져있다. 책의 초반부에 나온 바림의 꿈에서 한 아이와 나눈 대화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그렇고 이 책은 우리의 삶이 물처럼 어느 한 곳에 도달할 지를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특정한 목표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라데이션처럼 다양하게 변하는 거라는 것을 말하는 듯 싶다.


이 책은 우리에게 도전을 하면 꼭 나아가야 하는 거냐고 묻는다. 때로는 제자리에 멈춰 서는 것 역시 다른 의미의 도전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림의 선택은 참으로 용기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청소년 소설은 역경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이루어냄으로써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 책은 바림이 어떤 역경을 이겨내고 성취하는 모습으로 결론 짓지 않아서 더 좋다. 꼭 도전하고 성취해야 하는 것만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데 있어 성장하는 일이라고 알려주지 않아서, 가끔은 멈춰 서서 현재를 돌아 보는 것도 도전이라고 말해줘서 이 책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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