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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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콜센터에 전화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콜센터에서의 일이 얼마나 고되고 감정 소모가 많은 지를 몇 건의 사건 이후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들의 감정 소모와 상처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은 '유감이지만', '오래 기다렸습니다', '폐를 끼쳤습니다' 등과 같은 매뉴얼화된 말들이 보듬고 찌르는 순간과 수화기 너머로 오가는 애환과 위로의 시간들을 담아 내고 있다. 이 책은 9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한 이예은 작가의 에세이로, [일본 콜센터에서 520일]라는 제목 으로 초보 상담원으로 겪은 고충과 콜센터를 덮친 코로나 19로 인한 혼란 뿐만 아니라 콜센터에서 사용하는 매뉴화된 말들에 대한 실망과 기대, 안도와 우울 같은 생생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냥 뱉은 말이지만 말 한 마디에 우리는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 특히나 수화기 너머로 오가는 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나 표정을 볼 수 없기에 오롯이 말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한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2015년 한국에서 호텔 홍보 일을 그만두고 일본에 살기 시작한 저자는 2020년 1월, 일본 여행사의 콜센터에 입사하게 된다. 한국어를 일본어로, 일본어를 영어와 한국어로 옮기던 이력을 바탕으로 상담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상담원과 고객 사이의 소통 도구는 오로지 전화기 너머로 주고 받는 말들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된 저자. 그런 저자를 꾸짖기보다 다독여준 매니저의 태도에서 저자는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가야 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이런 저자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는 초보의 시절과 실수, 그 앞에서 과연 우리는 매니저와 같이 너그러운 사람인지 질책과 책망의 시선으로 대하는 차가운 사람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콜센터로 전화한 고객은 친절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상담원의 말을 듣는다. 고객이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는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서비스에 불만이 있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콜센터에 전화한 대부분의 고객들은 화가 나있다. 이들을 상대하는 상담원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면 과잉되었다고 여길 만한 존경과 겸양의 말들로 고객을 응대한다. 자존심이 세서 사과에 서툴렀던 저자는 콜센터에서 일하며 숨 쉬듯 용서를 비는 인간이 되어간다. 얼떨결에 콜센터 상담원이 되어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진상 고객 앞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낀 낯섦과 혼란, 자신만의 수용과 깨달음의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반인의 세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콜센터의 말들을 들여다 본다. 그의 시선 아래 '유감이지만', '오래 기다렸습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말들은 일상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 사과의 말들을 내뱉어야 하는 현실에서 소모되는 그 수많은 상담원들의 감정들이 안타깝다.

익명의 고객이 수화기 너머에서 전하는 어떤 말들은 상담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담원을 낮춰 부르는 "야", "너" 같은 호칭도 그렇고, "정말 무책임하네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라며 상담원에게 책임을 지우는 말들도 그렇다. 저자가 외국인임을 알아채고 이유 없이 "일본인 바꿔 주세요."하는 차별의 말들 앞에서 저자와 다른 상담원들이 받았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통화라 할지라도 보듬고 북돋아 주는 말을 전하는 고객들도 있다. 진심을 듬뿍 담은 "고마워요"라는 말을 듣는 상담원은 하루를, 어쩌면 이랗는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이 책에 담긴 23편의 이야기를 관통하여 저자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에 누군가를 상처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주는 말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을 우리에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진심을 받아들임으로써 사소한 말이라 할지라도 한 번더 생각하고 말하기를 습관화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단 한번 스쳐 지나가는,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만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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