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 동시대 문화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2
윤아랑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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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문화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포함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는 삶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인종, 지식, 계급, 재산, 젠더 정체성, 정치적 지향, 성적 지향, 인정 욕구, 문화적 취향 등등과 같은 지지대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말로 순식간에 쏟아지는 콘텐츠들이 예술의 빈자리를 채워버린다. 특히 2020년 이후 한국문화예술계는 그야말로 흔들리는 지지대 아래, 제도 안과 밖에서 다양한 힘들이 경합하고 있다.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20대 비평가인 윤아랑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 문화의 시대의 정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거대한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와 작품이 놓여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하여 들여다 본다. '기성이냐 대안이냐' 하는 식으로 한 쪽 편을 들기 보다는 영화, 소설, 예능 프로그램, 웹툰, 만화를 넘나들며 매체의 형식을 끈질기게 파고 들고 있다. 영화플랫폼 왓차의 네임드 유저로, 트위드 인플루언서로, 등단한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윤아랑은 윗세대에게는 거침없는 비판으로, 또래 세대에게는 사려 깊은 관심으로 직시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동시대 문화에 관한 비평집인 동시에 문화의 동시대에 관한 비평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총 열 세편의 비평이 담겨 있다. 그 중 특히 눈에 뜨였던 것은 바로 영화에 대한 비평이다.


저자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지는 욕구를 '배 속에서 부글부글 끊는 기분을 언어로 해명하려는 욕구'라 표현 쓰고 있는데, 어쩜 이리도 찰떡 같이 표현했는 지하며 감탄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문화에 대한 비평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이라 칭하였기에 이 기분이 제목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요 제목이 재밌으면서도 웃겨 보였는지,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무슨 내용이냐며 계속적으로 물었다. ^^


여하튼 저자는 이 책의 실린 열 세편의 비평을 관통하는 일관된 태도로 글을 쓰고 있다. 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죄악이 되는 순진함'이고, 새로운 세대의 운동이란 실로 '반복의 반복'이며, 영화 감상과 글쓰기는 '천박하고 쓸모없다.' 그러니 뭔가가 우리에게 부글부글 끓는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 감흥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면 된다고 말이다. '자신이 발을 담그고 있는 똥통, 세상이라는 똥통을 직시하고 긍정해야 합니다.'라는 이 긍정의 태도는 왠지 너무나 급변하고 다양하게 쏟아지는 변화를 좀 더 쉽게 그리고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의 태도가 비평가인 저자의 고유한 힘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의 실린 여러 비평 중 나에게는 <모가디슈>에 대한 글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모가디슈> 영화 자체를 워낙에 인상 깊게 보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았기 때문이 큰데, <모가디슈>를 통해 남북 분단의 짐을 이야기하는 관점도 색달랐다. 그렇다. 우리 민족에게 지금의 분단의 상황은 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가디슈> 이후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분단 자체가 평화의 차원에서만 볼 문제가 아닌, 분단의 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의 짐이기도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가디슈>에서 보인 잠깐의 유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분단의 상황이 우리에게는 트라우마일까? 아님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책임일까?


이 책에 담긴 열 세편의 비평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그 열 세편의 글 속에 담긴 오늘날 우리의 문화를 좀 더 심도 있게 바라보게 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있는 세상이 비록 똥통처럼 보일지라도 이 책을 통해 직시하고 인정해본다. 그리고 함께 누렸던 그 문화에 대해 이 책을 매개로 좀 더 탐구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시간일 듯 싶다. 왜냐, 우리가 살아가며 향유하는 바로 그 문화이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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