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
고혜원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띠지에 실린 '삶보다 죽음이 흔했던 1950년 한반도, 스스로 기적이 된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소개글이 눈에 확 띄면서 책을 궁금하게 만든다. 이 책은 6.25전쟁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소녀 첩보원, 래빗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6.25 전쟁에 실제로 소녀 첩보원이 존재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겠지만 그 사람들 중에 보호받는 게 너무나 당연했던 어린 소녀까지 포함 되어 있었다는 게 가슴 아팠다.


이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 홍주가 마을 뒷산에서 토끼를 따라 갔다가 산삼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산삼을 망태기에 넣고 행복한 상상을 하던 홍주는 산 정상을 스치고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에 멈추게 된다. 처음으로 보게 되는 비행기에 놀라며 신기해하던 홍주는 그 비행기가 홍주의 마을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서 풍문으로만 듣던 전쟁이 자신에게도 다가왔음을 깨닫게 된다. 폭탄은 큰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홍주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참모회의실에서는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소녀 첩보원이 필요하다며 브리핑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집하게 된 소녀첩보원. 홍주는 폭격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살고자하는 의지마져 잃어버리고선 군부대에 지원한다. 그렇게 홍주는 작전에 나간 열 명 중 아홉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켈로 부대 소속 소녀 첩보원 래빗이 되었다. 


독한 년이라 불리면서 래빗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지만, 홍주가 돌아온 것은 변절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홍주는 그 의심 앞에서 자신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으로만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자신 역시 살고 싶어서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고, 그런 홍주를 안아주는 이들은 다른 소녀들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래빗인 유경은 첩보원 활동을 하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거래에 응하여 래빗이 되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홍주가 래빗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함께 지내면서 둘은 점점 가까워져 동무가 된다. 모든 것에 대한 의지를 잃었던 홍주는 유경 덕분에 전쟁이 끝난 뒤의 미래를 꿈꾸게 되고, 유경은 홍주 앞에서 <옥중화> 연극을 선보이며 국극단 배우라는 유경의 꿈을 펼쳐 보인다. 그렇게 유경의 꿈과 미래는 잃어버린 과거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홍주에게도 전해져 홍주는 처음으로 전쟁이 끝난 뒤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이 있는 작전지로 아군의 폭격이 예정되었다는 첩보를 듣게 되는 데, 과연 두 사람은 전쟁을 끝내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당시 작전을 펼쳤던 소녀 첩보원 '래빗'들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당연히 보호의 대상이었기에 오히려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첩보원이 되었고,첩보원이었기에 전쟁이 끝난 뒤에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소녀들. 어찌보면 전쟁의 희생양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이야기 속 소녀들의 살이 다 비극적이지는 않다. 전쟁 중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사랑하는 연인들은 미래를 약속 하듯이, 죽음과 상실이 너무나 만연한 곳이지만 소녀들은 미제 초콜릿을 함께 나누어 먹고,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살아 돌아온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꼭 살아남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이유로 래빗이 된 소녀들. 누군가는 막 해방된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소중한 이를 앗아간 적에 대한 복수심으로 등등 저마다 다른 이유로 입대하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사라져가고 이 책의 래빗들은 저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내일을 기대하는 게 힘든 전쟁터에서 래빗들은 서로 미제 초콜릿을 나누어 먹고, 공기놀이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폭격으로 공포에 질린 동료들을 따뜻이 안아주며 그렇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모든 이야기들을 마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너무 비장하지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따뜻하고 올곧은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서 더더욱 이 책이 매력적이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당시 활동했던 소녀 첩보원들의 삶을 생생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책은 2022년 제2회 K-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죽이는 게 당연해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홍주와 유경이 동무가 되어 미래를 꿈꾸었던 것처럼, 저자는 우리 모두가 만나고 싶은 미래를 꿈꾸기를 응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일임을 이 책을 통해 깨닫는다. 홍주가 꿈꾸던 미래의 장면에 가닿는 마지막 면은 그래서 더더욱 먹먹하다. 유경과 함께 꿈꾸었던 미래이기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수호천사, AI 큐피드 더 나은 세상 2
강성은 지음, 샤토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인공지능(AI)가 곳곳에 사용되고 있으며 곳곳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적용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아이들은 인공지능 프로그램, AI가 결코 낯설지 않다. 아이폰의 시리, 유튜브 알고리즘, 챗봇 등등 아이들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어른보다 더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이 책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도와주는 인공지능을 과연 어떻게 사용하여 되는지 아이들에게 인공지능 사용윤리와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 김다온이 너무나 좋아하는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게임 속 장면을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묘사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읽자마자 폭 빠져들게 만든다. 게임 속 멋진 장면을 그린 그림은 이야기 속으로 폭 빠져드는 데 톡톡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책 속 주인공 다온이는 가상현실게임을 가장 좋아하고, 절친 정연은 인공지능 아이돌 인월드에 폭 빠져 있다. 이 책 속 배경이 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 인공지능이 깊숙이 들어온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온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는 부모님에게 아동,청소년 돌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선물받게 된다.

다온이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큐비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큐피드는 다온이의 일상에 금세 파고든다. 아침이 되면 큐피드는 다온이를 깨우고, 가전제품을 작동시켜 식사를 준비하며, 숙제도 도와준다. 이뿐만 이 아니다. 큐피드는 검색능력을 발휘하여 다온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떡볶이 맛집의 비법까지 알아내준다. 큐피드 덕분에 다온이는 인생 떡볶이를 찾기도 하고 다온이가 제일 좋아하는 가상현실게임도 큐피드와 함께 한 덕분에 다온이 혼자서 할 때는 늘 '게임 오버'로 였던 게임이 '미션 컴플릿트'로 끝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다온은 도서관에서 얼마 전 전학온 강우진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다온이 앞에 있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2권을 찾던 우진은 다온이에게 책을 자신이 봐도 되느냐고 말을 걸고, 이를 계기로 다온은 우진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얼떨결에 자신도 우진이처럼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큐피드의 도움을 받아 검색한 후 읽지도 않은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지도 읽은 척을 하게 된다. 우진이와 가까워지고 싶은 다온은 우진이가 소개해준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고, 독서 모임 규칙을 지키기 위한 독서록을 올리기 위해 큐비드에게 책과 독서록을 찾아 달라고 한다.

사실 다온이는 책만 보면 잠이 쏟아지는 아이였지만 우진이에게 잘 보이고는 싶었다. 큐피드의 감상문을 쓰려면 책을 다 읽어야 된다는 말이 맞기는 하지만 책은 읽기 싫으니 인공지능 큐비드의 검색 기능을 통해 다른 사람이 쓴 독서록을 살짝 고쳐 올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큐비드의 도움을 받아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검색 수가 가장 적은 글을 살짝 고쳐 독서록을 올린 다온.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줌으로 하는 독서 모임에서 우진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다. 과연 우진이는 왜 그토록 좋지 않은 표정으로 다온에게 쌀쌀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던 걸까?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가상현실 게임을 가장 좋아하는 평범한 초등학생인 다온이 부모님이 선물한 돌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쁜 부모님 대신 자신과 놀아주고 자신의 식사와 숙제 등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큐피드 덕분에 다온이의 일상은 예전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편해졌다. 하지만 다온이가 큐피드를 이용하여 다른 이의 감상문을 베껴쓰는 등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편리한 생활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이 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이의 작품을 고스란히 베껴 사용하는 등의 비윤리적인 사용은 오히려 현실에서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온이 사는 세상처럼 조만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상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더 깊숙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과연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며 제대로 사용하는 것인지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의 윤리 교육 역시 발맞추어 나아가야 발달된 기술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덧붙임 1) 청어람 주니어 블로그에 들어가면 <나의 수호천사, AI 큐피드>와 관련한 독후 활동지를 다운받을 수 있다. 생각그물, 인공지능 관련 배경지식 쌓기, 가로세로 낱말퍼즐, 독서퀴즈, 생각 나누기, 생각 펼쳐기 등 다채로운 활동을 통해 이 책을 읽고 난 뒤 독후 활동을 하면 이 책에 대한 즐거움과 이해가 더 배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각도우미견 솔이, 함께여서 좋아! 가족그림책 4
스즈키 빈코 지음, 유하나 옮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감수 / 곰세마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보통 안내견 혹은 도우미견은 시각장애인을 돕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청각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일상의 여러 소리르 듣고 소리가 난 곳으로 안내하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지체장애인의 휠체어를 이끌어주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주는 지체장애인 도우미견 등 우리 곁에 다양한 도우미견이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으로 훈련받은 솔이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민준이네 가족과 함께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 인간과 비인간을 뛰어넘어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으로 훈련 받은 솔이가 민준이네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민준이네 가족은 엄마, 아빠, 민준이 그리고 동생 민지까지 모두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귀가 들리는 건 오로지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솔이 뿐이다.


아침이 되면 솔이는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제일 먼저 알람 시계가 울리자 솔이는 엄마를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 옆방의 민준이도 깨워 인사를 한다. 솔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민준이네 식구를 위해 알람시계, 물이 끓는 주전자 소리, 아기 민지의 울음 소리, 세탁기 등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족들을 안내한다. 


그리고 외출할 때에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조끼를 입고 나간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솔이의 조끼를 보고 민준이네 가족을 친절하게 도와준다.


일상 생활에서 소리를 전달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소리를 듣지 못해 위험한 순간 솔이는 민준이네 가족에게 먼저 다가가 알려준다. 솔이가 있어 많은 것이 가능해지고, 안전한  생활도 가능해진 민준이네 가족. 이제 솔이는 민준이네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었고, 솔이가 있어 민준이네 가족은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청각장애인 생활 보조 용품에 대한 소개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이 하는 일에 대한 소개를 덧붙이고 있다. 보통 도우미견이라 하면 대부분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을 떠올리겠지만 도우미견이 하는 일은 더 다양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도우미견이 단지 도우미견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은 가족의 일부분이 되는 장면에선 왠지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도우미견이 일할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말을 걸거나 만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 왜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를 통해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던 김상근 교수가 시칠리아의 역사를 담아낸 책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곡물 창고이자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담당하였고, 2,800년이라는 세월동안 수탈과 침략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무려 열네 번에 걸친 외세의 침략이 이어졌고, 그렇게 짓밟힌 땅에는 시칠리아 주민들의 한숨과 눈물이 쌓여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랜 시간 너무나 다사단란했던 시칠리아의 역사를 살펴보며 시칠리아의 '진짜 얼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표지는 이를 위해 시칠리아의 어느 어촌에서 만난 어부의 사진이다. 경계하는 눈동자와 가늘게 떨리는 입술, 그러나 깊게 팬 주름마다 서려잇는 용기와 강인함, 그의 얼굴 자체가 딱 시칠리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시칠리아의 진짜 역사와 면모를 알아간다.


시칠리아에는 끝나지 않은 여름이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친 브리오슈 빵 조각을 얼음물인 셔벗에 찍어 먹는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지만 물은 절대 부족하다. 언제나 목마른 섬, 타오르는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물을 길어와야 하지만, 그 한 통의 물을 길어오기 위해선 또 다른 한 통의 땀을 흘려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혹독한 더위에 지쳐서일까. 시칠리아 사람들의 표정에는 메마름이 느껴진다. 찌푸린 얼굴들, 갑자기 화를 낼 것 같은 표정들, 신경을 곤두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는 눈동자들. 그들의 이런 성마름은 목마름에 비롯한 것이라 하겠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만성적인 갈증을 참고 견디기 위해 과묵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특유의 다번과 수다스러운 몸동작은 시칠리아에서는 금기다. 시칠리아에서 말을 많이 하는 자는 불온한 자이며, 음흉한 목적을 가진 외지의 침략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색깔도 맛도 아름다운 음식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그리스, 로마, 스페인, 이슬람 등 다양한 문영의 흔적이 남아 있어 볼거리도 다채롭다.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시칠리아를 처음 찾아왔을 때 감탄하며 '모든 섬의 여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칠리아는 활화산의 열기와 바짝 햇볕 아래 늘 목마름에 시달리는 곳이자, 마피아가 탄생한 곳이며, 무려 열네 번에 걸친 회세의 침략으로 인한 절망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건넜으며, 다양한 문명의 흔적인 남아있다는 것은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은 증거인 것이다.


이 책은 시대 순으로 시칠리아의 다사다난한 역사와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수많은 인물들이 이 책에 실려 있는데, 기존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는 게 참 흥미롭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삼고 있는 아가토클레스가 실은 동료 시민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친구들을 배신했으며, 본인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신의정도는 헌신짝처럼 버렸던 인물이었다니. 놀랍도록 흥미롭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가 그를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삼은 것은 '단숨에 거사를 단행했다'는 점 때문이란다. 악행은 저지르지 말아야 하지만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단 한 번의 악행으로 '단숨에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아가토클레스의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가해 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한다는'것이었다니.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가해행위는 백성들의 저항과 반발을 불러 일으키며, 대신 백성들에게 베푸는 은혜는 조금씩, 천천히 베풀어야 백성들이 고마워 하게 되고, 또 다른 은혜를 기다리며 순종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라서 더더 흥미롭다. 


왕관 황금이 제대로 들어간 것을 조사해야 했던 아르키메데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골똘히 연구하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유레카!"를 외치며 알몸으로 시라쿠사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시라쿠사에서 활동하던 아르키메데스는 지중해 문화권 최고의 과학자, 수학자, 발명가였다. 그는 원의 둘레 길이를 구할 때 원의 지름을 구해서 그것을 원주율과 곱하는 원리를 발견한 수학자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수학자 유클리드와 쌍벽을 이룬 인물이다. 그는 로마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투석기와 쇠칼퀴를 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리쿠스를 점령한 로마군인에 의해 무참히 죽음을 당해야 했다고 하니. 시리쿠스의 역사상 안타까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800년이라는 유구한 세월동안 시칠리아는 단 한 번도 스스로 문명을 개척하거나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원 전 800년경 시칠리아에 처음 식민지를 개척한 페니키아인들로 시작해 그리스, 로마, 반달족, 이슬람, 프랑스 노르만, 호엔슈타우펜 왕조, 카페 왕조, 아라곤 왕조, 합스부르크 왕조 등이 차례로 이 섬에 찾아와 유린하고 약탈했다.기원전 6세기에는 잔인한 참주가 공포 정치를 펼쳤고, 10세기에는 이슬람 문명의 지배로 새로운 종교에 적응해야만 했다.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법치를 도입하고 근대 국가의 발판을 놓았지만, 곧 프랑스 카페 왕조가 달려와 중세 봉건 제도로 되돌려 놓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연합국과 추축국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각국의 문화가 이 아름다운 섬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날 때마다 그 피해와 아픔은 고스란히 시칠리아 주민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파라만장한 시칠리아의 역사들을 이해하고 나면 왜 제목이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라고 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표지 속 어부의 표정 역시 시칠리아의 진짜 얼굴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시칠리아의 진면모가 알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시칠리아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면 참 좋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모두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잖아요 - 소심 관종 '썩어라 수시생' 그림 에세이
썩어라 수시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과 저자 이름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다. 이 책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메일링 서비스 등 다양한 공간에서 500만 명의 공감을 얻은 '썩어라 수시생'이 전하는 오늘도 살아남은 우리에게 전하는 웃픈 위로를 담고 있다. 때로는 소소하고 때로는 난리법석인 썩어라 수시생의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어 많은 공감을 전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저자가 전하는 조금 이상한 위로는 조금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너무나 독특한 '썩어라 수시생'이라는 이름은 음악 대학 입시 때문에 힘들게 썩어가던 시절, 친구가 붙여준 닉네임이라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멋진 음악가가 되고 싶어 한국 대학 입시, 유학에 석사 입시까지 했지만 아직도 자신은 노래를 못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노래를 못한다고 해서 이제 더이상 그가 자신을 미워하거나 타박하진 않는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자신과 자신의 노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공감이 된다. 너무나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만으로 생각만큼 잘하지 못하는 게 바로 우리이기에, 노력을 해도 그만큼의 결과가 따라오진 않는게 우리의 인생이기에, 이 책의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될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자신을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저자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그게 바로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인 듯 싶다. 저자가 지닌 긍정 에너지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용기와 힘이 난다.


너무나 독특한 '썩어라 수시생'이라는 이름은 음악 대학 입시 때문에 힘들게 썩어가던 시절, 친구가 붙여준 닉네임이라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멋진 음악가가 되고 싶어 한국 대학 입시, 유학에 석사 입시까지 했지만 아직도 자신은 노래를 못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노래를 못한다고 해서 이제 더이상 그가 자신을 미워하거나 타박하진 않는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자신과 자신의 노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공감이 된다. 너무나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만으로 생각만큼 잘하지 못하는 게 바로 우리이기에, 노력을 해도 그만큼의 결과가 따라오진 않는게 우리의 인생이기에, 이 책의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될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자신을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저자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그게 바로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인 듯 싶다. 저자가 지닌 긍정 에너지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용기와 힘이 난다.


그리고 이 책의 무엇보다 큰 장점은 에피소드들이 너무 재밌다는 거다. 제목에서부터 웃음이 나오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지 뭐'와 같은 상황은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지 않았을까. 너무나 소소하고 조금은 이상한데, 재밌는!! 그게 딱 우리의 일상인 듯 하다.


왜왜 내 인생만 이렇게 이상하고 힘든 걸까라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원래 인생은 다 이상하고 우리 모두는 조금씩 다 이상한 인생을 살아내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이 책은 전한다. 그렇기에 이상한 삶을 저자처럼 즐기면서 매 순간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조금 더 이상하게 살아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올 때는 친구들과 춤 한번 신나게 추고, 사는 게 지칠 때는 최대한 이상한 방구 소리를 흉내내며 한바탕 웃어보면 어떨까. 이상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행복과 웃음이 매순간 있음을 우리 모두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