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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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 왜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를 통해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던 김상근 교수가 시칠리아의 역사를 담아낸 책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곡물 창고이자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담당하였고, 2,800년이라는 세월동안 수탈과 침략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무려 열네 번에 걸친 외세의 침략이 이어졌고, 그렇게 짓밟힌 땅에는 시칠리아 주민들의 한숨과 눈물이 쌓여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랜 시간 너무나 다사단란했던 시칠리아의 역사를 살펴보며 시칠리아의 '진짜 얼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표지는 이를 위해 시칠리아의 어느 어촌에서 만난 어부의 사진이다. 경계하는 눈동자와 가늘게 떨리는 입술, 그러나 깊게 팬 주름마다 서려잇는 용기와 강인함, 그의 얼굴 자체가 딱 시칠리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시칠리아의 진짜 역사와 면모를 알아간다.


시칠리아에는 끝나지 않은 여름이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친 브리오슈 빵 조각을 얼음물인 셔벗에 찍어 먹는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지만 물은 절대 부족하다. 언제나 목마른 섬, 타오르는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물을 길어와야 하지만, 그 한 통의 물을 길어오기 위해선 또 다른 한 통의 땀을 흘려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혹독한 더위에 지쳐서일까. 시칠리아 사람들의 표정에는 메마름이 느껴진다. 찌푸린 얼굴들, 갑자기 화를 낼 것 같은 표정들, 신경을 곤두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는 눈동자들. 그들의 이런 성마름은 목마름에 비롯한 것이라 하겠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만성적인 갈증을 참고 견디기 위해 과묵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특유의 다번과 수다스러운 몸동작은 시칠리아에서는 금기다. 시칠리아에서 말을 많이 하는 자는 불온한 자이며, 음흉한 목적을 가진 외지의 침략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색깔도 맛도 아름다운 음식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그리스, 로마, 스페인, 이슬람 등 다양한 문영의 흔적이 남아 있어 볼거리도 다채롭다.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시칠리아를 처음 찾아왔을 때 감탄하며 '모든 섬의 여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칠리아는 활화산의 열기와 바짝 햇볕 아래 늘 목마름에 시달리는 곳이자, 마피아가 탄생한 곳이며, 무려 열네 번에 걸친 회세의 침략으로 인한 절망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건넜으며, 다양한 문명의 흔적인 남아있다는 것은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은 증거인 것이다.


이 책은 시대 순으로 시칠리아의 다사다난한 역사와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수많은 인물들이 이 책에 실려 있는데, 기존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는 게 참 흥미롭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삼고 있는 아가토클레스가 실은 동료 시민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친구들을 배신했으며, 본인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신의정도는 헌신짝처럼 버렸던 인물이었다니. 놀랍도록 흥미롭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가 그를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삼은 것은 '단숨에 거사를 단행했다'는 점 때문이란다. 악행은 저지르지 말아야 하지만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단 한 번의 악행으로 '단숨에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아가토클레스의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가해 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한다는'것이었다니.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가해행위는 백성들의 저항과 반발을 불러 일으키며, 대신 백성들에게 베푸는 은혜는 조금씩, 천천히 베풀어야 백성들이 고마워 하게 되고, 또 다른 은혜를 기다리며 순종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라서 더더 흥미롭다. 


왕관 황금이 제대로 들어간 것을 조사해야 했던 아르키메데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골똘히 연구하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유레카!"를 외치며 알몸으로 시라쿠사 거리를 뛰어다녔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시라쿠사에서 활동하던 아르키메데스는 지중해 문화권 최고의 과학자, 수학자, 발명가였다. 그는 원의 둘레 길이를 구할 때 원의 지름을 구해서 그것을 원주율과 곱하는 원리를 발견한 수학자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수학자 유클리드와 쌍벽을 이룬 인물이다. 그는 로마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투석기와 쇠칼퀴를 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리쿠스를 점령한 로마군인에 의해 무참히 죽음을 당해야 했다고 하니. 시리쿠스의 역사상 안타까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800년이라는 유구한 세월동안 시칠리아는 단 한 번도 스스로 문명을 개척하거나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원 전 800년경 시칠리아에 처음 식민지를 개척한 페니키아인들로 시작해 그리스, 로마, 반달족, 이슬람, 프랑스 노르만, 호엔슈타우펜 왕조, 카페 왕조, 아라곤 왕조, 합스부르크 왕조 등이 차례로 이 섬에 찾아와 유린하고 약탈했다.기원전 6세기에는 잔인한 참주가 공포 정치를 펼쳤고, 10세기에는 이슬람 문명의 지배로 새로운 종교에 적응해야만 했다.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법치를 도입하고 근대 국가의 발판을 놓았지만, 곧 프랑스 카페 왕조가 달려와 중세 봉건 제도로 되돌려 놓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연합국과 추축국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각국의 문화가 이 아름다운 섬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날 때마다 그 피해와 아픔은 고스란히 시칠리아 주민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파라만장한 시칠리아의 역사들을 이해하고 나면 왜 제목이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라고 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표지 속 어부의 표정 역시 시칠리아의 진짜 얼굴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시칠리아의 진면모가 알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시칠리아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면 참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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