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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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무법자'라는 단어는 범죄와 폭력을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에 '나의'와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되니 묘한 애착과 연민이 들어가버린다. 대체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작은 무법자가 되어버린 사람은 과연 누굴까?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골드 대거상, 식스턴 올해의 범죄소설상, 네드 켈리 국제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일본 출간 직후 서점 대상 번역소설부분상을 수상하였고, 디즈니 + 에서 시리즈의 제작이 확정되기까지 했다고 하니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30년 전 한 사건으로 시간이 멈춰버린 작은 마을 케이브 헤이븐. 그곳에서 스스로 '무법자'가 되길 자처한 열세 살 소녀 더치스와 과거의 죄를 짊어진 채 돌아온 빈센트 킹의 만남은 운명의 소용돌이를 불러온다. 페이지마다 엄청난 서사와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는 이 책은 슬픔과 상처를 품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강렬한 감동을 선사하며 단숨에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깎아지른 절벽 너머로 햇살이 부서지는 작은 마을, 케이프 헤이븐. 그곳의 경철 서장 '워크'의 시계는 30년 전, 열다섯 살의 '빈센트 킹'이 '시시 래들리'라는 아이를 죽이고 살인죄로 성인 교도소로 수감된 이후로 멈춰 있다.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죽은 시시의 언니이자 그의 오랜 친구였던 스타 래들리,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 뿐이다.


이야기는 한밤중, 긴박한 소란 속에서 시작된다.술과 약에 빠져 제대로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엄마 스타 대신 열세 살의 더치스는 다섯 살 어린 동생 로빈을 지키기 위해 나이보다 빠르게 성숙해 버렸다. 그런 그녀는 쓰러진 엄마, 스타를 구급차에 태운 채 그녀를 지켜본다. 그리고 어린 동생 로빈이 불안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워크. 집 앞에는 한방중의 소란을 지켜보며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이 서 있다. 곧 어린 남매는 병원 대기실에서 엄마의 상태를 알지도 못한 채 불안하게 기다린다. 그리고 워크와 더치스의 이어지는 대화에서 더치스는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고 있다.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그리고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며 버티는 더치스의 모습은 그동안에 이 아이가 받았을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져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바로, 살인자 빈센트 킹이 출소해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30년 전 사건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렸던 케이프 헤이븐에서, 그의 귀환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더치스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시 한번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빈센트 킹이 돌아와도 아이들과 스타의 삶은 괜찮은 걸까? 그런데 30년 동안 변함없이 그를 기다려온 사람이 있다. 바로 경찰 서장 워크. 그가 품어온 기다림을 들여다 보면 빈센트 킹은 그리 나쁜 사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과연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곳에 다시 찾아온 비극의 그림자는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일까? 이 모든 질문 속에서 이 책은 강렬한 서사 속으로 자꾸만 끌어당긴다.


더치스는 집세를 내지 못하는 엄마를 위협하고 협박하는 다크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어린이다운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그녀는 다크의 가게에 불을 지르고, 안에 있던 비디오 테이프를 보험 삼아 가지고 나와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그 작은 반항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의 도화선이 되고야 만다. 다크는 곧 더치스의 짓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녀를 위협했고, 두려움에 휩싸인 더치스는 결국 엄마 스타에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한다. 비록 스타는 동생 로빈의 생일을 싸그리 잊어버릴 정도로 무책임한 엄마였지만, 더치스 역시 여전히 아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한 번쯤은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던 거다. 그런 더치스를 보며 스타는 다정한 목소리를 말했다. "누구나 나쁜 짓을 해." 그리고 더치스에게 "내가 널 지켜줄게. 그게 엄마들이 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 더치스의 마음은 흔들리고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였지만, 그 말에 거의 울 뻔했다. 완벽하진 않아도,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그 날 밤, 더치스는 엄마가 잊어버린 동생 로빈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몰래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온다. 하지만 집 앞에는 평소보다 많은 경찰이 몰려 있었고, 그들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했다. 불길하 예감이 스쳐 지나가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한 더치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엄마 스타의 싸늘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빈센트 킹은 살인 용의자로 수감된다. 이번 죄목은 '스타 래들리 살해'이다. 더치스는 빈센트에 대한 분노와 세상을 향한 복수심을 억누르며 동생 로빈과 함께 생면부지 외할아버지 '핼'에게 맡겨진다. 낯설고 광활한 핼의 농장, 너무나 넓어서 황량하기까지 한 그곳에서 더치스는 '맞아서 시커멓게 멍든 엄마의 갈비뼈를 생각나게' 하는 허클베리를 씹으며 진정한 무법자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엄마의 죽음으로 더욱 깊어진 더치스의 상처와 분노에 그동안 연을 끊었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져 더치스의 가슴에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핼의 진심과 엄마 스타와의 이야기 속에서 점점 더치스는 핼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열어가지만 더치스의 인생의 역경은 끝이 없다. 과연 더치스와 로빈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매일 끊이지 않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남매의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도 제발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가슴 졸이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단순한 범죄소설만은 아니다. 저자는 더치스의 거친 성장기를 통해 선택과 운명, 복수와 용서에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책장을 넘길 수록 이 소녀의 삶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고, 그녀가 과연 이 잔혹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애태우며 지켜보게 된다. 이 소설은 저자의 말처럼 "실수에 관한 이야기,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서 이 책은 더 깊은 여운과 울림을 남긴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휘몰아치는 사건들 속에 눈을 뗄 수 없엇고, 절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으며, 울컥하고 올라하는 복잡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더치스를 통해 삶과 용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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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의 필요 청색지시선 11
김지윤 지음 / 청색종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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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의 필요>, 이 독특한 제목이 먼저 나를 끌어당겼다. 피로가 필요하다니, 역설적인 이 말 속에 과연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피로는 대채 떨쳐내야할 대상이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 피로를 들여다보며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또 그 안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듯하다.

이 시집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지윤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지난 2012년 <수인반점 왕선생> 이후 13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집으로, 긴 시간 동안의 사유와 문학적 탐구가 담긴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등단 이후 깊이 있는 시선과 절제된 언어로 주목받아온 시인은 시와 비평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문학적 자리를 공고히 해왔다. 이번 시집에서 더욱 확장된 사유와 밀도 높은 감각은 한 편 한 편 오랫동안 시집 안에 머물게 만든다.


표제시 <피로의 필요>에서 '피로'는 단순히 삶의 부산물이 아니라 멈추어야 할 순간을 가르쳐 주고,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게 하며 삶의 방향성을 다시 묻는 자리로 확장된다. 롤러코스터의 무한한 궤도를 따라 달려가던 우리는 결국 엔진 없는 열차처럼 멈출 수 밖에 없고, 그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 시에서 피로는 존재의 내면을 파고드는 성찰의 도구이며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김지윤 시은은 "피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고 사색을 위한 어두운 방을 제공하며, 삶의 다른 국면을 열어주는 중요한 고비, 생의 문장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쉼표, 그리고 질문의 시작점과 같은 거죠"라고 말한다. 이처럼 <피로의 필요>는 피로가 만들어 준 여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무엇을 원하는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피로는 단순한 소진이 아니라, 다시금 방향을 찾고자 하는 몸과 마음의 신호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리고 <헛묘>는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불러내며, 잊힌 존재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묻는다. 시작 화자는 여행책자나 역사책, 심지어 국립현충원과 전쟁기념관에서도 자신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공식적인 기억에서 배제도 4.3 희생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화산송이 흙, 까마귀 울음, 바람등칡 꽃과 마삭풀 덩굴처럼 제주 속에 스며있다. 그렇기에 시인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진정한 애도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존재를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발한다. "부디 눈을 뜨고 / 오랫동안 귀 기울여 주세요"라는 간절한 호소는 역사를 바로 보고 우리가 기억할 것들은 기억해야 함을 깨닫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는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시다.

<실수>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우리가 저지리는 실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기름을 쏟고 그것을 닦으려 애쓸수록 얼룩이 번지고 바닥이 더 미끄러워지듯 우리의 실수도 지우려 할수록 다 큰 흔적을 남기곤 한다. 시인은 담담한 언어로 실수의 본질을 조용히 들어댜 보게 하며,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단순한 경험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포착하는 이 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실수와 마주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집은 잊힌 기억과 존재를 불러내어 역사와 삶의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분단과 4.3 사건과 같은 역사적 비극을 현재로 소환하며, 애도하지 못한 존재들을 시적 언어로 복원한다. 또한 고정된 틀을 거부하고 모순과 역설 속에서 다층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 시집은 기억과 사유, 애도와 시작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다. 그렇기에 이 시집을 읽으며 머무는 시간동안 잊혀진 삶의 조각을 되찾고, 사유의 여백 속에서 '다음 시작'을 향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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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 2024 창비그림책상 수상작
포푸라기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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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펑펑 내리는 한 겨울, 창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읽기에 딱 좋을 그림책이다. 표지 그림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책은 제2회 창비그림책 대상 수상작으로, 하얀 눈 밭위를 걷는 한 아이의 상상을 따라가며 읽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길 위에 찍힌 새 발자국을 바라보며 펼쳐지는 아이의 자유로운 상상은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되풀이해 읽을수록 조금씩 다르게 다가오는 이 책은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어느 겨울날,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 아이의 즐거운 얼굴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데굴 데굴 눈사람을 만들며 친구들을 기다리다가 흰 눈 위에 찍힌 새발자국을 보고서 아이는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뽀드득 뽀드득, 새를 따라가는 건 재미있었다. 계속해서 길게 나있는 새 발자국.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새 발자국을 따라 가던 아이는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 무리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한때 함께 놀았을 수많은 새들을 상상한다. 사박사박. 새처럼 함께 노는 아이. 한참을 놀다 발자국을 가만히 보니 새처럼 보인다. 


아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새 발자국들이 하나 둘 살아나더니, 푸드덕 날아오른다. 그리고 훨훨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는 새 발자국들. 아이도 새처럼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서 사뿐히 눈 위에 누웠더니 이내 붉은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과연 붉은 새가 된 아이의 하늘 비행은 어떠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아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고정된 발자국에서 날아오르는 새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는 역동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을 따라 독자는 땅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점차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신비로운 세계와 최소한의 선과 색으로 표현된 정제된 그림은 이 작품만의 고유한 집중력을 만들며 깊은 몰임감을 선사한다. 눈밭을 가볍게 딛는 아이의 발걸음과 먹구름을 닮은 군화 발자국이 땅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대조적인 표현은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도 강렬한 메세지를 전한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새 발작국의 형상은 평화와 반전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평화 기호'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바닥에 찍힌 알록달록한 새 발자국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땅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희망과 평화의 발거름으로 보인다. 이는 전쟁화 평화의 의미를 함축하며 어린이의 순순한 상상력이 어른들의 세계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 간다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은 눈송이 하나가 제 손바닥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 아 없어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전쟁이 아픔을 손에 떨어진 눈성이처럼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의 새하얀 세상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를 바랍니다. 하얀 눈 위의 아이들이 반갑다고 날갯짓을 하면, 우리도 다 같이 새처럼 날개를 펼쳐보아요. 

이 책은 "우리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어요. 작지만 멋진 날개를 지녔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상상의 이야기가 반복하여 읽을 수록 더욱 평화의 이야기로 들리게 만들며 더 깊은 울림을 남기게 한다. 그렇기에 주인공 아이는 자유를 잃은 아이로 볼 수도 있고, 어른들의 틀 속에 갇힌 아이로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책 속 새 발자국은 어떻게 보이는 지를 묻는 듯하다. 어떤 답이든 정답은 없다. 왜냐면 자유로운 상상이 만들어 낸 답에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은 모든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꿈꾸고 상상하는 어른들에게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날개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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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뚱뚱하다 베틀북 고학년 문고
최승한 지음, 한태희 그림 / 베틀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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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살이 찌면 건강하지 못하다'거나 '날씬해야 아름답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시선은 어른들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먹는 것이 제일 행복한 아이, 문제방이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몸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그로 인해 아이들이 겪는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제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가지게 되었을 때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제방이는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고, 다 먹고 난 뒤에 느껴지는 노곤함마져 좋아하는 아이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만 많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았는데 마음껏 먹지 못하고 죽는다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다. 어른들 역시 제방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선 칭찬해 주었기에 제방이는 자신의 식탐이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제방이는 스스로를 '뚱뚱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조금 살이 쪘긴 했지만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 한 적도 없었다.


사실 제방이는 같은 반 친구 진아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머리결을 가진 진아는 제방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정작 진아는 제방이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운동장에서 넘어졌을 때 진짜 한심하다는 눈빛은 제방이의 마음에 작은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체육 시간에 벌어진 '뜀틀 사건'이다. 온 힘을 다해 뜀틀을 넘었고, 아이들이 제방이가 뜀틀을 넘은 것만으로도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한다. 하지만 진아는 제방이의 살이 출렁거리는 모습을 두고서 친구들에게 '돼지 한마리가 날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하고 화장실에 갔던 제방이는 진아의 그 말을 듣고야 만다. 그 순간 제방이는 창피함과 배신감, 수치심으로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역겨워지게 느끼게 된 제방은 구토까지 하게 된다. 결국 제방이는 그 사건을 계기로 인생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먹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었던 제방이에게 다이어트는 결코 쉽지 않다. 식욕을 참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점점 커지고 마음처럼 살이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배고픔을 참는 것은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배고 고프면 짜증이 나고, 지치고, 심지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기분마져 들었다. 무엇보다, 배고픔은 제방이의 눈에 세상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점점 변해가는 자신이 싫었던 제방이는 이제 배고픔을 참는 대신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운동이다. 배고픔은 견디기 어렵지만 힘들 것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집 앞 내장산 등반에 도전한 제방이는 예상대로 엄청나게 고생을 한다. 오르막길은 가파르고 숨이 턱턱 막혔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산 정상에 올랐을때 그동안 흘린 땀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움직여 얻어낸 성취감은 단순히 살을 빼야 된다는 강박과는 다른, 새로운 감정을 제방이에게 선물했다.


내장산 등반이라는 긴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제방이는 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그리고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제방이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 본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외모는 중요한 관심사다. 제방이 역시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내장산 등반을 통해 그는 뚱뚱한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특히 자신은 여전히 뚱뚱하다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즐겁게 먹고, 신나게 움직이며, 건강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외모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다시 한번 깨달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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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5
김은영 지음, 메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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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집의 현관문과 창문이 모두 사라지고 집 안에 꼼작없이 갇히게 되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보통 집이라고 하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로 여기는데 이 책의 설정처럼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책 거대한 상자처럼 변한다면 과연 어떨까?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공간이 순식간에 위험한 장소로 변하는 신선한 설정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도, 창문도 사라진 집에 갇혀 버린 남매 해리와 해수는 처음에는 당황하고 절망하지만, 점차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너무나 익숙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비일상적인 재난,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긴장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성장하며 이야기 속을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의 이야기는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일어난 해수가 현관문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놀라 누나인 해리를 깨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현관문이 사라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집의 창문마져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전화도 되지 않고 인터넷, TV도 되지 않는다. 벽을 두드리고 휴대폰을 수십번 껐다 켜도 소용 없다. 또, 인터폰을 이것저것 눌러보아도 역시나 작동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덩그러니 집에 남겨진 해수와 해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코로나 19라는 팬데믹을 겪은 우리에게 해리와 해수가 처한 상황은 결코 낯설지 않다. 집은 우리를 보호하든 둥지이자, 때로는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다.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긴 채 문 없는 집에 갇힌 남매는 혼란스럽고 막막하지만 어린이다운 긍정과 유머로 현실을 헤쳐 나간다. "문이 없어서 못찾는 거 아니야"라며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은 그대로 있잖아. 119 구조 대원들이 벽을 부수고 구출해줄 거야"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럼 우리...... 오늘은 학교 못 가겠지?"라는 대화에서 예상치 못한 자유에 대한 은근한 기대마져 엿보인다.


가둬진 현실이 주는 공포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층간 소음을 걱정하며 까치발로 다니던 일상이 사라지고, 구조 요청을 위해 음악을 크게 틀며 신나게 뛰논다. 엄마의 금지령을 깨고 가스불을 켜서 직접 라면을 끓이며, 깨끗한 벽지에 낙서를 하는 순간,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의 놀이로 변모시킨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고군분투가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유쾌한 버티기는 온전하게 자유롭지만은 않다. 해수는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유일하게 접속 가능한 동영상 앱 '아이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리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따뜻한 응원만은 아니다. "딱 보니 주작", "조회 수 벌려고 꾸민 일"이라는 악플이 달리고 심지어 경찰마저 의심한다. 비극적인 상황조차 연출로 의심받는 현실,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이 고립감은 점점 깊어져간다. 이 장면들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그리고 타인의 고통조차 쉽게 의십하고 가볍게 소비하는 현실의 단면을 날카롭게 조명하게 만든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벌어진 예상치 못한 재난,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해리와 해수의 고군분투는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더욱 깊이 와닿는다. 과연 남매는 문과 창이 사라진 집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좁은 집 안에서 갇힌 채 점점 더 지쳐가던 해리와 해수에게, 유정란을 부화시키지는 해수의 장난 같은 제안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새로운 희망이 된다. 둘은 정성을 다해 알을 돌보며 작은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고, 마침내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순간, 그 조그마한 투쟁이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제 그들은 구조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문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한다. 두려워하던 어둠 속으로 한 발짝 내딛는 이들의 선택으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은 단순한 탈출 이야기만은 아니다.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상상을 하고 직접 시도해 보는 것의 가치를 일깨우는 이야기다. 또한, 만화와 그림책, 일러스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메작가의 선명한 색감과 과감한 화면 구성으로 묘사된 그림은 해리와 해수의 모험을 아주 역동적으로 담아내며 이야기의 몰입감을 한층 높인다. 불시의 재난 속에서 하루하루를 긍정의 힘과 웃음을 잃지 않고 헤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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