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작은 무법자>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무법자'라는 단어는 범죄와 폭력을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에 '나의'와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되니 묘한 애착과 연민이 들어가버린다. 대체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작은 무법자가 되어버린 사람은 과연 누굴까?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골드 대거상, 식스턴 올해의 범죄소설상, 네드 켈리 국제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일본 출간 직후 서점 대상 번역소설부분상을 수상하였고, 디즈니 + 에서 시리즈의 제작이 확정되기까지 했다고 하니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30년 전 한 사건으로 시간이 멈춰버린 작은 마을 케이브 헤이븐. 그곳에서 스스로 '무법자'가 되길 자처한 열세 살 소녀 더치스와 과거의 죄를 짊어진 채 돌아온 빈센트 킹의 만남은 운명의 소용돌이를 불러온다. 페이지마다 엄청난 서사와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는 이 책은 슬픔과 상처를 품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강렬한 감동을 선사하며 단숨에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깎아지른 절벽 너머로 햇살이 부서지는 작은 마을, 케이프 헤이븐. 그곳의 경철 서장 '워크'의 시계는 30년 전, 열다섯 살의 '빈센트 킹'이 '시시 래들리'라는 아이를 죽이고 살인죄로 성인 교도소로 수감된 이후로 멈춰 있다.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죽은 시시의 언니이자 그의 오랜 친구였던 스타 래들리,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 뿐이다.


이야기는 한밤중, 긴박한 소란 속에서 시작된다.술과 약에 빠져 제대로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엄마 스타 대신 열세 살의 더치스는 다섯 살 어린 동생 로빈을 지키기 위해 나이보다 빠르게 성숙해 버렸다. 그런 그녀는 쓰러진 엄마, 스타를 구급차에 태운 채 그녀를 지켜본다. 그리고 어린 동생 로빈이 불안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워크. 집 앞에는 한방중의 소란을 지켜보며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이 서 있다. 곧 어린 남매는 병원 대기실에서 엄마의 상태를 알지도 못한 채 불안하게 기다린다. 그리고 워크와 더치스의 이어지는 대화에서 더치스는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고 있다.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그리고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며 버티는 더치스의 모습은 그동안에 이 아이가 받았을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져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바로, 살인자 빈센트 킹이 출소해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30년 전 사건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렸던 케이프 헤이븐에서, 그의 귀환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더치스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시 한번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빈센트 킹이 돌아와도 아이들과 스타의 삶은 괜찮은 걸까? 그런데 30년 동안 변함없이 그를 기다려온 사람이 있다. 바로 경찰 서장 워크. 그가 품어온 기다림을 들여다 보면 빈센트 킹은 그리 나쁜 사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과연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곳에 다시 찾아온 비극의 그림자는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일까? 이 모든 질문 속에서 이 책은 강렬한 서사 속으로 자꾸만 끌어당긴다.


더치스는 집세를 내지 못하는 엄마를 위협하고 협박하는 다크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어린이다운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그녀는 다크의 가게에 불을 지르고, 안에 있던 비디오 테이프를 보험 삼아 가지고 나와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그 작은 반항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의 도화선이 되고야 만다. 다크는 곧 더치스의 짓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녀를 위협했고, 두려움에 휩싸인 더치스는 결국 엄마 스타에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한다. 비록 스타는 동생 로빈의 생일을 싸그리 잊어버릴 정도로 무책임한 엄마였지만, 더치스 역시 여전히 아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한 번쯤은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던 거다. 그런 더치스를 보며 스타는 다정한 목소리를 말했다. "누구나 나쁜 짓을 해." 그리고 더치스에게 "내가 널 지켜줄게. 그게 엄마들이 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 더치스의 마음은 흔들리고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였지만, 그 말에 거의 울 뻔했다. 완벽하진 않아도,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그 날 밤, 더치스는 엄마가 잊어버린 동생 로빈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몰래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온다. 하지만 집 앞에는 평소보다 많은 경찰이 몰려 있었고, 그들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했다. 불길하 예감이 스쳐 지나가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한 더치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엄마 스타의 싸늘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빈센트 킹은 살인 용의자로 수감된다. 이번 죄목은 '스타 래들리 살해'이다. 더치스는 빈센트에 대한 분노와 세상을 향한 복수심을 억누르며 동생 로빈과 함께 생면부지 외할아버지 '핼'에게 맡겨진다. 낯설고 광활한 핼의 농장, 너무나 넓어서 황량하기까지 한 그곳에서 더치스는 '맞아서 시커멓게 멍든 엄마의 갈비뼈를 생각나게' 하는 허클베리를 씹으며 진정한 무법자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엄마의 죽음으로 더욱 깊어진 더치스의 상처와 분노에 그동안 연을 끊었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져 더치스의 가슴에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핼의 진심과 엄마 스타와의 이야기 속에서 점점 더치스는 핼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열어가지만 더치스의 인생의 역경은 끝이 없다. 과연 더치스와 로빈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매일 끊이지 않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남매의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도 제발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가슴 졸이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단순한 범죄소설만은 아니다. 저자는 더치스의 거친 성장기를 통해 선택과 운명, 복수와 용서에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책장을 넘길 수록 이 소녀의 삶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고, 그녀가 과연 이 잔혹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애태우며 지켜보게 된다. 이 소설은 저자의 말처럼 "실수에 관한 이야기,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서 이 책은 더 깊은 여운과 울림을 남긴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휘몰아치는 사건들 속에 눈을 뗄 수 없엇고, 절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으며, 울컥하고 올라하는 복잡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더치스를 통해 삶과 용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